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잖아도 자네 얘기 하던 참인데 자네도 양반 되긴 걸렀네. 허허허.”

　천명구 말이 당연한 말인 것처럼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피곤한 듯이 깍지 낀 손으로 뒤통수를 받쳐 기지개를 치면서 의자에 앉아 이선근에게 눈인사를 하고 몸을 여러 번 비틀고 난 뒤에 말을 했다.

　“당연하죠. 지금 이 동네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 아닙니까! 허허허! 그나저나 문 닫기로 했습니다. 제까지 이상한 놈이 될 것 같아서. 참! 애리는 요즘 잘 지냅니까?”

　이선근의 표정이 굳어지며 발끈 하려고 했다. 그러나 허병식이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 사과부터 하면서 마음을 풀어 줄 작정을 했는지 변명과 칭찬을 곁들이고 있었다.

　“허! 죄송합니다. 친하다 보니까 제가 말 실수를 했습니다.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이놈의 입버릇이 고쳐지지가 않네요. 그런데 주두희 남편하고 친한 사이입니까? 제가 보기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대답대신에 씁쓸한 미소가 보내줄 때 천명구가 정답을 얘기했다.

　“그 놈이 시대를 잘 만나서 무서울 게 없지. 지금 시대 같으면 늘려 있는 실업자 중에 한 놈 일 건데....... 이 사람과는 전혀 어울릴 레벨이 아니지. 그런데 어쩌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어?”

　“말도 마십시오. 갑자기 쳐들어와서 삿대질을 하며 전부 바람난 년 놈이라고 고함을 지르며 욕을 해대는 데 정말 기가 찼습니다. 우리 가게를 아예 성 매매 업소로 전락 시켜버리고 온 동네에 소문을 낸다고 하는데 누가 또 오려고 하겠습니까? 지금 영업 방해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고발 접수가 안되면 그 놈 회사에 찾아가서 있는 그대로 터트려버릴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선근은 갑자기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위장이 꼬여지는 것 같기도 했다. 삿대질을 하며 욕도 하고 싶었다. 그게 당신이 바랬던 영업 전술이 아니었나?

　거기에 우리 집사람도 끌어들였지 않느냐며 추궁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을 하면 자신만 더 초라해질 것 같아 조용히 이빨만 갈면서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놈이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고발을 안 했단 말인가?”

　“허허! 고발을 할 수가 없죠. 거기 있던 사람들이 그 놈이 누군지 잘 아는데 주두희 남편 편들었다가 어떤 보복을 당할 지 훤히 아는데 고발을 해도 편들어 줄 사람이 한 명도 없죠. 고발해봤자 상방 과실 정도로 끝나죠. 그런데 동생이 주두희 신랑이 바람 난 걸 본 모양이던데요. 그렇게 두들겨 패고 귀에 대고 뭐라고 하니까 그 놈이 꼼짝도 못하는 거 있죠. 확실한 약점을 잡고 있는 게 확실해요”

　이선근이 그 놈이 누구고 뭐 하는 사람인지 갑자기 궁금해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뭐 하는 사람입니까? 거의 영웅 취급을 하는 것 같네요.”

　천명구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영웅은 무슨! 조상 잘 만나 고생 한번 안 하고 빈들거리는 놈이지. 그런 놈은 주두희 신랑보다 더 못한 놈이야.”

　허병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지만 그 말은 천명구에게도 향했다.

　“조상 잘 만난 건 형님도 똑같죠. 허허허! 그렇다고 어떻게 주두희 신랑에게 갖다 붙입니까? 그런 말 들으면 그 놈이 형님에게 경로우대라도 해 살살 치겠습니까? 잘 아시면서. 그 놈이 뭐하냐 하면 저하고 같은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규모는 제 같은 놈은 잽도 되지 않고요. 비위만 건드리지 않으면 법 없이도 살 놈인데 건드리는 순간에는 뒤탈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여튼 잔인한 놈입니다.”

　“그 참 말에 가시가 있다. 나야 그렇다지만 그 친구는 자네를 잘 따르는 동생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요즘 뭐 일거리 잘 안 줘?”

　“아이고 참! 형님! 그렇다고 그렇게 확대 해석을 해버리면 안되죠. 혹시라도 그 친구 귀에 들어가면 제가 난처해집니다. 그건 그렇고 김인태 그 놈은 요즘 어디서 노는가요? 여기도 안 오죠?”

　허병식이 미꾸라지 빠져나가듯이 말을 돌려 버렸다. 그러나 이 말은 이선근도 궁금해하던 터였다. 매일 얼굴을 봐도 업무 외에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지가 꽤 오래되었고, 뒤에서 욕을 하고 다닌다는 말도 자주 듣지만 앞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상사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로 나긋나긋하게 처신을 하고 있는 중이라 불길한 마음도 드는 중이었다.

　김인태 이름이 올라왔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주에서 김인태의 근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김인태는 이혼을 했고 이혼녀가 된 이훈희는 예전처럼 골프장에 가면 남자들과 골프를 친다고 했다. 남자도 예전처럼 고정적이지 않고 자유롭게 계속 바뀐다고 했다. 이런 저런 주제 없는 얘기를 하다가 이선근은 귀가를 했다.

　김인태와 이혼한 이훈희는 도덕 선생이었다. 병실로 들어간 이훈희가 주두희 남편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빈정대고 있었다.

　“자기 싸움 잘 한다면서 이게 뭔 꼴이야? 그리고 나이가 몇인데 아직 주먹질을 하고 다녀.”

　주두희는 주두희대로 다른 병원 정형외과에 누워있고 남편은 남편대로 다른 병원 정형외과에 누워있었다. 안타깝게도 주두희가 누워있는 병실에는 주두희 혼자만 있고 남편이 있는 병실에는 김인태의 이혼녀인 훈희가 시키고 있었다.

　“고발은 했어? 그런 놈을 어떻게 가만히 놔둬? 이게 뭐야?”

　주두희 남편이 고발을 못하는 이유는 이훈희 때문이었다. 그 놈이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치료받고 가라며 이훈희 이름과 선생이라는 직업까지 귀속말로 속삭여 협박해 입을 꿰매 버렸다. 주두희 남편이 그때를 떠올리며 짜증스런 눈으로 훈희를 보며 날아가는 파리를 치듯이 손등을 나풀거렸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가라. 조용히 있고 싶다.”

　부채질하듯이 팔랑거리는 손바닥을 본 이훈희가 미간을 바짝 잡아 당겨 붙여 주두희 남편을 노려보며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얼굴도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저 손짓은 학교에서 내가 학생들에게 하던 짓이었는데. 비위가 상한 이훈희가 콧방귀를 치며 바로 돌아서 나가버렸다.

　그렇게 나가는 이훈희를 본 주두희 남편은, 만약에 자기 남편이 누군가에게 얻어터져 이렇게 누워 있어도 저렇게 냉정하게 나가 버릴 까?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그는 혹시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병실 출입문을 보고 있었다. 그때 주두희도 붕대에 안면이 칭칭 감긴 채 홀로 침대에 누워 병실 출입문을 보고 있었다. 집으로 간 이선근이 애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애리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찡그렸다. 이유도 모르고 저런 인상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작심을 한 상태였다.

　“당신은 두희씨 병문안 안가?”

　이게 무슨 소리? 어떻게 알았지? 순간적으로 남편이 무서웠다. 하루 종일 남편의 손바닥 속에 갇힌 기분도 같이 들었다. 일단은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