“오빠 조금 더 밟아. 신랑 퇴근할 때 됐어.”

　“아직 3시잖아. 나는 회사에 다시 들어가기도 어정쩡한 시간인데 어디 가서 소주 한잔하고 조금 더 쉬다 가지.”

　지금 이들을 실은 차가 달리고 있는 옆으로는 푸르른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교대 근무하는 박영걸이 퇴근 시간만 아니면, 김인태가 근무 중인 시간만 아니면, 데이트를 즐기기엔 환상적인 시간이고 코스였다. 모두가 일할 시간에 앞으로 달리는 차도, 뒤를 쫓는 차도, 옆으로 지나치는 차도 없었다.

　한적하기만 한 해안도로 옆으로는 당연히 파란 바다도 보였다. 하얀 깨알 같은 작은 빛들이 여유롭게 너울거리고 있었다. 얼핏 보면 수정 알들이 허우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닷물이 헤엄을 치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씩 하늘을 향해 자잘한 하얀 빛들이 파도 위로 솟구쳐 오를 때는 주두희는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근무 중인 남편인 박영걸이 당연히 아니었다. 김인태와 기력을 빼고 복귀 중이었다. 벌건 대낮에 주어진 짧은 시간에 기력을 다한 결과로 당연한 증상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그 모습을 본 김인태도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건 눈이 부셔서가 아니라 아직 성욕을 원하는 만큼 풀지 못했다는 텔레파시였다. 그러나 주두희는 모른척하고 있었다. 빨리 집에 가서 새벽에 5시에 출근했다가 퇴근할 남편의 밥상을 차려줘야 할 주부로써의 역할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간략하고 은밀한 여행을 알 턱이 없는 박영걸은 환상적인 코스가 아닌 천명구에게서 쫓겨나 허병식의 스크린 골프장에 갔다가 거기서도 쫓겨났다. 그런데 거기서는 천명구에게 했던 것처럼 큰소리도 치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나와야 했다.

　“형님! 저 놈이 누구길래 좀도둑처럼 왔다가 나가버립니까?”

　딱 벌어진 어깨에 근육질인 삼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사람이 회사 옷인 윗도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면서 물었다.

　“어! 도경이 왔어. 주두희 신랑이야. 너희 사장님 찾으러 다닌다. 그런데 너희 사장은 어디에 가 있어. 얼마나 바쁘길래 몇 달째 코빼기도 안보이냐?”

　박영걸은 천명구에게 했던 것처럼 기세 등등하게 큰 소리를 치려다가 안도경을 보고 한 마디도 못하고 나가버린 것이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아 마시며 허병식과 눈을 마주치고 대답을 하고 있었다.

　“형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혹시라도 소문나면 어쩌려고. 직원들 몇 명 데리고 대구에 가 있습니다. 사촌 형이 일 손에 모자란다고 해서 도와주려 갔다가 완공하고 온다 네요.”

　고개를 끄덕이던 허병식이 섭섭한 듯이 말을 했다.

　“그냥 농담이야. 있는 놈이 더해. 내가 일거리 없다고 그렇게 앓는 소리했는데 그런 일은 내주지.”

　“허허허! 형님! 제가 그 말 나올 줄 알고 일거리 가져 왔습니다.”

　탁자에 두툼한 봉투를 내밀며 빙긋이 웃었다. 봉투를 뜯어 꼼꼼히 살피던 허병식이 물었다.

　“5층 건물이면 제법 걸리겠는데. 지원해 줄 거지?”

　“당연하죠. 저도 와서 도와줄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천사장님하고 사이는 좋아졌습니까? 저승 갈 때 저 건물 울러 매고 간다고는 안던가요?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은지. 허허허!”

　고개를 주상복합아파트가 있는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말도 마라. 문닫는다고 하니까 깨진 공까지 공짜로 자기 달라고 하더라. 그렇게 말하는 데 다른 건 어떻겠냐?”

