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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라뷔린투스
작가 : Elcaminosolo
작품등록일 : 2018.12.31

‘스텔’ 이라는 힘을 가진 ‘스텔라’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스텔은 대기 중의 에너지이며 무형이기 때문에 매개체를 써야 실체화된다. 이 힘을 다루는 자를 ‘스텔라’ 라고 부른다.

에펜슐렌 대륙 중부에 위치하는 국가 브리티아에서는 에드워드 왕태자가 그의 아버지인 클레이안 왕을 시해한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그에 따라 빈 왕좌와 주인을 잃은 왕관은 자연스럽게 왕의 둘째 아들이자 왕태자의 이복동생 에렌 왕자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 일뿐, 에렌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모후가 되는 헤스데아가 섭정후로 등극하였고, 브리티아는 그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에렌은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늘 그의 어머니 헤스데아 섭정후였다. 거짓 왕의 자리에 앉아 어머니와 그에 관련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끼던 나날 중, 우연히 카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카드는 이복형이자 실각한 에드워드 왕태자에게 자신이 그려줬던 카드였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왕태자와 자신뿐이었다. 평소 시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에렌은 이 카드의 끝에 닿으면 왕태자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뒤를 쫓는다.

카드의 행방을 쫓으면 쫓을수록 에렌은 목적이 같은 자들과 방해하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목적이 같은 자들은 리안, 에녹, 로렌이다.
리안은 살인사건의 피해자 중에 과거 자신의 부하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애나의 자취를 쫓던 중 비밀 클럽에서 에렌과 만나게 되고, 그 후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게 된다.
에녹은 에렌과 악연으로 처음 만났으나 같이 비밀 클럽의 폭발을 피하려다 헤르뮌 대공(자연을 다스릴 정도로 대단했던 브리티아 역사 속에 기록된 스텔라)이 만든 지하에 휩쓸려 그 곳을 빠져나오면서 친해지게 된다. 에렌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에렌의 적들과의 거래로 검투대회에 나가는 등 갖은 고생을 겪지만 위험한 순간마다 에렌이 구해준다.
로렌은 자신을 저주받은 자라고 말할 뿐, 그 카드와 카드판을 없애려고 에렌과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방해하는 자들은 제이드, 검은 남자이다.
제이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조종하여 에렌을 곤경에 빠뜨리지만 막판에는 그의 정체와 함께 용족과 하늘사람이라고 불렀던 종족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검은 남자는 사건 사고가 있는 곳마다(처음엔 비밀 클럽의 폭발 사고에서) 에렌과 마주치는데 후에 제이드와 같이 정체가 드러나며 국왕 시해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카드와 카드판으로 용족과 하늘사람들의 힘을 갖기 위해 네르센과 일로이드가 끼어들고, 나중에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15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2)
작성일 : 18-12-31 23:44     조회 : 235     추천 : 0     분량 : 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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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키아, 잠시만 올라가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그 때 사공이 높이 뛰어올랐다. 그 높이는 인간이 제자리에서 뛸 수 없는 높이였다. 그리고 그대로 내려왔다. 그 반동으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라키아가 높이 뛰어올랐다. 라키아는 자신이 보던 풍경이 자신의 발아래 놓이자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 때 그의 발 아래로 거무튀튀한 뱀 같은 몸통이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가 라키아를 높이 띄어주지 않았다면 저 이상한 뱀 같은 것이 자신을 뚫고 지나갔을 거란 생각에 라키아는 소름이 돋았다. 라키아는 그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허공으로 자신을 띄었기 때문에 살았다고 안도하자마자 라키아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떨어진다면 이상한 생물체에게 제 몸을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라키아는 삶에 대한 열정으로 소리쳤다.

 

 “로렌!!!!!!!”

