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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가사리(不可殺伊)
작가 : 비내린
작품등록일 : 2018.12.20

이름 모를 타지에서 죽고 눈을 떠보니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한 구 아니, 한 명의 시체를 둘러싼 이야기.

 
7. 불가사리 -완-
작성일 : 19-01-24 22:11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8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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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강시여. 서둘러 돌아가야 합니다. 빗물에 그녀가 그린 주문이 지워진….”

  아주 작은 이슬비였지만 그도 비였다. 공저 스님은 내가 다시 적이 될까 두려운 것이리라.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았다. 전혀. 하지만 이곳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시체였다. 죽었다. 하지만 그녀의 안배일까. 마음까진 죽진 않았다. 다는 모든 것을 전부 이곳에 태우리라. 나는 아직 끈질기게 남아있는 가면을 꺼내 썼다. 곰 가죽옷에 코끼리 가면. 이것이 마치 나의 정체성 인 거 같았다.

  나는 몸을 일으켜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곳엔 내가 죽인듯한 기병들의 시체가 있었다. 나는 그들의 검을 주섬주섬 주었다. 헤아도 서둘러 우다다다 달려와 그것을 도왔다. 그리고 나에게 주었다.

  “고맙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거밖에 없는걸요.”

  그러면서 그녀는 힘들게, 아주 힘들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뭐라 말할지 몰라 그냥 무기를 받았다.

  “그것들로 무엇을 하러 그리 많이….”

  공저 스님이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당연했다. 대충 세보니 10개쯤 돼 보이는 숫자다. 그것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다룰 수 있지.

  와드득.

  헤아를 제외하고 나를 보고 있던 모두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칼을…. 먹고 있어.”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 소화되고, 내 몸속이 꽉 차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나를 조종했던 주술사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짤랑. 짤랑.

  여기서도 작지만, 빗소리를 뚫고 들릴 만큼 그가 다급하게 방울을 울리는 것이 들렸다. 나는 씩 웃었다. 저자만. 저자만 없었다면 경애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남편을 강시로 만든 것은 말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것 그냥 그녀의 품속에 묻어두고 거짓 속에서 보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와드득.

  저자의 손에 무너졌다.

  턱.

  마지막 칼을 손잡이가 슬슬 축축해지는 흙바닥에 꽂히듯 떨어졌다. 나는 천천히 그를향해 걸어갔다.

  짤랑.

  다시 한번 방울 소리가 들리고 외팔이 강시가 6명의 승병을 버리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쓸데없는 짓을.”

  퍽.

  주먹 한 방에 외팔이 강시의 얼굴의 절반이 날아갔다. 그 모습에 주변이 순간 고요해졌다. 나는 날아간 강시를 버리고 그를 향해 걸어갔다.

  퍽.

  그때 다시 내 등을 무언가가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팔 한쪽에 얼굴 반쪽까지 사라진 강시가 내 등을 두들기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의미가 없었다.

  턱.

  나는 그 강시의 목을 잡았다.

  와드득.

  나의 완력이 이렇게 강했나? 생각처럼 너무나도 쉽게 강시의 몸과 몸이 분리되었다.

  “나는 강시다.”

  잊고 싶었다. 나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나는 살아있으면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모든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최대한 인간답게. 인간 만큼의 힘을 사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시체다. 나는 죽었다. 나는 강시다. 그리고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불가사리다.”

  최 씨가 정해준 이름. 지금 보니 나쁘지 않았다.

  콰지직.

  나는 머리를 잃고도 계속 일어나는 녀석의 팔을 잡아 당수로 내려쳐 부러트렸다. 다리도 뜯어버리고 주술사에게 몸통을 집어 던졌다.

  “으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날아간 몸통은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훨씬 더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아쉽진 않았다. 이런 거에 벌써 죽으면 안 된다. 사지를 뜯어버리고 온몸에서 피를 다 뽑아내 죽여버리리라.

  “아저씨.”

  저 멀리 뒤에서 헤아가 나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이제 저 방울에 조종당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짤랑. 짤랑.

  녀석과 가까워질수록 다급한 방울 소리가 더 크게, 더 빠르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강시들이 나에게 덤벼들었다. 고작 15구밖에 되지 않았다.

  “가소롭군.”

  정말 가소로웠다.

 

  “미치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최 중랑장의 말에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누가 보면 1명의 사람과 16구의 강시의 대결인지 알 것이다. 너무 자연스러운 움직임. 마치 인간의 몸짓과 같았다. 그리고

  텅. 퍽.

  너무나 쉽게 막히고 너무나 쉽게 분쇄한다. 이곳까지 힘들게 달려와서 수십의 병사를 잃으면서 1구 겨우 더 없앴는데 그 희생이 너무 덧없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가 잡은 강시의 목은 너무 쉽게 부서지고, 너무 쉽게 강시의 사지가 분질러졌다.

