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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라뷔린투스
작가 : Elcaminosolo
작품등록일 : 2018.12.31

‘스텔’ 이라는 힘을 가진 ‘스텔라’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스텔은 대기 중의 에너지이며 무형이기 때문에 매개체를 써야 실체화된다. 이 힘을 다루는 자를 ‘스텔라’ 라고 부른다.

에펜슐렌 대륙 중부에 위치하는 국가 브리티아에서는 에드워드 왕태자가 그의 아버지인 클레이안 왕을 시해한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그에 따라 빈 왕좌와 주인을 잃은 왕관은 자연스럽게 왕의 둘째 아들이자 왕태자의 이복동생 에렌 왕자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 일뿐, 에렌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모후가 되는 헤스데아가 섭정후로 등극하였고, 브리티아는 그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에렌은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늘 그의 어머니 헤스데아 섭정후였다. 거짓 왕의 자리에 앉아 어머니와 그에 관련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끼던 나날 중, 우연히 카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카드는 이복형이자 실각한 에드워드 왕태자에게 자신이 그려줬던 카드였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왕태자와 자신뿐이었다. 평소 시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에렌은 이 카드의 끝에 닿으면 왕태자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뒤를 쫓는다.

카드의 행방을 쫓으면 쫓을수록 에렌은 목적이 같은 자들과 방해하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목적이 같은 자들은 리안, 에녹, 로렌이다.
리안은 살인사건의 피해자 중에 과거 자신의 부하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애나의 자취를 쫓던 중 비밀 클럽에서 에렌과 만나게 되고, 그 후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게 된다.
에녹은 에렌과 악연으로 처음 만났으나 같이 비밀 클럽의 폭발을 피하려다 헤르뮌 대공(자연을 다스릴 정도로 대단했던 브리티아 역사 속에 기록된 스텔라)이 만든 지하에 휩쓸려 그 곳을 빠져나오면서 친해지게 된다. 에렌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에렌의 적들과의 거래로 검투대회에 나가는 등 갖은 고생을 겪지만 위험한 순간마다 에렌이 구해준다.
로렌은 자신을 저주받은 자라고 말할 뿐, 그 카드와 카드판을 없애려고 에렌과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방해하는 자들은 제이드, 검은 남자이다.
제이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조종하여 에렌을 곤경에 빠뜨리지만 막판에는 그의 정체와 함께 용족과 하늘사람이라고 불렀던 종족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검은 남자는 사건 사고가 있는 곳마다(처음엔 비밀 클럽의 폭발 사고에서) 에렌과 마주치는데 후에 제이드와 같이 정체가 드러나며 국왕 시해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카드와 카드판으로 용족과 하늘사람들의 힘을 갖기 위해 네르센과 일로이드가 끼어들고, 나중에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12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2)
작성일 : 18-12-31 23:41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9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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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키아가 과연 보는 눈이 있었던 것인지 그 중년 남자는 수도에서 돈이 좀 있는 사람 같았다.

 그는 척 보기에도 번듯하고 각이 진 커다란 저택과 잘 가꾸어져 비죽비죽 튀어나온 식물들 없이 줄을 잘 서 있는 정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에녹은 그가 꽤나 이름 있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바벤’ 이라고만 알려줬을 뿐, 정식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숨기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굳이 밝히지 않아도 그가 수도에선 이름만 대면 누구인지는 알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에녹은 그가 평범한 인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손님 자격으로 바벤의 집에 입성한 라키아와 에녹은 그에 맞게 각자의 방이 주어졌고, 하인들의 도움으로 말끔하게 씻고 준비하여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다.

 

 “이렇게 대접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라키아는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야말로 이렇게 대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며 옆에 서 있는 에녹의 머리를 눌러 인사하게 했다. 에녹은 라키아의 사소한 배려에 짜증이 났지만 잠자코 있었다.

