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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라뷔린투스
작가 : Elcaminosolo
작품등록일 : 2018.12.31

‘스텔’ 이라는 힘을 가진 ‘스텔라’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스텔은 대기 중의 에너지이며 무형이기 때문에 매개체를 써야 실체화된다. 이 힘을 다루는 자를 ‘스텔라’ 라고 부른다.

에펜슐렌 대륙 중부에 위치하는 국가 브리티아에서는 에드워드 왕태자가 그의 아버지인 클레이안 왕을 시해한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그에 따라 빈 왕좌와 주인을 잃은 왕관은 자연스럽게 왕의 둘째 아들이자 왕태자의 이복동생 에렌 왕자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 일뿐, 에렌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모후가 되는 헤스데아가 섭정후로 등극하였고, 브리티아는 그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에렌은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늘 그의 어머니 헤스데아 섭정후였다. 거짓 왕의 자리에 앉아 어머니와 그에 관련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끼던 나날 중, 우연히 카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카드는 이복형이자 실각한 에드워드 왕태자에게 자신이 그려줬던 카드였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왕태자와 자신뿐이었다. 평소 시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에렌은 이 카드의 끝에 닿으면 왕태자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뒤를 쫓는다.

카드의 행방을 쫓으면 쫓을수록 에렌은 목적이 같은 자들과 방해하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목적이 같은 자들은 리안, 에녹, 로렌이다.
리안은 살인사건의 피해자 중에 과거 자신의 부하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애나의 자취를 쫓던 중 비밀 클럽에서 에렌과 만나게 되고, 그 후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게 된다.
에녹은 에렌과 악연으로 처음 만났으나 같이 비밀 클럽의 폭발을 피하려다 헤르뮌 대공(자연을 다스릴 정도로 대단했던 브리티아 역사 속에 기록된 스텔라)이 만든 지하에 휩쓸려 그 곳을 빠져나오면서 친해지게 된다. 에렌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에렌의 적들과의 거래로 검투대회에 나가는 등 갖은 고생을 겪지만 위험한 순간마다 에렌이 구해준다.
로렌은 자신을 저주받은 자라고 말할 뿐, 그 카드와 카드판을 없애려고 에렌과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방해하는 자들은 제이드, 검은 남자이다.
제이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조종하여 에렌을 곤경에 빠뜨리지만 막판에는 그의 정체와 함께 용족과 하늘사람이라고 불렀던 종족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검은 남자는 사건 사고가 있는 곳마다(처음엔 비밀 클럽의 폭발 사고에서) 에렌과 마주치는데 후에 제이드와 같이 정체가 드러나며 국왕 시해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카드와 카드판으로 용족과 하늘사람들의 힘을 갖기 위해 네르센과 일로이드가 끼어들고, 나중에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7 (추적자)
작성일 : 18-12-31 23:38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1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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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잠갔는지 모르겠지만 재빠르게 문 열어요. 이런다고 나 그냥 안 넘어가요.”

 

 집주인은 ‘왜 저럴까…’ 라고 한숨 쉬며 문에 대고 말했다.

 “내가 잠갔다. 엄한 생사람 잡고 늘어지지 말고. 난동 좀 그만 부려. 이 층에 사는 사람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이 시간에 이 층에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상관없어요. 그리고 찝찝할 바엔 확실히 할 거라고요! 빨리 이 문 열어요!”

 

 세입자는 손으로 두들기다 못해 이제는 발로도 문을 뻥뻥 차기 시작했다. 에렌은 그 모습에 정말 순수한 궁금함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도대체 저 분 누구신가요?”

 

 “아, 아는 지인이 부탁해서 살고 있는데…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오늘 뭐 먹을 걸 잘못 먹었는지 난리도 아니네요. 미친 짓을 해도 저한테만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세입자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문을 두들기고 발로 찼다.

 “문 열어! 난 열 때까지 이럴 거야!”