 

 그는 라키아의 소리침에 피식 웃었다. 그 짧은 순간 라키아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섬뜩한 생각이 스쳤다. 자신을 이렇게 던져 놓은 자는 올라가는 것은 책임을 졌지만 내려오는 것은 신의 섭리에 맡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라키아는 생애 별로 미련은 없지만 괴물의 먹이가 되고 싶지는 않기에 품에 있던 칼을 꺼냈다. 칼은 성인남자의 팔뚝만한 길이에 두께감이 어느 정도 있어서 괴물의 껍데기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라키아는 칼을 쥐어보며, 오늘 이 칼을 가져온 자신의 현명한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달빛에 반사되어 매끈해 보이는 표면과 그 위에 울퉁불퉁한 껍질 모양이 보였다. 라키아는 칼을 어디에 꽂아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괴물 위로 떨어지기 전 높이가 그의 키 만큼 되었을 때, 라키아는 칼을 위로 치켜 올렸고 그대로 낙하와 함께 칼끝은 괴물에게 향했다.

 

 꾸에에에에에엑

 

 칼은 정확히 단단해 보이는 괴물의 피부를 뚫었다. 괴물은 자신을 뚫은 칼에 대한 고통에 울부짖었다. 라키아는 자신을 정신적으로 괴롭힌 괴물에게 한 방을 먹여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괴물의 덩치에 비하면 정말 조그마한 상처일 거 같지만 꽤 아픈지 몸을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위에 올라타 있는 라키아도 이리저리 휩쓸리게 되었다. 라키아는 발 딛을 곳 없는 곳에서 어디로 도망가야할지 막막했다. 혹시라도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그가 있나 빠르게 배를 보았지만 그는 그 곳에 없었다.

 

 ‘망할 놈! 이래서 예부터 종이 다른 것끼리는 어울리지 말고 믿지도 말라고 했는데. 애초에 우위에 있는 놈들은 지보다 밑에 있는 것들의 기분을 알 리가 없지! 후우… 이상한 일에 휘말려 죽을 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는데… 뭍에서가 아닌 물에서 비명횡사 할 거라고는…’

 라키아가 속으로 그에게 욕을 퍼붓고 있던 중, 갑자기 붕 뜬 느낌이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나뭇잎을 연상시키는 녹빛과 어두운 곳에서 가끔 보이는 금빛이 도는 눈. 바로 그였다.

 

 “로렌, 어디 가셨던 겁니까? 죽을 뻔 했습니다.”

 

 “난 계속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못 보신 게지요.”

 

 라키아는 그의 답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뭔가 반박하려 하다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 일단 살고 봐야할 거 같아서 입을 닫았다.

 

 그는 라키아를 들고(정확히는 가볍게 옆구리에 끼고) 괴물의 위를 뛰었다. 괴물이 미쳐 날뛰는데도 그는 정말 곡예를 타듯 괴물의 등을 잘 뛰어다녔다. 크게 흔들리면 괴물의 긴 몸체 중에서 수면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뛰어 오르고 괴물이 그를 물 것 같으면 잽싸게 다른 부위로 도망가 괴물은 자기 자신을 물기도 했다.

 

 라키아는 그의 날렵한 몸놀림에 놀랐고, 한편으로는 그의 잔인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이 괴물 위에서 웃고 있었다. 괴물을 처치하기 버거운 것이 아니라 그는 분명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라키아는 속으로 말했다.

 ‘미친놈.’

 

 라키아는 그의 미친 짓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는 겁니까? 더 이상은 우웩…”

 

 라키아가 헛구역질을 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늘 계단을 걷는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정신 나간 놈. 난 이 땅에 속한 자고 넌 여기에 속한 자가 아니니 당연히 기분이 좋겠지. 이 종자들이 왜 벌을 받았는지 난 알 거 같은데.’

 

 “전 그런 계단 걸어본 적도 없고 걸어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 같은 자에게 자비를 좀 베 푸실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 좀 더 있고 싶습니다만?”

 

 라키아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해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할 뿐이었다. 더불어 그의 정강이 위치도 너무 멀리 있고 말이다.

 

 라키아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상상을 펼치는 와중에도 그는 괴물을 밟고 여기저기 잘 뛰어다녔다. 괴물의 크기가 크다기 보다는 길기 때문에 계속 밟을 만한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 놈은 그렇게 날 뛰는데 미끄러지지를 않네. 발밑에 뭐 끈적이는 거라도 발라놨어?’ 라고 라키아는 생각하다가 섬뜩해서 얼른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웠다. 그가 미끄러져서 자신을 놓친다면 괴물의 뱃속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라키아, 아까 보니 높은 곳에서도 잘 계시는 거 같던데…?”

