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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즈 앤 스노우
작가 : 쿠페
작품등록일 : 2018.12.31

옛 동료들에게 쫓기게 된 두 킬러의 이야기

 
13
작성일 : 18-12-31 23:56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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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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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제와 마론이 벌이는 살벌한 레이스는 5분여간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동안 로제는 지하도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함정과 조우했다. 어둠 속에서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와이어와 폭발, 가스, 화살, 화염 세례를 뚫고 로제는 침착하게 거리를 좁혀나갔다. 상황은 로제에게 유리했다. 쉴 새 없이 나타나는 트랩에 점점 적응된 로제는 더 이상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이제는 트랩을 피하고 나서도 마론에게 손길이 스칠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황도 많이 나타났다.

  마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설치된 함정의 대부분을 소모했다. 아직 안 사용하지 않은 함정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살상용 함정들이었다. 지금 그런 걸 썼다간 로제를 잡는 건 고사하고 자신의 목숨이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장 치명적인 함정들을 마구 작동시키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는 로제에게 별반 위협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레이스도 곧 끝이었다. 지하도의 모퉁이를 돌며 마론은 그것을 느꼈다. 이 길의 끝에 목적지가 있었다. 남은 100여 미터를 로제에게 잡히지 않고 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트랩에 이따금 기관단총까지 발사해가며 저지하고 있었지만 로제의 추격은 기세를 붙이며 점점 맹렬해졌다. 다행히 목적지까지 이어진 이 직진코스에는 도움이 될 만한 트랩이 많았다. 머릿속으로 거리를 계산한 마론은 신중히 타이밍을 재고 스위치를 눌렀다.

  “……어?”

  마론이 스위치를 눌렀다. 두 번, 세 번…….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때에 불발이라고? 당황한 마론이 스위치를 더듬거렸다. 방금 전 로제의 공격을 받아낼 때 충격을 받았는지 일부분이 파손돼 있었다. 완전히 당황한 마론은 가장 중요한 ‘결승점’의 스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해당 부분은 무사했다. 마론은 안도하려 했지만 등에서 바싹 느껴지는 기척은 그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트랩의 방해 없이 자유 질주하는 로제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마론은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우지를 난사했지만 로제는 둥근 터널 벽을 거의 타고 달리다시피 하는 묘기를 부리며 그것을 피해냈다. 마론이 이를 악 물었다. 결승점은 바로 저 앞이었다. 하지만 로제의 속도 역시 맹렬했다. 한 호흡이 부족했다. 이대로라면 목적지 바로 앞에서 로제에게 잡힐 게 뻔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졌다. 동시에 등 뒤에 느껴지는 로제의 기척도 가까워졌다. 마론은 미칠 것 같은 긴장 속에서도 냉정하게 타이밍을 쟀다. 10… 9… 8… 그 시점에서 마론은 눈을 감았다. 7… 6… 5…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선배가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4… 3… 2…

  마론은 그 타이밍에 스위치를 눌렀다. 타이밍을 잘못 쟀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론이 누른 스위치는 ‘결승점’의 스위치가 아니었다. 요란한 폭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꽤 극적이었다. 마론이 스위치를 누른 순간 암흑에 잠겨있던 하수도의 모든 등이 일제히 점등됐다.

  “아악!”

  예민한 감각으로 온갖 트랩을 피해오던 로제였지만 사방에서 홍채로 파고드는 빛 자체는 피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반복적으로 섬광에 노출된 로제의 망막은 지나친 양의 빛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약으로 인해 감각이 강화된 로제에게 그 자극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마론을 따라잡는 것에 온 신경이 쏠려 있던 로제는 그 강력한 자극에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그 한 호흡이 로제와 마론을 갈라놓았다.

  마론은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전방에 도약했다. 공중에서 몸을 둥글게 만 마론은 팔을 들어 얼굴을 최대한 가드했다. 허공에서 움츠린 자세가 된 마론은 그대로 결승점의 스위치를 눌렀다.

