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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라뷔린투스
작가 : Elcaminosolo
작품등록일 : 2018.12.31

‘스텔’ 이라는 힘을 가진 ‘스텔라’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스텔은 대기 중의 에너지이며 무형이기 때문에 매개체를 써야 실체화된다. 이 힘을 다루는 자를 ‘스텔라’ 라고 부른다.

에펜슐렌 대륙 중부에 위치하는 국가 브리티아에서는 에드워드 왕태자가 그의 아버지인 클레이안 왕을 시해한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그에 따라 빈 왕좌와 주인을 잃은 왕관은 자연스럽게 왕의 둘째 아들이자 왕태자의 이복동생 에렌 왕자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 일뿐, 에렌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모후가 되는 헤스데아가 섭정후로 등극하였고, 브리티아는 그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에렌은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늘 그의 어머니 헤스데아 섭정후였다. 거짓 왕의 자리에 앉아 어머니와 그에 관련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끼던 나날 중, 우연히 카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카드는 이복형이자 실각한 에드워드 왕태자에게 자신이 그려줬던 카드였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왕태자와 자신뿐이었다. 평소 시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에렌은 이 카드의 끝에 닿으면 왕태자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뒤를 쫓는다.

카드의 행방을 쫓으면 쫓을수록 에렌은 목적이 같은 자들과 방해하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목적이 같은 자들은 리안, 에녹, 로렌이다.
리안은 살인사건의 피해자 중에 과거 자신의 부하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애나의 자취를 쫓던 중 비밀 클럽에서 에렌과 만나게 되고, 그 후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게 된다.
에녹은 에렌과 악연으로 처음 만났으나 같이 비밀 클럽의 폭발을 피하려다 헤르뮌 대공(자연을 다스릴 정도로 대단했던 브리티아 역사 속에 기록된 스텔라)이 만든 지하에 휩쓸려 그 곳을 빠져나오면서 친해지게 된다. 에렌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에렌의 적들과의 거래로 검투대회에 나가는 등 갖은 고생을 겪지만 위험한 순간마다 에렌이 구해준다.
로렌은 자신을 저주받은 자라고 말할 뿐, 그 카드와 카드판을 없애려고 에렌과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방해하는 자들은 제이드, 검은 남자이다.
제이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조종하여 에렌을 곤경에 빠뜨리지만 막판에는 그의 정체와 함께 용족과 하늘사람이라고 불렀던 종족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검은 남자는 사건 사고가 있는 곳마다(처음엔 비밀 클럽의 폭발 사고에서) 에렌과 마주치는데 후에 제이드와 같이 정체가 드러나며 국왕 시해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카드와 카드판으로 용족과 하늘사람들의 힘을 갖기 위해 네르센과 일로이드가 끼어들고, 나중에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9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1)
작성일 : 18-12-31 23:39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9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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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이거 혹시 경의 것이 아니십니까?”

 

 중년의 남자가 라키아의 손에 있는 물건을 빼앗다시피 가져가며 말했다.

 “오오, 맞소.”

 그의 얼굴에서는 감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은 라키아는 뱀이 먹잇감을 발견한 것 같은 눈빛으로 순간 번뜩였다.

 

 “제가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저 멀리서 경께서 다 제쳐두시고 앞만 보고 뛰어오시는 모습과 이 도둑놈이 휙휙 가로질러 날뛰는 모습이 제 눈에 딱 박혔지 뭡니까. 그래서 ‘아! 저것이 바로 수도에서 자주 볼 수 있다는(사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날렵한 도둑놈의 일종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 한 몸 희생하여 이렇게 경의 것을 찾았습니다.”

 

 라키아는 ‘휙휙 가로질러 날뛰는 모습’에서 저 혼자 몸을 요리조리 뒤틀어 보이다가 한 걸음을 성큼 뛰어 다니며 포현하였고, ‘아! 저것이…’ 에서는 손뼉을 치며 깨달음의 표정을 재현하였다. 특히 ‘제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에서는 ‘제가’를 강조하였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에서는 불타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손을 불끈 쥐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옆에서 구경하는 에녹은 그저 기가 막혀 헛헛한 마른 웃음을 낼 뿐이었다.

 

 “이걸 잃어버렸으면 큰일을 치룰 뻔 했는데 이렇게 찾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정말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이다.”

 

 중년의 남자는 물건을 품에 꼭 껴안고 말했다. 물건은 겉으로 보기엔 상자 같았다. 그가 말하는 물건은 정확히는 그 상자 안에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물건이 흐트러지지 않고 잘 있나 살짝 열어서 봤을 때 에녹도 힐끔 보았다. 상자 뚜껑이 빨리 닫혀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투명하고 반짝이는 것처럼 보여 보석인가 싶었다.

