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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라뷔린투스
작가 : Elcaminosolo
작품등록일 : 2018.12.31

‘스텔’ 이라는 힘을 가진 ‘스텔라’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스텔은 대기 중의 에너지이며 무형이기 때문에 매개체를 써야 실체화된다. 이 힘을 다루는 자를 ‘스텔라’ 라고 부른다.

에펜슐렌 대륙 중부에 위치하는 국가 브리티아에서는 에드워드 왕태자가 그의 아버지인 클레이안 왕을 시해한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그에 따라 빈 왕좌와 주인을 잃은 왕관은 자연스럽게 왕의 둘째 아들이자 왕태자의 이복동생 에렌 왕자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 일뿐, 에렌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모후가 되는 헤스데아가 섭정후로 등극하였고, 브리티아는 그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에렌은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늘 그의 어머니 헤스데아 섭정후였다. 거짓 왕의 자리에 앉아 어머니와 그에 관련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끼던 나날 중, 우연히 카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카드는 이복형이자 실각한 에드워드 왕태자에게 자신이 그려줬던 카드였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왕태자와 자신뿐이었다. 평소 시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에렌은 이 카드의 끝에 닿으면 왕태자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뒤를 쫓는다.

카드의 행방을 쫓으면 쫓을수록 에렌은 목적이 같은 자들과 방해하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목적이 같은 자들은 리안, 에녹, 로렌이다.
리안은 살인사건의 피해자 중에 과거 자신의 부하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애나의 자취를 쫓던 중 비밀 클럽에서 에렌과 만나게 되고, 그 후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게 된다.
에녹은 에렌과 악연으로 처음 만났으나 같이 비밀 클럽의 폭발을 피하려다 헤르뮌 대공(자연을 다스릴 정도로 대단했던 브리티아 역사 속에 기록된 스텔라)이 만든 지하에 휩쓸려 그 곳을 빠져나오면서 친해지게 된다. 에렌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에렌의 적들과의 거래로 검투대회에 나가는 등 갖은 고생을 겪지만 위험한 순간마다 에렌이 구해준다.
로렌은 자신을 저주받은 자라고 말할 뿐, 그 카드와 카드판을 없애려고 에렌과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방해하는 자들은 제이드, 검은 남자이다.
제이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조종하여 에렌을 곤경에 빠뜨리지만 막판에는 그의 정체와 함께 용족과 하늘사람이라고 불렀던 종족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검은 남자는 사건 사고가 있는 곳마다(처음엔 비밀 클럽의 폭발 사고에서) 에렌과 마주치는데 후에 제이드와 같이 정체가 드러나며 국왕 시해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카드와 카드판으로 용족과 하늘사람들의 힘을 갖기 위해 네르센과 일로이드가 끼어들고, 나중에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5 (여우사냥)
작성일 : 18-12-31 23:37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16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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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켈렌, 역시 자네의 기마술은 따라올 수 없을 거 같아. 그 속도로 달리면서 갑자기 방향을 바꾼다던가 뒤에 쫓는 이들의 시야를 계속 차단하면서 몰고 오는 솜씨라던가 여럿에게 둘러싸여도 뚫고 나오는 능력이라던가. 이번 생엔 난 절대 이길 수 없을 듯해.”

 

 “…”

 

 “특히 나랑 찢어진 후 뒤로 돌아서 상황을 정리한 건 정말 놀라울 정도야. 난 언제쯤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번엔 피해가 좀 컸습니다.”

 

 “아, 그런 것 같아. 혹시 몰라 왕궁 내 의료원에 얘기는 해놨긴 한데… 아마 치료해 줄 거야. 아, 그리고 켈렌, 무엇보다 넌 자신의 무력에 대한 의미와 무게를 아는 자인데 그걸 살생하는데 쓰겠나. 난 자넬 믿네.”

 

 “…”

 

 “오늘 쓴 기술 나에게 가르쳐줘. 다음에 나도 해봐야겠어.”

 

 “명령이시니 가르쳐는 드리겠으나 올바른 곳에 쓰셨으면 합니다. 사용할 때와 장소를 알고 기다리는 것도 군주의 자세입니다. 이렇게 기사들을 모으는 일도 자제 하셔야합니다. 일종의 권력의 남용과 오만입니다. 그들이 폐하를 지켜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은 맞지만, 자신이 술래가 되어 폐하를 잡는 일은 그의 직무 안에 어디에도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간을 뺏을 권리는 폐하에게 없습니다.”

 

 말수가 적어서 과묵하다고 할 수 있는 켈렌이 저렇게 말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에렌은 놀라워서 약간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한번에 꽤 많은 말을 쏟아내서 숨이 찰 것 같은데도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켈렌을 보며 에렌은 웃으며 말했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야. 그리고 그들은 오늘 고생한 만큼 돈을 받아간다고. 물론 자원해서 온 건 아니지만…”

 

 “…”

 

 에렌은 켈렌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사실 리안 경이 자신을 잡지 못하는 것은 단지 자신이 그의 윗사람이며, 기사 서약에서 자신이 맹세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많이 봐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리안이 왕궁 소속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계속 불려오는 것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휘관의 앉을 수 있는 이들 중 나이대가 젊고, 수도에 있는 사람들은 보안 소속의 리안 경과 총기사단장(왕궁 안과 밖의 기사들의 최고 지휘관)인 렉스 공작 정도이다. 렉스 공작은 모시기엔 너무 높으니 리안 경이 공작각하에 밀려 꽤 자주 왕궁에 방문하고 있다.

