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굴 걱정을 하는지, 나이만 젊었어도 주먹다짐을 각오하고 ‘네 놈 마누라 관리 잘 해라.’ 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떠올랐다. 이 놈이 치매가 왔나? 치매 올 나이는 난데. 어이없는 헛웃음이 한번 나왔다. 내가 건물주라는 걸 벌써 잊어버렸나?

　돈 자랑하지 않고 편하게 어울리고 싶어 편하게 대해준 결과가 이것인가? 내가 처신을 잘못해 살아 왔는가? 갑자기 내가 죽을 때가 됐나?

　허병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가도 화가 벌컥 나기도 했다. 마지막에 호탕하게 밀어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좀생이 같은 짓을 한 게 너무 지저분했다는 반성에 한숨도 같이 나왔다. 그러나 그건 꼭 자기 잘못만은 아니었다. 허병식이가 작지만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배경에는 자재를 빼돌려 자금을 마련한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지은 건물들은 대부분 부실공사의 피해를 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만약에 주상복합아파트를 부실공사로 지었을 때 피해는 무엇이었겠는가? 한 사람이던 많은 사람이던 그들의 생명이 소중한 것은 범위의 차이에 떠나서, 소중하고 소중하지 않은 판단은 절대로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허병식뿐만 그가 아는 건설회사도 일체 배제를 했다. 한가지 큰 잘못은 마지막 며칠간 자신이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것이었다. 공짜로 스크린도 연습도 하게 했어야 했는데 적던 크던 돈은 돈이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었다.

　“사장님! 통닭 반 마리 시켜 한잔 하시죠? 사람도 별로 없는데.”

　그렇잖아도 회원이 별로 없어 속에서 천불이 나 있는 데 한마디 한마디가 수명을 단축시키고 안달이 난 놈처럼, 수명을 재촉하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어디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김인태의 배알이 또 꼴릴 대로 꼴려 있는 건 확실했다.

　부탁할 일이 있으면 한쪽 입술을 한 쪽으로 비틀어 올려 벌쭉이 벌린 채 배시시 웃는 그 버릇도 잊지 않고 또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대하는 태도가 오래 전에도 나온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 부탁이나 유익한 어떤 가십거리를 담고 웃는 건 아니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주제를 두고도 이런 식의 거만이 몸에 베인 사람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한번은 난데없이 연습장 임대료를 얼마 주느냐고 물었다. 자기가 건물주라고 천명구가 대답을 했을 때 눈 꼬리도 입 꼬리도 한 쪽으로 치켜 올려 비웃으며 말했다. 그때 천명구는 화가 나서, 그런 질투나 시기가 섞인 원망은 당신 부모에게 하라고 했다. 부모 탓을 무슨 이유로 나한테 화풀이를 하냐며 야단을 쳤다.

　비웃고 원망하고 싶으면 당장 당신 부모님 산소에 가라는 말까지 해버렸다. 그 후에 너무 모진 말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어, 어떤 망발을 해도 그러려니 하면서 대해주었다. 그렇게 편하게 대해준 보답이 이런 식이란 걸 그땐 왜 하지 못했을까? 천명구는 자책 속에 단 칼을 부드럽게 휘둘렀다.

　“김부장! 그런 말 하려면 앞으로 여기 오지 말게나. 갑자기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 하는 생각이 드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지금도 사람을 당신의 줏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못하겠네. 그만 나가주시게나. 다시는 여기도 오지 말고. 부탁하네.”

　“아이! 참! 연세도 드신 분이 뭐 그런 말로 토라집니까? 농담 한마디 한 것까지고.”

　들은 척 만 척 일어선 천명구가 직원에게 먼저 퇴근한다는 말을 하고 종종 찾는 소주 집으로 갔다. 가는 내내 지금 하고 있는 후회가 너무 늦은 후회를 란 것도 되뇌고 있었다. 허병식도 본인도 욕심이 과해, 당하지 않아도 될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습장 정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나이에 뭐할까? 쉰다. 여행.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이 하지 좋아하지 않는 데 억지로 어떻게 하는가? 게다가 건물의 절반이 훨씬 넘은 돈이 은행 돈인데. 이자 내고 나면 몇 푼이 남는다고. 애들에게 이자까지 물려 줄 순 없지 않은가? 고개를 돌려 보았다. 반짝이는 전등불이 새어 나오는 유리창보다 나오지 않는 유리창이 더 많았다. 건물이 완공된 후로 지금까지.

　헛웃음 치며 건물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인사를 해 쳐다 보았다. 안면은 있지만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저! 주두희씨의 친구 남편입니다. 소주 생각이 나서 집에서 나왔는데 같이 한잔 하실까요? 어르신 게 인생 상담도 할 겸. 허허허!”

　천명구는 또 생각을 해야 했다.

　‘내 인생도 뭔가 꼬여 있어, 나도 내 자신을 모르는데 내 주제에 무슨?’

　이 외에도 또 다른 생각도 떠올랐다. 주두희 친구들 대부분이 말 그대로 온당찮은 여자들이란 생각도 불현듯 들면서, 그들 중 한 사람의 남편.

　분명히 김인태 마누라 같은 짓으로 이 사람의 염창이 뒤집혀 있을 것이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일어날 것 같은, 길거리에서 급성심근경색이라도?

　만약에 그들 중 하나의 남편이라면, 김인태를 마주보면서 했던 생각의 번복밖에 더 되겠나?

　다음으로 미루려고 했지만 벌써 손이 붙잡혀 있었다. 주두희의 이미지가 주는 효력 탓인지 살포시 붙잡힌 손이 틀림없었지만 우악스런 손처럼 느껴졌고,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불쾌한 마음을 털어내기도 전에 얼떨결에 이끌려 자리에 앉혀진 천명구의 마음속에는 불안도 같이 밀려 들었다. 꺼꾸로 되돌려보면 김인태가 말한 연장선 위에 놓인 거나 다름없었다.

　분명히 주두희에 손에 끌려 허병식이 연습장으로 가서 바람난 년 중에 하나의 남편이 분명한데 나를 알아본다는 건, 시작은 우리 연습장에서부터였다. 게다가 스크린골프장의 매출을 올리는 데는 주두희의 인맥도 한몫을 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주두희와 어울리다가 바람난 여자의 남편은 분명했다.

　“사장님! 잘 지냈습니까? 소애리씨 남편입니다. 그리고 김인태부장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선근이라고 합니다.”

　진작에 말을 하지. 늙은 놈 머리 복잡하게. 차분한 목소리에 정감은 갔지만 김인태와 소애리란 이름이 나오면서 천명구의 긴장은 두 배가 더 가중되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입을 잘못 뻥끗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생각은 소애리 남편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 동안 마누라를 지저분하게 관리한 사람의 손을 잡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부장이 말한 아내 간수, 즉! 아내의 지저분한 면면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데 멍청한 놈. 이선근은 후회하고 있었다.

　천명구는 이런 사단을 염려하고 있었다. 분명한 건 소애리는 연습장에 가뭄에 콩 나듯이 일년에 서너 번 정도 들렸지만 그날이 문제였다. 스크린 홍보용으로 던진 허병식의 미끼를 소애리도 덥석 물어 버렸다. 그 미끼를 문 이 사람의 아내의 인물과 그 놈의 인물과 배경. 남녀 사이를 누가 알겠는가? 천명구는 바짝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