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다른 이별을 맞이했던 그들의 아침식사는 다른 날과 비슷하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월에게 명부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업적을 세우는 날은 어제가 마지막이었으니까.
곧 이별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월의 팀은 그 누구도 울상을 짓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어 보였고, 대화도 하였다.
식사를 마친 월과 둘은 할 일이 있어 먼저 식당에서 나갔고, 하나와 셋은 뒷정리를 시작하였다.
단둘이 남았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를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였기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일만 마치면 염라의 성으로 가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속 한 구석에는 이런저런 감정들이 섞여있었다.
저승에서 벗어난다는 시원함, 다른 생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팀원들을 보지 못한다는 슬픔과 그들과 더 이상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쓸쓸함까지.
여러 감정이 아닌 한 가지의 감정만 느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럼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말을 해야 할지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나는 그릇들을 정리하다가 고개를 살짝 돌려 셋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다른 날과 똑같은 아이였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마치 자신의 옛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던 하나는 피식 웃었다.
나를 처음 본 그날, 아주 반갑게 맞이해주던 셋의 모습이 바로 어제처럼 이렇게 생생한데….
꽤나 오래 저승에서 머물렀지만 하나는 전혀 긴 시간이 그녀와 같이 있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도 많았고, 늘 부정적이었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꾸게 해준 저승의 시간이었다.
물론 슬픈 일도 많았지만 기쁜 일이 더 많았던 그녀였기에, 하루하루가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며 뒷정리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셋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리려고 한 하나를 알아차렸는지 여전히 뒷모습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가는 셋.
“여기로 시선을 돌리지 말아주세요. 하나 님이 쳐다보시면 정말 울 것 같아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셋의 목소리에 그녀는 움찔거리고 가만히 듣기만 하였다.
“항상 감사했어요. 하나 님 덕분에 이승의 기억도 찾고… ‘셋’이라는 소중한 이름이 생겼고, 또 다애 님을 마지막으로 뵐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그건 내 덕분이 아니라…!”
“아뇨, 하나 님 덕분이에요.”
여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셋의 말투였다.
웃고 있지만 확신이 담긴 단호한 말투는 하나가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나를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셋이었다.
그녀 덕분에 값진 기억들을 얻었고, 팀원들이 감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은 모르는 것 같지만 그 누가 보아도 그들이 달라진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헤어지기 직전에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았던 셋은 자신의 마음을 모두 전하였다.
“어쩌면 이승에서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보냈던 것은 하나 님을 만나는 대가가 아니었을까요?”
“뭐……?”
“정말 빈말이 아니고, 만약 하나 님 같은 분을 또 볼 수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괜찮을 것 같아요.”
“셋.”
“그만큼 하나 님께서는 정말 사랑스러운 분이세요. 대단하고, 멋있고, 소중하고, 가치가 있어요.”
끝까지 셋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하나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휙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 미소가 너무나 밝아서 눈이 동그랗게 커져갔다.
“그러니까 이승에 돌아가시면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여태까지 하나 님께서 힘드셨던 만큼, 반드시 좋은 일이 하나 님을 찾으러 갈 거예요!”
오늘 하루 울지 않을 것 같았던 하나는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너희들도 주형오빠처럼 웃으며 헤어지고 싶었단 말이야….
하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셋에게 달려가 아이를 꽉 안아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자신을 안아준 하나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셋이 싱긋 웃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 *
염라를 보러 가기 위해 준비를 모두 마친 부하 직원들은 성문 밖에서 자신들의 상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이런 분위기가 반갑지 않았던 하나는 둘과 셋의 얼굴을 한 번씩 눈에 담았다.
아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한 셋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하나는 싱긋 웃어주었지만 마음속은 그러지 않았다.
이승에서 행복하게 살아달라는 셋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까.
마음이 계속 바뀌는 자신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가 그녀를 조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과 이제 여기서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녀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둘이 입꼬리가 점점 내려가는 하나의 표정을 보았다.
겉으로는 그래 보이지 않았지만 정말 정이 많은 영혼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던 둘은 점점 어두워지는 하나를 꺼내주기 위해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말씀 드리지 않았지만 항상 하나 아가씨께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진심에 놀란 하나가 둘을 빤히 쳐다보았다.
쑥스럽지도 않은 듯 하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하는 둘.
“아마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과거에만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아가씨 덕분에 원래의 모습을 찾은 저는 예전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하나가 두 손을 다급하게 저으며 아니라고 하였다.
그녀에게 그는 항상 좋은 사람이었고, 겉으로는 무덤덤해 보였지만 속은 상대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계속 부정하는 하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던 둘은 그녀에게 이 말을 전해주었다.
“부디 이승에서는 항상 웃을 일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이승 이야기….
계속 젓고 있었던 하나의 손이 멈추었고 시선 역시 둘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그를 다시 쳐다보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지은 웃음이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감정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또 다시 한 번의 조용함이 그들을 찾아왔고, 월이 모습을 드러냈다.