 

 그에 따라 라키아는 ‘이 미친놈아. 그럼 타의에 의해서 나도 모르게 올라갔는데 견뎌야지 그럼 어떻게 하냐.’ 라고 말할 뻔 했다.

 

 “살아남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 밑으로 딸린 애들이 있는데 말이죠.”

 라키아는 죽상을 쓰는 듯한 얼굴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또 맞는 말이군요.”

 그는 라키아의 말에 수긍한 듯 미소 지었다. 하지만 행동은 그와 반대였다. 그는 들고 있던 라키아를 허공에 던졌다.

 

 ‘이…이… 정신 나간 놈이!’ 라고 소리는 못 치고 눈빛으로 그에게 최대한 전달했다. 그는 그에 대한 답으로 방긋 웃어주었다. 라키아는 떨어지기 전에 괴물에게 칼을 던질 게 아니라 진짜 괴물인 저 놈에게 던졌어야 했다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라키아는 자신이 추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그 높이가 꽤 아득했다. 떨어지면서 괴물의 몸을 잡아볼까 했는데 마땅히 닿는 곳이 없었다.

 

 ‘저 놈이랑 다니면 늘 위험하고 재수가 없었지. 뭘 새삼스럽게…’ 라키아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버님은 저 인간 같지도 않은 자가 뭐가 안타깝고 신경이 쓰인다고. 사실 속으로 따지면 아버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텐데…’

 라키아는 떨어지면서, 현재는 곁에 안 계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는 라키아를 보며 찡긋했다.

 

 라키아는 자신이 갇힌 막을 두들겨 보았다. 이 정도면 괴물이 날뛰어도 부서지거나 그 후에 자신이 산산조각 날 일은 없겠다 라고 생각이 들자 그제야 등을 기댈 수 있었다.

 

 자신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느낀 후에야 라키아는 주변 상황이 보였다. 괴물이 길다는 것은 그와 함께 뛰면서 느끼고 있었는데 떨어져서 보니 실제로 길었다. 수도의 일반 건물 높이보다 월등히 높았다. 괴물은 전체적으로 뱀처럼 생겼는데, 특이점이라면 뱀보다 이빨이 더 크고 뾰족하고 수가 많으며, 날름거리는 혀가 없다는 것이었다.

 

 괴물의 몸통에서 날뛰는 그에게 약이 많이 올랐는지 카악 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그 큰 몸이 움직일 때마다 많은 물이 튀어 올랐다가 떨어졌는데 라키아는 여기 있는 강의 물을 다 저 놈이 마르게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다 그가 알아서 하겠지 라는 생각에 라키아는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는 괴물의 몸통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머리 위로 올라갔다. 괴물은 머리 위에 앉은 그를 떼어내고 찢어죽이기 위해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덩달아 많은 양의 물들이 튀었다. 저기에 맞으면 꽤 아프겠다 라고 라키아는 생각했다.

 

 머리 위에 있던 그가 괴물의 몸통을 타고 쭈욱 내려왔다. 표면은 단단해 보이지만 미끄러운데다 괴물이 가만히 있지 않아서 한번 쯤 넘어질 것 같은데 그는 잘 타고 내려왔다. 그는 내려오면서 라키아가 괴물에게 박아놓은 칼을 회수했다.

 

 라키아는 그 모습을 보며 그의 기특함에 찬사를 보냈다. 칼이 뽑히자 괴물은 고통에 다시 몸부림을 쳤고 라키아는 간접적으로 한 번 더 괴물에게 타격을 한 것에 기뻐했다. 그러나 칼이 생각보다 깊게 박혔는지 그것을 회수하다가 그는 괴물의 몸부림으로 걷고 있던 길에서 튕겨나갔다.

 

 그는 튀어 오르는 물들을 밟아 걸으면서 손짓했다. 그러자 강에 있던 물의 일부가 솟아오르면서 동시에 얼었다. 그 물은 얼으면서 그가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얇은 절벽이 만들어 졌다. 라키아는 제약 없이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를 보며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가 있었던 시대와 환경은 이런 능력이 당연했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괴물은 그가 얼음 절벽에 발을 딛자마자 꼬리로 얼음 절벽을 부시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부서진 얼음 절벽의 조각들이 달려오는 괴물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 박혔다. 그 얼음에 뚫린 괴물은 자신만 죽을 수 없다는 듯 그대로 그에게 돌진했다.