 

 처음 봤었던 사람 좋은 인상 그대로 바벤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그럼 앉아서 식사를 해봅시다.”

 

 집주인이자 그들에게는 신 같은 존재인 바벤이 먼저 앉아 식사를 할 자세를 취하자 라키아와 에녹도 눈치껏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하인들이 갖가지 다양한 음식들을 가지고 들어오고, 식기만이 달그락 거릴 때, 라키아가 불쑥 말을 던졌다.

 

 “제가 남부 출신인지라 요즈음 수도 사정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거 있습니까?”

 

 바벤은 라키아의 말에 먹으려고 들었던 음식을 그릇에 내려놓고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남부에서 오셨습니까? 멀리서 오셨군요.”

 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않습니까. 크게 별 일은 없지만 요즈음은 곧 다가오는 왕의 탄신일로 축제 분위기입니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수도에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구나 했었습니다. 외국인도 많고 해서 과연 브리티아의 수도라고 생각했지요.”

 

 “예. 이번 탄신일엔 왕궁에서는 일주일 간 일부 궁을 개방한다고 하니 구경하시러 가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라키아는 감명 받은 듯한 눈으로 말했다.

 “오. 통일왕 파히아케 이래로 줄곧 왕궁이었던 그 유서 깊은 명궁을 무료로 볼 수 있다니. 아무래도 시기를 잘 잡아 수도를 방문한 거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역시 저는 행운아 인가 봅니다.”

 

 “다행입니다. 남부에서 수도로 자주 오시는 것도 아니 실 텐데 기왕이면 다 보고 가시는 게 좋지요.”

 

 “예.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키아는 이 말을 끝으로 다시 음식을 먹으려 했다. 그러나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얼굴에 망설임이 묻어나는 듯하다가 자기 성질대로 궁금한 것은 못 참겠는지 결국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바벤은 라키아의 말투에서 망설이는 듯한 느낌에(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시선이 갔다.

 “?”

 

 “제가 수도에 왔던 것이 너무 오래 전이어서… 그 땐 클레에녹 국왕 폐하의 치하에 있었지요. 그런데…”

 

 “…”

 

 “불미스러운 일이 있고 나서 그 배후가 검은 유니콘이 지목 되어서… 아. 이 얘긴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던 이야기라 거리가 먼 저희 남부에서도 물론 다 알고 있었지요…”

 

 눈치 빠른 라키아는 수도에서 이런 민감한 소식을 빨리 접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는 바벤의 눈빛이 약간 달라지는 것 같아 뒤에 소식을 접하게 된 이유를 첨삭하였다.

 에녹도 달라진 바벤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어쨌든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이니 주인의 기분과 눈치를 살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제가 듣기로는 달과 거울의 심판대 위에 오르셨다고…”

 라키아는 말을 더 하려는 순간 바벤의 눈빛이 묘하게 보통 호의적인 때와는 달라 보여 말을 줄였다. 하지만 그는 이 이야기가 정말 궁금했기 때문에 뱉었다. 즉, 일말의 답이라도 듣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달과 거울의 심판은 공개적으로 한 걸로 아는데… 경께서도 참석하셨겠지요?”

 

 라키아의 물음에 바벤은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에녹은 그의 모습을 보고 시간이 꽤나 흘렀어도 예민한 문제인 만큼 어디까지 내보여야 할지 생각하는 듯 했다.

 

 바벤은 곧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예, 저도 참석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앞을 나아갈 수 없었죠. 특별한 존재라 여긴 왕족의 처형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그런 기회가 어디 일평생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 그렇죠. 저라도 그 때 만약에 수도에 있었다면… 아니 아니..”

 라키아는 자신의 심정을 너무 다 토해내는 것이 민망하여(마치 왕족의 죽음에 박수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가) 스스로 자신의 입을 때렸다.

