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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온의 카르마
작가 : 그림달
작품등록일 : 2018.12.31

선계물. 선인들의 치열한 윤회.
인형술사가 되어 차원을 헤메는 천산의 뱀족 소녀 해랑과 제왕의 운명을 가진 환족 높의 엇갈린 첫 사랑.

 
4 진정한 겜블러
작성일 : 19-01-01 10:04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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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랑쉬는 큰 욕심이 없는 여자였다.

 

 3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라스베가스에서 보낸 그녀는 도박판의 생리와 남 좋은 일에 배앓이를 하게 되는 타인의 심리를 알고 있었다.

 

 부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양날의 검이었다. 잭에게 그 자리에서 일정 금액을 사례하고 그녀는 그날부로 개인 경호원을 고용하여 라스베가스를 미련 없이 떴다.

 

 

 볕 좋은 켈리포니아 해변가 작고 아담한 호텔에 자리를 잡은 후 나는 그녀의 결정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당첨이 된 다음 날 그녀의 살던 작은 트레일러가 불에 타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례금이 적힌 수표를 받으며 호인인척 어깨를 으쓱거렸던 잭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 것인 줄 알았던 행운을 순순히 포기할 남자가 누가 있을까?

 

 호텔 베란다의 선베드에 누워 날씬한 몸을 뒤척이면 잘생긴 경호원이 등에 선크림을 발라 주고, 쇼핑하다가 명품 드레스를 걸치며 들른 호텔 바에서 부유한 사업가와 유명인사, 할리우드 배우가 경쟁하듯 서로 수작을 거는 빨간머리의 미녀 블랑쉬는 평범한 쇼걸이 아니라 부유한 상속녀 같았다.

 

 그녀는 인형인 나를 위해 풀장과 미니 정원이 달린 근사한 인형의 집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쓸데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AI 연구소에 의뢰해 내 몸에 호신용 부품 몇 가지를 추가하기도 했다.

 

 난 언젠가 그녀가 내 뇌와 관절에도 인공기능을 심어 로봇화 시켜 버릴 것 같아 기분이 살짝 가라앉았지만. 이 모든 부를 누리면서, 나는 정말 내가 그녀의 행운의 별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영화보기가 취미인 블랑쉬가 최근 감명을 받은 인생 영화라며 ‘보디가드’를 극찬했을 때부터 나는 어째 발끝에 감전이라도 된 듯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최근 세 번째 들인 경호원을 ‘내 사랑 아놀드’하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 하룻밤 진하게 키스와 섹스를 나눈 후였을 거다.

 

 결국 검은 머리의 근육미남인 그 남자와 덜컥 약혼까지 해 버렸다.

 

 정말 이 때만큼은 내가 인형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과 약혼까지 한단 말인가?

 

 

 “나도 알아,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야. 난 이제 지쳤고 외로워.

 

 나에겐 가족이 필요해. 에이미, 내 행운의 별. 네가 진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가 잠시 동안 나를 꼭 껴안으며 애절하게 속삭였다. 그리고 내 발에 키스했다.

 

 마치 경건한 의식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

 

 블랑쉬가 내게 사준 화려한 드레스와 신발이 많았지만 처음부터 정작 내가 신는 신발은 하나뿐이었다.

 

 

 빨간 아기용 운동화.

 

 

 마음이 초조하고 우울해지면 그녀는 어김없이 내 발에 신겨진 신발을 어루만지거나 키스하며 한참이나 가만히 있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텅 빈 눈동자와 마주하게 되는데 단 한마디의 위로의 말이나 몸짓을 보낼 수 없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저 블랑쉬에게도 한 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누군가가 있었고, 그를 잃은 고통이 내게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속되고 있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것은 내가 모르는 그녀의 삶이었고 고통은 인과적인 부분에서 스스로 감당할 몫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달려든 부에 들떠 정신없이 파티며 여행에 시간을 보내더라도 순간, 훅! 밀려오는 외로움에 밤잠을 못자고 우울해 했다.

 

 천성이 다정하고 착한 블랑쉬는 이상하게도 부유해질수록 힘들어 보였다.

 

 원래 부란 누리는 법과 지키는 법이 달랐다.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은 관계에 있어 철저히 손익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언제든 내게 미련 없이 등 돌릴 자들과 그런 깊은 감정을 교류할 순 없는 노릇이었고, 아차하면 돈을 보고 먹잇감 노리듯 침 흘리며 달려드는 야수들 틈에서 자신을 지키기에 그녀는 턱없이 나약했다.

 

 그런 면에서 변함없이 그녀의 곁을 지키는 세 살 연하의 아놀드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도 있었다.

 

 말도 별로 없었고 이전에 어떻게 해 보지 못해 안달이던 경호원들에 비해 깔끔할 정도로 블랑쉬에게 무관심해 보였다.