 

 “경께서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얼굴로 달려오시니 그 모습을 보고 저도 예전에 비슷한 도둑 사건을 겪은지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일로 제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공께서는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저는 그 때 일로 인한 상실감이 어떤지 알고 있기 때문이죠…”

 

 라키아는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어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빼앗겨서 오는 마음의 상처가 작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마치 그랬기 때문에 이 상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경께선 여기 사람은 아닌 듯하고 여행자이신 듯한데…”

 중년 남자는 라키아가 입고 있는 후드와 수도의 유행은 따르지 않고 움직이고 활동하기 편한 옷차림새를 보며 말했다.

 

 라키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예… 보다시피 여행자입니다.”

 

 “그럼 여행 하시다…”

 

 “예… 여행하다가 도둑놈들을 만나 앉아서 코를 베였지 뭡니까.”

 라키아는 깃털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자기가 생각하기에 뭔가 대화에서 어색한 느낌이 들어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깃털을 보고 알았다.

 ‘여행자에게 깃털 부채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에 라키아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혹시 중년의 남자가 ‘여행자’ 라는 단어가 자신을 지칭하기에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챘을까 슬쩍 그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중년의 남자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듯 그를 안타까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글쎄 그 도둑놈들이 몇 푼 남기고 다 가져가버려 노숙과 신의 사제님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겨우 수도로 오늘 입성했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구경하고, 이 곳 사람들도 구경하며 거리에 앉아 있었지요. 특히 이곳은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멋진 청년들이 많은데 아마도 경처럼 어떻게 꾸며야 돋보이는지 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라키아는 ‘경처럼’을 강조하며 한 쪽 눈을 찡긋했다. 에녹은 그저 끔찍할 뿐이었다.

 

 “넋 놓고 구경하다 이 깃털부채를 발견했지 뭡니까. 어느 귀부인께서 밖을 나오셨다 이 깃털 부채를 놓고 가신 것 같은데… 주인을 찾을 수 없어 일단 제가 가지고 다녔는데, 못 찾으면 이거라도 팔아서 방을 구해보려 하고 있었습니다.”

 

 에녹은 지금 말하고 있는 라키아를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인물로 단정 짓는 것이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저 부채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이 수도로 입성한 후 가난하게 된 원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라키아는 괜찮은 물건들을 알아보는 아주 뛰어난 눈을 가졌는데, 문제는 그 물건들이 값이 꽤나 나간다는 것이었다. 라키아의 눈에 저 물건이 눈에 띄자마자, 주인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강아지 같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에녹을 쳐다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라키아의 돈 씀씀이를 믿지 못하는 집사가 모든 금전적 권한을 에녹에게 부여했기 때문이었다.(물론 라키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기 때문에 에녹이 금전적 권한을 가진 것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큰 이유는 돈을 매번 챙겨야 하는 귀찮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녹은 단호하게 ‘안됩니다.’ 라고 하며 자리를 떴다. 라키아는 에녹을 따라가지 않고 그 가게를 지키는 석상이 되어 서 있었지만 에녹은 과감하게 버리고 떠났다. 에녹이 시야에서 사라지려 하자 불안해진 라키아는 그제야 자리를 떠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녹은 이렇게 매정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현했는데 못 알아듣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라키아가 포기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라키아가 예전만큼 자유롭게 돈을 쓸 처지가 아닌 것은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은 에녹의 크나큰 착각이었을 뿐이었지만. 라키아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철이 없고 자제력이 없으며 한 가지에 꽂히면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에녹이 잠든 사이에 귀신 같이 돈을 빼가 거금을 주고 깃털 부채를 사 온 것이었다.

 

 원래 그 깃털 부채를 사 가기로 한 아가씨가 예약 되어있었는데 라키아가 그 중간에서 가로채려면 웃돈을 더 얹어주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덕분에 꽤 좋은 위치에 쾌적한 숙소에 있었는데(라키아는 주제에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앞으로 꽤 머물러야 하는데 돈을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아 짐을 꾸려 나왔다.