 

 “흠흠. 아무튼 정말 큰 사건임에는 분명하지요. 아무리 권력욕에 눈이 멀어도 자신의 아버지를 그렇게 잔인하게… 흠흠 뭐 여하튼 그런 난리가 났는데 심판의 판정은 흐지부지하게 되어 버렸다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괴룡 때문에…”

 

 바벤은 라키아가 말을 하다가 저 혼자 자책하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라키아는 조금은 무안하고 창피한지 식기 위에서 놀던 손을 내려놓고 말했다.

 

 “심판대에 등장한 엄청난 크기의 괴룡 때문에 거기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우왕좌왕 난리도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곳을 휘휘 저으며 난동을 부려 도망가다가 이리 저리 부딪쳐 다치고 서로 밀쳐서 다치고 건물도 꽤 부서졌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거기서 통솔해야 할 섭정후 마저도 자기 살겠다고 자리를 뜨는 건 두고두고 회자 될 거라고 하더군요. 그 스텔라로 유명한 기사이자 총 기사단장 레슈티르 공작도, 흔히 렉스 공작이라 불리지만, 여하튼 그도 넋 놓고 있다가 서둘러 뭐라도 했지만 괴룡이 더 날뛰기만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라키아는 자신이 그래도 나라의 한 수도에서 벌어졌던 큰 사건을 모를 정도로 바보 천치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정보력을 과시하여 ‘자신은 평범한 여행자가 아니다’ 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는지 몰라도 그 때의 일을 이어서 말했다.

 

 “아, 지금 섭정후의 아드님이자 현재 브리티아의 왕께서 그 어린 나이에 용맹함을 보여주셨다죠. 그의 기사인 베르챠인과 함께. 제가 듣기론 용에게 달려들어 왕께서 그 용의 눈에 정확하게 칼을 찔러 넣었다고 들었는데… 그 때 나이를 생각하시면 참으로 기개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뭐 결과적으론 레슈티르 공작의 기사단이 그 괴룡을 잡았지만 그 사건 후에 섭정후께서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던 것은 아드님의 용기와 베르챠인의 충성심과 레슈티르의 지도력이 보였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괴룡을 통해 반역을 꾀하던 검은 유니콘의 모습을 적발하여 그 자리에서 처형한 것으로 공표가 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키아가 말하는 것을 계속 보고 있던 바벤의 직선으로 된 입매가 약간 도드라진 듯 보였다.

 

 “제가 들었던 소문 중에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검은 유니콘께서 괴룡을 마치 통제하여 진정시키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어떤 사람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벤은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한 마디 던졌다. 마치 잔잔한 물 위에 돌 하나를 던져 작은 파동을 만들 듯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분께서는 스텔라도 아니셨고, 신의 힘을 사용하실 수 없으신 평범한 분이셨습니다. 아마 그 분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 존경하는 마음이 앞서 미화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수도에서 사신 분도 아니고 이제 오신 분께서 그런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저는 경께서 정보를 사고 파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부에서도 오셨다고 하시니 아그리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바벤의 말에 라키아는 놀라듯이 말했다.

 “예에? 정보를 사고 판다니요. 어휴, 그리고 아그리젠에서 살기엔 제게 너무 버겁습니다. 제 행색을 좀 보십시오. 그 곳의 집주인에게 하루 치 묵을 값도 못 낼 거 같지 않습니까. 허허.”

 

 라키아는 현재 자신의 초라하고 가벼운 모습을 강조하며 수도에 버금가는 남부의 화려한 도시 아그리젠에서 비싼 물가 때문에 하루도 버틸 수 없음을 강조했다.

 

 바벤이 라키아의 변명을 얼마나 믿을지 모르겠지만 라키아는 자신이 아그리젠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말했다.

 “사실 이건 다 암암리에 들려오는 얘기입니다. 물론 소수의 사람만이 귀담아 듣는 소문이지만요. 저 같이 하찮은 일개 여행자가 어디 그런 이야기나 소문을 가치 있는 정보라고 귀담아 듣겠습니까. 저는 단지 들리던 것 중에 제가 궁금한 것을 작게나마 해소할 수 있을까 하여 경께 여쭈어본 것뿐입니다.”