 

 “뭐… 나도 자제하고 있어. 근데 이번에는 꼭 나올 필요가 있었어. 무슨 말인지 알지?”

 

 “…”

 

 켈렌은 에렌이 어딜 가나(그곳이 죽음을 인도하더라도) 따라 가야하고, 그의 명령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또한 에렌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불일치하고 부조화스러운 역할이지만, ‘친구’ 라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켈렌이 에렌에게 있어서 아랫사람이긴 하지만 어렸을 때 왕궁 내 또래가 켈렌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함께 뛰놀던 친구이기도 했다.

 켈렌은 에렌의 친구가 될 자격 조건을 모두 갖춘 또래라고 할 수 있었다.

 첫째, 에렌과 놀아줄 체력이 되는 것과 에렌이 무슨 짓을 해도 살아남을 만한 능력.

 둘째, 넘어뜨리고 때리고 기습 공격하고 골탕 먹이는 에렌에게 화를 내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는 인성.

 셋째, 자주 도망가고 숨는 에렌을 찾아오거나 데리고 올 능력.

 이 모든 게 켈렌이 에렌의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무방했다.

 물론 켈렌이 워낙 단단한 돌 같은 성격이라 같이 놀기 에는 재미가 없었겠지만 나이에 비해 철이 없고 거침없이 말하며 장난이 심했던 어린 에렌에게는 그만한 친구도 없었다.

 

 “예배당에 그 카드가 있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야. 내가 그 곳에 정기적으로 가는 걸 일단 알고 있고, 다른 곳에 비해 경비가 그렇게 삼엄하지 않고, 의외로 관리가 소홀하다는 점을 이용한 거 같은데… 뭐, 그런 걸 몰라도 섭정후 치하에선 레테나퀴스가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

 

 레테나퀴스는 신과 그의 힘을 이어 받았다는 8인의 성인들(물의 아레츠, 불의 카노, 바람의 헤이나, 얼음의 스테히아, 빛의 플레이라, 철의 앵그웬, 공간의 이클레인 , 약속의 로웬)을 받드는 서대륙의 중부에 있는 도시국가이며, 중립국이다. 그들은 스텔 이외의 독자적인 힘을 쓰며, 스텔라들을 관리하는 것으로 도시를 지탱하고 있다.

 

 과거 고대시대 때, 야망과 욕망이 강하고 통제 불가능한 스텔라들을 정리한 8인의 성인들과 그들에게 주어진 힘, 그리고 관리할 수 있는 방법들(이는 레테나퀴스가 기밀로 붙였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을 소유한 이래로 지금까지 그들의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같은 도시 국가이며 모든 학문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아르덴에서 만든 방법들과 국가에서 만든 제도들 등으로 충분히 스텔라들을 관리할 수 있지만, 스텔라들의 신분을 등록하고 증명하는 것은 레테나퀴스 밖에 못 하고 있다.

 

 섭정후 헤스데아, 에렌의 모후는 국왕시해사건의 재판 때 ‘거울의 심판’을 운운하며 레테나퀴스를 끌어들였다. 그에 끌려온 레테나퀴스도 무언가를 얻을 심산으로 이 판에 참가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렇다 할 큰 수확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혼자, 유일하게 독점하는 힘을 가져왔다. 브리티아에서 레테나퀴스만이 독자적으로 스텔라들을 관리할 수 있는 권리와 스텔라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부서보다 우선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져왔다.

 

 이렇게 한 쪽으로 치우친 힘은 많은 문제를 낳고 있으며, 특히 사건‧사고‧치안을 담당하는 보안부(리안 경이 소속된)와 많은 마찰이 생기고 있다. 부딪칠 때마다 불편해질 만하면 렉스 공작(전쟁 영웅이자 스텔라)의 중재로 그나마 큰 사고 없이 나름 완만하고 둥글게 일을 해결하고 있다.