 

 라키아는 아무 조치도 없이 괴물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며 놀라 소리치려 했다. 그와 다가오는 괴물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볼 수 있었다. 괴물에 박힌 얼음들에서부터 괴물의 몸이 점점 얼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게 닿기 직전 괴물은 큰 얼음 조각상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코앞에서 얼음이 된 괴물 조각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아주 괜찮은 작품이 되었어.”

 

 라키아는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같이 어울릴수록, 왠지 같이 미친놈이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손을 들었다. 그러자 강물 속에서 여러 개의 물줄기가 솟아올라왔다. 솟아 올라온 물줄기는 그대로 얼음 괴물을 뚫었다. 그렇게 얼음 조각상은 부서졌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언제 괴물과의 사투가 있었냐는 듯 적막감만이 흘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물 위에 서 있었다. 시선은 건너편을 향해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라키아도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하지만 어둠이 짙게 깔린 데다 안개까지 덧칠해져 있어 자신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물론 그의 사정은 좀 다를 것이다.

 

 그가 갑자기 서 있던 얼음 발판을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총총 물 위에 작은 파동을 남기며 반대편으로 뛰다시피 걸어갔다.

 라키아는 그의 기행에 면역이 생겨 놀라지 않았다. 걱정은 사치이며 내버려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 즈음 자신의 처지가 보였다. 이곳에 갇혀있는 자신을 꺼내줄 이는 그밖에 없다는 것을.

 

 

 

 로렌은 물에서 나와 땅을 디뎠다. 물에서 나왔지만 젖은 곳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방울과 좀 두텁게 튄 방울 정도가 전부였다.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만 낸 채 그가 향한 곳은 어느 한 건물 뒤편이었다.

 

 건물 뒤편으로 짐들이 쌓여있는 것으로 보니 그가 향한 건물은 창고 인 것 같았다. 워낙 어두워서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으면 강가 근처에 쌓아놓은 짐에 세게 부딪치거나 넘어질 것 같은데 그는 밤눈에 밝은 듯 그런 장애물들을 잘 피해 갔다. 그는 지나가면서 짐들을 살펴보다가 제일 높은 층으로 쌓인 짐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짐 뒤편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무언가 잡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잡힌 무언가는 그의 손을 물었다. 그는 아프기도 했지만 놀라서 잡고 있던 것을 놓았다. 그러자 뒤편에서 무언가 후다닥 튀어나왔다.

 그것이 튀어나올 줄 예상하지 못한 그는 잠시 중심을 잃었다. 그 틈을 타 그것은 빠르게 뛰어갔다.

 

 그것은 쥐로 오해할 것 같지만 둔탁한 움직임과 꽤 큰 그림자가 그보다는 큰 생물일 거라는 짐작케 했다. 그는 그의 손길을 용케 벗어난 생물을 금세 따라 잡아서 낚아챘다.

 

 “사…사…살려주세요!”

 그것은 사람이었다. 목소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약간 쇳소리가 났지만 어린 남자 아이의 목소리였다. 아이는 그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힘의 우위를 아는지 벗어나려고 하는 큰 반항은 없었다.

 

 그는 잡고 있던 뒷덜미를 놓았다. 아이는 털썩 하고 떨어졌다. 도망가려다가 금세 잡힐 것 같아 뒤돌아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눈에 비친 그는 큰 어른이었다. 어두운 데다가 달빛을 등지고 챙이 긴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얼굴이라던가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있는 거라고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다는 것뿐이었다.

 

 “꼬마야 뭘 봤니?”

 목소리를 통해 아이는 어른이 남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골격으로 이미 예상했었지만 아이는 그제야 성별을 완벽히 알 수 있었다.

 

 “아…아무것도…”

 아이는 자신의 대답에 남자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몇 번이고 고민했다. 아이의 작은 머릿속에서는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할까 아니면 남자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것일까 라는 두 개의 선택의 길에서 방황했다.

