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판타지/SF
라뷔린투스
작가 : Elcaminosolo
작품등록일 : 2018.12.31

‘스텔’ 이라는 힘을 가진 ‘스텔라’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스텔은 대기 중의 에너지이며 무형이기 때문에 매개체를 써야 실체화된다. 이 힘을 다루는 자를 ‘스텔라’ 라고 부른다.

에펜슐렌 대륙 중부에 위치하는 국가 브리티아에서는 에드워드 왕태자가 그의 아버지인 클레이안 왕을 시해한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그에 따라 빈 왕좌와 주인을 잃은 왕관은 자연스럽게 왕의 둘째 아들이자 왕태자의 이복동생 에렌 왕자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 일뿐, 에렌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모후가 되는 헤스데아가 섭정후로 등극하였고, 브리티아는 그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에렌은 자신의 의지 하에 선택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은 늘 그의 어머니 헤스데아 섭정후였다. 거짓 왕의 자리에 앉아 어머니와 그에 관련된 신하들 사이에서 놀아나는 것에 분노를 느끼던 나날 중, 우연히 카드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카드는 이복형이자 실각한 에드워드 왕태자에게 자신이 그려줬던 카드였다. 이 카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왕태자와 자신뿐이었다. 평소 시해 사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에렌은 이 카드의 끝에 닿으면 왕태자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뒤를 쫓는다.

카드의 행방을 쫓으면 쫓을수록 에렌은 목적이 같은 자들과 방해하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목적이 같은 자들은 리안, 에녹, 로렌이다.
리안은 살인사건의 피해자 중에 과거 자신의 부하와 같은 방법으로 죽은 애나의 자취를 쫓던 중 비밀 클럽에서 에렌과 만나게 되고, 그 후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게 된다.
에녹은 에렌과 악연으로 처음 만났으나 같이 비밀 클럽의 폭발을 피하려다 헤르뮌 대공(자연을 다스릴 정도로 대단했던 브리티아 역사 속에 기록된 스텔라)이 만든 지하에 휩쓸려 그 곳을 빠져나오면서 친해지게 된다. 에렌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에렌의 적들과의 거래로 검투대회에 나가는 등 갖은 고생을 겪지만 위험한 순간마다 에렌이 구해준다.
로렌은 자신을 저주받은 자라고 말할 뿐, 그 카드와 카드판을 없애려고 에렌과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방해하는 자들은 제이드, 검은 남자이다.
제이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조종하여 에렌을 곤경에 빠뜨리지만 막판에는 그의 정체와 함께 용족과 하늘사람이라고 불렀던 종족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검은 남자는 사건 사고가 있는 곳마다(처음엔 비밀 클럽의 폭발 사고에서) 에렌과 마주치는데 후에 제이드와 같이 정체가 드러나며 국왕 시해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카드와 카드판으로 용족과 하늘사람들의 힘을 갖기 위해 네르센과 일로이드가 끼어들고, 나중에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3 (도망자)
작성일 : 18-12-31 23:35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960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창문 사이로는 잿빛 같기도 하고 죽은 자의 피부색과 유사한 푸르스름한 색이 하늘을 덮어 우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래도 시간이 낮이었는지 모든 사물은 다 구별 가능하였지만 우중충한 분위기는 지울 수 없었다.

 

 누군가의 부고를 받은 듯한 하늘 아래 창문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건데 탑과 지붕들 그리고 멀리 있는 숲을 보고 있는 그 남자는 꽤 높은 층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잿빛 눈은 창문 넘어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남자가 있는 곳은 높은 층의 개인 서재인 듯싶었다. 그의 뒤로 엄청난 양의 책들이 키가 큰 책장들 안에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 종류는 역사·철학·정치·지리·수학 등 다양했다. 그 안에 꽂혀진 많은 책들 사이로는 어느 하나 튀어나온 책 없이 가지런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그가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고 책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다는 것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술에도 조예가 꽤 깊어보였다. 빈 공간 곳곳에 걸린 영웅적·신화적 의미를 상징하는 그림들에서 화가의 뛰어난 색감과 붓의 터치가 생동감을 돋보이고 있었다.

