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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라뷔린투스
작가 : Elcaminosolo
작품등록일 : 2018.12.31

‘스텔’ 이라는 힘을 가진 ‘스텔라’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스텔은 대기 중의 에너지이며 무형이기 때문에 매개체를 써야 실체화된다. 이 힘을 다루는 자를 ‘스텔라’ 라고 부른다.

에펜슐렌 대륙 중부에 위치하는 국가 브리티아에서는 에드워드 왕태자가 그의 아버지인 클레이안 왕을 시해한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그에 따라 빈 왕좌와 주인을 잃은 왕관은 자연스럽게 왕의 둘째 아들이자 왕태자의 이복동생 에렌 왕자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 일뿐, 에렌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모후가 되는 헤스데아가 섭정후로 등극하였고, 브리티아는 그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에렌은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늘 그의 어머니 헤스데아 섭정후였다. 거짓 왕의 자리에 앉아 어머니와 그에 관련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끼던 나날 중, 우연히 카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카드는 이복형이자 실각한 에드워드 왕태자에게 자신이 그려줬던 카드였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왕태자와 자신뿐이었다. 평소 시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에렌은 이 카드의 끝에 닿으면 왕태자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뒤를 쫓는다.

카드의 행방을 쫓으면 쫓을수록 에렌은 목적이 같은 자들과 방해하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목적이 같은 자들은 리안, 에녹, 로렌이다.
리안은 살인사건의 피해자 중에 과거 자신의 부하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애나의 자취를 쫓던 중 비밀 클럽에서 에렌과 만나게 되고, 그 후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게 된다.
에녹은 에렌과 악연으로 처음 만났으나 같이 비밀 클럽의 폭발을 피하려다 헤르뮌 대공(자연을 다스릴 정도로 대단했던 브리티아 역사 속에 기록된 스텔라)이 만든 지하에 휩쓸려 그 곳을 빠져나오면서 친해지게 된다. 에렌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에렌의 적들과의 거래로 검투대회에 나가는 등 갖은 고생을 겪지만 위험한 순간마다 에렌이 구해준다.
로렌은 자신을 저주받은 자라고 말할 뿐, 그 카드와 카드판을 없애려고 에렌과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방해하는 자들은 제이드, 검은 남자이다.
제이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조종하여 에렌을 곤경에 빠뜨리지만 막판에는 그의 정체와 함께 용족과 하늘사람이라고 불렀던 종족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검은 남자는 사건 사고가 있는 곳마다(처음엔 비밀 클럽의 폭발 사고에서) 에렌과 마주치는데 후에 제이드와 같이 정체가 드러나며 국왕 시해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카드와 카드판으로 용족과 하늘사람들의 힘을 갖기 위해 네르센과 일로이드가 끼어들고, 나중에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4 (여우사냥)
작성일 : 18-12-31 23:36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13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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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시려면 분명히 이곳을 지나가실 수밖에 없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예!”

 

 지시를 하는 남자는 ‘예!’라고 외친 무리들의 상관인 듯싶었다. 그들은 다들 같은 모양의 남색의 제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수도 내 치안 관리 혹은 왕궁 내 기사들이었다. 단지 그들의 차이는 왼쪽 가슴에 있는 뱃지들과 팔 쪽에 새겨진 줄과 문양의 개수였는데, 이는 계급의 차이였다.

 

 지시를 한 남자, 리안은 마치 전쟁을 자신 앞에 바로 마주하는 것처럼 떨리는 이 기분을 제어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을 포함한 이들의 상관이 곧 나타날 거라 생각하자 다시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밀었다. 상관은 나이가 어려서 그런건지 원래 선천적으로 그런건지 재빠르고 힘이 좋아 제어가 안됐다. 물론 밑에 사람인 자신이 제어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지만 그의 상관보다 더 높은 혹은 같은 사람 혹은 자신이 속한 실질적인 상관, 즉 많은 사람들의 명령으로 자신은 지금 여기에 이들과 서 있었다.

 

 매번 이렇게 왕궁 내에서 작은 전쟁을 치루는 것도 지겨울 법한데 그의 상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비 따윈 없었다. 과거에 상관의 의도는 늘 저지되었던 때는 속상하지만 아닌 척 하는 상관의 얼굴에 안타까웠지만, 현재는 자신이 그렇게 안타깝고 불쌍할 수가 없었다.