 

 포커페이스라고, 도박판에서는 자기가 가진 패가 무엇인지 남이 알 수 없게끔 자기 표정을 잘 관리하는 사람을 프로 도박사로 본다.

 

 내가 볼 때 아놀드는 그런 밀당의 달인이었다.

 

 물론 블랑쉬 역시 연애라면 질리도록 해 본 박사급이라 남자의 허튼 수작에 쉽게 놀아날 여자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몇 년을 도박판에서 구른 감! 만으로 괜찮은 남자라고 판단, 만난 지 석 달 만에 약혼하고 마침내 그 다음 달에 결혼까지 했다.

 

 거의 본능으로 결혼할 남자를 고르다니… 어느 면에서는 블랑쉬야말로 못 말릴 도박사였다.

 

 

 

 그들의 신혼여행지는 알래스카였다. 뜨거운 여름 태양에 질린 블랑쉬와 캠핑을 즐기는 아놀드가 북극광의 장엄함을 즐기려 고심 끝에 선택한 장소였다. 겨울이면 땅 속으로 잠을 자러 들어가야 할 정도로 추위와 상극인 뱀족인 나로선 꺼림칙한 장소였지만 말이다.

 다행히 아놀드는 ‘일단 내 여자’에겐 잘해주는 스타일인 모양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보험을 무려 다섯 개나 들었다. 물론 블랑쉬 몰래 말이다.

 

 “썩을 놈, 빌어먹을 새끼. 그렇다고 비행기에서 밀어버리냐…”

 

 블랑쉬가 말끝에 헐떡거리며 힘겨운 기침을 했다.

 

 기침에 배어나온 피는 하얀 눈밭에 붉은 동백꽃처럼 점점이 뿌려졌다.

 

 일어서려던 그녀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얼핏 내려다 본 그녀의 다리 각도가 이상했다.

 

 아마 떨어지면서 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즉사할 줄 알았는데 울창한 숲에 추락하면서 나뭇가지에 몇 번이나 걸려 떨어진 것이 목숨을 구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바닥에는 얼마 전에 왔다던 눈이 푹신하게 쌓여 충격을 더욱 완화시켜 주기까지 했으니 그녀가 살아난 것은 거의 천운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크루즈 여행을 하고 싶다 했더니 굳이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승선할 수 있는 먼 곳의 배를 예약할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신혼여행은 남자가 돈을 써야 한다며 자기는 그렇게 큰 돈이 없으니 불편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해 놓고 그는 막상 전세기를 눈 앞에 대령했다.

 

 게다가 그 전세기를 직접 운전할 수 있다며 부기장석으로 옮겨갈 때 블랑쉬는 환호성을 질렀다.

 

 기내에 들려오는 아놀드의 목소리가 ‘허니’를 외치며 사랑노래와 더불어 달달한 코멘트를 할 때 여자의 허영심은 한껏 갈증을 채웠더랬다.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이벤트와 내 남자의 능력에 취한 그녀가 모든 긴장을 풀고 깜박 잠이 들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 옆 좌석에 누워 있던 나는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을 똑똑히 보았다.

 

 

 기장실 문을 열고 나온 두 남자는 아놀드와…잭이었다.

 

 있지 말아야 할 장소에서 온통 검은 옷을 입은 둘은 만족스런 함박 웃음을 짓고 잠든 여자를 바라보았다.

 

 

 “미친 년, 감히 내 돈을 들고 튈 생각을 하다니! 간도 크지.”

 

 잭이 혀를 쯧 차며 조그만 가방을 등에 메기 시작했다.

 

 낙하산인 듯 했다. 장착을 끝내고 아놀드도 고글을 내리며 잭에게 대꾸했다.

 

 

 “형.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 내가 노래까지 불러주고 공 들인 여잔데, 어디 무인도에 가둬 두어도 되잖아.”

 

 “변태새끼야, 미련 두지 마. 이 년도 어차피 너한테 시달리다 죽느니 여기서 죽는 게 더 나을 걸.”

 

 

 “쳇, 형은 쓸데없는 참견이 너무 심해. 때론 나도 즐기게 두라구!”

 

 잭이 손에 든 리모컨을 흔들었다.

 

 “징징대지 마. 곧 백만장자가 되면 세상 여자들이 다 네 거니까. 지금 폭파시킬 건데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싫어. 폭약소리 들으면 악몽 꿀 거 같단 말야. 먼저 갈거야.”

 

 아놀드가 미련이 남는 듯 블랑쉬를 향해 손 키스를 날리더니 신속하게 비행기 문을 열고 뛰어 내렸다.

 

 잭이 리모컨을 누르자 오른쪽에서 쾅! 소리가 나며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 충격에 헉 소리를 내며 블랑쉬가 눈을 떴다.