 이런 것도 모르는 섭정후는 다리 뻗고 잘만 잘 것이며, 심지어 그는 레테나퀴스에게 충분히 보답했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그 곳에 신경 쓰지 않았다.(관심이 없는 걸지도) 딱 예의를 차릴 정도만 신경 써주고 있었기 때문에 왕궁 내에서도 예배당은 다른 곳에 비하면 소홀했다. 이를 알고 있을 법한 레테나퀴스도 딱히 섭섭한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그들은 갖고 싶은 것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바탕 아래 왕궁의 예배당은 이익을 쫓는 자들에게 매력적인 장소가 아니다. 어린 왕이 가끔 출입하긴 하지만 그닥 실속은 없다. 실질적인 결정을 하는 섭정후와 마주치는 쪽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에렌이 이따금 그곳을 가는 이유는 초상화와 물건들 때문이었다. 예배당으로 가는 길에는 왕족들(왕위에 오른 자와 업적을 이룬 자)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이곳에서 에렌은 유일하게 보고 싶은 이를 볼 수 있다. 그는 에렌의 이복형이자 국왕시해자로 처형당한 전 왕태자 에드워드이다. 왕궁 내에 있던 그의 초상화는 모두 없앴지만 유일하게 예배당에 남아있다. 표면적으로는 기록의 증거로 남겼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또한 예배당에 있는 성인들의 조각상이나 몇몇 작품들이 전 왕태자의 명령으로 만들어졌고 그의 이름으로 기부된 것들이기 때문에 그의 취향과 흔적들을 추억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에렌은 달리 답하지 않는 켈렌에 대해 뭐라 하지 않고 말했다. 특별히 해야 할 말이 아니면 말을 아끼는 그를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그런 모습에 익숙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세심히 듣고 기억하고 있음은 에렌은 그와 함께한 시간을 통해 알고 있다.

 

 “그 카드에 그려진 그림은 잘 알고 있는 8명의 성인들 중 물의 아레츠가 맞아. 그런데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나야. 파도를 다루는 모습으로 아레츠를 표현한 그림은 내가 예전에 형님께 항상 신의 은혜가 함께 하길 바라며 그려 드렸던 거야. 그러니 안 움직일 수가 있어야지. 오직 나와 형님만이 아는 일인데 이걸 내게 보낸 이는 과연 누구인지…”

 

 에렌은 미안함에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이유를 말해주곤 했는데, 이는 자신을 위한 배려임을 켈렌은 알고 있다. 에렌은 자신으로 인해 여러 가지 곤혹스런 일들을 겪는 그에 대한 미안함 마음에 변명 아닌 변명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

 

 “나머지 7명의 성인들도 그려 드렸긴 한데 혹시 모르니 앞으로 지켜봐야겠지.”

 

 “…”

 

 “네가 알아봐 준 바, 그 날 마지막까지 있었던 궁인은 총 3명. 현재 그 3명이 모두 다 궁으로 몇 일째 돌아오지 않고 있지. 한 명은 별다른 연락 없이 안 나오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병으로 휴가, 마지막 한 명은 최근 살인사건으로 사망.”

 

 “…”

 

 “뭔가 이상하지 않아?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었던 3명의 부재가.”

 

 “…”

 

 “한 명만 그러면 그래도 이해하겠지만, 뭐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것도 의심스럽겠지만. 그리고 그나마 제일 타당한 이유가 있는 살인사건으로 사망한 궁인도 그 지역에 살지도 않고 지인도 없는데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인사건으로 휘말린 궁인이 하필 그 궁인이라니. 이런 우연이!”

 

 “…”

 

 켈렌은 강조하듯 우스꽝스럽게 한 손을 들며 과장되게 얘기한 에렌을 쳐다보았다. 사실 자신도 그 부분이 이상하고, 무언가 있겠다 싶었다. 이미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왕태자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알아볼 가치가 있었다. 자신과 달리 왕께선 왕태자의 문제가 제일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출석하지 않고 뒷날을 기약할 것 같았던 왕태자는 심판대에 출석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날, 용의 후손처럼 보이는 동물에 시해 당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하지만 왕께선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감히 켈렌 자신이 생각하기에 에렌은 왕태자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일종의 죄책감일 수도 있다. 에렌은 현재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를 원치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인 헤스데아는 간절히도 원했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끌어내릴 만큼 간절히.

 그의 자리 자체가 누가 원한다고 혹은 원치 않는다고 해서 앉을 수 있는 건 아닌 것을, 즉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이제는 알 만 할 텐데, 에렌은 자신의 자리를 부담스러워 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마땅한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언제라도 때가 되면 내어줘야 된다는 생각 아래 그 자리에 위태롭게 앉아있는 에렌을 켈렌이 모를 리 없다.

 

 아니면 에렌은 그의 바람 때문에 왕태자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갖는 걸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왕궁 소유의 별장이나 외가에서 자유롭게 자랐기 때문에 그는 왕궁 생활을 답답해했고, 지금도 적응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원래 선천적으로 반항적 기질이 강하다고(그의 모후의 성품으로 보아) 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는 마땅한 적임자가 나타나면 지금이라도 미련 없이 훌훌 털고 왕궁을 떠날 것이다. 이를 알면 그의 모후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카야 공주와의 결혼으로 자리를 더 확고히 하고, 혹시 모를 일로 에렌이 대체될 것을 대비하여 세울 아이까지 계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 이상한 느낌에 켈렌은 뒤를 돌아보았다. 익숙한 누군가가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폐하, 오늘 뜻을 이루시려면 빨리 움직여야할 거 같습니다.”

 

 “?”

 에렌은 켈렌의 말에 갸우뚱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말을 타고 오는데, 에렌은 그 실루엣만 봐도 예상할 수 있었다. 리안이었다.

 

 “켈렌, 네 말마따나 움직여야겠군.”