 상관은 자신의 계속된 실패를 통해 문제점을 고치며 성장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을 적절히 이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상관의 옆에 있는 베르챠인도 같이 진화했고, 그는 자신처럼 상관보다 높은 사람이나 실질적인 윗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오직 상관의 명만 따르기 때문에 상관이 사고를 쳐도 옆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즉, 자동적으로 자신과도 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 리안은 저 멀리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날이 어찌나 좋은지 유독 한 명의 백금발이 반짝여 보일 정도였다. 침을 꿀꺽 삼킨 후 말했다.

 

 “준비하라!”

 

 “예!”

 

 이 게임은 왕을 잡으면 끝나는 게임이지만, 감히 또 힘으로 제압할 수는 없으니 정확히는 왕이 타고 있는 말을 잡으면 끝나는 게임이었다. 여기서 벗어난다고 해도 말이 없으면 밖으로 빠르게 탈출할 수 없고 뒤쫓아 오는 이들에게 붙잡힐 것이다. 리안은 상관이 제발 여기서 멈춰주셨으면 싶었다. 마지막 관문인 성문까지 뒤쫓는 생각만으로 벌써 지친 기분이 들었다.

 

 벌써 곤봉을 들고 서 있는 제일 앞쪽의 무리가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리안은 자신의 상관, 에렌의 백금발이 더 진해진 것을 보고 그의 본격적인 전쟁이 곧 시작될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오로지 이 두 명을 잡기 위해 자신을 포함한 여럿이 이 좋은 날에 여기에 묶이다니. 심지어 리안을 포함한 몇몇은 왕궁 내 기사가 아닌 이들도 있었다. 그저 상관의 기이한 행동을 시작했다는 정보가 전달된 후 당장 급하게 꾸릴 수 있는 인원들이었다. 그런 상관 덕분에 왕궁 밖에서 일하나 안에서 일하나 환경의 차이와 실질적인 업무의 차이만 있을 뿐 이들과 알 수 없는 유대감이라던가 끈끈함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쉴 때는 쉬고 싶었다. 리안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자신이 모인 사람들을 확인한 사이에 상관께서는 제일 앞쪽에 배치한 곤봉을 든 열을 가볍게 넘었다. 리안도 이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손을 들어 자신의 옆에 있는 기사에게 말했다.

 

 “시작한다.”

 

 리안이 말하자마자 기사는 목에 걸려있던 각진 물체를 입에 대고 불었다. 부우우우웅 굵고 낮은 음이 크게 울리자, 왼쪽에 3명씩 5줄로 정열해 있던 기사들이 에렌의 오른쪽을 파고들었다. 에렌은 파고드는 기사들을 피해 왼쪽으로 피했다. 그러자 기사들은 왼편으로 멀어지는 에렌을 따라가며 횡(가로)의 수를 줄이고 종(세로)의 수를 늘리며 얇은 줄의 대형을 만들며 길어졌다. 에렌은 그들을 피해 왼편으로 기울었다. 리안은 그 때 다시 말했다.

 

 “오른쪽으로.”

 

 이번에는 부우우우웅 하는 소리가 2번 울렸다. 그러자 왼편으로 완전히 기운 에렌의 왼편으로 기사들이 튀어나왔다. 에렌의 오른편을 막은 자들 중 마지막 자를 피했기 때문에 그의 왼편은 비어있는 상태였다. 에렌이 오른쪽의 공격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 짧은 순간을 노렸다. 에렌은 순간적으로 말을 오른쪽으로 틀었지만(리안은 그의 순발력에 속으로 박수를 쳤다) 리안은 그가 다소 피하기엔 늦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에렌의 오른편에서 튀어나온 기사들 중(왼편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3명씩 5줄로 있었으나 리안의 명으로 3줄로 만들었다. 뒤쪽의 남는 2줄의 기사들은 1명씩 3줄 뒤로 길게 섰다) 3줄에 있었던 기사가 말의 고삐를 잡아채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기사는 고삐에 닿지 못하고 넘어졌다. 상관의 뒤에 따라오던 베르챠인이 상관의 오른편에 있는 기사들 대형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베르챠인이 달리던 말에서 그 대형 사이로 뛰어내리면서 몇 명의 기사들이 넘어졌다.

