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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Pay first.
작가 : 바울
작품등록일 : 2018.12.1

인기 없는 작가와 찌질한 팬의 아슬아슬한 관계 유지.

 
#完
작성일 : 18-12-31 23:39     조회 : 305     추천 : 1     분량 : 4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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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完.

 

 

  - 고아 씨, 강승아 (26)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의식도 못 한 사이에 눈발이 거세져 있었다. 이젠 사랑의 시작보다 실연이 더 어울리는 날씨가 되었다. 이전의 부둥켜안고 있던 커플도, 길을 지나는 사람들도 보이질 않는다. 희뿌연 창에 비치는 건 오직 눈보라뿐이다. 보기만 해도 사람을 겁먹게 하는 하나의 재난이다. 분명 모든 문이 닫혀 있는데도 찬 바람이 드는 것 같다.

 

  남자는 서리 낀 창문을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보이는 것 하나 없지만, 도무지 눈을 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반대편에 앉은 여자는 초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빈 잔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어느샌가 노인의 인기척이 사라져 있었다. 이제 온 세상엔 이 두 사람만 남았다.

 

  승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머릿속을 들여다 보는 중이다. 감히 짐작도 못 할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어쩌면 먼저 경고해 줬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것엔 시간이 필요했다. 이 이후에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실제론 몇 분 되지 않지만,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침묵이다.

 

  남자가 마침내 말할 준비를 끝냈을 때쯤엔, 여자는 무언가 참고 있는 듯 자그마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작가님."

 

  짓씹는 입술에서 피가 나기 직전이다. 승아는 팔을 들어 고아 씨의 볼을 어루만져주었다. 갑작스럽게 이뤄진 접촉에도 고아 씨는 당황하지 않았다. 되려 편안함이라도 느끼는지 깨물던 입술을 풀고 눈을 감는다. 두 남녀가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했을 때, 기묘하게도 서로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차분해지는 숨결과 함께 조금씩 박동이 느려진다. 각자의 속도에 엇갈리던 두 심장이, 어느 순간 같은 박자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승아 역시 눈을 감는다.

 

  "작가님을 좋아한다는 고백, 취소해도 될까요?"

 

  감은 눈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다만, 저 차가운 볼의 촉감이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이전에 자신 때문에 우는 고아 씨의 모습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되자, 가슴이 찌릿하는 느낌에 몸을 가눌 길이 없다. 미안해요 작가님. 용서하세요. 차마 말로 전할 수 없는 사죄는 가슴 속에서만 제자리 걸음 하다 사그라진다. 하지만 여전히 밑에 깔려 마음을 무겁게 한다.

 

  "4년이나 허둥대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어요. 전.. 작가님을 좋아하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할 순 있어도 사랑할 순 없어요.

 

  작가님은 저한테 너무 큰 산이에요. 작가님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쁜 얼굴에, 대단한 재능에, 자신감으로 뭉친 사람이죠. 제가 부러워하는 건 다 가지고 계시고, 저 같은 건 옆에 서 있기만 해도 주눅이 들어요. 항상 그랬죠. 아마도.. 작가님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왜 작가님을 4년이나 못 놓았는지 아세요? 늘 딱딱하고 냉담한 반응에도 그렇게나 질기게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저도 지금까진 몰랐지만, 이젠 알 것 같아요. 작가님을 향한 그 애매한 감정엔 애정만 있던 게 아니었어요. 애정보다는 도리어.. 존경심과 부러움이 훨씬 더 컸죠. 대단한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자신의 스타와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은 수많은 팬들. 자신은 남들과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그런 멍청이. 저는 그 중 하나에 불과했어요. 가까이할 수록 열등감만 생기는, 스스로를 위해선 되려 거리를 둬야 할 사람. 작가님은 저에게 있어 그런 존재였어요.

  어쩌면 너무 늦게 깨달은 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전 작가님을 좋아하지 않아요."

 

  고아 씨를 쓰다듬는 손에 또 다른 차가운 것이 느껴진다. 고아 씨의 양손은 그렇게나 작고 연약했다. 후회하고 있을까? 충격적인 과거 이야기에 마음을 바꿨다고?

 

  미세한 떨리는 그 두 손은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그러지 말라며 매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승아의 손이 저 얼굴과 두 손에 미약하게나마 온기를 나눠준다. 곧 사라질 따뜻함에 의지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장을 부여잡게 할 만큼 애처롭다. 고아 씨의 마지막 눈물은 이제 때를 기다리고 있다. 곧 다가올 사과의 말과 함께 떨어질 준비가 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누군가에 의해 흘리지 못할 것이다. 이미 각오한 일이다. 괜찮다. 정말로.. 괜찮다.

 

  "그런데.. 있잖아요."

 

  문득, 자신이 턱시도가 아닌 두툼한 니트를 입은 사실이, 이 낡은 카페가 저 높은 스카이라운지가 아니란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곳이 얼마나 낡았던, 복장은 또 얼마나 평범하던 그런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서로는 눈을 감고 있으니까.