  2천 개가 넘는 베어링이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터널을 향해 발사됐다.

  공중으로 도약한 마론은 폭발풍에 휩쓸려 튕겨져 나갔다. 바닥에 몸을 부딪힌 마론이 데굴데굴 구르며 몇 미터를 더 튕겨졌다. 들고 있던 기관단총은 충격의 여파로 손에서 떨어져 나간지 오래였다. 마론은 엎드린 자세로 탄식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한참 동안 흘렸다. 천천히 고개를 든 마론은 그보다 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터널 쪽을 쳐다봤다.

  하수도의 등이 켜지고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마론이 있는 곳은 거대한 지하공동이었다. 터널형의 지하 수도를 달려 나온 마론은 공동으로 통하는 터널의 출구부에 설치된 3대의 클레이모어를 뛰어넘으며 일제히 격발시킨 것이다. 아무리 전방으로 베어링이 나가게끔 설계된 물건이라지만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었다. 안전거리 확보도, 은엄폐물도 없이 지근거리에서 폭발물을 기폭하는 미친 짓이었지만 마론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착용하고 있는 방검복이 조금이나마 파편과 폭발을 막아주길 바라며 시도한 모험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몸은 만신창이였다. 특히나 상태가 안 좋은 것은 귀였다. 안면부를 보호하느라 귀를 막을 수 없었던 마론은 지척에서 폭발의 굉음이 주는 충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청각이 마비되고 평형감각이 흔들렸다. 몸 상태를 점검한 마론은 그 대가로 자신이 얻은 것을 확인했다.

  터널은 완전히 초토화돼 있었다. 밀폐된 통로에서 사용한 클레이모어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벽에 새겨진 상처는 처참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거대한 문어가 빨판으로 쥐어뜯은 것 상처가 온 터널에 새겨져 있었다. 뭐든 간에 생물체가 살아남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로제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마하3의 속도로 날아오는 수천 개의 베어링은 생물이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론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며 쌓아둔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불완전한 성공이었다. 임무는 로제를 생포해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론은 그 결과에 대해 안타까워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결국 로제를 죽이고 말았지만 죽이지 않았으면 자신이 당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것이었다. 본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마론이 납득하기에는 그거면 충분했다. 후앙은 뭐라고 말할까? 화를 낼까?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따져야지. 당신이 일을 똑바로 하기만 했으면 원래 계획대로 무사히 잡았을 거라고. 실없이 웃은 마론은 뒤돌아서서 장비를 갈무리했다.

  그렇게 하려고 했다.

  타앙!

  현실감 없는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총구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질 때까지 마론은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붉게 물든 눈을 한 로제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총구의 각도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자신의 복부에 꽃처럼 번져가는 붉은 얼룩이 보였다. 그제야 다리의 힘을 잃은 마론은 실이 풀린 인형처럼 쓰러졌다.

  마론의 입에서 기침 같은 의문이 흘러 나왔다.

  “어… 떻게…?”

  로제는 붉게 물든 눈에 어떤 짙은 감정을 담고 마론을 바라보았다.

  목숨을 건 레이스의 마지막 순간, 마론의 모험적인 시도는 분명한 효과를 거두었다. 시각 자체를 공격한 마론의 함정은 로제에게 더할 나위 없는 효과를 발휘했고 로제의 의식은 그 한 순간 분명히 마론을 놓쳤었다.

  그러나 약으로 인해 강화된 감각은 여전히 마론을 지각하고 있었다. 마론은 로제를 무방비 상태로 만든 바로 그 타이밍에 전방을 향해 도약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정확한 방법은 몰랐지만 로제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것이야말로 마론의 노림수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야말로 승부를, 나아가 생사를 가르는 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약에 의해 가속된 로제의 사고는 다른 대책을 세우기보다 해왔던 것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기를 택했다. 그래서 로제는 마론을 향해 도약했다. 마론보다 조금 늦은 타이밍이었지만 도핑된 로제의 각력은 공중에서 마론을 따라잡을 정도였다. 마론보다 조금 늦게, 더 멀리서 뛰었지만 압도적인 다리 힘으로 그를 따라잡은 로제는 둥글게 몸을 만 마론보다 위에서 겹치듯이 체공했다. 그 순간 마론이 클레이모어를 격발시켰다. 폭발풍에 휘말린 두 사람은 종이처럼 튕겨나갔지만 마론보다 위에 있던 로제는 의도치 않게 마론을 방패삼아 상대적으로 폭발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다.

