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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라뷔린투스
작가 : Elcaminosolo
작품등록일 : 2018.12.31

‘스텔’ 이라는 힘을 가진 ‘스텔라’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스텔은 대기 중의 에너지이며 무형이기 때문에 매개체를 써야 실체화된다. 이 힘을 다루는 자를 ‘스텔라’ 라고 부른다.

에펜슐렌 대륙 중부에 위치하는 국가 브리티아에서는 에드워드 왕태자가 그의 아버지인 클레이안 왕을 시해한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그에 따라 빈 왕좌와 주인을 잃은 왕관은 자연스럽게 왕의 둘째 아들이자 왕태자의 이복동생 에렌 왕자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 일뿐, 에렌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모후가 되는 헤스데아가 섭정후로 등극하였고, 브리티아는 그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에렌은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늘 그의 어머니 헤스데아 섭정후였다. 거짓 왕의 자리에 앉아 어머니와 그에 관련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끼던 나날 중, 우연히 카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카드는 이복형이자 실각한 에드워드 왕태자에게 자신이 그려줬던 카드였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왕태자와 자신뿐이었다. 평소 시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에렌은 이 카드의 끝에 닿으면 왕태자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뒤를 쫓는다.

카드의 행방을 쫓으면 쫓을수록 에렌은 목적이 같은 자들과 방해하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목적이 같은 자들은 리안, 에녹, 로렌이다.
리안은 살인사건의 피해자 중에 과거 자신의 부하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애나의 자취를 쫓던 중 비밀 클럽에서 에렌과 만나게 되고, 그 후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게 된다.
에녹은 에렌과 악연으로 처음 만났으나 같이 비밀 클럽의 폭발을 피하려다 헤르뮌 대공(자연을 다스릴 정도로 대단했던 브리티아 역사 속에 기록된 스텔라)이 만든 지하에 휩쓸려 그 곳을 빠져나오면서 친해지게 된다. 에렌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에렌의 적들과의 거래로 검투대회에 나가는 등 갖은 고생을 겪지만 위험한 순간마다 에렌이 구해준다.
로렌은 자신을 저주받은 자라고 말할 뿐, 그 카드와 카드판을 없애려고 에렌과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방해하는 자들은 제이드, 검은 남자이다.
제이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조종하여 에렌을 곤경에 빠뜨리지만 막판에는 그의 정체와 함께 용족과 하늘사람이라고 불렀던 종족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검은 남자는 사건 사고가 있는 곳마다(처음엔 비밀 클럽의 폭발 사고에서) 에렌과 마주치는데 후에 제이드와 같이 정체가 드러나며 국왕 시해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카드와 카드판으로 용족과 하늘사람들의 힘을 갖기 위해 네르센과 일로이드가 끼어들고, 나중에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8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1)
작성일 : 18-12-31 23:39     조회 : 236     추천 : 0     분량 : 8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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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티아 수도의 상업지구로 유명한 앤트넬리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눈길이 가는 행인 둘이 있었다.

 겉으로 봤을 땐 셔츠와 바지로 여기 지나다니는 평범한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눈에 띄는 점을 찾아보라고 하면 여행자임을 짐작케 하는 후드가 달린 로브를 걸친 것과 땅이 고르지 않은 곳을 이동할 때 신는 부츠 정도였다.

 

 슬쩍 지나가면서 보거나 스쳐 지나가면서 굳이 특이하다고 할 만한 것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다 큰 남성과 10대 중‧후반의 소년과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은 꽤 키가 커서 소년과 키 차이가 많이 났다. 소년이 유난히 작다기보다는 그 나이 또래의 평균인데 남자가 평균 보다 훨씬 커서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이도 특이할 만 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나이 차가 큰 형제 둘이 걷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과 말을 살펴보면, 즉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하였다.

 

 “허. 이렇게 넓고 화려한 거리라니. 역시 수도는 수도인가 보다.”

 남자는 손에 들고 있는 깃털 부채를 까딱까딱 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소년이 말했다.

 “태평하게 수도 구경 하러 온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에녹. 그렇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당황스럽구나.”

 

 ‘에녹’이라고 불린 소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예, 라키아님. 덕분에 구경도 못 해보고 이렇게 거리를 방황하게 되었네요.”

