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나오는 소리였다. 숨이 차서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소리였다. 발소리의 간격도 짧았다.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온통 검은 어둠이 잠식해 버려서 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뛰어갈 때마다 어둠이 더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그곳을 지나갔구나. 라고 알 뿐이었다.
다리 근처에는 다른 곳보다 비교적 많은 등불이 있었다. 등불이 만든 빛의 공간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빛이 미약하게나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자 드디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거리의 아이 중 하나였다.
아이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근처 건물로 갔다. 그 곳은 아이가 아까 겪었던 어둠의 연속인데도 불구하고 향했다. 다시 그림자놀이가 시작됐다.
아이는 뛰던 것을 멈추고 건물 주위를 서성였다. 걷다가 콩콩 뛰기도 하고 다시 걷다가 한 발만을 내밀어 툭툭 두드려 보기도 했다. 무언가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는 같은 자리에서 가볍게 뛰다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지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앉아서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아이가 찾던 곳이었다.
아이가 손으로 그곳을 들추자 배수구 같은 곳이 나왔다. 아이는 그 배수구 창살을 들자 그 아래로는 다시 끝없는 어둠이 다시 펼쳐졌다. 아이는 두려움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또 어둠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이미 거리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어둠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안에 들어오자마자 있는 사다리에 자신을 지탱하고 아이는 배수구의 문을 닫았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서 물소리가 돋으라졌다. 하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사다리에서 내려온 아이는 이번엔 창살로 들어오는 달빛에 의지해 뛰었다.
중간 중간 아이가 가는 곳에 달빛이 비춰 주는 지하는 그리 좋은 것을 비춰주지 않았다. 누더기를 입은 거리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초점이 없는 눈으로 지나가는 아이를 게슴츠레 쳐다보았다. 그 중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사람들도 보였는데, 느슨하게 묶인 붕대 사이로는 썩고 곪은 삶들이 보였다. 그런 그들의 주위로는 쥐와 벌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용케 기다린 쥐와 벌레들은 그 보상을 받기도 했다. 이미 고깃덩이가 되어 쥐들이 파먹은 것들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기다림은 어쩌면 이 곳 삶의 방식일 지도 모른다. 또 다른 곳에서는 동물인지 사람인지 모를 뼈들이 쌓여있기도 하고 굴러다니기도 했다.
아이는 이런 풍경과 악취에 익숙한 듯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네 군데로 나눠진 길에서도 고민하지 않고 방향을 잡아 향했고, 갑자기 내리막길이 나와도 놀라지 않았다. 그렇게 꽤 들어간 아이는 거의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다시 뛰면서 소리쳤다.
“제이드, 제이드!”
아이의 부름이 울렸다. 하수 소리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서 자신이 부르는 이가 못 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는 다시 이름을 불렀다.
“제이드, 제이드!!”
달빛이 검은 인영을 비추고 있었다. 그 검은 인영은 아이보다는 큰 키였지만 평균 성인 남성의 키는 아니었다. 아이는 달빛의 검은 인영에 가까워지면서 자신이 찾던 사람이 맞는지 더 빠르게 다가왔다.
“제이드!”
‘제이드’라 불린 검은 인영은 소년이었다. 그 소년도 거리의 아이들처럼 거칠고 다 헤진 옷을 입고 있었다. 오랫동안 씻지를 못한 건지 아님 이 지하에서 생활해서 하수가 묻은 건지 피부에 검은 얼룩이 가득했다.
차림이나 겉모습은 거리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곳에서 살아남기에 불리한 조건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오른쪽 눈을 검은 천으로 가렸는데, 한 쪽 눈이 안 보이거나 잃은 것 같았다.
신체가 건강한 거리의 아이도 살기 힘든데, 눈이 어두운 그에겐 이 지하 생활이 불가피하게 보였다. 하지만 아이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것이 불편한 눈을 가진 것 치고는 오래 산 듯 했다.
“왜, 무슨 일이야. 레인.”
“제이드, 네가 나한테 그 부탁했던 거 있잖아. 특이한 일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
레인의 말에 제이드의 녹빛을 띄는 한 쪽 눈이 반짝거렸다.
“나 봤어.”
“무엇을?”
“늘 그렇듯 튜리엔드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 오늘은 운도 좋았지. 좀 챙긴 것도 있어.”
레인은 제이드에게 브로치나 동전 같은 것을 내밀었다. 제이드는 레인이 내민 손을 다시 그에게 밀었다.
“됐어.”
레인은 다시 내밀어도 제이드가 안 받을 걸 알기에 그의 주머니로 다시 집어넣었다.