 

 에녹은 그 깃털부채를 볼 때마다 먼지떨이로 쓰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아무 생각 없어보여도 아그리젠의 쟁쟁한 상인들 사이에서 버텨내신 분이다. 이유가 다 있으실 거야.’ 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지만 가끔 튀어나오는 ‘정말 그럴까? 정말 나중에 큰 뜻이 있어서 저러는 거라고? 그냥 정신 나간 건 아니고?’ 이런 종류의 부정한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이걸로 인해 사람은 바뀌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쳐 쓸 수 없다는 것을 에녹은 깨달았을 것이다. 왜 자신이 그런 걸 깨달아야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에녹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도둑에 생각이 미쳐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 상황에서 정신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영리하게 자신의 얼굴을 숨기려고 하는 것인지 엎어져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에녹이 도둑을 대충 훑어보기엔 거리에서 사는 소년 같았다. 그 나이 대 평균 키보다 작아 보이는 키와 얇은 골격. 대신 날렵함과 눈치로 하루하루를 사는 소년. 헤지고 너덜너덜한 짙은 색 옷을 입고 있었고, 눈에 띄는 점도 없었다. 약간의 냄새가 나는 것 빼고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이런 소년에게 누군가 사주를 해서 물건을 훔치게 할 거 같지는 않았고 그냥 상자 안에 있는 보석을 보고 따라온 건가.’

 

 개인적인 이유(에녹이 보기에 제일 가능성 있는 이유는 생계 같았다)로 도둑질을 해야 했던 소년이라고 결론을 내리려다가도 혹 무기를 쓰지 않아도 스텔을 다룰 수 있는 자 이면 무엇을 할지 모르니 일단 예의 주시해야겠다고 에녹은 생각했다.

 

 에녹이 도둑을 다시 밑에서 위로 훑던 중, 그의 손가락에서 시선이 멈췄다. 새까만 피부 위에 유독 더 새까만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규칙적인 모양이 있어 눈길이 갔다. 그것은 꽃모양의 문신이었다.

 ‘잠시 저 문양…’

 에녹은 묘하게 익숙하다 싶어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에녹이 혼자만의 생각에서 벗어났을 때, 라키아와 중년의 남자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중년 남자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지금은 곧 왕의 탄신일에 열릴 축제와 검투 대회 등으로 제일 싼 숙소도 구하기 힘들고… 가장 싼 숙소도 지금 가격이 엄청 날 텐데 걱정입니다. 여기서도 노숙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제가 아까 바로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이 물건을 제게 다시 오게 해주신 것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제 마음을 공감해주셔서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불편하시지 않다면, 저희 집에서 지내시다가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중년 남자의 말에 라키아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에녹은 이 연극에서 저 얼굴도 만들어 낸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 혼자만 아는 것이 답답하지만 여기서 머무르는 동안 식‧주가 해결될 기회가 오는 거 같아 그저 가만히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라키아가 오해하는 줄 알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저도 좋은 숙소를 구해드리는 것이 좋겠지만, 이미 좋은 숙소는 지방귀족들과 부유한 이들이 다 차지했습니다. 차지한 그들을 끌어낼 수 있을 만한 매력적인 선택지를 제가 가지고 있지 않아 구하기 힘들 거 같아서 드린 말씀입니다.

 아니면 좋지 않은 숙소에서 알아봐야 하는데 제 은인을 거기로 모시기엔 제가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저희 집이 다행히도 손님방과 여유분의 방이 꽤 많고 지내시면서 식사도 다 챙겨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자이신데 여기를 구경하시는 것도 목적이신 것 같아 제가 잘 아는 사람을 붙여드리려고 해서 제안 드린 건데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라키아는 깃털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너무 너무 감동적인 제안이라 제가 잠시 할 말을 잃어서… 지금 머물 곳 없이 거리에서 방황해야 하는데 이런 뜻밖의 좋은 제안을 해주신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제가 경의 댁에 머무름에 따라 경께서 느끼실 부담감과 책임감 등을 염려하여 단칼에 거절하는 것이 옳으나 지금 제 위치에서 경의 제안이 너무 유혹이 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겐 오히려 은인이신데 이 정도 쯤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도에 머무르시는 동안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제게 주심으로써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제게 엄청난 영광일 듯싶습니다.”

 

 “그럼… 염치가 없지만 부탁드립니다.”

 

 중년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예예,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라키아는 부끄럼타는 숙녀처럼 눈을 아래로 내리고 코 이하를 깃털 부채로 가리며 말했다.

 “저 근데…”

 

 “?”

 

 라키아는 깃털 부채로 에녹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도 같이 여행 온 제 조카라…”

 

 이 성격 너그럽고 좋은 중년 남자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예, 괜찮습니다.”

 

 라키아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뒤를 돌며 말했다.

 “그럼 이 도둑을 잡아넣고 갑시다!”

 

 그 때 의식 없이 누워있다 싶은 도둑이 벌떡 일어나더니 도망가기 시작했다. 라키아는 그 모습을 보며 호들갑 떨며 말했다.(물론 그는 너무 당황하여 소리치는 척을 했을 것이다. 그가 도둑을 잡으러 뛰어가는 것은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적당히 시늉을 하면 어찌됐던 이 중년의 남자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될 터이니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어어어어, 저 도둑이!!”

