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벌써 짝을 다 맞췄네.”
짝? 옆에 있는 남정네를 힐끔 쳐다봤다. 눈이 딱 마주쳤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에 가던가! 거만하게 피씩 웃고는 여기서 할 일인 골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가끔씩 천명구하고 꽤 오랫동안 대화도 나누며 술잔도 부딪혔지만, 정작 동반자인 자신에게 반드시 해야만 할 예의인 말 한마디조차 걸지 않고 시간을 보내 버렸다.
그렇게 18홀을 마칠 때까지 18소리가 숱하게 가슴 속에 꿈틀거렸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더 가관인 것은 같이 필드에 나가자는 말도 없었다. 그 말은 그 남정네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라 허병식이나 두희 입에서 나아야 했지만 그들은 필드에 대해 입도 벙끗할 겨를이 없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추태만 벌이고 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 남정네에게 이해가 가기도 했다.
골프를 치는 게 아니고 술 자리가 돼 가면서 주두희는 그 주둥이에서 나온 간드러진 목소리로 허병식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거의 애무에 가까운 스킨십을 즐기고 있었다. 허병식도 두희에게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그 흥을 어떻게 깨겠는가?
간혹 자신도 침을 꼴깍 삼킬 정도였으니 그 사람도 사람이라면 똑같았으리라 생각이 들면서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거의 포르노에 가까운 수준의 집적거리는 행태를 옆에서 외면하고 참는다는 건, 그에게는 고행 길을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처녀라면 모를 수 있지만 남편이 버젓이 있는 아낙이 그걸 보고, 남성의 성기가 어떤 요동을 칠지 모른다면 그건 설명이 불가피한, 남근의 통증은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색정에만 빠진, 아주 이기적인 여자! 자기만 쾌락을 느끼면 그만인 주두희와 마찬가지라고 생각도 했다.
그때 애리는 침만 꼴깍 삼켜지는 것뿐만 아니라 아랫도리도 약간 질퍽해지는 걸 느껴, 소변을 보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화장실에서 닦아내기도 했다.
그때 그는 어땠을까? 곧추서지 못하게 참아야만 할 입장. 분명히 전립선에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그도 안쓰러웠지만 일흔이 넘어가는 천명구가 더 안쓰러웠다. 눈살을 찌푸려 그만의 신호를 보냈지만 두희는 기어이 오르가슴을 느끼려고 발작을 하는 년이 돼 늙은 천명구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을 것이다. 성에 헤픈 여자는 젓가락 들 힘만 있는 남정네에게는 항상 타깃이라고 했다. 그러나 두희에게는 힘센 허병식이 옆에 있었다. 허병식은 그가 그걸 즐기려는 게 아니라 두희가 즐길 수 있게끔, 자신은 그저 희희낙락 즐기려고 더 부추기고 있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한마디로 데리고 놀고 있었다. 전혀 연인이나 여자로써의 배려가 없었다. 단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두희를 ‘도구!’로 삼았단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여자로써 모욕을 느끼게끔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저지시키지 않았다.
그건 단지 황홀경에 빠져 있는 두희에 위한 배려였다. 갑자기 역겨워지기 시작해 슈퍼로 바로 달려가 캔 맥주를 단숨에 서너 캔 들이키고 캔을 자근자근 밟아 으스러지게 해버렸다.
캔은 주두희고 허병식이고 주두희이었다. 한 놈 더 추가하자면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그 별 희한한 놈이었다. 그의 무언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그 어떤 말보다 강력했다.
갑자기 끼어 들어 주두희의 쾌락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던 허병식을 방해한 천명구가 작은 술집에 앉아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는 주두희도 꼬꾸라진 혀로 목소리가 크진 쪽으로 이 편을 들었다가 저 편을 들었다가 하고 있었다.
“자네 정말 섭섭하네. 하필 내 코앞에 차려 버렸나?”
“형님! 형님 가게에 아무 피해가 없으니 전혀 걱정 마십시오. 형님 건물에만 해도 사람이 몇 백 명인데 뭐 이런 데까지 신경을 써십니까. 그럼 제가 더 섭섭하죠.”
천명구의 15층 주상복합아파트 근처에는 허병식의 스크린골프장외에도 담배 가게만큼 많이 줄을 써 있어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하지만 허병식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영감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래요! 오빠! 조금만 욕심을 접으면 될 걸 가지고…….”
꼬꾸라진 혀 소리에 천명구가 불쾌한 인상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두희는 이미 술기운에 비몽사몽 상태였다.
“너는 잠자코 있어라. 허사장! 자네도 사업을 하고 있어 잘 알잖아. 저 건물을 어디 순수한 내 돈으로 올렸나? 전부 대출이잖아. 그리고 절반은 아직 입주 안되었어. 지금 밑 빠진 독에 물 붓고 있어. 그러니 자네는 문을 닫아주게나. 그 장비들은 내가 다 받아주지. 그리고 앞으로 공사가 있으면 전부 자네에게 주겠네.”
“그래요. 오빠! 그러면 되겠네. 우리도 두분 오빠 눈치가 보여 이 동네에서는 스크린 골프를 못 치겠어. 그러니 한 곳으로 합해줘.”
취해는 있었지만 두희 말이 틀린 건 아니란 생각을 허병식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허병식의 생각은 전혀 반대였다. 시선이 차가워졌다. 식탁에 코를 거의 쳐 박은 두희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제 너까지 이 놈 편에 붙어 버렸나?”
술만이 원흉이 아니었다. 천명구도 아직 젓가락 들 힘은 있었다. 그리고 주두희는 허병식이 데려온 고객이 아닌 제 발로 천명구 연습장에 찾아와 천명구가 가르친 제자였다. 물론 젊은 허병식이 필드로 데려 다니며 현장 경험을 익히게는 했지만 스승은 엄연히 천명구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이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 오빠는 부자잖아요. 이 도시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자! 우리 오빠 좀 밀어주세요.”
차라리 두희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두 사람의 합의는 잘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말은 허병식이도 바라지 않았던 말이었다. 두희 같은 노리게 감은 허병식에게는 지천에 깔려 있지만 천명구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차라리 천명구의 편을 들어 주는 게 오히려 덕이 되는 자리였다.
노인네의 질투만 유발시키는 언행을 더 봐 줄 수 없던 허병식이 대리 운전기사를 불러 두희를 보내려고 했다. 허병식이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본 천명구가 눈꼴 사납다는 눈으로 노려보고는 콧방귀를 치며 일어서 나가 버렸다. 허병식은 따라 나가지 않고 두희를 깨워 야단을 치고 있었다.
“야! 임마!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술 취하면 바로, 바로 집에 들어가라. 가는 게 도와주는 거다.”
“오빠! 왜 그래? 나는 오빠 도와주려고 했는데. 앞으로 걱정 마! 내가 회원들을 차떼기로 데려 올올 테니까 저런 영감은 상대하지마! 내가 애리처럼 예쁜 사모님들 줄을 세워 데려 올 테니까 오빠는 오빠처럼 멋지고 주머니 두둑한 오빠들만 준비해줘. 저 영감 시대는 이제 끝났어. 스크린가면 전부 칠십 대야. 우리가 무슨 간병인도 아니고 알았지?”
주두희의 호기. 술 탓만은 아니었다. 천성 탓이 가장 컸다. 별 희한한 놈도 있듯이 별 희한한 년도 여기 있었다. 주둥이를 털어 막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