 

 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베르챠인은 한 명을 넘어뜨리려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서로 붙어있어서 도미노처럼 몇 명이 넘어졌다. 넘어진 기사들이 베르챠인이 떨어질 때 받을 예정인 충격을 대부분 흡수했기 때문에 그는 대형에 들어오자마자 중심을 잃을 것도 없이 바로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그래도 일단 리안은 베르챠인을 상관에게서 떼어놓은 것에 만족하려 했다. 앞의 대형들이 베르챠인을 잡고 있는 사이에 상관의 말을 잡기를 희망하며.

 

 그런 리안의 의도를 읽었는지 반대편 대형의 기사들도 베르챠인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베르챠인을 가운데 두고 원형으로 감싼 형태로 보였다. 중간 중간에 바닥이 쓸리는 소리로 베르챠인이 날뛰고 있는데(리안의 입장에서는) 기사들이 막지 못할 거라 리안은 어느 정도 확신했다. 잡지 못한다면, 그들이 충분한 시간을 끌어주길 희망했다.

 

 어느새 리안은 상관이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오는 것이 보였다. 자신을 포함한 말을 탄 기사는 10명이었다. 상관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일단은 인원을 분배하기로 결정했다. 옆에 있는 같은 관할에서 온 이에게 명령했다.

 

 “3명씩 좌, 우, 가운데 3대형으로 나누고, 자네가 가운데 대형에 있게. 그리고 가까이 오시면 동근 형태로 감싼다. 하지만 이는 나의 바람일 뿐, 분명 변수가 생길 것이다. 그 땐 유동적으로 행동하길 바란다.”

 

 리안의 명령을 받은 기사는 이해한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리안의 앞으로 9명의 기사가 3명씩 좌, 우, 가운데 대형을 만들어 꽤 간격을 두어 명령에 따랐다. 상관은 가운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좌, 우 대형의 기사들은 둥근 형태를 빠르게 만들기 위해 근육에 잔뜩 힘을 준 모습이 역력했다. 상관이 거의 가운데 대형에 접근했을 때, 모두가 긴장했다. 곧 짧은 순간 내에 그들 범위 내에서 낼 수 있는 힘과 순발력을 써야할 때가 온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각자 신을 찾던 자신을 찾던 결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상관은 갑자기 멈췄다.

 

 순간 여기 서 있는 모두의 얼굴들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리안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도 그러했으니까. 갑자기 멈춰선 상관은 리안에게서 말을 돌려 자신이 왔던 길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리안은 베르챠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 얼른 명령을 내렸다. 둘을 붙이는 것보단 떨어뜨려놓는 것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좌측 대형은 폐하를 쫓고, 나머지는 여기 남는다.”

 

 “예, 알겠습니다.”

 

 리안은 상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일단은 쫓기로 했다. 혹시 뭔가 또 골탕을 먹지는 않을까 조심해야했다. 리안은 과거에 이 일에 처음 뽑혔을 때를 떠올렸다. 수업에서 도망쳐 성문 밖으로 나가려는 상관을 막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상관은 왕궁 내부 어딘가로 도망쳤다. 자신은 상관을 손수 (잡아) 모셔서 수업을 받으실 수 있게 인도까지 해야 하는 것이 주어진 임무였기 때문에 그를 계속 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관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 자신의 손바닥 안이었지만 자신에게 이곳은 큰 행사나 누군가에게 불려올 때가 아니면 통 올 필요가 없는 장소였다. 심지어 왕궁 밖 보안 소속이라 내부는 잘 몰랐다.

 