 

 바벤은 잠자코 라키아의 얘기를 다 듣고 난 후, 그가 얼마나 라키아의 말을 신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결심을 한 듯 말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 한들 수도에서 아직도 민감한 사항이라 다들 말하기 꺼려하고 쉬쉬할 텐데 그 때 당시에 한창 화두가 됐던 얘기들을 다 알고 계시군요. 예. 달과 거울의 심판 사건 이후 그런 말이 있었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실각한 자들을 영웅화 시키는 말이니 살아남아 올라 선 자들이 그것을 좋아할 리가 없지요.

 허위 소문을 유포한 자는 처형하겠다며 대대적으로 공표하면서 쏙 들어갔지요. 저도 법적으로 어긋나는 말이지만 경께서 제게 은인이셔서 목을 걸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수도에서는 듣는 귀가 많으니 어느 자리에서나 그 누구에게나 그런 말씀은 삼가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수도에서 즐길 거 다 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바벤의 언뜻 보면 협박 같은 그의 경고에 라키아는 더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답했다. (그가 보기에 더 이상 물어도 답해줄 것 같지도 않아 보이기도 했고)

 “아, 예. 그래야겠죠. 조심해야겠습니다. 하하.”

 

 그 말을 끝으로 상 위로 더 이상 말이 오가지 않았다. 바벤은 라키아처럼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고, 라키아는 말하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만 입을 열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자기가 얻고 싶은 정보는 못 얻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에녹은 보이지 않는 냉기가 감도는 이 분위기에 편승하여 식사를 하고 조용히 일어나고 싶었지만 라키아가 너무 표적이 된 듯하여 철없는 조카가 말 한마디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맞은 편, 바벤의 뒤에 걸려있는 초상화가 하나 눈에 띄었다. 바벤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와 그를 닮은 소년.

 

 “경께서도 제 나이 또래 아드님이 계신가보군요.”

 

 뜻밖의 에녹의 목소리에 바벤은 접시에서 고개를 들어 동그란 눈으로 에녹을 잠시 보다가 자신 뒤에 걸린 초상화가 생각났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단다. 내겐 저 아이와 다 큰 아들, 두 명이 있단다. 이 초상화에는 큰 애는 없지만 조만간 다시 그려 바꿀 예정이란다. 네 또래의 아들은 배움이 많이 필요한 아이라 학교에 있단다. 네 나이 또래라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지금 집에 없으니 좀 아쉽구나. 학교 이외 친구들과도 지내보면 좋을 텐데.”

 

 “집에 없으신 거 보니 기숙학교에 계신가 보죠? 기숙학교면 명문학교 아닌 가요?”

 

 대륙 내 명문학교들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5개가 있다. 브리티아의 체라노플, 네르센의 뮈레이시, 도시 단위 국가에는 신의 도시 레테나퀴스의 아스헤크(신학, 역사, 정치, 철학으로 유명한 학교이다)와 스텔라들의 도시 아르덴의 제르카니 를 말한다.

 

 이 명문학교들은 학생의 통학거리와 상관없이 기숙생활을 의무로 하고 있으며, 입학 할 자격은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각 학교에서 시행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주어진다. 각 학교의 시험은 비밀에 붙이며, 시험에 떨어진 불합격자들의 말도 시험을 친 형태가 제각각이라 이렇다 정의내리기 어렵다.

 

 각 학교가 주력하는 수업은 차이가 있다. 브리티아는 스텔을 능숙히 다루는 스텔라 양성에 신경을 쓰며, 네르센은 군에 관련한 지식과 무기를 사용하는 스텔라 관련에 집중한다. 레테나퀴스는 신의 힘을 다루는 사제들 양성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아르덴은 스텔라들의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몰려있어서 그런지 제조 관련 위주로 수업을 치중하고 있다.