 

 남자, 라키아는 찔리는 것이 있는 것인지 에녹의 말에 뜨끔하여 대답도 않고 애꿎은 깃털 부채의 깃을 고르는 척 하였다. 에녹은 그런 라키아가 익숙한지 앞만 보고 걸었다. 그렇게 몇 걸음 걷다가 라키아는 무언가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는지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에녹에게 말을 다시 붙였다.

 

 “그분과 오랜만에 만나서 좋겠구나.”

 

 에녹은 앞만 보고 걸어가며 특별한 표정 없이 말했다.

 “예.”

 

 라키아는 제 가족과 같은 이를 오랜만에 만나는 것에 좋아하는 그 나이 대 남자 아이의 표정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말했으나 예상과 달리 영 덤덤한 에녹의 표정에 약간은 실망했다.

 

 더불어 에녹이 원래 감정이 다양한 편이 아닌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은 죄가 있는지라 분위기를 바꿔볼까 하는 시도를 했던 것이었다. 영 시원치 않자 라키아는 입술을 비죽이며 진심이 튀어나왔다.

 “애교도 없는 무심한 놈. 네가 내 동생이었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에녹은 라키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이 바로 튀어나왔다. 마치 상대방에게 공을 받아 하며 던졌는데 그 받는 상대방이 날아오는 공의 궤적과 시간과 속도를 귀신같이 계산하여 바로 받아치는 경우랄까.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라키아 님. 이렇게 계획성 없고 일은 맨날 벌려 놓기 일쑤이고. 급한 불은 또 끈다고 하면서 더 크게 키워놓고 그제야 이를 어쩌지 하면서 옆에 사람에게 던져주는 형이라니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라키아는 에녹이 쏟아내는 잔인한 말(그의 입장에서. 에녹의 입장에서는 진실 된 말일 뿐이겠지만)이 충격적이어서 입만 뻐끔뻐끔 하며 어버버 하였다. 하지만 제일 슬픈 것은 그 중에 어느 것 하나 틀린 것이 없어 저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에녹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성격이면 뭘 해도 망하셨을 텐데 라키아 님의 주위 사람들이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어긋나는 걸 싫어하는 완벽주의자에 책임감이 강한 분들 뿐이라 그 꼴이 보기 불편해서 해결해줘서 여기까지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

 라키아는 그저 하늘을 쳐다보며 깃털 부채를 까딱까딱 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가끔 운 좋게 돈 냄새를 잘 맡는 촉? 뭐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운이 지나치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라키아는 한 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고맙구나. 나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냉정하게 해주다니.”

 

 “아닙니다. 저 말고 라키아 님의 주위 분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단지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이죠.”

 

 “…”

 라키아는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 올렸다.

 우선, 집을 떠나기 전에 집사는 자신에게는 ‘에녹만 보고 가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하고, 에녹에게는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붙잡고 앉혀 여러 가지 당부하는 것 같았다.

 

 그의 귀에 들리는 몇 가지 얘기들로는 ‘절대 라키아님에게 돈을 쥐어주면 안 된다.’, ‘라키아님은 입으로 제 몸 하나는 살 수 있을 터이니 너야말로 조심해라.’, ‘너도 알다시피 가끔 예측 못하는 행동들을 하시는데 그냥 무시하는 것이 너의 정신 건강에 좋을 거다. 귀찮으셔서 그거 가지고 뭐라 하는 분은 아니니.’

 당시에 라키아는 뭐라 말 하고 싶었지만 집사가 엄숙한 분위기 아래 너무 진지하게 에녹에게 당부를 하고 있어 그저 안 들리는 척 딴 짓 하는 것이 전부였다.

 

 예전에 그가 동대륙에서 가져온 도자기를 실수로 깨고 난 후에 저 혼자 치워보겠다고 부산 떨며 움직였지만 깨진 파편들이 더욱 더 넓게 퍼질 뿐이었다. 그 때 마침 들어온 여자 관리인을 총괄하는 리체 부인이 보고 한숨 쉬며 단 한마디를 했다. ‘제발 가만히 계세요.’

 

 장부와 재산을 관리하는 로이드는 라키아가 쓴 비용을 살펴보다 안경을 고쳐 쓰며 라키아에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라키아님, 제가 아그리젠에 있었다면 이런 말 안 드렸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씀드려야 될 거 같습니다. 제발 생각만 하세요. 라키아 님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것은 이 세상에 없으니 제발 생각만 하세요. 아니면 아그리젠에 돌아가서 찾아올 생각을 하세요.’