　“들어갈 공간만 된다면 여기 있는 거 몽땅 준다고 하십시오. 분명히 스크린 방을 서너 개는 더 확장하려고 할 겁니다. 그때 형님이 인테리어 하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미끼라 생각하고 한번 던져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 건물이야 어차피 형님 건물이니까 몇 달 더 버틴다고 해서 집세 나갈 일이 없잖아요. 여기는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 한 명 더 뽑아서 맡겨 두고 우리 일이나 좀 도와 주세요. 지금 한창 영업할 판에 현장에서 일이나 하고 있으니 갑갑합니다. 어때요? 영업은 우리 형님한테 맡겨두고 공존공생 합시다.”

　“언제는 그렇게 안 했나? 좋아! 그렇게 하지 뭐!”

　“참! 말 나온 김에 천사장님을 오늘 만나보죠. 제가 바람잡이 역할을 확실히 드리겠습니다.”

　솔깃했던 허병식이 잠시 앞뒤를 골똘히 계산하는 것 같았다. 안도경이 그 수를 읽고 빙긋이 웃으며 보고 있었다. 안도경이 생각했던 그대로 물었다.

　“동생 생각도 같겠지. 걔가 영감한테 말하면 좀 쉽지 않을까?”

　아무 걱정 마라는 눈짓으로 눈을 한번 찔끔 감아주고 말했다.

　“그 걱정은 마십시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 뭐! 소문 들으니 여기 이미지가 엉망이던데 제가 여기 인수한다고 해버리면 천사장님 똥줄이 탈 겁니다. 저야 뭐! 이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깨끗한 이미지로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이때 바지 사장이 필요하지 언제 필요하겠어요. 형님은 당분간 우리 형님 손잡고 대구에 계세요.”

　허병식이 허망하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꺄웃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영감 만나는 건 조금 지켜보자. 일단 내가 그만둔다고 소문을 내면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일부는 거기로 갈 거야. 그렇게 되면 분명히 주두희도 거기로 가게 돼 있어. 그러면 방금 왔던 주두희 신랑 그 놈이 거기를 찾아가 또 난장판으로 만들 게 분명해. 그때 이름만 바꾸고 바지 사장 하나 올리면 이쪽으로 다시 몰려 올 거야. 그렇게 하면 어때? 그때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거 괜찮네요. 그렇게 하죠.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만약에 여기를 누가 새로 한다고 소문만 흘려도 영감이 분명히 여기 장비는 물론이고 공까지 제 값을 주고 사러 올게 분명합니다. 그때 웃돈 좀 받고 정리해도 늦지는 않겠죠?”

　“그래! 그 영감 욕심으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지. 담배가게만큼이나 많은 스크린골프장에 누가 생돈을 들여 차리겠어. 영감이 그 생각을 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걸 다 가져 간다는 그 말이지? 그래! 일단은 몇 일만 지켜보자.”

　안도경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시죠. 제가 도울 건 더 없나요? 형님이 최대한 도와드리라고 하던데 무슨 이유로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혹시 형님하고 우리 사장님하고 이 가게 두고 무슨 뒷거래 그런 거 하는 거 맞죠? 아니면 스크린이 우리 형님 거던가? 형님은 바지 사장이고.”

　“에라! 이 놈아! 네가 탐나면 탐난다고 해라. 그냥 뭐 의리 지키는 거여. 하늘을 우러러 한 줌 거짓이 없습니다. 차기 회장님 되실 안도경회장님! 나도 너 같이 듬직한 동생 하나 있었으면 마음 놓고 전국으로 일감 따러만 다니겠다. 자! 한잔 하러 가세.”

　허병식이 일어설 때 안도경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우리 형님이 옆에 바짝 붙어 있는데도 제까지 탐을 내요. 욕심 하나는 대단하셔!”

　허병식이 주먹으로 도경이 가슴을 한번 치고 앞서서 밖으로 나갔다. 가기로 한 주점 앞에선 안도경이 발걸음을 멈칫하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