 

 도둑은 아까 중년의 남자를 피해 달려오던 때와는 다른 속력으로 도망갔다. 아까 그 속력은 중년의 남자를 상대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 아껴두고 숨겨두었던 힘을 써 가며 속력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물건이 무사하니 굳이 쫓아가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라키아는 옳다구나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도둑을 꼭 잡아야 하셨다면 수도로 오는데 써 버리고 몇 안 남은 힘으로 죽어라 쫓아갈 뻔 했습니다.”

 

 중년의 남자는 라키아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은인의 입장에서는 또 그렇겠군요. 하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키아는 남자의 말에 기뻐하며 말했다.

 “그럼 이제 좀 제대로 된 곳에 쉬고 싶군요. 하도 돌아다니고 당혹스런 일을 겪고 나서 긴장이 풀리니 힘이 훅 풀리는군요.”

 

 에녹은 그의 말에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에녹도 라키아를 따라 가려고 발길을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걸을 때마다 목 언저리에 부딪치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허전한 감에 목 부근을 만져보니 항상 하던 펜던트가 없었다.

 

 ‘아뿔사!’

 

 아까 부딪칠 때 떨어졌나 싶어 그 주위를 살펴봤지만 반짝일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 도둑 말고는 물건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날렵하고 빠르고 수도의 지리에 익숙하지만 아까 체력을 많이 뺏겨서 얼마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라키아, 저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에녹은 뒤에서 라키아가 ‘어디 가냐.’, ‘이 분을 기다리게 할 참이냐.’ 등 그런 종류의 말들이 들렸지만 당장 따라잡는 것이 급해 아까 소년이 가던 길을 뒤따랐다. 다행히 3블록 안에 옆으로 빠지는 길이 없어 먼저 간 소년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상업구역에다가 낮 시간이라 사람이 많아 그와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의 누런빛을 띄는 옷이 어디를 가나 돋보여서 저 앞에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아까 그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부터 이 정도까지의 거리면 그가 뒤에 쫓아오는 누군가가 없음을 알고 있을 텐데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해 빠르게 가는 것을 보면(아까 훔쳐서 도망쳤을 때보다는 느린 속도였다) 보통 조심성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리를 차근차근 좁혀가며 눈은 그를 계속 쫓았다. 에녹이 그를 향해 소리치면 뒤를 돌아 볼 만큼 가까워졌다. 하지만 성급히 소리쳤다가 그가 도망치면 다시 이 추격전이 시작되거나 아님 쫓다가 놓칠 수도 있었다. 사람이 붐비는 곳은 무슨 일이 생긴 후 몸을 숨기기에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고 최악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몇 사람만 지나면 그에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3블록을 벗어나자 경계심이 많이 줄어들어 사람 안에 숨어든 에녹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에녹은 빠르게 그를 잡고 펜던트만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소년이 자신의 물건을 훔친 것이 괘씸하긴 하지만 남의 나라에서 굳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에녹이 소년에게 손을 뻗으려고 할 때였다.

 

 “저, 저, 저 거지를 잡아! 소매치기다!”

 

 방금 에녹을 지나갔던 사람이 뒤에서 소리쳤다. 소년은 그 도망가는 와중에도 남의 물건에 손을 모양이었다. 직업 정신이 그렇게 투철할 수가 없었다.

 

 소년은 그 외침을 듣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이 상업 지구에서 유독 사람이 많은 밀집 지역은 아까 벗어났으니 그의 앞으로는 아까보단 장애물이 덜 할 것이다. 그리고 에녹은 이 지역의 샛길이라던가 지름길을 전혀 모르지만 저 소년은 이 거리 자체가 집이고 직장이니 빠삭할 것이다. 그를 눈앞에서 놓치면 정말 영영 놓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에녹은 따라갔다.

 

 소년은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을 벗어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생긴 샛길이나 건물 뒤에 있는 길을 요리조리 찾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에녹은 그 길들이 미로 같고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어디가 어딘지 몰랐지만 일단 그를 잡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뒤를 슬쩍 본 소년은 자신을 따라오는 에녹을 보았다. 그는 더 복잡한 길을 택했다. 특히 샛길로 빠졌다가 말과 마차가 다니는 주요 길로 빠졌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에녹의 정신을 쏙 빼놨지만 그저 속도를 높여 격차를 줄여 잡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들 틈새로 생긴 길을 나와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확 꺾을 때 달리던 속도가 있어서 힘들고 아무래도 주위에 피해를 안 주기 위해서 양옆을 보고 다니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에녹은 소년과 많이 간격을 줄였다. 간격을 줄일 다음 기회가 있다면 곧 따라잡을 것 같았다. 에녹 자신도 훈련하던 게 있어서 날렵함은 지지 않는데 저 소년도 이게 생활이라 그런지 만만치 않았다.