 

 “정말 아무것도 못 봤을까?”

 아이는 그의 말에 다시 눈이 흔들렸다.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아니면 사실대로 당신이 괴물과 싸우고 물 위를 걸어왔다고 말해야 할지 아이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에 놓여있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생사가 걸린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이는 아이다워야지.”

 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에 꽉 잡아 주먹을 쥐고 있던 아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

 그가 쓰다듬던 아이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미안.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리고 아이에게 사과했다. 아이는 그가 갑자기 사과를 하자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럼 그가 의도하는 바는 무엇이란 말인가.

 

 “꼬마야, 네가 아무것도 못 봤으면 더 좋고, 봐도 상관없어. 혹시 내가 생각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서 그랬단 다. 근데 아닌 거 같구나.”

 

 아이는 그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그는 자신이 그 상황을 보았던 안 보았던 상관없이 자신에게 뭔가 해를 가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가 생각했던 관계가 된 사람이 자신이었다면 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넘어가지도 했지만 끔찍하게 전개될 것 같아 얼른 머릿속에서 지웠다.

 

 “사…사실…봤어요.”

 아이는 그 말을 하면서 그가 웃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물론 어둠과 모자 때문에 확실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느껴졌다.

 

 “경…께서 물에서 사는 이상한 뱀 같은 것과 싸우신 후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봤어요. 물 위를 건너시는 것을요.”

 아이는 말을 마치고 그를 쳐다보았다. 일단 그를 믿고 말했지만,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이는 반응이 없는 그를 보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 그가 말했다.

 

 “그래. 아이다워야지.”

 그러면서 그가 아이 앞에 반 즈음 앉았다. 그리고 챙이 넓은 모자에 가려지고 고개가 숙여져 잘 보이지 않았던 그가 아이의 눈높이를 맞췄다.

 아이는 그제야 감춰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튜리엔드의 여자들이 말하는 리안 경만큼 훤칠하게 잘생긴 사람이었다.

 

 소매를 걷은 팔에는 직선과 곡선이 휘감고 있었다. 이상한 문양으로 도배된 팔에서 아이가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확신할 수 없지만) 문양은 칼날 같은 얇은 초승달이었다. 저렇게 팔에 많은 문양을 넣는 것이 신기해 아이는 그의 팔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팔이 움직이자 아이는 놀래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모자를 벗어 자신에게 씌워주려 하고 있었다.

 

 “예쁜 아이구나. 곤란하게 해서 미안하구나. 이건 선물이란다.”

 아이는 그가 씌워준 모자를 만져보았다. 그가 쓰고 있었을 때도 챙이 넓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아이는 시야가 아예 차단되었다. 아이는 그런 모자가 답답해서 벗었다. 그가 그런 아이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렴.”

 아이는 자신이 들은 말이 진짜일까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이에게 한 쪽 눈을 찡긋했다. 아이는 그가 준 모자를 잠시 만지작만지작 하는 것을 보니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그가 마음이 바뀌어 다시 발목이 잡힐까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가 준 모자를 손에 쥐고 뛰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둠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이 보일 때마다 아이가 어둠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꽤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그림자가 가끔 속도가 느려질 때가 있는데, 그 땐 아이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을 때였다. 아이는 아직도 그를 완벽히 믿지 못하는지 뛰다가 그가 쫓아올까 확인했다. 아이가 슬쩍 뒤를 돌아볼 때마다 그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아이가 등불 아래를 지나갔을 때였다. 등불 아래 아이의 완전한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는 거리의 아이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낡았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입어서 본래 옷 색깔은 찾아볼 수 없어서 검고 회색의 옷으로 보였다. 어두운 곳에서 더 어두워 보이는 떼 묻은 피부색과 빳빳해 보이는 머리카락이 오랫동안 씻지 못한 것 같았다.

 유일하게 매끈하고 새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이의 손에 쥐어진 그의 모자였다.

 

 등불 아래 아이의 모습이 들어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는지 그제야 그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건너왔던 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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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등장인물 2018 / 12 / 31 241 0 1239   
1 배경과 에펜슐렌 대륙의 주요국가 2018 / 12 / 31 362 0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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