 

 그들은 말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그리고 점점 속력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성문이다. 성문을 나가서 다리를 건너 쭉 달리면 광장이 나올 테니 거기까진 무조건 달려야겠지? 사람이 있는 곳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자. 뭐, 너보단 나한테 해당하는 얘기겠지만.”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거의 엇비슷하게 속도를 내며 달렸다. 성문을 지키고, 외부인을 통제하는 기사들이 있는 마지막 관문까지 왔다. 그 기사들은 그들을 보며 놀랐지만,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말들을 붙잡을 수 없기에 그들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사들이 보기에 그들을 죽어라 하고 따라오는 리안 경이 있기도 하니 길을 내어줄 것이다. 역시 그들이 성문 근처로 오자 기사들은 옆으로 피해 길을 내어주었다.

 

 에렌은 무사히 성을 빠져나오자 시야가 탁 트이고, 시원해진 느낌에 숨을 더 크게 들이쉬었다. 자신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성보다 이 밖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 그 서늘함이 나 자신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 마지막이야. 다리만 건너면 돼. 건너서 광장까지 긴장을 늦출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저 감옥같은 곳을 빠져나와서 너무 좋군!”

 

 “……. 일단 다리를 무사히 건너야 할 것 같습니다. 리안 경이 따라오는 속도가 만만치 않습니다.”

 

 에렌은 켈렌의 말에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확실히 리안은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마침 왕궁 내 지나가던 말을 하나 잡은 모양이군. 우린 재수도 없군.”

 

 “…”

 

 그들은 이제 다리가 시작하는 부분에 들어섰다. 다행히도 그들의 맞은편에는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수도의 강 위에 있는 다리들 중에 이 다리가 제일 길기 때문에 사람을 부딪치지 않고 건널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시간을 번 것이다.

 

 “여긴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니 아까처럼 달릴 수 없습니다. 슬슬 속력을 낮춰야할 거 같습니다.”

 

 “알고 있어.”

 

 그들은 아까보단 느려진 속도로 다리 중반까지 거의 왔다. 마음은 조금이라도 앞으로 빨리 가야하는데 속도는 반대로 가야하니 에렌은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있어야 할 리안 경이 보이지 않았다.

 

 “켈렌! 리안 경이 보이지 않아. 그 성격에 포기할 리는 없고, 설마…”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에렌은 자신이 예상이 틀리기 바랐건만 역시 나였다. 리안 경은 일종의 도박을 한 것이었다. 제일 짧은 다른 다리를 건너 이 다리 앞에서 먼저 기다리는 수를 택한 것이었다. 리안 경이 건너려는 다리에 사람들로 번잡하지 않으면 그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마음은 급하고 불안한데 경계해야 될 상대가 보이지 않으니 에렌은 한층 더 불안해졌다.

 

 “정말 재수도 없군!”

 

 에렌은 그렇게 말하면서 반대편으로 무언가를 던졌다. 켈렌은 빠르게 자신의 앞을 지나간 물건을 피했다. 그저 그가 그의 뜻대로 안 돼서 화가 나 자기 성질에 못 이겨 물건을 던졌을 것이라고 켈렌은 생각했다. 물론 속으로는 ‘성질 머리하고는…’ 했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리안 경은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앞만 보고 가고, 편협한 경향이 있어. 그리고 내가 상관인데 이렇게까지 괴롭혀서야 쓰나, 쯧쯧.”

 

 켈렌은 어처구니없는 저 말에 에렌을 힐끗 보았다. 리안 경의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자세를 좋아하고, 친구로서 삼기 아주 적당하다고 말했던 것은 잊은 듯했다. 게다가 본인이 밑에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건 이쯤이면 의식할 때는 되지 않았을까 켈렌은 감히 생각했다.

 

 “…”

 

 “하아, 아주 매번 나올 때마다 피곤하군. 다음에 또 나가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할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군.”

 

 켈렌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살짝 동감하는 바였다. 사실 정통 병법으로 따지면 리안 경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에렌은 그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왕궁 내부 사정을 이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리안 경은 왕궁 내부에 익숙해졌고, 에렌의 기행에도 적응을 해서 방어가 만만치 않았다. 반대로 에렌과 켈렌도 리안 경에 대해 잘 배워서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역시 서로를 잘 아는 적을 상대하기가 참 까다롭다고 켈렌은 생각했다.

 

 옆에 있는 에렌을 보니 눈썹이 가운데에서 만날 정도로 잔뜩 찡그린 얼굴로 불만이 많아보였다. 에렌은 자신이 원하는 데로 안 되면 짜증을 내곤 했는데, 오늘 보람 없이 다시 돌아가게 될 까 드는 걱정도 한 몫 하는 것 같았다.

 

 “리안 경이 앞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그럼. 넌 나보다 뛰어나니 그래야지. 나보다 뛰어날 뿐인가 신이 놀라 나자빠지실 실력이지. 그래도 혹시라도 리안 경이 널 잡으면 난 버리고 갈 터이니 알아서 오던지. 아니면 먼저 궁에 가 있던지 해. 궁 밖에선 각자 살아남자고.”