  “저자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를 처음 보는 한 장수가 말했다. 그 말에 최 중랑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위험해.”

  위험했다. 비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곧 녀석을 자유롭게 하는 주술이 사라질 것이다. 어딘가에 부적을 붙였으면 부적이 젖어서 아니면, 그 무언가가 지워져서 말이다.

  “하필 이때 비라니.”

  “바로 주술사를 죽일까요?”

  “아니 됐다.”

  이곳은 그의 전장이지 자신들의 전장이 아니었다.

  “모두 위치로. 마지막 작전에 들어선다.”

  “그것은….”

  그녀들이 실패했을 때 저 강시를 아니, 강시를 넘어선 무언가. 그래 저 불가사리를 막기 위한 함정.

  “알겠습니다.”

  장수는 침묵하는 최 중랑장에게 예를 취하고 뒤로 둘러섰다. 그가 간 뒤에야 최 중랑장은 전장을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죽이지 못하면 가둬야지.”

  땅속 깊숙이 말이다.

  척척척.

  뒤에서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빗소리를 뚫고 느껴졌다.

 

  “으윽.”

  짤랑. 짤랑.

  경애가 그려준 무언가가 힘을 다하고 있는지 저 소리에 맞춰 머리가 간질간질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저 녀석을 죽이리라. 지금 당장.

  퍽.

  한 놈을 가볍게 밀쳐 옆에 녀석의 진로를 막고,

  “하압!”

  필요 없는 기합과 함께 엎어치기를 한 녀석이 날아 뒤에 있던 녀석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나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앞을 보았다. 주술사와 직선으로 나 있는 길. 그곳이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막아!”

  주술사의 발악이 느껴진다. 이미 3구나 부서져 13구밖에 안 남은 강시들이 나를 다시 감싸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속도, 힘 모든 것이 내가 더 높았다.

  “으아아아아아.”

  이미 그의 주위에 있던 그의 살아있는 수하들은 도망간 듯했다.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만 바닥을 기어가며 방울을 열심히 흔들 뿐이었다.

  “살려줘. 제발.”

  너무 비굴해 보였다. 내가 이런 녀석에게 조종을 당해 내 손으로 아내를 죽인 것인가.

  “계속 흔들어 봐.”

  나는 그 말을 하고 녀석의 한쪽 다리를 콰직 밟았다.

  “으아아아악, 살려줘. 제발.”

  그는 대롱거리는 발을 한 손으로 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 와중에도 방울을 계속 흔드는 것을 보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계속 머리가 간질거리고 슬슬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녀석을 조금 더 괴롭히고 싶었다. 저 방울이 네놈의 희망이라는 것이냐. 그럼 백날 흔들어보아라. 네 뜻대로 될지 말이다.

  탕. 탕.

  어느새 다가온 13구의 강시가 나를 감싸고 두들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별 의미가 없었다.

  “크크큭.”

 

  철 두들기는 소리, 방울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벌써 모두 끝났어야 했는데 말이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그 때문에 저곳으로 달려갔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시키는 일이었다. 아마 아줌마도 이렇게 해서 달려갔겠지. 아줌마는 죽으면서 후회했을까? 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도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거 같으니 말이다.

  ‘저딴 시체가 뭐가 좋다고.’

  그런 생각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한 순간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든든한 장벽 같던 사람.

  챙.

  언제나 품속에 있던 단검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웅덩이가 생기기 시작한 바닥을 달렸다.

 

  “활과 화사…. 아니, 됐다.”

  최 중랑장은 수하를 향해 내민 손을 다시 거두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는 이미 강시가 아니라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죽은 한 명의 여인, 맞으면서 주술사의 괴로움을 즐기는 불가사리 그리고 그를 향해 달려가는 꼬맹이.

  “맹랑한 녀석.”

  저기가 어디라고 뛰어가는가. 하지만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순 있었다.

  “최 중랑장님?”

  “이곳은 저자의 전장이 아니다.”

  그리고 씩 웃었다.

  “저들의 전장이지.”

  그의 시선은 계속 헤아를 따라갔다.

 

  오른팔밖에 남지 않았다. 그도 지치는지 아까의 다급한 소리와 달리 간헐적으로 소리가 울렸다.

  짤랑…. 짤랑.

  하지만 그것도 거슬렀다. 이제 그의 거슬리는 오른팔을 뭉개려 할 때였다.

  텁.

  무언가가 막듯이 나의 팔이 멈췄다.

  “드…. 디어.”

  그가 죽어가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익!”

  나는 이성이 꺼지지 않았으므로 몸에 힘을 주어봤지만, 전혀 꼼짝하지 않았다.

  짤랑.

  다시 방울 소리가 들렸다. 나를 포함한 모든 강시가 움직임을 멈추고 똑바로 섰다.