 

 집주인도 계속 되는 소음에 짜증이 났는지 같이 문을 쿵쿵 거리며 두들겼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누가 더 크게 소리를 내는지 하는 것 같았다. 세입자가 손으로 두드리면 집주인이 발로 차고, 세입자가 발로 차면 집주인은 몸으로 받아쳤다. 그 사이에 있는 에렌은 조사고 뭐고 다 포기하고 그냥 왕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세입자는 더 이상 이런 소모전을 참을 수가 없는지 소리쳤다.

 “자꾸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뭐, 그럼 할 수 없지. 이 문을 부수는 수밖에.”

 

 그렇게 말한 뒤에 세입자가 온 몸으로 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뭐라 궁시렁 거린 뒤 잠시 후 어디론가 가는 발걸음 소리가 났고, 희미해졌다. 에렌은 집주인과 자신이 포식자로 인해 이 안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세입자가 이즈음에서 포기할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증발해버리자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머지않아 이 방으로 되돌아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발소리가 멈추더니 곧 그 공백을 꽝 소리가 메웠다. 아까처럼 손과 발로 두들기는 정도의 소음이 아니었다. 무겁고 단단한 도구가 아니고서야 저런 소리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집주인은 저 소리와 함께 정신이 번쩍 난 것 같았다.

 “저...저게 미쳤나.”

 

 곧 또 꽝 소리가 났다. 에렌은 여태껏 문이 부서지지 않은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문득 애나라는 사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런 이웃과 살 수 있는가. 그에 대한 성격은 밝아도 너무 밝아 저런 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살인사건으로 죽은 게 아니라 이웃과의 마찰로 죽은 게 아닐까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아, 진짜 안 열거예요?”

 

 집주인의 얼굴엔 화가 가득했지만 손님 앞이라 체면 상 누르는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 세입자의 다시 말했다.

 

 “그래요, 갈 데까지 가보죠.”

 

 집주인은 그 순간 아주 빠른 속도로(에렌은 그의 민첩함에 놀랐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세입자가 망치 같은 도구를 치켜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입자는 자신의 뜻대로 돼서 만족스러운 지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 에렌은 머리털 나고 나서 처음 정녕 미친 사람을 보았다고 오늘 자 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즉에 열어주시지 그랬어요. 조용히 끝낼 수 있는 문제를 왜 키우셔가지고.”

 

 세입자는 망치를 놓으면서 ‘뭐 이런 흉물스러운걸 다 가져다 놓았나.’ 하는 눈빛으로 보았다. 집주인은 세입자를 포기한 듯 했다.

 

 “빨리 종이랑 펜 줘봐. 내가 써 줄 테니까.”

 

 “왜 로우웬이 써요?”

 

 “내가 증명할 테니까 받고 꺼져. 그리고 이 문짝 손해배상 청구할 테니까 기다리고 있기나 해.”

 

 “로우웬이 써서 뭐해요? 누군지 알아요?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써요? 저 분이 직접 써야지.”

 

 “어, 나 이 분 알아. 그러니까 빨리 받고 내 눈앞에서 좀 꺼져.”

 

 “로우웬, 자꾸 이럴 거예요? 하아, 이제 저도 지쳐요. 그냥 걱정 돼서 종이 한 장을 받으려고 하는 것뿐이라고요.”

 

 “나도 지친다. 이 분은 지치다 못해 여태껏 눈 뜨고 옆에 서 계시는 게 나는 신기할 정도다. 세상에… 가족을 찾으러 왔는데 웬 미친 사람한테 걸려가지고 오도가도 못 하고 계시고, 미칠 거면 지 혼자 미칠 것이지. 망치 들고 쫓아오면서 미친 사람이라니. 이 어리신 분이 얼마나 무서웠겠니! 막말로 이 분이 지금 가족이 이웃과의 싸움에서 죽은 게 아닐까 라고 생각 안 하시는 게 다행일 정도라고!”

 

 에렌은 그 말에 살짝 뜨끔했다.