 

 켈렌은 묘하게 가시 돋친 에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힘내자고. 혹시 서로 놓치게 되면 살인사건으로 사망한 궁인의 집에서 만나자고. 기다리는 건 레테나스퀴스 신전이 3번째 종이 울릴 때까지야. 어딘지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행운을 비네.”

 

 에렌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켈렌의 말을 때렸다. 그러자 켈렌의 말은 놀라며 앞으로 나아갔다. 켈렌은 에렌보다 앞으로 나아갔다. 완전히 에렌의 앞을 가린 후엔 마지막으로 뒤에 있는 에렌을 확인하고 모든 신경을 앞으로 쏟았다. 리안 경이 가로질러 제 때 오지 못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없는 건 아니기에 긴장됐다. 만약에 그들보다 일찍 다리를 건넜다면 언제, 어디에서 나와야 잡을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은 다리를 완전히 건너 중앙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고, 속도는 아까에 비해 느려졌다. 광장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사람과 말과 짐마차 등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리안 경도 그런 곳에선 힘들기 때문에 아마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기회를 노릴 것이다. 더 나아가면서 옆에는 하나, 둘 늘어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반대편에서 말들과 마차들이 간혹 지나치기도 했다. 그럴수록 켈렌의 긴장감도 증가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던 중(특히, 뒤따라오는 에렌에 더 집중하며) 앞에 마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마차는 막 사람을 태우기 위해 서 있는 것 같았다. 문이 활짝 열려있고, 그 열린 문으로 사람이 안으로 막 들어가려고 했다.

 

 켈렌은 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보며 그 마차를 지나갈 때였다. 마차 앞쪽에 앉은 마부는 사람이 탈 때까지 기다리는 듯했다. 지나치려던 켈렌은 이상한 느낌에 마부를 봤다. 정확히는 마부의 신발을 다시 보았다. 그가 신고 있던 신발은 검은 가죽 부츠였다. 물론 마부라고 가죽부츠를 신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어딘가 많이 본 낯익은 신발이었다.

 

 ‘자주 봤고 최근에도 봤던 것 같은데…’

 

 순간 켈렌은 등이 곤두서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 신발은 기사단이 신는 것이었다. 리안 경이었다. 켈렌은 놀라 얼른 뒤를 돌았다. 뒤를 도는 순간, 상황은 빠르게 리안 경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리안 경은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척하고, 그 반대편 마차 문을 열어 빠르게 에렌을 잡았다. 속도도 아까보다 현저히 느렸기 때문에 그는 쉽게 에렌을 잡았다.

 

 리안은 에렌의 말고삐를 잡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폐하, 폐하의 친우인 제가 직접 모시러 왔습니다.”

 

 에렌은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놀랐으나 곧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빈정대며 말했다.

 “과연 보안부의 능력자답군. 근데 이건 좀 치사하지 않는가. 자신의 능력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하려하다니.”

 

 리안은 말에 오르며 에렌의 뒤에 앉았다, 그리고 에렌의 허리에서 자신의 칼을 가져오며 말했다.

 “폐하께서 제게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직접 가르쳐주셨는데, 저도 폐하께 증명해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폐하께서 기뻐하실 거 같아 저도 한 번 해봤습니다.”

 

 “…”

 에렌은 이유는 모르지만 묘하게 짜증났다. 아마 자신의 뜻이 꺾일 것 같은 불안감과 조바심에 짜증나는 것이라 치부했다.

 

 켈렌은 리안 경이 먼저 마차의 문을 열어 자신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는 걸 깨달았다. 마차의 문을 열어도 보이는 발은 마부와 신발을 바꿨다. 그리고 마차 안으로 들어갈 땐 그의 체격 때문에 상당히 허리를 숙였을 것이다. 과연 보안부 지휘를 할 만한 남자였다.

 

 “베르챠인, 당신도 그만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와 대적하시면 폐하께 칼을 겨누게 되는 겁니다. 그건 당신의 사명에 반하는 행동 아닙니까.”

 

 리안은 본의 아니게 대치하고 있는 켈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켈렌은 그가 자신만만해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고집스럽게 원칙을 중시하다 못해 집착하는 것을 에렌과 함께한 덕분에 그도 알고 있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베르챠인 가문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고지식하고 굳건한 신념을 가진 걸로 이미 유명하지만 말이다.

 

 켈렌은 리안을 마주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했다. 무기를 겨누기엔 왕께 향하는 것인데, 이는 자신의 직무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다른 방법이라 함은 아까 에렌이 치사하다고 했지만 그가 자주 쓰며, 에렌 경이 습득한 다소 치사한 방법이라는 그 쪽으로 생각해야했다. 정석의 방법이 막혔으니 돌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베르챠인, 왕궁에서 보세. 난 먼저 가겠네.”

 리안은 그렇게 말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그 때 에렌은 켈렌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켈렌은 왕께서 뭔가 방법을 생각해내셨구나 싶었다. 일단 그를 믿고 왕궁으로 가는 척 리안 경의 뒤를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리안 경, 붙지 좀 말게. 아주 불편해 죽겠네. 내가 아까도 말했지 않은가. 난 누가 날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네.”