 

 바벤은 자신의 아들이 떠오르는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끄럽게도 부족한 실력으로 들어갔지만 그걸 채우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란다.”

 

 에녹은 따뜻해진 바벤에 안도하면서 라키아의 무례(자신이 보기에)를 지우기 위해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경께서는 부족하다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시험 자체가 통과하기 어려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노력한다고 통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텔 운용을 미리 예습해 시험을 친다고 해도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선택 받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합격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벤은 딱히 말이 없던 에녹이 제 나이에 비해 또박또박 말해 약간은 놀란 표정이었지만 곧 웃으며 말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다시 식사만을 위한 소리만 들리고,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반 정적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렇게 식사 시간이 끝날 것 같았지만 의외로 바벤의 입에서 먼저 말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경께서는 이 아이를 어디 교육기관에 보내지 않습니까? 말투를 보아하니 야무질 거 같은데… 가리키면 가문을 빛내지 않겠습니까.”

 

 바벤의 말에 라키아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머뭇거렸다. 그리고 안타깝다는 듯이 라키아가 말을 줄였다.

 “아…”

 

 “?”

 

 “저도 많고 넓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보내고 싶지만, 이 아이에게 말 못할 지병이 있습니다.”

 에녹은 라키아의 예상치 못한 말에 놀라 나자빠질 뻔 했지만 바벤의 앞이라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이 일부는 맞는 말이라 잠자코 있었다. 그가 바벤에게 어떻게 포장할지는 모르겠지만.

 

 바벤은 라키아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아 한쪽 눈썹을 움찔했다. 겉으로 보기엔 에녹은 그 나이 대 건장한 소년처럼 보였기 때문에 병 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러합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어디 아프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라…”

 

 “예. 많이들 그렇게 얘기합니다. 보시다시피 평소에는 멀쩡한데 아플 때는 발작현상으로 나타나서 곁에 누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제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바벤은 라키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그럼 수도에 온 김에 진료를 한 번 받아봄은 어떻습니까?”

 

 라키아는 바벤의 뜻밖의 제안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먹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은인에게 또 이렇게 실례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제겐 그 상자를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그 어떤 보답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라에 인재가 될 수 있는 아이를 이렇게 방치 하는 건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에녹은 아까 심판대를 언급하면서 묘한 분위기가 흘렀던 것을 생각했다. 완고하게 얘기하는 바벤을 보며 이번에 또 심기를 거스르게 되면 서로 불편해질 거 같아 말을 꺼냈다. (라키아는 계속 거절할 것을 알기에)

 “혹 누구 아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에녹의 갑작스런 물음에 바벤과 라키아가 약간은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바벤은 에녹의 물음에 웃으며 답했다.

 “과거에 신세를 졌던 분이 있단다. 예전에 왕궁에서 일하셨는데 지금은 나오셔서 작은 진료소를 운영하신단다.”

 

 에녹은 대우도 좋고 명예와 노후가 보장된 왕궁에서 왜 굳이 나왔는지 이해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왕궁이라는 환경을 고려해 본다면, 타의로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에녹은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과 교류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바벤이 왕궁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때 라키아가 말했다.

 “아이고, 왕궁에서 일하는 분을 알고 계시다니. 과연 은인께서는 왕궁에도 연이 닿아 있으신 아주 영향력 있는 분이시군요. 제가 은인을 처음 뵈었을 때, 가만히 있으셔도 태가 보통 사람과 다르시고 광채가 난다 싶었더니 역시 큰일을 하시는 분이였군요.”

 

 기름이 잔뜩 칠해져 미끄러질 거 같은 라키아의 말에 바벤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지 않습니다. 연이 닿아 있을 뿐 경께서 생각하시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바벤 경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제 입장에서는 수도에서 거주하시면서 어딘가 종사하고 계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능력이 검증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다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다 모이는 수도에서 살아남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바벤은 라키아의 입 발린 말에 소름이 돋았는지 움찔하는 것 같았다. 그 때 라키아가 다시 말했다.

