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으로 뻐적, 갈비뼈를 드러낸, 광활한 대지에.
싹은 피어났다.
푸른 색은 아니고
녹색 또한 아니고
살색.
정확히는, ‘손’이라는 신체의 일부가, 모내기한 듯이 일제히 피어났다.
#발아. 순수하다. 아직은 어지럽지 않나보다. 우리는 그걸 순수하다고 읽는다.
수십만 개에 달하는 손목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기울였다.
손바닥은 쫙 펴고
엄지만 위로 세운 채
갸우뚱.
무언가 모르는 것이라도 있는 걸까.
앙상한 몰골의 대지 위, 멍 때리고 있는 태양 아래.
그들은 그렇게 꺾이어 있었다.
오로지 서쪽만을 향해서.
#의문. 이랄까. 답이 없는 문제를 향한 호기심은. 의문. 인걸까.
꾸드득, 꾸득―
손목 부근의 살이 째어지는가 싶더니
그 틈을 비집고 새로운 잎사귀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내밀고, 푸드득, 물기를 터는 강아지처럼 한차례 경련했다.
푸른 색은 아니고
녹색 또한 아니고
역시나 살색.
기존에 나 있던 손들과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뒤틀었다.
그렇게 양쪽으로 펼쳐진 두 개의 손은
비둘기마냥,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속도도, 모양새도 동일하게.
동일하게.
―동일하게.
군무라도 추는 듯 퍼득였다.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비상하는 싹 하나 없이
성장하는 싹 하나 없이
바람만 정신없이 불었다.
#혼란. 하지만 혼란치고는 너무 명백하다. 다만 명백하지 않을지도 몰라서. 그래서 혼란이다.
남자의 머리칼 몇 가닥이 심심찮게 들썩였다.
“거 참 어지간히도 파닥거리네.”
그는 발목 부근에 선풍기라도 틀어놓은 기분을 느꼈다.
대지 위에 갖다 놓은 1인용 소파에 기대어 앉아
커피 한 잔을 홀짝였다.
“...너무 어려웠나?”
별 생각 없이, 퀭하게 풀린 동공으로 땅을 내려다보는 태양은
한눈에 봐도 싹을 성장시키는 데에는 흥미가 없어 보였다.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움직이지 않는 해를 따르는 해바라기마냥
148억 개의 손목들이 가리키는 대지의 서쪽 끝에는
퍼석한 색의 하늘 앞에서 지평선만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제대로 보이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계속 꾸물거려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뭐, 다음 거나 만들러 갈까. 왠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남자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 서쪽 지평을 향해 한참을 걸어갔다.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서
그는 점이 되어 지평 너머로 사라지고
남자가 떠나간 광활한 대지에서는―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득...
퍼, 득......
#탈진. 하기야 몇 년을 퍼덕여왔는데. 지치지 않는 편이 이상하지.
손목들은 서서히 동작을 멈췄다.
멈춰서
그냥 그대로
지평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버림받은 아이는, 사라져가는 부모의 등을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더라도
#이만 종영이다.
#
#커튼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