 

 “…”

 리안은 한숨을 쉬며 앞에 있는 상관으로부터 살짝 떨어졌다. 이래서 왕궁 안에서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돌아가는 길에 이렇게 시달릴 거라 예상했다. 상관의 약혼녀 되시는 카야공주가 더 의젓하시다는 말이 있는데 리안은 아주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안 경, 최대한 등을 젖히고, 떨어져서 말을 좀 몰아보게.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라 보네.”

 

 “폐하,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리안은 대답하면서 이상하게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리안은 상관과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 움직였지만, 아무래도 말의 움직임 때문에 간간히 상관과 부딪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부딪칠 때마다 상관은 티가 날 정도로 움찔했다. 리안은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잔뜩 긴장하면서 가는데, 상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안 경, 아무래도 안 되겠네.”

 

 “?”

 

 “서로 불편하니 이렇게 하세. 말은 내가 타고 갈 터이니, 그댄 내려서 고삐를 잡고 말을 끌고 가게. 그럼 서로 부딪침 없이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속도로 돌아가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꽤 되지 않는가.”

 

 리안도 그 쪽을 생각해봤지만 도대체 이 상관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티격태격하지만 이것도 꽤 평탄한 상황이라(경험 상) 무슨 일이 더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들었다.

 

 “리안 경, 보시다시피 난 자네에게 이렇게 투정밖에 할 수 없네. 어디 갈 수 있는 말도 없고, 칼도 자네한테 뺏겼고… 망할 놈의 베르챠인은 날 버리고 뭐하는지 모르겠네.”

 

 “…”

 베르챠인은 꽤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 리안은 그것도 기회를 엿보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폐하, 차라리 속도를 내서 빨리 돌아가시는 쪽으로 생각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 편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조금의 불편함만 견디면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리안 경! 정말 불편하네! 근데 견디라고 하다니! 굉장히 무례하군!”

 

 상관의 잔뜩 성난 목소리가 리안의 귀에 들렸다. 한숨이 나왔다. 물론 의무와 책임 때문에 그의 뜻대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을 보면 저도 모르게 비슷한 나이대의 동생을 겹쳐보는 게 문제였다. 물론 동생은 상관과 달리 점잖고 말을 가려할 줄 알지만 그가 어렸을 때부터 챙겨주고 해달라고 하는 건 해줬던 것이 습관 및 각인되어 상관에게도 그렇게 행동하게 됐다. 그리고 상관의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알고, 그 나이 또래의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는 걸 알기에 모질게 대하기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리안은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말을 이끌었다. 상관은 자신의 뜻대로 되자 그제야 찡그린 얼굴을 풀었다, 그렇게 타박타박 걷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다리의 중반쯤 건넜을 때 그들의 앞에 짐마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짐마차 옆으로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이 마차의 주인인 것 같았다. 그는 바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마차의 바퀴 쪽을 이리저리 보고 있었다.

 

 리안이 보기에 그의 마차는 바퀴 문제로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도와 줘야하나 싶었으나 당장 자신의 코가 석자였다.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이 다리를 건널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다. 남자에게 사정을 말하고 지나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리안 경,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못 보고 지나가는 것인가. 언제부터 그대가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

 

 “…”

 리안은 순간 무례하고 불경했지만 ‘말이라도 못하면…’ 이라고 말할 뻔 했다. 심지어는 ‘저 입을 주체를 못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폐하, 저도 지나치기 너무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지금 폐하의 일이 제겐 우선이니…”

 

 에렌은 리안이 말이 끝마치기도 전에 그 남자를 불렀다.

 “이보시오!”

 

 그 남자는 부르는 소리에 그들을 보고 반색했다. 그리고 그들의 앞으로 빠르게 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마차의 바퀴에 문제가 생겨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희도 도와드리고 싶은데, 지금 급한 일 때문에 가봐야 합니다. 곧 이 쪽 일을 빨리 끝내고 여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저도 생판 갑자기 만난 분께 신세를 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급해서 그럽니다. 왕궁으로 납품할 것들인데 제 시간에 못 갈까 걱정되어 그럽니다.”

 

 “왕궁으로 가는 길입니까? 저희도 지금 그 쪽으로 가고 있으니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

 

 남자는 리안의 말에 급하게 반박했다.

 “왕궁으로 가시는지 어찌 믿습니까! 지금도 급하다고는 하셨지만 말을 끌고 가지 않습니까. 정 급하시면 타고 가셔야지!”

 

 리안은 반박하려다 문득 자신의 차림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재킷을 넘기는 바람에 남들이 봤을 때 자신은 그저 흰 셔츠에 남색바지를 입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보안부임을 증명하는 신분증도 재킷 안에 있었다.

 

 그 남자는 그들의 길을 막고 말했다.

 “정말 왕궁으로 가신다면 저 소년이 가서 불러오는 걸로 합시다. 전 믿지 못하겠습니다.”

 

 리안이 보기에 남자는 40대 정도로 보였는데, 지금까지 운송 쪽 사업을 해온 것이 대단해보였다.