 “바벤 경께서 말씀하신 분이 왕궁에 계셨던 때면… 예르니치 왕비 전하를 모셨겠습니다.”

 

 라키아는 그 말을 하자마자 아까 바벤의 경고가 생각나 자신의 입을 때렸다.

 “아, 아이고. 이 놈의 입을 꿰매버리든지 해야지 안 되겠네요.”

 

 국왕 시해 사건 뒤에 충격으로 미쳐버려 탑에 유폐된 것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진 제1 왕비였던 예르니치 왕비. 한 때 제일 고귀하고 높은 위치에서 모든 것을 가졌던 행운의 여자에서 이 사건으로 자신의 배우자와 자식 그리고 지위까지 모두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 불운의 여자.

 

 소문에 따르면, 낮에는 넋 놓고 바깥을 보며 보내다가 숨죽이며 울고 밤에는 한이 묻히는지 통곡 소리가 탑에 울리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때론 탑 주변을 멍한 눈으로 방황하여 그 곳을 담당하는 궁인들을 기겁하게 한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하지만 한편 다른 소문으로는 그녀가 미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헤스데아 섭정후가 아직까지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흑태자의 세력들을 찾아내기 위한 혹은 제거하기 위한 인질로 예르니치 왕비를 미친 걸로 치부하여 탑에 유폐시켰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사실 이에 대한 것은 그녀가 직접 밖으로 나와 증명하지 않는 한 그녀가 정말 미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르니치 왕비가 그 곳을 나오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누군가가 왕궁의 경비를 뚫고 그녀를 꺼내오는 것이다.

 현재 그녀를 바깥세상으로 꺼내줄 수 있는 유력한 인물들은 한 때 그녀를 모셨던 가문들 중 살아남은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시해 사건 당시에 많은 재산들을 섭정후에게 뺏겨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가 헤스데아 섭정후 영향력 하에 숨 한 번 내쉬고 말 한 번 하기 어려워 고개를 조아려 땅만 바라보며 자리만 겨우 보존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금전적 여유도 힘도 없는 상태에서 그녀를 꺼내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발각되어 가문이 브리티아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았다.

 

 두 번째는 국왕 시해 사건의 판결을 뒤집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연루되었던 사람들은 실종되거나 죽었으며, 정작 사건의 정점에 있는 흑태자가 이미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판결을 뒤집어 줄 누군가가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이처럼 두 가지 모두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그 곳에서 남은 생을 다 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벤은 라키아의 계속 되는 예민한 질문에 심기가 불편한지 아까의 사람 좋은 모습은 약간 색이 바래지고 묘하게 인상을 쓰는 것 같았다. 그가 라키아에게 무슨 말을 하려 입을 떼려고 할 때, 문 근처에 서 있던 하인이 바벤에게 다가와 쪽지를 전달했다. 바벤은 그에게 받은 쪽지를 읽고 라키아에게 말했다.

 

 “계속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만 급한 손님이 방문하신 것 같아 먼저 일어나 봐야겠습니다. 여기 계속 머무르시면 식사의 기회는 많으니 그 때 또 함께 하도록 합시다.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리고 바벤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바벤이 자리를 뜨고 난 후, 라키아는 에녹이 늘 보던 식습관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음식을 섭취하고 일어났다. 그는 오랜만에 그가 원한 만큼의 양을 먹어서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며 에녹에게는 손을 흔들며 나갔다.

 

 평소 라키아보다 느리게 먹는 에녹은 그가 떠난 뒤에도 혼자 남아 묵묵히 식사를 하고 조용히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워낙 입 안에서 혼자 오물오물 씹는 편이라 가끔 남들이 그가 식사하는 지도 모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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