“요즘은 사람이 많아서 늦게까지 일을 하는 편이라서 늦게까지 튜리엔드에 있다가 돌아올 때였어. 강가를 지나가는데 짙은 안개 속에서 무언가 싸우는 것을 봤어. 오늘은 유난히 안개가 짙었는데…”
“?”
제이드는 레인의 말에 강가에서 무엇이 싸울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드, 안 믿기겠지만, 강에서 엄청나게 큰 뱀 같은 괴물이랑 어떤 남자랑 싸우는 걸 봤어. 멀어서 그가 어떻게 괴물을 처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서져 내리는 걸 봤어. 그리고 그 남자가 물 위를 걷기도 했다고!”
“…”
제이드는 레인의 말을 얼마만큼 믿을 가치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둡고 안개가 짙은 곳에서 얼마나 잘 보았던 걸까 아니면 흥분하고 무서워서 그 괴물이 레인의 생각보다 더 커보였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스텔라 정도가 충분히 가볍게 해치울 수 있는 것을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스텔라 라면, 충분히 조각을 낼 수도 있고 부술 수도 있고 물 위를 걸을 수 있을 테니.’
“그 남자가 나한테 걸어왔을 때는 얼마나 놀랬는지! 그가 있었던 곳은 강 한가운데 였는데 부두까지 걸어와서 나를 찾았다니까!”
‘짙은 안개 속에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보인다고? 성인도 아니고 아이가?’
“그래서 도망가서 숨었는데 그가 찾아왔어!”
‘수도의 지리에 익숙한 사람인가? 어두운 밤길에도 그렇게 다니려면 거리를 보통 돌아다녀서는 안 될 텐데.’
“그래, 제이드. 나도 그게 이상해. 어두운 데 지리를 엄청 잘 아는 것 같았다니까.”
‘등록되지 않은 스텔라 중 하나인가? 미등록 스텔라는 신분에 상관없이 즉각 처형이다. 그게 아무리 왕족이라고 할지라도. 아니면…’
제이드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레인, 그런데 넌 어떻게 살아있지? 그 남자가 널 찾았다며.”
“제이드, 알잖아. 내가 여기서 제일 작고 날렵하다는 걸. 나만큼 밤길에 밝은 사람이 없을 걸?”
‘그렇긴 하지만 스텔라들 앞에서 그건 다 소용이 없다는 걸 감안하면… 그가 널 놓아준 거군.‘
“그 남자에 대해 뭐 본 거 있어?”
“음…”
레인은 지난 기억의 남자를 찾는 듯 했다.
“뭐, 생김새라던가 키나 체격이나 뭐 그런 점에서 특이점은? 목소리는?”
“키는 꽤 좀 컸던 거 같아. 체격도 좋고. 그 이외에는 딱히…”
제이드는 레인의 말에 이마를 찌푸렸다. 자신이 찾던 특이한 일은 아니었지만 알아볼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단서 하나라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레인, 다시 생각해봐. 중요한 일이라 그래.”
제이드는 그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반짝 거리는 것을 꺼내어 레인의 손에 쥐어주면서 말했다. 레인은 제이드가 손에 쥐어준 것을 만지작거리며 다시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하는 듯 했다.
“아!”
레인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자신도 기특하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리고 말했다.
“그 남자. 그 남자한테 이상한 문신이 있었어.”
“무슨 문신?”
“막 이상한 선들이 그려져 있었어. 선들이 막 뒤엉키고 그냥 그려진 것도 있어서… 한 가지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초승달 같은 문양이었던 것 같아.”
“어디에?”
레인은 자신의 가느다란 팔을 내밀며 말했다.
“팔에.”
‘레인이 흥분했던 상황을 고려해서, 키가 크고 체격이 좋고 팔에 초승달 같은 문양을 한 남자라….’
그러다가 제이드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레인, 그 자가 남자인 건 어떻게 확신했지?”
“그 남자의 팔을 물었…”
“왜 그 중요한 얘기를 뺀 거야!”
레인은 제이드가 갑자기 소리를 치자 깜짝 놀랐다.
“그… 그게… 내가 그를 문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잖아… 내가 살아온 게 중요하지…”
제이드는 레인의 말에 손을 휘저었다.
“됐어. 미안해. 하던 얘기나 계속 해줘,”
“처음에 도망갔을 때 물었던 거였어. 나를 헤칠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었다는 거군?”
“…”
레인은 제이드의 목소리가 점점 사나워지는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제이드는 자신을 도와준 은인이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끔찍한 일들을 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가령, 손에 피를 묻히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레인, 그 남자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내가 물고 나서?”