 ‘이렇게 보는 눈이 없어서야…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지.’

 

 “리안 경, 내가 가기 전에 저 분의 바퀴를 좀 보겠네.”

 

 그 말을 들은 남자가 반색하며 말했다.

 “오, 평범한 도련님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봅니다. 볼 수 있으시면 좀 부탁드립니다.”

 

 앞‧뒤로 안하무인인 두 사람 덕분에 리안은 두통이 올 거 같았다. 상관은 말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제가 보고 오겠습니다.”

 

 “괜찮네. 리안 경. 수업 중에 배우긴 했는데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네.”

 

 “도련님, 감사합니다.”

 

 리안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기가 막혔다. 상관은 이미 말에서 내렸고, 남자는 바퀴를 고칠 수만 있다면 그를 업어서라도 모셔갈 기세였다. 리안은 이대로 상관을 풀어놓는 것이 불안했다. 리안을 제치고 앞으로 가던 상관을 잡았다. 그에게 잡힌 상관은 ‘뭐야, 이거?’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리안은 그 모습에 한숨을 쉬며,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 머리끈으로 자신과 상관의 팔목을 묶었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상관의 얼굴은 잔뜩 구겨졌으나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폈다. 그래도 유독 입을 오물거리는 걸 리안이 보아하니 성질을 삭히고 있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다.

 

 “이 바퀴입니다!”

 

 남자는 뒤쪽 2개의 바퀴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바퀴살이 부러졌습니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의 말마따나 바퀴살이 부서져 있었다. 리안은 바퀴살에 무엇이 어떻게 끼어 들어갔기에 주저앉았나 싶었다.

 

 “이 정도면 새 바퀴로 바꾸셔야할 거 같습니다.”

 

 남자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래도 설마 달리 방법이 있겠거니 했는데, 역시 예상했던 데로군요.”

 

 리안은 정중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아까 ‘당신을 어찌 믿어!’ 라는 태도에 비해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아까 너무 무례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까지 운송하기로 약속되어 있는데 마음이 급해서 그랬습니다.”

 

 “괜찮습니다. 충분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왕궁에 납품하는 것인데 당연히 예민할 수 있습니다.”

 

 “예…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종 왕궁으로 납품하곤 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습니다. 이상한 공이 바퀴살에 끼는 바람에… 참, 재수도 없지요. 또 여기로 오는 사람을 언제 만날까 싶어 기회는 이 때뿐이라 생각하여 조바심에 실례를 했습니다.”

 

 리안은 그가 말한 ‘이상한 공’이란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익숙한 듯 불편한 느낌이 들어 되물었다.

 “이상한 공이요?”

 

 “아, 예. 어떤 미친… 아, 죄송합니다. 이건 의도적으로 작정하고 만들지 않는 이상 이런 괴상한 물건을 만들까 했습니다. 공인데 그 위에 뾰족뾰족한 게 박혀있습니다.”

 

 리안은 머리에 뭔가 섬광같은 것이 스친 것 같았다.

 “혹시 그 공을 좀 볼 수 없겠습니까?”

 

 “아… 예. 혹시 왕궁에서 저의 개인적인 이유로 약속을 안 지킨다고 오해할까 그 증거로 챙겨놨습니다. 잠시만…”

 남자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더니 그 ‘공’ 이라는 것을 리안에게 내밀었다.

 

 그 때였다. 에렌은 리안의 허리에 있던 칼을 뽑아 자신과 리안의 손목을 묶은 끈을 잘랐다. 그리고 마차 위에 있는 자루를 칼로 베었다. 그러자 자루 안에 들어있던 열매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남자는 말도 못 하고 어버버 했다.

 

 리안은 열매가 쏟아져 나오는 순간 확 정신이 들어 에렌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허공에서 휘저었을 뿐이었다. 에렌은 리안의 손이 닿기 전에 잽싸게 아래로 숙이면서 칼집까지 챙겨 달아났다. 리안은 모셔 와야 된다는 급한 마음에 말에 다시 오르려 했다.

 

 “이보시오! 어딜 가시오!”

 남자가 리안을 잡았다.

 

 “미, 미안하오. 배상은 무조건 하겠소. 지금은 좀 힘들고 곧 돌아오겠소.”

 

 “그 말을 도대체 어떻게 믿소! 당신들이 지금 한 짓을 보오! 배상은 둘째 치고 왕궁과의 신뢰는 어떻게 할 것이오!”

 

 리안은 초조함에 이로 입술을 깨물었다 떼며 말했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오. 근데 지금 좀 급한 일을 해결해야 해서 그렇소. 배상은 내가 신과 가문을 걸고 맹세하오.”

 

 “신? 가문? 그걸 내가 어떻게 믿소! 말은 나도 할 수 있소! 내 신과 가문을 걸고 당신을 죽여 버리겠다고!!!”

 

 사람이 너무 화가 나서 머리가 돌면 눈이 뒤집어질 수도 있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 실제를 자신의 눈앞에서 보긴 리안도 처음이었다. 현재 그를 보고 판단하건데, 정말 신과 가문을 걸고 자신을 죽일 듯한 기세였다.