 그래도 당시엔 막 기사가 되었던 때라 특히 더 열의가 넘쳤다. 상관을 끝까지 쫓고 쫓았다. 계속되는 추격전으로 서로 지쳐있었고, 상관의 체력도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을 자신도 느낄 즈음 상관은 어느 정원에 들어섰다. 여기서 결판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자신도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정원에 따라 들어갔다. 정원에는 주로 자신의 키와 비슷하거나 훌쩍 큰 식물들이 있었고, 제일 작은 식물이 자신의 배 정도까지 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야를 넓게 보기 어려웠다. 타닥타닥 뛰는 발걸음 소리와 자신의 눈앞에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상관의 옷자락을 따라 쫓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물이 위에서 분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고, 주위에서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하던 임무를 수행을 해야 하나 아니면 비명소리를 따라가나 고민했지만 다행히 상관이 가는 방향과 비명이 들리는 곳이 일치했다. 위에서 내리는 물이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비처럼 계속 쏟아지다보니 상관을 쫓기 더 힘들어졌다. 그렇게 겨우겨우 쫓아 내내 상관의 옷자락만 쫓다가 식물 벽의 미로를 따라 거의 마지막 문에 다다라서야 온전한 상관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추격전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온 힘을 다해 뛰어 상관을 잡았다. 그 때 느꼈던 기쁨과 뿌듯함은 자신의 피로를 지웠고, 마치 먹고 싶은 음식을 충분히 먹은 포만감과 같았다. 그런데 잡은 상관의 얼굴을 본 순간 경악했다. 자신이 찾던 상관이 아닌 다른 아이였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상관의 겉옷자락과 발소리에 의존해서 쫓았는데, 위에서 물이 떨어질 땐 드문드문 들리는 비명소리와 누군가가 지르는 소리들과 소음들 때문에 나중에는 옷자락에만 의존해서 쫓았다. 그 때 바뀌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에 정원에 들어오자마자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이 아이는 체력적인 차이를 맞추기 위해서 (자신은 계속된 추격으로 지쳐있고, 아이는 이제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니) 뒤에서 쫓아오는 나를 기다렸을 수도 있었다. 아이가 자신을 기다릴 때 끊기는 발자국 소리를 저 물소리와 비명소리로 막고, 물로 자신의 시야를 더 좁힌 것일 수도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정리되고 제대로 속았다 깨달은 후엔 이미 늦었다. 식물의 미로에서 나온 그곳은 섭정후와 카야공주가 때마침 담소를 나누고 있었던 장소였다. 약간 젖은 상태의 섭정후와 공주가 시녀들이 받쳐준 우산을 쓰고 그 곳을 떠나려 할 때 제대로 마주쳤다. 공주는 어색한 듯 웃었지만, 섭정후는 못마땅하고 잔뜩 언짢은 표정이었다.

 그 때 다시 예측할 수 있었다. 시간차를 두고 물을 뿌렸고, 이 근처의 물을 마지막으로 뿌렸구나 라고. 그리고 당시 섭정후의 표정으로 보아 처벌에 대한 결과를 생각했었지만, 다행히도 이런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처벌이라거나 이런 건 없었다. 대신 정원을 복구하는 인원들 속에 자신도 속해 있었던 게 처벌이라면 처벌이었다.

 

 리안은 잊지 못할 상관과의 첫 만남 이후로 종종 이렇게 불려왔고, 언제부턴가 자신의 소속이 왕궁이 된 건지 이제는 이 내부도 어느 정도 눈에 익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자신은 누군가를 지휘하는 지위에 놓인 것만 빼고는 여전히 이 자리로 불려와 쫓고 쫓는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상관의 금빛머리가 휘날리는 뒷모습을 보며 오늘은 기필코 모셔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먼저 가겠다. 자네는 따라오고 둘은 혹시 모르니 떨어져서 쫓는다.”

 

 “알겠습니다.”

 

 리안을 따라오던 셋 중 제일 높은 지위를 가진 이가 리안의 옆으로 붙었고, 나머지 둘은 뒤로 멀어졌다. 상관을 잡기 위해(정확히는 상관의 말을) 그를 앞질러 가기 위해 속력을 냈다. 상관도 자신이 가까워진 것을 눈치 챘는지 자세를 낮춰 속력을 더 내려했다. 저 속력으로 계속 달린다면 베르챠인이 있는 곳에 멈출 수 없을 텐데 상관은 무슨 생각인지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역시 베르챠인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

 

 리안은 그곳을 지나치면서 슬쩍 봤지만 아직 기사들이 꽤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거의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서 있는 기사들은 드물고, 대부분은 나가 떨어져있거나 앉아있거나 곤봉에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빨리 이 게임을 끝내야 할 때였다.

 

 상관과의 거리를 더욱 좁혔고, 말의 고삐를 잡을 수 있을 만큼 상관의 오른쪽 옆으로 말을 붙었다. 같이 온 이도 상황을 읽은 듯, 사관의 왼편으로 말을 붙였다. 상관을 가운데에 두고 양 옆으로 가깝게 따라붙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리안은 외쳤다.