 이 곳 지리를 알았다면 저 소년이 이동하는 경로 중에 접점을 알아내 먼저 기다려서 잡아챘을 것이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따라다니는 바람에 속도가 조금씩 뒤처지는 것이 답답했다. 그런 불편한 점들이 해결된다면 이 정도 추격전은 금세 끝낼 수 있었을 테지만 에녹은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며 쫓았다.

 

 지금 달리고 있는 건물 틈새 길을 지나면 간격을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에녹은 속도를 더 냈다. 소년은 막 이 틈새 길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때 소년의 옆으로 말이 달려들었다. 말을 모는 이가 옆에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오는 것을 못 본 듯싶었다. 다행히 말을 확 틀어 소년이 말에 차이진 않았다. 앞에서 그 일을 본 에녹은 얼마 안 가 틈새 길을 빠져나와 상황을 마주했다.

 

 말에 탄 이는 둘이었는데 에녹과 비슷한 나이 또래들이었다. 그 중 하나는 말 위에서 턱을 위로 치켜들고 아래로 내리깐 시선으로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행색이나 그런 건 그냥 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상복을 깨끗하게 잘 다려 입었으나 보통 사람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오만해 보이는 그가 물었다.

 “미안합니다. 다쳤습니까?”

 

 소년은 묻는 그를 보지 않고 땅만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물었다.

 “빨리 말해주면 좋겠군요. 지금 시간이 없어서.”

 

 “…”

 

 에녹은 그의 말투가 묘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소년은 그를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보아도 그는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혹시 그의 힘으로 인해 보안부라던가 그런 곳에 끌려갈까 걱정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사실 그는 절도죄로 당장 보안부에 끌려가도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오만한 이는 그 모습에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내가 지금 바빠서 기다려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디 크게 다치지 않았다면 먼저 가 봐야 되겠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 오만한 그는 말고삐를 잡은 자신의 또래에게 가자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는 오만한 이를 툭툭 쳤다. 그러자 오만한 이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거기, 자네.”

 

 “?”

 에녹은 설마 자신인가 싶어 자신을 가리키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래, 자네.”

 에녹은 언제 봤다고 초면에 반말을 하는 그가 어이없었지만 일단 자신은 예의를 차려주기로 했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바빠서 그러하니 저 소년을 좀 부탁합시다. 그리고 이걸 받으십시오.”

 

 에녹은 그가 갑자기 던진 물건을 순간적으로 받았다. 그건 칼이었다.

 

 “그걸 보안부에 있는 리안 경에 갖다 주면서 상황을 얘기하면 다 해결해줄 걸 겁니다. 치료든 돈이든 다 해결해 줄 겁니다. 저는 급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들은 에녹이 이런 건 무슨 경우인가 라며 얼이 빠져 있는 사이에 빠르게 그 자리에서 떠났다. 뒤늦게 그들의 뒤에 대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뭐, 저런 미친…”

 

 에녹은 어이없고 짜증이 났지만 일단 소년에게 볼 일이 있으니 그것부터 해결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고 날 뻔 한 사람을 내버려두고 내 펜던트부터 내놓으라고 다그치기엔 미안했다.

 

 “이봐, 괜찮아?”

 

 에녹은 소년에게 가까이 가서 물었다. 일단 그의 상태가 괜찮아지면 펜던트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아까부터 계속 땅만 보고 있었다.

 

 “이봐, 놀란 거 같은데 좀 진정하고. 어디 다친 거면 같이 가자.”

 

 그 때 땅에 귀한 거라도 떨어진 듯 시선을 떼지 않던 소년이 고개를 들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이, 이봐!”

 

 에녹은 솔직히 소년이 달리는 순간 미안하지만 그의 건강함에 안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펜던트가 걱정되었다. 에녹이 다시 소년을 뒤따라 달리려고 할 때 땅에 깡깡 거리며 반짝이는 게 떨어졌다. 펜던트였다.

 

 에녹은 펜던트를 주웠다. 자신의 것이 맞았다. 고생고생해서 획득한 물건이라 그런지 묘하게 성취감이 일었다. 근데 그 순간도 잠깐이었다. 그 오만한 자가 자신에게 엄청난 쓰레기를 주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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