 

 “정말 곧 돌아오겠소. 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어 나도 답답하나 정말 진실로 돌아와 배상할 것이오. 약속하오.”

 리안은 말을 마친 후,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 때 남자가 리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정 가고 싶으시면 차라리 날 죽이고 가시오! 어차피 이대로 당신이 가면 안 돌아올 게 뻔하고 난 왕궁과의 신뢰가 깨지고 평판이 떨어져 더 이상 이 일을 못하겠지! 그렇게 해서 죽으나 지금 죽으나 시간의 차이일 뿐이지!”

 

 “하아… 그게 아니라…”

 

 리안은 몸은 이 남자 앞에 있지만 정신과 눈은 상관을 계속 쫓았다.

 ‘지금이라도 달려가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데… 베르챠인이 나타나기 전에…’

 그러나 베르챠인이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어느 새 나타난 베르챠인은 상관을 태웠다. 말에 탄 상관은 친절하게도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의 칼을 번쩍 들어 가리키며 입모양을 크게 하며 뭐라 말했다. 아마도 ‘나중에 돌려줄게.’ 이런 말인 것 같았다.

 

 리안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어쩌면 왕궁에서 좀 더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 했나 아님 상관께 틈을 주지 않았어야 했나 아님 이미 왕궁에서 임무실패를 인정했어야 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리안은 후회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벌어진 일들을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후회한다고 과거의 일을 바꿀 수 없는 걸 알기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알겠습니다. 이 일을 해결합시다.”

 

 

 

 

 

 켈렌은 뒤에서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해 들썩거리는 에렌이 의아했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말에 올라온 후로 죽 이 상태였다.

 

 “프하하하하하…”

 

 “…”

 

 “아, 미안, 켈렌. 너무 웃겨서.”

 

 “…”

 

 “아직도 생각나네. 내가 이 칼을 뽑아 끈을 자를 때 리안 경의 표정을 너도 봤어야 했다니깐. 그 똑 부러져 흔들리지도 흐트러질 것 같지 않은 그 리안 경의 얼빠진 얼굴을! 세상에 이럴 리가 없는데… 딱 이런 얼굴이었다니깐.”

 

 “보안부에서 존경에 마지않아 우러러 보는 리안 경을 그렇게 다루는 사람은 폐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그는 내 친애하는 친우일세, 켈렌 경.”

 

 “…”

 켈렌은 리안이 이 얘기를 들으면 격렬하게 이 관계를 거부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켈렌, 내가 어떻게 탈출했는지 무용담을 듣고 싶지 않아?”

 

 “…. 네, 원하시면 들려주십시오.”

 

 에렌은 친구라고 하더라도 무례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별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기억나? 내가 다리에서 짜증난다면서 던진 거?”

 

 켈렌은 그의 물음에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그는 리안 경이 짜증난다면서 푸념하면서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무언가를 던졌던 것이 있었다. 그의 앞으로 빠르게 뭔가 지나갔던 물체가 떠올랐다.

 “아, 예…”

 

 “그게 저번에 부탁해서 만들어달라고 한 건데, 공이 일정 범위 내에 있으면 자동적으로 돌아오는? 그런 거야. 아까 너랑 같이 갈 때 공을 던졌고, 리안 경과 네가 대치했을 때 반대편에 지나가는 짐마차의 뒷바퀴에 장치를 붙였어. 그럼 그 마차가 다리에 있는 공 근처를 지나가면 뒷바퀴에 붙은 장치가 그 공을 끌어당겨 착 달라붙거든.”

 

 “그러셨습니까.”

 

 “응. 그 마차는 뭔가를 잔뜩 싣고 번화가에서 나가는 방향으로 가는 중이니 다리를 건너 물건을 주러 갈 테니까. 그리고 옆에 지나가면서 봤거든. 왕궁에 출입할 수 있는 상인 조합의 문양을. 뭐, 그거 아니더라도 오늘 아침 시간에 왕궁으로 물품을 납품하러 마차가 들어온다는 건 알아.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

 켈렌은 그제야 리안 경에게 잡히고도 웃었던 에렌을 이해했다. 정말 궁 밖을 나가고자 하는 그의 끈기와 절박함에 존경을 표해야할지 아님 탈출하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하는 그의 창의성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건지 켈렌은 결정할 수 없었다.

 

 “폐하, 리안 경께서 지금이야 정신이 없으셔서 모르시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실 것 같은데…”

 

 “그럼. 내가 그를 위해 준비했다고. 그 공에 내 이름 첫 철자들을 새겼거든. 보면 알겠지 뭐.”

 

 “…”

 켈렌은 정말로 진심으로 ‘저는 리안 경께서 화병이 나실까 걱정입니다.’ 라는 말을 꺼내려다 ‘뭘 그런 걸 갖고.’ 라고 웃으며 말할 게 뻔 한 에렌을 떠올리며 그 말을 속에 다시 담았다. 소 앞에서 아무리 글을 읽어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유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켈렌은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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