 

  "고아 씨는 좋아할 수 있어요."

 

  큰 떨림이 느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모든 진심을 쏟아 붓는다.

 

  "처음 작가님을 만났을 땐, 그저 눈이 부셨어요. 나한텐 너무 대단한 사람이고, 그렇게나 예쁜 줄도 몰랐거든요. 말 그대로 '작가님'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죠. 두 번째 만났을 때요? 그때도 거의 똑같았어요. 옷은 얼마나 예쁘게 입고 오셨는지, 행동은 또 얼마나 자신감 넘치시는지.. 사과를 위해 만난 자리란 걸 의식도 못 할 정도로요.

 

  그런데, 제 사진에 팬더 그림 낙서를 한 고아 씨, 술에 취해서 절 부르던 고아 씨는.. 글쎄요. 욕도 잘하고, 은근히 실수도 잦고, 알고 보면 장난기 넘치고, 누구보다 아픈 과거와 콤플렉스도 있었네요. 결국, 제가 찾아낸 '고아 씨'는 완벽하지 않아요. 여느 사람처럼 기쁨 슬픔 행복 좌절 이기심 죄책감.. 그런 다양한 모습을 가진데다, 사실은 외로운 사람이란 걸 이젠 알아요. 그리고 아마도, 저 같은 사람이 둘이나 있진 않겠죠.

 

  저는 작가님에게서 고아 씨를 발견해냈고, 고아 씨는 저를 한 명의 팬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네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서로가 서로를 바꿔놓았죠. 전 그 점이 너무 기뻐서 말로 표현도 못 하겠어요."

 

  자신이 느낀 것을 사랑하는 사람도 느꼈을까. 아주 운이 좋았다면 가능하겠지. 그건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그런 제가, 지금 고아 씨에게 가지게 된 건 존경심이나 부러움 따위가 아니라 순전히.. 애정뿐이에요."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느껴지는 감각은 유난히도 예민하다. 예상하던 사과의 말을 듣진 않았지만, 눈물은 떨어진다. 하지만 그 의미가 다르다. 어쩔 수 없이 베인 얕은 상처를 치유하는, 가슴 속 가장 깊은 안심이다. 주체할 수도 없이 얼굴이 젖는다. 다만 입꼬리만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그래서, 아까의 급한 고백은 취소하고. 이번엔 제대로 고백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고아 씨?"

 

  물방울이 사방으로 튈 정도의 격한 끄덕임이 느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슬며시 눈을 뜬다. 언제 눈을 떴는지, 이미 자신을 보고 있는 고아 씨가 보인다. 울음 탓에 화장이 잔뜩 번진 저 귀여운 얼굴. 그 앞에서 웃음을 참는 건 무리였다. 터진 웃음에 고아 씨는 짐짓 새침한 표정으로 맞이하려 해본다. 훌쩍임이 멈추지 않는 탓에 잘 되진 않았다.

 

  간단히 몸을 풀었다. 느릿했던 설렘을 예열하는 중이다. 너무 급하게 뛰어 부지불식간에 터져버리지 않도록, 조금씩 속도를 올린다. 말을 정제하느라 오랜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 말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남은 건 그저 전하는 일뿐이다. 정식으로 서로의 관계를 바꿀 단 한마디.

 

  자세를 고쳐잡고는 헛기침한다. 이젠 정말로. 해야 할 때다.

 

  "좋.."

 

  눈이 마주쳤다. 고아 씨가. 저 아름다운 고아 씨가. 울면서도 동시에 웃고 있었다. 저 예쁜 송곳니를 고민도 없이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연인의 심장을 쿵 떨어지게 만들, 가장 깊은 진심을 보여주고 있다. 저 얼굴에 그저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사랑해요. 고아 씨."

 

  승아가 차마 반응할 새도 없이, 고아 씨는 승아에게 뛰어들었다. 밟힌 테이블에서 커피잔이 떨어지건 말건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승아를 반쯤 쓰러뜨리고는 그 위에 올라탔다. 기쁨에 마비된 고아 씨는 몇 번이나 크게 웃으며 그녀의 연인에게 안긴다. 승아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그의 연인과 같은 웃음을 짓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얼굴에 따뜻한 숨결이 닿는다.

 

  마침내 행복해진 두 남녀는, 망설임 없이 입술을 겹쳤다.

 

  눈보라가 그치고 쌓인 눈에 햇빛이 들 때까지,

 

  그렇게 한참이나, 떨어지지 않았다.

 

 

 

  Fin.

 
작가의 말
 

 다음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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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객 19-01-01 04:09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군요. 사람의 명함이 아닌 본연의 모습을... 팬더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너무 순둥이라 애태웠는데....
새해 첫날 좋은 선물 감사드립니다. 복많이 주셨으니 작가님도 많이 받으세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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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19-01-01 22:59
 
늘 감사했습니다. 어디선가 또 뵙기를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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