염라의 성으로 가자는 상사의 말에 부하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날아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을뿐더러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그 말이 영영 서로를 보지 못하는 말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입을 한 번도 열지 않은 그들이 염라의 성문 앞에 안착을 하였다.
그 누구도 먼저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서로만을 쳐다보고 있던 그때, 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벗과 그의 팀원들의 마지막을 두 눈에 담고 싶었던 홍은 웃으며 그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월과 팀원들은 고맙다는 말을 웃음으로 대신하였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옆에 있어주었던 홍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을 쳐다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아마 오랫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왔으니 눈빛만 보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겠지.
홍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에게 잘 가라는 한 마디만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이제 정말 시간이 되었던 월과 팀원들이었다.
월과 하나의 시간을 위해 둘과 셋은 그들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 성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커질 것만 같았던 그들은 서둘렀다.
그러다가 뒤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하나를 다시 한 번 쳐다보는 둘과 셋.
마치 자신한테 아직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한 그들에, 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드시 이승에서 행복하셔야 합니다.”
"반드시 이승에서 행복하셔야 해요!"
둘과 셋이 웃으며 동시에 말하고는 성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의 표정을 쳐다보았던 월은 그녀가 많이 고민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승으로 돌아가서 살아야할지, 아님 영원한 죽음을 선택해야할지.
소원이었던 주형을 보는 것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무슨 소원을 빌어야할지 고민하는 것이겠지.
하필 그녀한테 가장 어려운 결정을 소원으로 빌어야 한다니.
그가 하나의 앞으로 다가가 눈을 똑바로 쳐다보자, 그녀의 눈동자 역시 월을 담고 있었다.
무슨 소원을 빌 것이냐는 그의 질문에 하나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는 것이지?
정말 모르겠어.
내가… 살아야하는 것인지, 죽어야 하는 것인지.
여전히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하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월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울먹이며 월에게 물어보는 하나.
“월은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으면 좋겠어요? 난 도저히 모르겠어요.”
“내가 대답을 한다면… 넌 그것을 소원으로 빌 건가?”
하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월은 시선을 아래에 두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조용히 말하였다.
대답이 들리지 않았던 하나가 다시 한 번 말해주기를 부탁하였다.
늘 어두운 느낌이 강했던 월의 눈동자에 한 개의 빛이 보였다.
“네가 사는 것.”
그리고는 하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는 그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 월의 온기를 느끼는 데에 집중을 하였다.
달콤하였지만 어딘가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
도대체 왜 월까지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왜 모든 사람들이 내게 살라는 말을 하는 거야.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려고 한 그때, 월의 입술이 떼어졌다.
스르르 눈을 뜬 자신의 앞에는 애절한 눈빛을 하고 있는 그의 표정이 보였다.
“살아. 반드시 살아, 하나.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저승이 아니라 이승이야.”
“왜 내가 살기를 바라는 거예요?”
“네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요?”
“그래.”
자신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믿음을 전해주는 그였기에 다시 한 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어, 내가 조금이라도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승에서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내가 모든 아픔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아.
병도, 사람도, 마음도, 감정도,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을지.
그런 하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월이 이승에 가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라는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하나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이 두 뺨을 타며 흘러내렸다.
웃으며 마지막을 맞이하자고 한 사람이 누구인데 왜 우는 거야.
피식 웃으며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자신의 말을 기억하는 듯 입술을 꽉 깨물고 이런저런 방법을 다 해보았지만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웃을 테니 울어도 된다는 그의 말을 들은 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과 셋도 분명 슬펐을 텐데 웃으며 이별을 하였어.
여기서 내가 울면 그들의 웃음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마, 정하나.
그 생각을 하며 간신히 눈물을 삼킨 하나는 월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전히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는 그가 참 고마웠다.
그에게 제일 좋은 보답은 자신이 웃는 것이란 사실을 잘 알았던 하나는 배시시 웃어 보였다.
월과 팀원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의 말에, 월이 푸핫 웃으며 입술을 열었다.
“이승으로 돌아가면 기억을 잃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잊지 않을 수가 있지?”
“아무튼 말 참- 예쁘게 해요. 그냥 기억하겠다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워요?”
뚱한 표정을 지은 하나가 귀여워 가볍게 입맞춤을 하였다.
그것을 당한 하나가 또 이렇게 넘어갈 것이냐며 뭐라 하다가 이내 풋 웃음이 나오고 크게 웃었다.
하나가 웃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월이었다.
“살게요, 월의 말대로 이승으로 돌아갈게요.”
그 말을 하고는 자신의 달 목걸이를 월에게 건네주는 하나.
그녀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월이 놀란 눈으로 하나를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대신에 날 다시 만나러 와준다고 해줘요. 날 만나면… 이 목걸이를 다시 전해줘요.”
월의 입꼬리가 올라가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가 피식 웃고 그에게 진한 입맞춤을 하고는 염라의 성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확인한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었고, 하나는 몸을 돌려 다시 한 번 월을 쳐다보았다.
손을 흔들어주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 역시 달과 같은 웃음을 짓고는 염라의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