 

 그밖에도 주위의 사람들이 그에게 자주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늘 그 내용은 ‘가만히 계시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 같았다. 에녹의 말에 짧게 생각을 마친 라키아는 이상하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 때 에녹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분은 어디서 뵙기로 하셨습니까?”

 에녹은 자신들이 수도로 온 목적을 라키아가 잊고 있을까봐 상기시켜 줄 겸 물었다.

 

 “그게…”

 라키아는 에녹의 물음에 말을 줄이며 먼 곳을 쳐다보았다. 에녹의 귀에는 원했던 답 대신(수도의 구체적인 어느 장소) 팔랑팔랑 깃털 부채가 바람에 살짝 펄럭이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에녹은 놀랍 지도 않다는 듯 답했다.

 “또 잊으셨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알다시피 그 분이 조금 바람과 같은 분이 아니냐. 영 보내는 전령도 순간의 시간을 살 뿐이고, 느낌도 섬뜩하고 안하무인하길 짝이 없어. 마지막에 보낸 전령은…?”

 

 라키아는 아까와 같이 한심한 사람이 될 수 없어 최소한의 사람 구실은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머리에 떠오르는 데로 핑계를 댔다. 실제 그 분이 보내는 전령들은 평범한 인간인 그가 보기에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뱀, 말하는 달팽이, 말을 못할 뿐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민들레 씨앗들, 멀쩡히 불이 꺼진 난롯가 근처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저 혼자 솟아오르는 불, 연못가를 산책하다 저 혼자 튀어 오르는 물줄기, 노을이 지면서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그림자 새 등으로 놀라 기절할 뻔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지막 말에 기억이 나지 않아(처음엔 기절까지 했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진 그는 전령에 별 관심이 없었고 귀찮아하니 잊어버렸을 것이다) 머뭇거렸다. 그러자 에녹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 분이 바람과 같은 분이신 건 맞는 말씀이죠. 그러니 전령을 보내는 것이겠지요. 마지막에 보내신 전령은 올빼미였습니다. 하얗고 노란 눈이 형형한 맹금류 같은 올빼미였지요. 라키아님께서 그 올빼미를 보시고 어떻게 이렇게 하얀 깃털을 가졌냐며 여기저기 만지시다가 끼고 계신 반지에 깃이 걸려 뽑지 않으셨습니까. 그러고 나서 성난 전령에게 쫓김을 당하셨으니 마지막 전언이 기억나지 않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라키아는 에녹의 말에 이마를 확 찌푸렸다. 그 때 그 올빼미의 하얀 깃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신기하여 이리 저리 만져보다가 반지의 이음새부분에 깃이 끼었다. 가문의 인장 반지 였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반지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면서 올빼미의 깃이 뽑혔고 그 뒤로 그가 기억하는 것은 올빼미의 노란 눈의 섬광과 부리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추신으로 이번에 보내는 전령은 본인도 다루기 어려우니 조심스럽게 다뤄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보낼 땐 맛있는 것을 먹여주는 것도 잊지 말라는 것을.”

 

 “왜 그런 이상한 것을 보내셔서…”

 

 “라키아님은 머리색이 너무 예쁘다며 머리카락을 뽑으면 기분이 좋으십니까?”

 

 “…”

 

 라키아는 입을 비죽였지만 에녹은 그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제 딴에는 기분이 상한 라키아가 혀를 내밀려고 할 때, 에녹이 라키아를 쳐다보았다.

 “일단 물의 아레츠에서 칼날 같은 달이 레테나퀴스 신전의 탑 위에 있을 때 만나자고 하셨으니 그리 알고 계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라키아는 갑자기 에녹이 쳐다보는 바람에 놀라 내밀어야 했던 혀를 깨물었다.

 고통이 느껴지면서 악악거리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에녹은 라키아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아 그의 행동을 그저 쳐다보았다. 정말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건지(예를 들면, 현재 재정 상태에서 무리한 것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것) 아니면 저를 놀리려고 저러는 것인지 긴가민가하여 에녹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고통이 잦아들면서 라키아는 저를 소‧닭 보듯 하는 눈으로 빤히 지켜만 보고 있는 에녹에게 화가 치밀었지만, 자신이 놀리려고 하다가 혀를 깨 물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더 창피하여 얼른 다른 주제로 돌렸다.

