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가 된 남자는 허병식과 친한 동생이고 천명구가 연습장을 비울 때는 회원들에게 레슨도 해주는 허병식보다 실력이 월등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덩치와 인물은 고사하고 허병식도 고개를 숙이고 일감을 얻어야 할 이 지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건설회사의 2세며 차기 회장이었다.

　돈 많고 골프 잘 치고 인물 좋은 데다가 김인태를 한 주먹에 날려 버리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건방진 주먹이기도 했다. 웬만한 여자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건방진 눈높이까지 가진 놈이었다. 그런데 천명구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람의 아내도 범상찮은 인물이었고 ‘남녀 사이를 누가 알겠냐?’ 의문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 친구가 골프장에 들락거리는 아낙들에게 흑심을 품고 기웃거리는 성격이 아니란 건 천명구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 사람의 아내였다. 이 사람의 아내는 연습장에 들락거리는 다른 여성 회원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 만큼 특출 난 인물을 가지고 있었다.

　주두희가 헤픈 팬티로 남자들을 호려 끌어 들였다면, 이 사람의 아내인 소애리는 자신의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는 자체 하나로 매출에 득이 되는 사람이었다. 이 말인즉슨 그녀는 젊던 늙던 남정네들의 원초적 본능을 꿈틀거리게 해 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옆에만 있어도 남정네들의 힘을 불끈 솟게 해주는 강력한 엔도르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매력이 없는 주두희는 그만의 매력을 함부로 남발했다. 그 남발을 즐긴 회원들 둥 일부는 질려버리나 마주치기 민망해 연습장에 얼씬거리지도 않고 있었다.

　천명구의 입장에서 실제로 구미가 당기는 사람은 소애리가 적격이었다. 헤픈 주두희와 달리 성품도 처세도 꼿꼿한 애리가 연습장에 와야 연습장 이미지도 좋아지고 또한 그녀의 매력에 반한 음탕한 기대를 품은 남정네들도 많아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천명구에게 애리가 필요했지만, 그녀의 남편인 이 사람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소애리가 연습장에 들락거리지 못한 점이 늘 아쉬웠다.

　그렇다고 공짜로 이용하라고 하면 되지만 돈이 아까워 그러지도 않았다.

　안타까운 눈으로 이선근을 보면서 언뜻 남녀간에 벌어진 일을 그들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날 이 사람의 아내와 그 놈이 골프만 치고 과연 그냥 집에 갔을까?

　천명구의 애매모호한 상상이 실제로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둘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날 즉석은 아니지만 그 후로 발전하고 있지 않을 까? 의심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술이 제법 들어가면서 속이 있는 말들도 오가고 천명구는 이선근의 아내에 대해 연습장에서 봤던 그대로만 말을 했다. 가끔씩 넌지시 아내가 주두희와 비슷하지 않을 까 의심하는 듯한 냄새를 풍긴 말이 이선근의 입에서 나왔을 때는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그런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도 아내를 의심하는 건 오히려 아내가 나쁜 생각을 하게끔 궁지에 몰아 넣는 짓이라고 야단을 치면서도, 단호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걸 본인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말이 오가면서 자연스레 서로 믿는 사이가 될 시간은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천명구와 허병식의 스크린 골프장으로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게임이 끝나고 난 뒤 목을 축이는 곳은 이 자리 그대로였다. 떠들썩하게 한 무리가 들어왔다. 양반이 아니란 걸 증명이나 하듯이 주두희가 가장 먼저 앞장 서 들어왔다.

　“어머! 어떻게 두 분이…… 잘 지냈어요?”

　엉거주춤 일어서 인사를 하던 이선근의 표정이 주두희의 뒤를 따라와서 탁자에 앉은 일행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표정이 불편하게 바뀌었다. 그때 허병식이 가게로 들어오면서 천명구를 보면서 허리를 굽실 숙여 인사를 했다.

　“어! 형님! 놀려도 한번 안 오시고. 저! 요즘 일감이 없어 연습장만 지키고 있습니다. 허허허!”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이선근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디서 뵌 것 같은데…….”

　“아이참! 오빠도. 자주 못 보니 벌써 잊은 모양이네. 애리 신랑이잖아.”

　주두희 말에 허병식이 반갑게 손바닥을 치면서 일행들에게 가지 않고 탁자 하나를 끌어 당겨 앉으며, 이선근이 눈을 빤히 쳐다보며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 맞다. 애리 신랑이네. 어떻게 한번도 안 오세요. 섭섭하게.”

　친동생이나 동네 동생 부르듯이 한두 살도 아닌 아내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데서 이선근의 인상이 일순간에 일그러졌다. 게다가 오빠라니. 혹시 집사람도 이 놈에게 오빠라고 부르나. 내민 손이라 어쩔 수없이 잡았지만 말을 잃은 사람처럼 눈만 마주치고 있었다. 그때 두희가 옆으로 와서 천명구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서없이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가게하고 집에만 쳐 박혀 있게 하지 말고 애리 좀 보내 주세요. 우리 오빠 이러다가 망하겠어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자신과 비슷한 연배처럼 보이는 남자들에게도, 곧 장례식장 영전사진에 걸려도 나이가 아깝다거나 아쉽다거나 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남자들에게도, 주두희는 전부 오빠라고 부르며 주둥이를 나불거리고 있었다.

　그럼? 아내는? 저런 분위기에서는 어쩔 수 없이, 분위기에 따라가서 오빠라고 부르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 실제로 아낙들 입에서 나오는 호칭은 전부 ‘오빠!’였다.

　저런 주책없는 것들. 저 속에 아내도 있는 것처럼 속에서 열불이 나고 있었다.

　그래도 주두희만큼은 친구의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의식하고 참작해줘, 처신을 조심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주책을 벌이며 맞은편에 있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영감들에게 찰싹 달라 붙여 아양을 떨고 있었다.

　마치 ‘네 마누라도 나와 똑같아 이놈아!’을 각인시켜주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 의도인즉슨 전부 끼리끼리 유유상종의 자리에 네놈이 찌질 해서 요즘 애리가 못 나올 뿐이다. 분명히 보여주기 식이란 생각을 하자마자 입술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벌써 허병식의 손을 사랑이던 뭐던 애걸하듯이 꽉 잡고 쳐다보는 두희의 시선과 더 이상은 마주치기 싫어 시선을 돌리던 중, 하필 앞 탁자에 앉은 일행들이 눈에 들어왔다. 약간은 의도적으로 쳐다봤다.

　혹시 저놈 중에 한 놈이 마누라와 저년! 두희와 같은 짓을 하지 않았을까? 딱 그런 분위기였다.

　사오십 대의 남정네와 아낙들과 예순이나 일흔의 나이가 된듯한 영감도 있었다. 어느새 시선이 전부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늙은 남정네들의 시들은 풀잎 같은 눈이 아내를 집구석에만 쳐 박아두지 말고 자기들에게 보내 달라며 절규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