  “복수할 것이다. 모든 것을 불태울 것이다. 평생 모든 것을 부수며 살아가거라.”

  ‘안돼!’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남아있는 것은 이성뿐이었다. 이제는 말까지도 막혀버렸다. 그렇게 그가 방울을 다시 흔들려 할 때.

  “누구 맘대로.”

  익숙한 목소리.

  “으아아아아악!”

  그리고 비명이 한 번 더 울려 퍼졌다.

  헤아는 녀석의 팔에 단검을 꽂아버리고 방울을 멀리 차버렸다.

  “네년이! 감히! 죽여버릴 것이다!”

  “헹 마음대로 해 보시지.”

  ‘헤아야 죽여! 바로 죽여버려!’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지금 저한테 이자를 죽이라 말씀하고 계시죠?”

  헤아는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근데 이자를 처리하는 것은 제 몫이 아니에요.”

  하면서 나에게 다가와 가면을 벗겼다. 그리고 이마에 검지를 데고 슥슥 문지르기 시작했다.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아줌마 옆에 있었을 거 같아요?”

  “헤아야.”

  나는 드디어 목소리가 나왔다.

  “아저씨가 마무리하세요.”

  하면서 나에게 가면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았지만 바로 쓰지 않고, 한 팔과 몸통만 간헐적으로 떠는 그를 슥 바라보고 말했다.

  “우리 다른 이에게 맡겨보자꾸나. 혹시 부적 있니?”

  “아, 예.”

  헤아는 뭔지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부적을 건넸다. 한 두 장이 아니었다. 예비 부적을 그녀가 다 챙기고 있었던 거 같았다. 다행히 크게 젖지는 않았다.

  “방금 방울에 갇혔을 때 느낄 수 있었지. 저항하고 있던 건 나뿐만이 아니라고 말이야. 그때 내가 도망칠 수 있었던 건 괜히 숫자가 많기만은 아니었다.”

  하면서 다 죽어가는 그를 보았다.

  “모두 저항하고 있었고, 그중 이성이 가장 강했던 나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지.”

  하고 한 강시의 이마에 부적을 붙였다.

  그워워워.

  자유의 그리고 분노의 외침이었다. 나는 모든 강시들에게 부적을 붙였다. 나와 헤아는 잠시 물러섰다.

  “안돼. 안돼! 저리 가!”

  주술사는 죽어가면서도 두려움에 소리쳤고,

  퍽.

  곧 안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13구의 강시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녀석들이 도망치려 했던 건가?”

  정확하게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려 했던 것이었다. 저자를 죽이기 위해.

  “그냥 보내줄 걸 그랬습니다.”

  그랬다면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었다.

  “다 죽이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그 말에 장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강시들의 움직임이 느려졌고, 불가사리는 이마에 붙인 부적을 하나하나 떼고 있었다. 부적일 땐 강시들은 녀석이 내린 마지막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었으면 어떤 난리가 일어났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끝났군.”

  “그러게요.”

  효시라도 해야 할 거 같지만, 머리와 몸통은 흔적조차 없었다.

  “이제 그 탈영병 새끼들만 잡으면 되겠네.”

  “그러게요.”

  그렇게 채 한 달도 안되는 짧은 전쟁은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고생했네.”

  “제가 무얼 했겠습니까. 전부 목숨 바쳐 마물과 싸운 병사들 덕이지요.”

  공민왕의 말을 가볍게 받은 신돈은 둘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기며 대화를 나눴다.

  “크음.”

  “흠흠.”

  양옆에 늘어서 있는 문벌귀족들과 신진사대부들은 불만을 느끼고 괜히 헛기침을 해보지만, 그 둘은 둘만의 세계에 빠져 그들의 불만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함부로 끼어들기도 뭐했다. 신돈이란 자가 그 사건을 해결한 것은 맞다. 그리고 고작 100여 명 밖에 남지 않은 승병들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들이 나서서 백성들의 피난을 돕고, 목숨 받쳐 싸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병사들 사이에서도 승병들이면 한 수 접어주고 들어갔다. 이럴 때 트집을 잡아 신돈을 물고 늘어지면 같이 승병도 벌해야 하고 그러면 민심이 멀어진다.

  강제로 실수를 만들어 벌할 수 있는데 굳이 먼저 나서서 지금 벌주를 마실 필요는 없었다. 딴것보다 원나라만 바라보고 권력을 잡은 문벌세족도 이 정도도 계산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신진사대부도 두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하하하하하.”

  간만에 공민왕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궁궐을 울렸다.

 

  “진짜 갈 것인가.”

  “….스님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 말에 공저 스님은 혼란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자네는 살아줬으면 좋겠네.”

  “…. 왜 그런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자네에게 많이 배워서랄까.”