 

 “그럼 아직 시간이 있구먼. 그럼 오랜만에 수도에 왔으니 관광이나 좀 하고 가지. 관광을 소개 시켜주는 이가 있음 참 좋겠는데…”

 에녹은 라키아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라키아는 에녹이 아까의 행동에 대해 무언가 물어볼까 싶어 얼른 입을 비죽이 내밀며 말했다.(정확히는 변명하였다)

 “아니 그래도 언제 다시 수도로 올지 모르는데 남들이 다 보고 죽는 건 다 보고 죽어봐야 할 거 아니냐.”

 

 에녹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예예, 남들이 하는 건 다 하셔야 나중에 편히 눈 감으시겠지요.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분명히 라키아님께서 나중에 눈 감으실 때 제가 옆에 있음이 분명할 지인데, 그 때 마지막에 그거 못 해보고 눈을 감게 되어 너무 억울하구나 하는 소리 듣기 싫습니다.”

 

 그 때 저 멀리서 물건이 우지끈 부서져 뒤엉키는 소리와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이 둘이 걷는 길에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연스럽게 둘은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것 같았다. 그 누군가는 보이지는 않지만 가게 앞에 둔 물건들이 엎어지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린 소년이었다. 얼굴과 손 같이 보이는 부분은 까무잡잡한 피부 위에 거뭇거뭇한 얼룩이 있었다. 옷은 상당히 삭아보였고, 그가 달릴 때마다 옷에 매달린 실밥이나 실들이 나풀나풀 거렸다.

 

 그는 사람들과 물건들을 제치고 뛰어넘으며 그들을 향해 오고 있었다. 에녹은 그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품 안에 있는 보석함처럼 생긴 상자가 이 상황을 만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뒤로는 그 상자의 주인인 듯한 남자가 뭐라 소리쳤다. 입 모양을 추측하건데, ‘저 놈 잡아라.’ 뭐 이런 말일 것 같았다.

 

 상황 파악이 끝난 그들은 고개를 다시 돌려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소리치고 물건들이 쏟아지는 등 온갖 잡음이 더욱 더 가까워지자 라키아가 입을 열었다.

 

 “에녹, 네가 보기에도 제일 앞에 보이는 놈이 도둑놈 같지 않느냐?”

 

 “그러하겠지요.”

 

 “도둑은 이 곳 지리나 길이나 뭐 잘 알겠지?”

 

 “그러니 저렇게 잘 도망 다니겠지요.”

 

 “근데 도둑은 영 신뢰하기가 어려워서…”

 라키아는 깃털 부채를 코에 갖다 대어 살랑살랑 거리며 말했다.

 에녹은 라키아의 발걸음에 맞춰 걸으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처럼 ‘현재가 중요해! 인생에서 현재 순간을 즐겨야 해!’하게 된 이유가 어떻게 보면 바로 그 도둑놈들의 작품일 테니 말이다.

 

 “대신에 어려운 상황에서 손을 내밀어 준 이는 보통 인간이라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지…?”

 

 에녹은 곧 왕의 탄신일에 맞춰 있을 축제와 검투 대회 등의 일정으로 숙소를 구하기 어려울 텐데 이렇게 쓸 데 없는 소리를 하는 라키아가 이해가 가지 않아 눈썹을 움찔했다.

 

 지금 당장 발품을 팔아도 숙소 하나를 구할 수 있을까 의문도 들지만 얼마나 돈을 더 얹어주어야 할까(최대한 경비를 아끼고 싶은) 웬만하면 쾌적하고 위치는 어디로 이동 하던지 편리한데 조용한 곳은 없을까 생각해 보지만 너무 많은 바람인 것을 에녹도 알고 있다.

 

 이렇게 신경 쓸 일이 많은데 태평하게 수도 구경이라던가. 사람이라면 응당 이래야 하지 않겠나 라는 말을 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 맞는 주제는 아닌지라 에녹은 살짝 짜증이 나서(자신만 고생하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약간 말이 뾰족하게 나갔다.

 

 “그렇겠지요. 보통의 인지상정이 있는 자라면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이는 잊지 않겠지요. 정말 눈물도 피도 없는 악한이 아닌 이상 그러겠지요.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으십니까?”

 

 라키아는 에녹의 날이 선 목소리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 그럼 우리가 수도에서 좀 더 편안하고 쾌적한데다가 경비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으니 에녹 너는 내 말만 따르면 되는 것이다.”