 

 “얘 봐요! 옆에 멀쩡히 서 있네. 아, 몰라 몰라. 나도 이제 지치니까 빨리 빨리 끝내자고요.”

 

 이제 세입자는 에렌을 ‘얘’라고 하며 손가락질까지 했다. 에렌은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세요, 제가 할게요.”

 

 에렌이 의지를 표현하자 두 사람의 반응이 엇갈렸다. 세입자는 드디어 끝낼 수 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보이는 듯 했고, 집주인은 분노와 미안함이 보였다. 아마 일이 이렇게 될 동안에 막지 못한 자신과 세입자에 대한 분노와 이 상황을 어린 에렌이 책임지는 것에 대한 미안함인 것 같았다.

 

 세입자는 에렌에게 종이와 펜과 받침대를 내밀었다. 에렌은 그것을 받아 받침대 위에 종이를 놓고 펜을 들었다.

 

 “뭐라고 적을까요?”

 

 “음…”

 

 세입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애나의 친척… 아까 뭐, 뭐라고 하셨죠? 뭐 엄마의 이모님의 몇 번째?”

 

 “외가 쪽 작은 할머님의 셋째 여동생의 사촌동생의 여섯째 따님의 넷째 고모님의 둘째 동생의 따님의 다섯 째입니다.”

 

 세입자는 에렌의 대답에 잔뜩 인상을 썼다.

 “아아, 예에… 그렇게 적으신 다음에 저의 신분은 리안 뤼베츠 이베니엘 경이 보증하는 것을 약속합니다. 라고 써 주시고 마지막에 사인해주세요.”

 

 에렌은 세입자가 말한 대로 받아 적었다. 세입자는 그가 글을 쓰고 있는 걸 빤히 쳐다보았다.

 “글씨체가 꽤나 우아하시네요.”

 

 “…”

 

 “겉모습만 봐도 수도사람 같고, 글씨도 각지고 얇게 쓰는 게 여기서 유행하는 글씨체 같은데요?”

 

 에렌은 이제 하다하다 글씨체로 꼬투리를 잡나 싶었다.

 “글씨체에 지방색이 있겠습니까. 표준에 맞게 쓰면 됐지요.”

 

 세입자는 에렌의 말에 딱히 할 말이 없는지 입술을 비죽였다.

 “댁이 말 한 거랑 행동이 영 안 맞는 소리를 하고 계시니 제가 자꾸 딴 지를 걸 수밖에 없네요.”

 

 “…”

 에렌은 빨리 저 세입자를 치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싸인을 하고 마침표까지 찍고 그에게 종이를 넘기려다가 혹시 모르니 이 말을 덧붙이기로 했다.

 

 “저도 애나처럼 개인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말씀드리진 않았지만, 수도에 있었습니다. 그 사건에 애나가 얽혀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공문이 본집으로 갔다가 그 소식이 저한테 들리는 데 늦으니깐 요.”

 

 그러나 세입자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종이를 보았다.

 “이름의 첫 번째 글자가 ‘에’ 이고 성이 ‘셰르네’ 네요?”

 

 에렌은 세입자가 또 무얼 잡고 늘어질까 약간 의심스런 눈으로 쳐다보며 느릿하게 대답했다.

 “예…에…”

 

 세입자는 종이에서 얼굴을 떼고 에렌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에렌은 무엇이 아무것도 아닌지 잘 몰랐지만 더 말이 길어지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기로 했다. 세입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 이뤘는지 웃으며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애나와 그 가족들에게 신의 축복과 은혜가 언제나 함께하길 기도할게요.”

 

 세입자는 화려했던 등장과 달리 퇴장은 상당히 조용했다. 집주인은 이제야 한시름 덜었는지 깊은 숨을 들였다 내쉬었고, 에렌도 경직됐던 어깨가 풀어졌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나이도 어리신 거 같은데 이해심도 넓고 대견하신 거 같네요.”