 

 “폐하, 이제 그만하실 때가 됐습니다.”

 

 상관은 리안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충분한 거리였지만 안 들리는 듯 앞만 보았다. 하지만 리안은 그의 옆모습에서 올라간 입 꼬리로 그가 자신의 얘기를 듣고 있음을 알았다. 리안은 다시 외쳤다.

 

 “폐하, 아무래도 제게 져 주실 생각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럼 할 수 없이…”

 

 리안은 그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상관이 달리던 말을 갑자기 멈추려 했고, 자신들은 그의 의도를 늦게 읽어 속도를 늦추려 했지만 이미 상관보다 앞으로 더 나왔다. 상관은 말을 멈추며 오른쪽으로 틀며 반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리고 다시 속력을 낼 준비를 하며 리안에게 외쳤다.

 

 “리안! 자넨 다 좋은데 너무 소심하군!”

 

 리안은 겨우 말을 멈추고 상관을 쫓으려 했지만 자신이 따라잡기엔 늦은 것 같았다. 뒤에 왔던 2명이 상관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상관은 대각선으로 달렸고, 그 2명이 당장 방향을 틀어도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없었다. 결국 우리 넷은 다시 상관을 뒤에서 쫓는 위치가 됐다. 아무래도 장소가 넓고, 사고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조심하다보니 상관의 안하무인의 행동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쫓는다!”

 

 “예!”

 

 그나마 한 가지 기대볼 만한 것은 상관은 워낙 체력이 좋아 아직 힘이 남아돌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은 다른 말들에 비해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성문을 통과하려면 아직 10명의 기사들이란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상관은 베르챠인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고, 그 즈음에서 베르챠인은 어느 새 그 곳의 상황을 정리하고 자신의 말을 찾아 상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상관이 베르챠인을 스치듯 지나가자 베르챠인도 그를 뒤따라 성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리안은 그들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그들이 성문 쪽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쫓는 4명, 그리고 성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6명이었다. 잘하면 앞‧뒤로 막을 수도 있겠지만 장소가 넓어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 많아 큰 기대를 걸 수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현재 상황에서 이 방법이 제일 쓸 만했다. 최대한 뒤쪽 4명이 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실패했을 때 같이 협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리안이 상관을 잡는 건 고사하고, 미리 앞서간 앞의 2명과 거의 가까워졌을 때 자신이 성문 근처에 두고 온 6명이 보였다. 아무래도 앞‧뒤로 해서 상관을 잡아야 할 거 같아 리안은 자신의 목에 걸린 각을 불었다. 그 소리와 함께 앞의 6명이 리안을 쳐다보았고, 리안은 명령을 내리려했다. 그런데 그 소리와 함께 자신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상관과 베르챠인이 서로 반대편으로 갈라져 말을 몰았다. 상관은 왼쪽으로, 베르챠인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둘 씩 나뉜다!”

 

 “예!”

 

 리안을 포함한 4명은 둘씩 나눠 쫓아갔고, 앞의 6명도 3명으르 나눠 그들이 가는 앞쪽을 막으려 했다. 리안은 상관을 쫓았는데, 아까처럼 미묘하게 말의 속도가 느려지며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꿔 베르챠인에게 가려하는 것 같았다. 리안은 상관이 오른쪽으로 돌며 원을 그리려 할 때 왼쪽으로 돌아 정면에서 만났고, 곧 앞에 있던 3명도 상관의 왼편을 파고들었다. 상관은 그제야 말을 세웠다. 상관이 말을 세우자마자 리안은 빠르게 말에서 내려 상관의 말고삐를 잡았다.

 

 “폐하,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상관은 리안을 내려다보았다. 오랜만에 본 상관은 여전히 낯빛이 좋아보였다. 계속된 활동으로 빨갛게 상기된 뺨과 약간 그을린 피부가 그를 더 생동감 있게 보이게 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풍성한 백금발, 유독 가로로 기다란 눈매와 그 안에 담긴 푸른 눈빛이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만들었다. 올라간 눈매와 그 밑에 작은 점과 폭이 좁고 둥근 콧방울이 그를 새침해 보이게 만드는 것이 단점이자 장점이었다.