 

 에녹은 라키아의 말에 별 기대도 안 한다는 듯이 무성의하게 답했다.

 “예예, 또 엄청 획기적이기는 하나 현실 불가능한 방법을 떠올리셨겠지요. 예전에 아그리젠에 있을 때 회의에서 ‘합의가 안 되니까 그냥 공평하게 땅을 나눠. 자네도 자네가 갖고 있는 거 내 놓기 싫고 내 옆에 있는 자네도 싫어하는 것 같고, 근데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자네를 위해 뭔가 하기 싫어하는 것 같으니 찢어져야지 뭐 어쩌겠나.’ 그러셨던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셨겠지요.”

 

 “솔직히 그 땐 그게 제일 현실적인 대안이지 않나? 같이 그 땅에서 못 살겠다는 데 찢어져야지 뭐 별 수 있겠나, 에녹.”

 

 “예예. 합리적인 방법이지만 제일 비현실적인 방법이지요. 나눠서 뜯어짐으로써 그들이 현재 얻고 있는 것도 놓아야 하는데 참 그런 선택을 하시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과적으로 방랑하게 되셨지 않습니까.”

 

 “쯧쯧. 다들 욕심은 많고 멍청해서 그러한 것을.”

 

 “예예. 그렇지요. 하지만 저희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처지이니 어쩌겠습니까. 여하튼 또 말도 안 되는 말씀 하실 생각이시면 그냥 제가 구할 수 있길 신이나 그 분께 기도드리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에녹의 말에 라키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이내 멈춰섰다. 에녹은 라키아가 자신의 말에 혹여 상처받아 그런가 싶어(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는 워낙 무신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걸음을 따라 멈춰 라키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때 라키아의 입술이 열렸다.

 

 “에녹, 큰일을 성사시키려면 늘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

 에녹은 라키아가 아까부터 사람의 심성이 어떻고 진리는 어떻고 하는 것으로 보아 또 실없는 소리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계속 받아주지 않고 자신이 계속 넘기는데도 얘기 하는데도 불구하고 얘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에녹은 라키아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라키아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에녹, 네가 좀 더 무게가 나갔으면 좋겠다만 그건 신이 정한 것이니 내가 바꿀 수는 없고… 내가 최선을 다해보마. 자, 간다!”

 

 “!”

 

 에녹은 그의 마지막 말과 함께 순식간에 자신이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놀라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 순간 뒤에 떨어져 충격 받을 것이 걱정되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자신은 땅바닥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소년은 자신에게 사람이 날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서로 찰나의 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에녹이 기억하는 것은 꺼림칙한(정확히는 부딪힘에서 오는 그 통증이겠지만) 접촉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와 충돌하였지만 소년이 넘어지면서 자신의 충격까지 어느 정도 흡수했기 때문에 에녹은 그보다 먼저 일어날 수 있었다. 아직도 약간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 나사 하나는 빠진 느낌이라 에녹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현실 감각을 찾으려 했다.

 

 에녹은 누구 덕분에 이렇게 사고를 당했는데 자신은 상관치 않고 소년에게 가는 것 같은 라키아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곁에 있는 아이가 장난이 좀 심하여 댁께 피해를 끼쳤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뭐 이런 기름칠 잔뜩 바른 듯 매끈한 말들을 내뱉겠지. 그리고 ‘얘, 에녹. 어서 사과드리렴.’ 부산 떨며 내가 고개도 못 들도록 허리를 굽히게 하겠지.

 

 에녹은 띵한 머리를 가로저으며 이 아저씨, 오늘 식사도 못 먹고 노숙하게 해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자연인 상태로 지내봐야 자신의 노고를 알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속으로 온갖 욕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에 에녹은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제일 먼저 보였던 것은 반질반질한 검은 구두와 프릴 모양의 장식이 가득한 셔츠로는 감출 수 없는 배였다. 그 휘황찬란한 것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 반짝이는 보석들이 촘촘히 별처럼 박혀있는 재킷 뒷자락에서 자신의 시선은 멈췄다. 그 때 라키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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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도망자) 2018 / 12 / 31 210 0 6214   
2 등장인물 2018 / 12 / 31 241 0 1239   
1 배경과 에펜슐렌 대륙의 주요국가 2018 / 12 / 31 362 0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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