  무언가 털어버린 듯 공저 스님의 혼란스러운 눈빛도 사라졌다. 그리고 마물에게 무언가를 배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그 말씀 함부로 하셔도 괜찮은 겁니까?”

  “세상 모든 것을 보고 본받아야 할 것이 있네.”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 세상이 아주 좁았지. 하지만 자네 덕분에 그 시선이 넓어질 수 있었네. 고맙네.”

  하면서 그는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스님. 고개 드십시오.”

  나는 그에게 대였던 기억 덕분일까. 함부로 그를 만지지도 못하고 어쩔줄 몰라했다. 공저는 고개를 들고 그 모습에 껄껄 웃었다.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게나.”

  그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지만, 나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

  그는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왜 그러냐고 나에게 묻고 있었다.

  “미리 가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공저는 그 말에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저.

  “나무아미타불.”

  불호를 욀 뿐이었다.

 

  “….”

  울음을 꼭 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조금 울어도 될 텐데 말이다. 그런 헤아의 옆에 최 현 중랑장님이 서 있었다. 그의 왼손으로 헤아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수양딸…. 이라.’

  전쟁이 끝나고 격하게 싸웠는지 붕대를 이리저리 감고 와서 한 말이었다. 헤아를 자신의 수양딸로 삼겠다고 말이다. 내가 떠날 거라는 것을 짐작했는지 아니면 정말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그녀는 진짜 살아있는 가족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중요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남은 13구의 강시. 그 동굴에 사지가 잘려 남아있던 녀석까지 14구의 강시가 모여있었다. 아, 나를 뺐군. 15의 강시가 있다.

  “시작한다!”

  공저 스님이 크게 외쳤다. 그 말에 나는 아직도 내 손에 들려있는 가면을 썼다. 의미는 없지만, 이 녀석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한 것을 보아 끝도 함께하고 싶어서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와 동시에 헤아와 최 현 중랑장님, 공저 스님 등 나와 인연이 있는 자들이 횃불을 던졌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져 내 몸을 붉게 물들였다.

  “마하반야 바라밀다….”

  그리고 스님들이 뭔가를 외기 시작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나무아미타불이 아니었다. 전혀 모르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그 주문과 함께 내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이 없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죽는구나.’

  두 번째 죽음이다. 아니, 세 번째인가. 나는 피식 웃었다. 첫 번째는 경애에게 죽었다. 두 번째는 나도 모르는 기억 속에서 죽었다. 세 번째는 이곳에서 죽는다. 이 정도면 죽기의 달인이라 칭해도 되지 않을까?

  죽음이라 해도 그리 두렵거나 하지 않았다. 살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죽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만약 가서 그녀를 만난다면…. 그렇다면 많은 것을 물어볼 것이다. 나는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으니 말이다. 그녀가 무얼 했는지, 얼마나 두려웠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날 사랑했는지 말이다.

  “안돼! 아저씨!”

  헤아의 외침이 들린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도 말이다. 슬피지만, 또 기쁜 소리였다. 난 헤아의 눈물 속에서 스르륵 눈을 감았다.

 

  “늦게 왔구나.”

  “좀 늦을 수도 있지 왜 그러십니까.”

  “어쭈. 바락바락 올라오더니 이제는 말대꾸까지 하는구나.”

  “제가 이러는 게 한두 번입니까?”

  그 말에 방장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야 농을 좀 할 줄 아는구나.”

  “예. 덕분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방장은 한 번 더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무얼 하다 늦었느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 좀 해주느라 늦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더냐.”

  “‘불가사리(不可殺伊)’라는 용감한 요괴입니다.”

  “용감한 요괴라….”

  방장은 그 말을 곱씹다 껄껄 웃었다.

  “그래 불가사리는 어떤 요괴이더냐.”

  “예. 몸은 곰에다가 얼굴은 코끼리입니다. 그의 몸은 창, 칼에 상처 입지 않고, 마를 물리치고 악몽을 잡아먹는 요괴입니다.”

  “그래. 좋은 요괴로구나.”

  방장은 잠시 차로 입을 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두려움은 몰아냈느냐?”

  “예. 덕분에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구나.”

  “근데 방장님. 혹시 그 강시가 저에게 이런 깨달음을 줄 거로 생각하고 보내신 겁니까.”

  그 말에 방장은 고개를 내 저으며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네가 알기는 바랐지. 마물이든 인간이든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르지 않다….”

  그 말을 끝으로 방장은 차를 음미하며 마시기 시작하였고, 공저도 그를 따라 찻잔을 기울였다.

 
작가의 말
 

 갑자기 필이 꽂여서 빠르게 썼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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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 강시 2018 / 12 / 24 243 0 9790   
4 2. 강시 2018 / 12 / 23 262 0 11043   
3 1. 고려로 2018 / 12 / 22 243 0 9382   
2 프롤로그 + 1. 고려로 2018 / 12 / 21 241 0 9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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