 

 어리둥절한 그녀의 면전에 대고 잭이 웃으며 소리쳤다.

 

 

 “아디오스, 베이비! 다음엔 시체로 만나겠네. 너무 억울해 하지 말라구.

 

 상속이 끝나는 대로 저 바보 놈도 보내 줄 테니 둘이 회포나 풀든지.”

 

  그가 리모컨을 한 번 더 누르자 반대쪽에서 폭음이 들렸다.

 

 블랑쉬가 비명을 지르며 옆좌석에 놓인 나를 꼭 끌어안았다.

 

 양 날개를 잃은 비행기의 앞머리가 밑으로 기울었고 빠른 속도로 하강을 시작했다.

 

 잭이 가방을 블랑쉬에게 던져 줬다.

 

 

 “선물이야. 낙하산, 불량품이긴 하지만 혹시 알아?”

 

 영화처럼 웃음소리를 남기며 악당은 자리를 뜨기 위해 등을 돌렸다.

 

 하지만 놈은 블랑쉬를 너무 물로 봤다. 그녀가 누군가?

 

 악바리로 도박판을 구르며 백만장자가 되기까지 버틴 것은 운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었다.

 

 어느 새 낙하산 끈을 잡아 챈 블랑쉬가 미친년처럼 잭에게 달려들어 있는 힘껏 끈으로 목을 졸랐다.

 

 그러나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 균형을 잡고 힘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놈이 몸부림을 치면서 엉켜진 두 몸이 이리 휩쓸리고 저리 벽에 부딪치더니 마침내 그녀의 손에서 힘이 살짝 빠져 나가 버렸다.

 

 크-헉, 숨을 몰아쉬며 놈이 블랑쉬의 머리카락을 그러잡고 비행기 입구 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매서운 칼바람이 정신없이 그녀와 나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힘이 거의 사라진 블랑쉬가 갑자기 내 머리를 잭의 턱 밑에 대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잭에게 말을 걸었다.

 

 “잭, 나도 선물이야. 불량품은 아니니까 아무 걱정 말라고.”

 

 내 등 뒤의 스위치를 힘껏 눌렀다.

 

 그러자 눈앞에 별이 번쩍번쩍 하는 듯 하더니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머리위로 분출하는 게 느껴졌다.

 

 내 머리 양쪽 리본사이에 숨겨진 전도체들이 서로 반응하면서 순식간에 새파란 스파크가 튀고 잭의 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입에서 게거품이 주르륵 흐르면서 눈의 흰자위가 돌아가는 것도 보였다.

 

 

 거친 바람과 온 몸에 전기가 도는 충격은 내 안에 있던 어떤 기억을 끄집어냈다.

 

 지금도 참 기이한 타이밍이라고 생각되는 게 왜 하필 그 순간에 비행술 사범의 말이 저절로 떠오르게 되었던 걸까?

 

 

 

 ‘부족한 건 차게 되고 가득 찬 것은 다시 빌 것이다. 불러도 들을 수 없고 있어도 잡을 수 없는 바람인 듯 돌아오라.’

 

 

 그건 일종의 만능열쇠 같은 주문인데 비상시 자신이 가장 원하는 소원 한 가지를 이뤄주는 주문이었다.

 

 도술을 발동시키는 여러 형태의 기술이 있는데 나는 들숨과 날숨만으로 호흡이 교차하면서 정신을 몰입시키는 기술밖에 몰랐다.

 

 

 일단은 배운 기본이 그랬고 아마 이번 카르마를 완성시키고 나면 다음 단계의 고급기술을 익히게 될 것이다.

 

 이제껏 무생물인 인형의 몸인지라 호흡법으로 배운 기술을 쓸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과학기술로 업그레이드 된 몸에 전기가 돌고 분출되면서 억지로나마 호흡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바람을 타고 잭과 블랑쉬와 내가 사이좋게 떨어지고 있었다.

 

 블랑쉬의 정신력은 참 대단했다.

 

 그 와중에 나를 챙기면서 동시에 정신을 잃은 잭에게 매달려 기어이 낙하산을 펼친 것이다.

 

 겨울이 긴 알래스카의 하늘은 너무도 맑아 파란 얼음처럼 투명하기까지 했다.

 

 

 나는 온 몸의 전기가 빠져나가면서 의식도 같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위급 상황에 주문까지 외웠으니 블랑쉬의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속없이 안도했던 나 자신이 정말 밉고 싫다.

 

 인생은 항상 산 너머 산 물 건너 물! 함정 속에 또 함정- 난해한 문제의 연속인 것을….

 

 이게 쉬우면 왜 100번의 카르마를 채워야 비로소 최상급선인이 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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