  폭발에 타격을 받은 건 로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론과 다르게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예상할 수 없었던 로제는 격발의 폭음과 충격에 대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데미지가 적었기 때문에 보다 빨리 상태를 빨리 회복한 로제는 마론이 정신을 차리는 동안 그가 놓친 우지 기관단총을 주울 수도 있었다. 이명 때문에 마론은 로제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윽고 마론이 돌아서자 로제는 그를 향해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근거리에서 발사된 탄환은 파편에 의해 난자된 방검복을 가볍게 관통했다.

  로제는 쓰러진 마론에게 다가갔다. 바이저가 벗겨진 그는 아직 앳된 인상을 간직한 중미계 청년이었다. 총상을 입고 극도의 피로감에 짓눌려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아직 살아있었다. 로제는 말없이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스치기만 해도 세상의 고락과 영원히 이별할 수 있는 독나이프였다. 로제와 마론의 눈이 마주쳤다 마론이 힘들게 웃었다.

  “선배… 말처럼 됐네요. 역시 난… 선배에겐 이길 수가… 없나 봐요.”

  로제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표정으로 입을 연 로제는 그러나 그 말을 입에 꺼내어 놓지 않았다. 대신 로제는 아마도 원래 하고 싶었던 말과는 다른 말이라 추측되는 말을 입에 담았다.

  “고생했어. 많이 피곤하지? 이제 푹 쉬어.”

  로제와 눈을 맞추던 마론이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로제는 그의 곁에 다가가 무릎을 꿇고 나이프를 들어올려…….

  그리고 앉은 그 자세로 쓰러졌다.

  몸 위에 느껴지는 무게감에 마론이 눈을 떴다. 그는 잠시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의 위로 쓰러진 로제를 바라봤다.

  타임아웃이었다. 로제는 처음부터 시간제한이라는 핸디캡을 지고 있었다. 블러드 로터스에 의한 도핑이 끝나는 순간 찾아오는 부작용에 더불어 모르핀으로 속이고 있던 육체의 데미지까지 한꺼번에 밀려온 것이다.

  기절한 로제를 바라보던 마론의 시선이 이내 로제가 든 나이프에게로 옮겨갔다. 괴로운 눈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마론은 이윽고 로제를 부드럽게 바닥에 눕히고 그 손에서 나이프를 빼앗아 들었다.

  “선배 말이 맞아요. 본사에 선배를 데려가 봤자 선배가 살아남는 미래는 없겠죠. 오히려 본사의 그 악독한 놈들에게 고문당해 살아 있는 게 더 괴로울 정도의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선배 말이 맞았네요.”

  잠들 듯이 기절한 로제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마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는 그렇게 괴로워하는 선배는 보고 싶지 않아요. 누가 뭐래도 선배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마론은 나이프를 치켜들었다. 찌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살짝만. 피부 어딘가에 금을 내주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 로제는 평온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선배는 내 손으로 잠들게 해줄게요.”

  “누구 맘대로.”

  그러나 로제의 피부를 가를 터였던 칼날은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마론의 손목은 솥뚜껑만한 손에 포개어지다시피 붙잡혀 있었다. 마론이 당황해서 외쳤다.

  “당신… 어떻게!”

  “갑자기 불이 켜져서 다행이었지. 와이어를 당기는 도르래 같은 장치에 몇 방 쏴주니 바로 풀리더라고.”

  넝마 같은 차림을 한 블랑코가 그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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