 

 “리안, 잘 지냈는가? 여전히 멋있는 역할은 혼자 다 하는군.”

 

 상관은 그렇게 말한 후 말에서 내렸다. 아직 성장기인 17살의 소년이라 그의 어깨만 했다. 리안이 유독 키가 커서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리안은 상관에게 허리를 굽혔다 피며 말했다.

 

 “폐하, 계셔야 할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흠, 그리하지. 오늘은 자네의 승리군.”

 

 “…”

 

 리안은 여기서 승리한다고 해도 자신에게 뭔가 도움이 된다거나 이로울 것이 없는데 이걸 과연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폐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리안은 말을 마친 후 상관은 팔을 잡으려 했다. 그러자 상관은 리안에게서 빠르게 한 발짝 떨어진 후 날카롭고 새침한 듯 말했다.

 

 “자네, 뭐하는 건가? 날 못 믿는 겐가? 그래도 어쩔 수 없네. 난 누가 날 만지는 걸 싫어하네.”

 

 “송구합니다.”

 

 리안은 까칠하고 까탈스러운 상관의 성격을 잘 알지만 그를 잡지 않으면 다시 놓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 베르챠인이 잡히지 않은 것이 그 불안감과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리안이 직무와 편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상관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상관은 말을 마친 후, 당연하다는 듯 리안의 왼쪽 허리에 있는 칼로 손을 뻗었다. 리안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본 상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웃긴지 박수까지 치면서 웃어서 앞에 있는 리안이 민망할 정도였다. 도대체 그의 상관이 무엇 때문에 웃는지 모를뿐더러 아직 ‘섬세한’시기의 나이라 자그마한 일에도 이렇게 반응한 건가 싶었다. 고민하고 있던 리안에게 상관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리안, 하하. 자네 나와 같지 않은가.”

 

 “…”

 

 리안 자신은 ‘기사’이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의 검을 빼앗으려 한다면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상관과 비슷하다니.

 

 “폐하, 갑자기 그러셔서 저도 모르게…”

 

 상관은 리안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별 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자네 칼 좀 줘보게.”

 

 리안은 상관의 명이 영 못 미다웠지만 거부할 수 없기에 칼을 넘겼다. 상관은 받은 칼을 이리저리 보더니 칼의 손잡이 바로 위인 칼집이 시작되는 부분을 잡고, 칼끝은 리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손잡이 쪽을 내가 잡을 테니, 윗부분은 자네가 잡으면 될 거 같네. 그럼 서로 부딪치는 일 없이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리안은 상관이 내미는 칼끝의 칼집부분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영 뭔가 탐탁지 않았지만 거부할 권리가 없는 자신에게 이것이 최선인 듯싶었다. 칼집을 사이에 두고 몇 발자국 걸었을 때, 뒤에서 여럿 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리안은 순간 베르챠인을 떠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베르챠인이 제일 먼저 보였지만 그건 순간이었다. 리안이 본 베르챠인은 아까 자신과 함께 움직였던 3명에게 막 가까워진 모습이었다. 그들은 상관의 왼편을 막았던 3명으로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도 리안과 같이 돌진하다시피 하는 베르챠인을 발견했지만, 피하기엔 다소 늦었다는 것을 순간 알았다.

 

 베르챠인의 양 옆으로는 2명이 있었지만, 그들은 베르챠인을 가운데에 두고 견제하느라 앞을 늦게 확인한 것 같았다. 잡힐 듯 말 듯하면서 조금만 손 뻗으면 잡을 수도 있는 상태를 유도하면서 베르챠인이 여기까지 끌고 왔을 것이라는 리안은 예상했다. 그 둘은 가까스로 방향을 바꿔 베르챠인 옆에서 빠졌고, 베르챠인은 3명에게 거의 가까워지자마자 왼편으로 틀었다. 그러자 리안은 그 뒤에 3명(아까 베르챠인을 쫓았던)을 볼 수 있었다. 3명은 쫓던 베르챠인이 갑자기 사라지고, 다른 장애물이 들어나자 엄청 놀란 얼굴이었다. 그들이 달려오던 속력으로는 갑자기 멈출 수 없었고, 베르챠인처럼 갑자기 방향을 바꾼다 해도 앞의 3명과의 충돌 범위 내에 있었다.