 

 “아, 예… 감사합니다.”

 에렌은 저 세입자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인데 괜한 칭찬에 머쓱해졌다.

 

 “애나가 살았을 때 어떻게 지냈는지 살펴보시고, 짐정리 하시고 나가실 때 열쇠를 제게 주고 가시면 될 거 같아요. 저는 1층에 앉아있을게요.”

 

 에렌은 이 건물에 들어올 때 1층에 작은 휴게실처럼 되어있는 공간을 기억했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 정말 고생하셨어요.”

 집주인은 에렌의 팔을 토닥토닥 거린 후 방을 나갔다. 에렌은 그가 나가자마자 닫힌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창을 3번 두들기고 창문에서 조금 멀찍이 떨어졌다. 그러자 뭔가 휙 하면서 열린 창문으로 뭔가가 들어왔다. 켈렌이었다.

 

 에렌은 켈렌을 보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그를 만날 수 있는 안도의 한숨인지 아니면 만나기까지 너무 힘을 다 빼서 지쳐서 내는 한숨인지는 에렌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좀 늦었어. 어떤 미친 사람 때문에…”

 

 에렌은 세입자 생각에 얼굴을 잔뜩 구겼다. 생각만 해도 그 집요함에 고개가 절레절레 절로 저어졌다.

 “손을 창문에 찌지도 않았는데 마치 사고가 난 것처럼 어찌나 난리를 치고, 내가 신분을 증명할 수 없으니 먼 친척 맞냐고 물고 늘어지는데 방에 들어와서 도대체 나가야 말이지.”

 

 “…”

 켈렌은 에렌이 ‘창문’ 얘기를 할 때 한 가지 찝찝한 게 있었다. 밖의 벽을 타고 올라오다가 위에서 누군가 밖에 먼지를 털어내는 바람에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다. 재채기를 한다면, 문을 열고 먼지를 터는 사람한테 들킬 것 같아 최대한 참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날리는 먼지의 양은 자꾸 늘어나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마침 그 누군가가 창에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켈렌은 그 때 빠르게 올라가 열려있는 창문을 닫아버렸다. 에렌이 말하는 창문에 손을 찔 뻔 했던 사람은 왠지 자신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보기엔 그 사람의 분노와 의심은 충분히 있을 법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다치거나 죽을 뻔 했다면 당연히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애나라는 사람이 범죄로 죽은 것 자체가 평범하지 않은데, 그와 연관된 사람이면 더욱 더 까다로운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확인서 까지 썼다니까. 어이가 없어서. 왕이, 아, 물론 이름뿐인 왕이지만.”

 에렌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 브리티아에서 누구보다도 제일 신분 확실한 내가 증명이 안 돼서 확인서까지 쓰다니. 기가 막히는군.”

 

 “차라리 궁에서 나온 사람이나 보안부 사람이라고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아아, 차라리 그럴걸 그랬어. 집주인한테는 보안부의 소식을 듣고 왔다고 했더니 별 의심 없이 넘어갔는데, 어휴… 아니야, 아니야. 어차피 그 사람 만날 예정이었으면 당장 신분증부터 보여 달라고 닦달했을 거야. 이즈음에서 끝난 걸 다행히 여겨야지.”

 에렌은 옷장을 뒤지면서 말했다. 거의 옷장 안으로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여서 켈렌에게는 약간 윙윙거리는 목소리로 들렸다.

 

 “에취, 이놈의 먼지. 옷도 딱 필요한 것만 있는 것 같은데? 궁인 급여가 그렇게 적지는 않을 텐데… 이 분 꽤 오랫동안 일하지 않았나?”

 

 “예, 대략 5년을 일했다고 했습니다.”

 

 “지방에 가족이 있다고 했지만, 그 돈을 다 보냈는지는 확인 할 수가 없으니… 일단 최대한 가져갈 수 있는 건 가져가자고. 왕궁이라던가 살인 사건에서 연관이 있어 보이는 건 그 상자에 넣으면 될 거 같아.”