제이드는 레인의 말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두운 곳에서 그의 문신까지 확인했다면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가까이서 봤다는 얘기이다. 그 방법 중 제일 확률이 높은 것은 레인이 말했던 그를 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런 건 중요치 않아. 상황은 중요하지 않아. 그 남자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아…아이답다고 했어…”
그 다음 높은 확률의 방법으로는 레인이 남자와 마주보거나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 생각에 미치자 제이드는 이마가 찌푸려졌다.
‘거리의 아이에게 지금 아이답다고 했다고?’
레인은 분명히 그 남자에게 무언가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기억이 안 난다는 말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내가 지금 그런 거 듣고 싶어서 묻는 게 아니라는 거 너도 알 텐데. 레인.”
제이드가 이를 가는 소리를 내자 레인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저…저…정말이야.”
레인은 다급한 마음에 빨리 말해서 그런지 말을 더듬었다.
“그 남자가 너에게 아이답다고 한 게 너 같으면 믿음이 가겠어?”
“…”
레인은 제이드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그게 사실인지라 다시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였다. 말이 나와야 하는데 컥 하는 숨이 막힌 듯한 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 참지 못한 제이드가 레인을 벽으로 세게 밀친 것이었다.
“레인. 꼭 말로 안 하면 못 알아들어?”
제이드는 레인의 멱살을 잡고 벽 쪽으로 다시 세게 밀었다. 손에 쥐고 있던 모자가 떨어졌다. 레인은 등 뒤로 딱딱하고 축축한 벽이 닿은 충격에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
‘지금은 이 정도이지만 언제 돌변할지 몰라.’
“아니, 컥, 아니. 일단 좀…”
앞에서는 제이드가 밀고 뒤에서는 벽이 밀어서 가운데에 낀 레인은 숨쉬기가 너무 불편했다. 제이드는 레인이 무언가 말을 하려 하는 걸 알고 그를 놓았다.
레인에게 이 정도 겁을 줬으면 사실을 얘기할 것이라 제이드는 생각했다. 레인은 눈치도 빠르고 자신이 다치는 걸 무서워하니 이런 별 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걸지 않을 것이다.
“자, 이제 말해봐. 여기 이 모자도 그 남자 것인 거 같은데.”
“컥컥.”
레인은 아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이 답답한지 가슴을 치면서 숨을 골랐다. 제이드는 그런 레인을 지켜보았다. 레인은 어느 정도 현실 감각이 돌아오자 제이드를 쳐다보았다.
“그냥 그 모자를 주면서 곤란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던 거뿐이야. 그리고 자기가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고 그런 식으로 말했을 뿐이야. 나머지는 나도 모른다고. 정말 그게 다야!”
레인은 숨도 쉬지 않고 속 안에 있는 것을 뱉어버리 듯이 말했다.
‘자기가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고? 무엇이? 그 남자… 쫓기는 건가? 등록되지 않은 스텔라인가? 등록되지 않은 스텔라가 신관들에게 발견되면 즉각 처형인데 이 밀고자가 될 수 있는 아이를 제거하지 않았다고?’
제이드는 레인의 말에 의구심이 점점 커지기만 했다. 확인 할 필요가 있었다.
“레인, 그러고 보니 내가 부탁했던 일을 했어?”
“켁켁, 응. 펼쳐진 책 위에 꽃과 흰 깃털 문양을 가진 사람이 상업지구 앤트넬리를 지날 때 상자를 들고 있을 거라고. 그럼 그 상자를 훔쳐서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바꿔치기 하라고.”
“그래서 했어, 안 했어?”
“해…했어. 몇 번이고 잡힐 뻔 했지만 하긴 했어.”
레인은 잡힐 뻔 했을 때, 제이드와 닮은 사람을 만난 것이 생각나 그걸 말하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만났는데…”
하지만 제이드는 자신이 부탁한 일의 성공 여부만 관심이 있었는지 벌써 자신을 등지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하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계속 뒤돌아있었다.
그렇게 얼마 안 있다가 제이드가 뒤돌아 레인에게 말했다.
“좋아. 잘 했어. 레인, 그런데 방금 일로 때문에 나를 다시 도와 줄 일이 생겼어.”
제이드의 말에 레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제이드는 자신을 잘 아니까 자신에게 맡는 일을 시킬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저도 모르게 의문이 들었다. 왜인지 언제부턴가 제이드가 자신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다시 물 밑으로 잠기게 했다.
“아, 알았어. 제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