 

 리안은 피해를 막을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이를 악 물었다. 우선 이 난장판으로부터 상관을 피신시켜야 될 것 같아 리안은 상관의 팔을 잡고 뛰었다. 곧 뒤에서 뭔가 크게 부딪친 소리와 말 울음소리가 뒤엉켜 들렸다. 리안은 일단 상관을 있으셔야 될 위치에 빨리 옮겨드리고 이곳을 정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좀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리안은 상관의 팔을 당겼다. 생각만큼 움직이지 않아 힘이 모자른가 싶어 리안은 좀 더 당겼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는 반대로 상관의 팔은 반대로 움직였다. 의아함에 리안은 뒤를 돌아보았다. 상관은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아쉽지만 이제 그만 헤어져야할 때가 온 것 같네.”

 

 상관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왼손(잡히지 않은)에 든 칼집으로 리안의 손을 때렸다. 리안은 갑작스런 공격에 상관의 팔을 놓게 됐지만 다시 잡으려 팔을 뻗었다. 그 때 뾰족한 칼날이 자신의 턱 앞까지 왔다. 상관이 칼집으로 내리치자마자 반대편인 오른손으로 칼을 뽑아 리안의 품 안으로 파고 들어온 것이었다. 역시 쌍검을 쓰는 베르챠인에게 검술을 배워 양손을 쓰는 상관답다고 리안은 생각했다.

 

 “리안,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네, 요즘은 일이 많아 보기가 힘든 것 같네. 그나마 그대가 나와 어렸을 때부터 놀았던 친구와 같지 않은가. 비록 그대가 늘 술래이긴 하지만 말일세.”

 

 상관은 보기에 기분 좋은 듯 말하는 것 같았지만, 리안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뭐, 그래서 그대가 오지 않아도 재밌는 친구를 사귀어 볼까 하고 있는데 영 그런 친구를 찾기가 쉽지가 않네. 내가 매일 이렇게 날 뛸 수도 없고 말이지.”

 

 “…”

 리안은 진심으로 상관께서 다른 친구 분이 생기길 바랐다.

 

 “그대가 처음에 나를 잡겠다고 했던 때부터 잊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 정도면 지쳐서 떨어져 나갈만한데도 계속 나 인줄 쫓아갔던 걸 생각하면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과거의 모자란 시절의 저를 기억해주시니 그 또한 영광입니다, 폐하.”

 리안은 이런 종류의 대답밖에 할 수 없음을 알지만, 상관께서도 이것이 일종의 반어법이란 것을 아실까 궁금해 하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 하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고 늘 마음속에 담아둘 뿐이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상관께서 다른 곳에 집중하실 때, 칼을 돌려받아야 했다. 정중하게 받을 수 없으니 뺏어 와야 하는데 큰 마찰이나 부딪힘 없이 칼을 받아야 하므로 때를 잘 봐야했다. 상관께서 다른 곳에 집중하실 때.

 

 “어린아이와 여자들이 대부분의 피해자인 연쇄 살인사건에서 범인을 잡았다고 들었어. 항상 수도의 치안을 지켜주어 감사하네.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자네를 도통 볼 수가 있어야지.”

 

 “폐하, 과찬이십니다.”

 그 사건은 잔인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피해자들이 살해당했고 꽤 장기간 미제였기 때문에 상관에게까지 그 소식이 닿았을 것이다. 수도 내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관께서도 당연히 알고 계실 거라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안은 오랫동안 그와 부딪치면서 그가 생각보다 나라 사정에 관심이 많음을 알았다. 밖에서 자주 들리는 상관의 평가는 아직 어려서 모후인 섭정후에게 휘둘린다, 어려서 왕위를 이었기 때문에 모후인 섭정후에 의존한다 등이 대부분이지만 이는 잘못된 평가이다. 단지 상관께선 관심은 많지만, 실질적인 힘을 행사할 수 없음이 맞을 것이다. 섭정후와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자신이 보기에 여태껏 해 온 섭정후의 선택과 상관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것들이 꽤 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이번에 또 승진할 거라 들었던 것 같네. 그 때 또 왕궁에서 보세.”

 

 “…”

 상관은 자리를 뜰 거 같지만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리안은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칼은 내가 가져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려주겠네.”