 에렌은 옷장 속에서 나와 재채기를 한 뒤 다시 말했다.

 

 “열쇠를 1층의 집주인에게 주기로 했으니까 오랫동안 혼자 있음 또 의심받을 거 같아. 아아, 대단한 세입자야. 위‧아래 없는 나를 눈치 보게 만들다니. 대단도 하시지.”

 

 워낙 애나라는 사람의 방에는 물건이 없었고, 그것도 일찍이 집주인이 정리해놔서 볼 거라곤 아까 에렌이 뒤지던 옷장과 작은 책장 정도였다. 그 책장에 있는 책들도 살펴봤지만, 브리티아의 역사, 왕궁 예절‧언어, 왕족·귀족의 가계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왕궁에서 일하려면 필수로 알아야할 정보들의 책이었지만 혹시 모르니 볼 필요가 있었다. 에렌은 한 손으로는 책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한 장 한 장 후루룩 넘기며 훑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지인이라던가 알고 지낸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 있나? 주고받은 편지라던가 이거 하나 보이지 않네. 아님 보안부가 가져갔나?”

 

 “그럴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왕궁에서 제일 친했던 사람이 문제의 3인 중에 나머지 2명입니다.”

 

 “아, 한 명은 별다른 연락 없이 안 나오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병으로 휴가?”

 에렌은 ‘애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갈수록 점점 흐려지는 정보에 이마를 찌푸렸다.

 

 “네…”

 

 “왕궁 밖에서는 정보가 없군. 저 옆집 사람은 무조건 아닐 거 같고… 집주인도 밝다고만 했지 친분 있게 지낸 건 아닌 듯 하더군. 살인사건도 이 사람을 마지막으로 범인이 잡혔으니 그냥 뭐 자세한 거 알아볼 필요 없이 종결 지었겠지. 이러다가 보안부로 쳐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

 켈렌은 에렌의 말에 저도 모르게 약간 굳어진 것을 느꼈다. 만약 꼭 가셔야 한다면, 비공식적으로 무리하게 방문하시는 것 말고, 공식적으로 방문하시는 걸 권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안부의 중추에 있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본청에서 난동을 부리는 건 그냥 그곳에서 이번 저의 생은 당신들께 맡깁니다 라는 의미와도 같았다. 특히나 레테나퀴스랑 수사권이나 이런 걸로 계속 부딪쳐서 예민하고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일을 할 때마다 눈에 독기가 가득 서려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거 좀 이상한데?”

 

 에렌의 말에 켈렌은 잔뜩 인상을 찌푸린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브리티아의 역사책에는 동맹왕국시대의 파히아케 왕, 귀족의 가계도에서는 라브르크·라이헨·레슈티르·이베니엘·아벤느에 관한 부분의 쪽수가 접혀있는데, 어라? 베르챠인도 있네?”

 

 “…”

 에렌이 부른 이름들에서 켈렌이 무언가를 떠올리려 할 때, 에렌이 말했다.

 

 “파히아케 왕이야 워낙 브리티아 인이 아니더라도 국적을 떠나 다른 나라 사람들도 높이 평가하는 비범하고 영웅적인 인물이니 존경심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라브르크, 라이헨, 레슈티르, 이베니엘, 아벤느, 베르챠인은 브리티아의 특정 귀족인데?”

 

 “…”

 

 “라브르크는 친애하는 어머님의 본가, 즉 외척. 라이헨은 형님의 어머님인 예르니치 왕비의 본가. 레슈티르는 총기사단장인 렉스 공작, 이베니엘과 베르챠인은 나의 벗인 리안 경과 여기 계신 켈렌 경, 아벤느는 저기 그 바다 있는 곳인데 금과 돈 때문에 맨날 시끄러운 아그리젠 지방의 귀족.”

 

 “바로 전 대와 현재에 관련된 왕가와 영향력 있는 귀족들이군요.”

 

 “뭐, 현재 영향력 있는 귀족들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라이헨은 그 사건 이후에 예르니치 왕비는 탑에 갇혔고 남자들은 죄다 처형당해 이름만 존재할 뿐 유령같은 존재요, 아벤느는 정통 귀족은 아니지 않나? 돈으로 만든 이름으로 그 세월도 짧고, 건방지게 감히 왕가의 담당 관리가 아닌 자기네 지방 자체의 관리원이 일처리를 하는 아그리젠의 역겨운 돼지 같은 놈이 생각나는구먼.”

 

 “…”

 

 에렌의 개인적인 악감정이 담겨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에 켈렌은 수긍했다. 아그리젠은 바다와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무역항이 발달한 지방이다. 스투키아와 동대륙으로 나가거나 반대로 그 쪽에서 들어오려면 이 지방을 꼭 거쳐야하기 때문에 독점적인 부분이 많아 돈이 주로 그 쪽으로 돌고 있다. 또한 금과 광물 자원이 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왕권이 약해졌을 때 아그리젠 지방을 스투키아에게 뺏겼었는데, 후에 아그리젠이 그들에게 독립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독립한 것까지는 좋은데 다시 브리티아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자신들은 브리티아 울타리 안에 없어도 스스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브리티아 입장에서는 바다로 나가는 통로와 세금을 포기할 수 없기에 꽤 많은 부분을 양보하고 나서야 아그리젠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 포기한 부분 중 대표적인 것은 세금과 법률과 사병 관련 부분이었다. 보통 세금은 왕궁에서 그 지방으로 관리를 보내서 걷어오는데 반해 아그리젠은 그들이 정한 관리를 수도로 올려 보냈다. 법률 부분, 특히 상법에 관해서는 수도와 달리 독자적인 조항들이 많다. 그리고 사병은 귀족만 거느릴 수 있지만 아그리젠에서는 허가를 받으면 보호라는 이름으로 평민도 일정 사병을 가질 수 있다.

 

 많은 부분을 양보한 브리티아가 아그리젠에게서 얻었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 또한 세금 부분이었다. 아그리젠은 브리티아의 다른 지방보다 세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관리할 사람들을 자신들이 뽑는 마당에 이게 의미가 있는지 싶기도 하다. 또한 이 세율 때문에 아그리젠은 자신들이 브리티아를 먹여살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약간은 오만하게 만들기도 했다.

 

 “일단 이 책들도 상자 안에 넣어줘.”

 

 켈렌은 그 말에 에렌이 탑으로 쌓아 놓은 책을 옮겼다.

 

 “정말 자네 방보다 더 없는 거 같아. 자네는 그래도 무기라도 걸어놓거나 두기라도 하지. 이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없군. 그 흔한 가족이나 연인의 초상화 한 장도 없고… 마치 그냥 이 땅에 솟아났다고 해야 하나? 또 너무 평범한 것들, 다른 사람들도 다 갖고 있을 법한 물건들이긴 한데 자기가 좋아하는 관심사에 관한 건 하나도 없어서 더 의뭉스럽단 말이야.”

 

 에렌은 툴툴거리며 재채기를 하면서 켈렌도 따라서 가끔 재채기를 하며 애나의 방을 구석구석 빠르게 훑었다. 가구도 들어서 안쪽도 살펴보고, 옷들의 주머니도 확인하고, 벽과 가구 사이의 모서리 틈새도 보았다.

 

 “거의 다 본 거 같은데? 근데 이래도 뭐가 안 나올 거 같긴 해. 우리도 이렇게까지 하는데 보안부라고 안 했을라고.”

 

 “…”

 켈렌도 에렌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였다.

 

 “그 상자나 챙겨서 가자. 물건은 다 담았지?”

 

 “네.”

 

 “줘, 내가 들게.”