 

 말을 마친 후, 상관은 리안의 턱 앞에서 칼을 치웠다. 칼이 상관에게 돌아갈 그 찰나를 노리기 위해 리안은 손을 뻗었으나 곧 드리워진 그림자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베르챠인이 말 한 마리를 끌고 그들 곁에 다가온 것이었다. 리안은 사고에 휩쓸리기 전에 저 말을 베르챠인이 가로채서 데려왔을 거라 추측했다. 상관은 베르챠인이 데리고 온 말에 탄 후, 리안에게 손을 흔들며 떠났다. 베르챠인이 그 뒤를 따랐다.

 

 리안은 상관과 베르챠인이 아까와 달리 여유롭게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속도라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주위에 멀쩡한 말이 보이지 않았다. 새 말을 빌리려면 그 또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오늘은 임무실패로 끝내야 하나 싶어 리안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빨리 부상자를 치료하고, 이곳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이 정리될 때 즈음 뒤에 누군가가 오는 것 같은 느낌에 리안은 뒤를 돌아보았다.

 

 말의 안장에 뭔가 작게 새겨져있고, 그 위에 앉은 사람의 팔에 가문을 상징하는 모양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허가를 받고 들어온 가문의 말인 것 같았다. 그가 다가오면서 단순한 모양 같은 것으로 보였던 문양은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졌고, 리안은 그 문양을 볼 수 있었다. 펼쳐진 책 위에 꽃과 흰 깃털 문양이었다. 리안은 익숙한 문양에 미소 지었다. 아직 임무실패에 싸인 할 때가 아니었다.

 

 리안은 그 말에게 달려갔다. 말에 탄 사람은 달려오는 리안을 보고 아는 얼굴인지 깜짝 놀란 표정이었으나 곧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그는 말에 내려서 달려오는 리안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했다.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일세. 자네 혹시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가?”

 

 “예, 도련님. 각하께서 이 상자를 가지고 자택으로 돌아가라고 하셔서 지금 돌아가는 중입니다. 통 요즘은 얼굴 뵐 기회가 없는데 여기서 뵙습… 도련님?”

 

 그는 자신이 타고 온 말에 오르는 리안을 보며 의아한 얼굴로 보았다. 리안은 말에 올라 그가 들고 있는 각이 진 상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 위 안장에서 움직였다가 고삐를 한 번 당겨본 후 리안은 그에게 말했다.

 

 “내가 좀 급해서 그런데 이 말을 좀 빌리겠네. 자네는…”

 

 리안은 자신의 제복 재킷의 안주머니 쪽을 뒤적이더니 그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그는 리안이 던진 무언가를 반사적으로 받았다. 그것은 회중시계였다. 그 위에는 말의 문장과 같은 책과 꽃 깃털이 새겨져있었다. 리안은 또 다시 그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이번에는 그의 제복 재킷이었다.

 

 “그걸 가지고 저 앞에 나랑 같은 옷 입은 사람들에게 가게. 그들 중 아무나에게 보여주면서 말을 달라고 하게. 그럼 말을 내어줄 걸세. 그럼 난 급해서 먼저 가보겠네. 조심해서가고, 나중에 보세.”

 

 리안은 이미 그에게 말을 하기 전부터 말을 앞으로 슬슬 몰고 있어서 그는 ‘나랑 같은 옷’, ‘보여주고’, ‘말’ 까지 그나마 제대로 듣고 그 뒤의 말은 리안이 달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대충 나중에 보자고 한 것으로 스스로 짜 맞췄다.

 

 리안이 떠난 후, 남겨진 그는 어쩐지 왕궁 내 분위기가 묘했던 것이 생각났다. 지쳐있고 누워있던 기사들이 훈련을 받고 난 후라서 그런 줄 알았지만 실은 도련님과 일종의 어떤 일을 함께했나 싶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 많은 기사들과 도련님이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지. 그러고 보니 도련님은 왕궁 소속도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왕궁과 얽히면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나이 들면 알 것이다. 물론 처음엔 그 화려함과 특별함에 매력을 느끼고 매료되겠지만 그게 곧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 독이 되었단 사실을 아는 건 아마 늦은 후회 때나 아닐까. 어쨌든 그는 도련님과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가야했다. 그는 손에 쥔 회중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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