 

 그들은 각자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에렌은 문 쪽으로 켈렌은 창문 쪽으로 향했다. 에렌은 문고리를 돌리려던 찰나 다시 방을 돌아보았다. 멀리서보니 이 방에 자연스럽게 있는 듯하지만 애나의 취향으로 봤을 땐 이 방에 있는 것이 이질적인 것이 하나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창문 앞에 식물이었다.

 

 “켈렌, 그 식물 좀 봐봐.”

 

 켈렌은 창문을 열고 나가려다 말고 에렌이 말하는 식물을 들었다. 식물은 장식용 정도의 작은 화분에 심겨있었고 가느다란 줄기에 그 옆으로 잎들이 나 있었다. 얼마나 클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키와 숯이 적은 잎들로 보아 아직 어린 식물 같았다. 햇빛 아래서 보니 잎의 표면이 뻣뻣하고 잎의 결이 유난히 튀어나와 이상해서 만져보았다. 조화였다.

 

 “조화입니다.”

 

 에렌은 켈렌의 말에 손가락으로 상자를 두들기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거 원래 있었던 건지 아니면 누가 갖다 놓은 것 같은 뭐 그런 흔적은 없어?”

 

 켈렌은 에렌의 물음에 화분을 들어 살펴보았다. 화분 주위로 먼지가 쌓여있었다. 화분이 있었던 자리는 당연히 먼지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 외에 화분 위쪽에서 원의 일부 혹은 반원의 일부분모양으로 먼지가 없었다. 그 자리에 무슨 물건이 있었는데 치워졌다고 하기 보다는 원의 일부처럼 보이는 것으로 보아 화분의 일부분인 것 같았다. 화분을 대 보니 크기가 맞았다.

 

 “화분의 위치는 움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래 있었던 게 누가 쳐서 움직인 건지 아니면 누군가 갖다 놨는데 또 다른 누군가가 쳐서 움직였는지는…”

 

 “그 화분을 상자 위에 좀 얹어줘.”

 

 “네, 알겠습니다.”

 

 켈렌은 상자 위에 화분을 올리며 말했다.

 “들고 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 정도야, 뭐. 그럼 밑에서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켈렌은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창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에렌이 그를 다시 불러 잡았다.

 

 “켈렌, 문 좀 열어줘,”

 켈렌은 다시 에렌에게 가서 문을 열었다.

 

 “고마워, 진짜 밑에서 보자고.”

 

 에렌은 방을 나와 상자를 내려놨다. 그리고 문을 닫은 후 열쇠를 잠그고 문고리를 한 번 당겨 확인한 후에 계단 쪽으로 가려다가 깜짝 놀랐다. 복도에 그 세입자가 벽에 기대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에렌은 썩 좋은 사이도 아니고 다시 만날 일도 없으니 그냥 지나쳐 가려고 했다.

 세입자를 지나치기 전까지는 저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일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긴장감이 생겨 그런 것 같았다.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저건 돌이다.’ 등의 말들을 속으로 되뇌며 최면을 걸며 세입자를 무사히 넘었을 땐 안도감에 작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 때 뒤에서 세입자가 말했다.

 

 “딱 봐도 사기꾼 같은데…”

 

 “…”

 에렌은 그 말에 반은 동의하는 바였다. 자신을 속이고 온 게 사기꾼이긴 하니 그것에 대해 부정은 할 수 없다.

 

 “너, 엄청 수상한 데 내가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서 보내 주는 거야.”

 

 “…”

 

 에렌은 못 들은 척 계단을 향해 갔다. 뒤에서 세입자가 뭐라 더 얘기할 거 같았으나 그는 그 말만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방문이 쾅 하고 닫힐 때 깜짝 놀라 계단에서 구를 뻔 했지만 드디어 저 미친 사람에게 탈출했다는 해방감에 저 사람의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 세입자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 엮이고 싶지 않아서 저 사람 자체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문득 진짜 저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금세 지웠다. 미친 사람은 그냥 미친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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