 그 중 하얀 유니콘 위에 올라 칼을 높이 들고 화려한 복장을 한 남자의 그림은 그의 방에서 제일 눈에 띄는 곳에 걸려있었다. 동맹왕국시대에 위대한 통일을 이뤘던 파히아케 왕을 나타낸 듯한 이 그림은 아마 그가 마음속에서 바라고 바랬던 군주상은 아니였을까.

 

 그는 그렇게 한참을 창문 앞에서 풍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몇 번은 찡그린 얼굴을 하기도 했고, 두통이 오는지 손으로 눈두덩이나 관자놀이 부근을 누르다가도 작은 미소를 내비치기도 했다. 차가운 듯한 잿빛 눈이 접히면서 미소 지었을 땐 청년과 소년의 경계에 있는 그를 순수한 소년처럼 보이게도 하였다.

 

 그렇게 자신만의 시간 속에 갇혀 얼마나 있었을까. 조용했던 그의 세계에 쿵쾅쿵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소리에 그는 드디어 창문에서 고개를 떼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 때 그의 세계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방문자가 문을 두들겼다.

 그는 들어오라고 말을 하려고 입을 떼려는 순간 성질 급한 방문자는 이미 그의 세계에 몸을 들이밀고 있었다.

 

 방문자는 어찌나 급하게 왔는지 자연의 저항을 그대로 받은 모습이었다. 위로 옆으로 뻗친 머리와 헐떡이는 숨 그리고 들어오면서 반쯤 굽힌 무릎으로 한 팔은 문에 살짝 기대어 자신의 무게를 지탱했다.

 이로써 방문자가 뛰어오기도 했지만 그가 높은 층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방문자의 무례한 행동과 흐트러진 모습에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피식 웃으며 입을 떼었다.

 

 “알렉세이. 내가 친구처럼 대해달라고 그렇게 애원했건만. 꼬박꼬박 ‘전하, 전하.’ 잘도 새처럼 쪼아대더니 그새 마음이 바뀐 겐가? 내가 대답도 안 했는데 불쑥 들어오고. 무엇이 자네를 바뀌게 하였는고?”

 그는 의아한 듯 말했지만 친구에 대한 애정이 담긴 말투였다.

 

 알렉세이 프케르 베르챠인. 브리티아 북부 국경 부근, 단결력과 응집력이 강하고 공동체적 성향이 강한 네르센 국가와 마주보고 있는 땅을 다스리는 베르챠인 가문이다.

 

 베르챠인의 기원은 정통 브리티아의 귀족 가문이라기보다는 과거 동맹왕국시대에 네르센 내전에서 떨어져 나와 망명한 귀족(혹은 외국인)이었다는 설이 크다. 그의 영토와 함께.

 그래서 네르센에서 베르챠인은 부역자이자 배반자로 인식되었고, 국민은 국가를 우선시 할 의무가 있는 네르센에게 ‘베르챠인과 같다’ 라는 말은 최고의 욕이자 치욕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권리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브리티아는 네르센의 반응을 의아해하지만 이건 아마 본인들이 싸움 혹은 노력 없이 네르센의 일부 땅을 흡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웃긴 것은 당시 기록된 사료에 따르면 베르챠인은 척 보기에도 내륙 국가의 생김새와는 달랐다. 큰 골격과 키, 황금빛 홍채와 올리브빛을 띄는 동공은 저 북부 켈케인의 모습과 유사해서 네르센 인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공동체적 성향을 가지면 획일적인 것을 좋아하고 튀어나온 모양새를 싫어하는지 그 당시 상황으로 네르센은 외국인에게는 배타적이고 차별적이었다. 그래서 그(베르챠인)가 지위를 가졌어도 국가를 우선시 할 의무감 따위는 생기게 해주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데 내버려 라도 두든가. 전쟁에서는 국경에 있고 잘 정돈된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앞으로 내보내고. 어찌보면 그는 뒤치다꺼리를 했지만 그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는 네르센을 버리고 앞날을 약속한 브리티아의 손을 잡은 것은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브리티아로 입성한 베르챠인은 빠르게 적응해갔다. 타고난 골격과 운동신경이 검술과 만나 현재는 최고의 무가武家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쌍검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양 손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힘든데 서로 다른 검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배움의 초입부터 쉽지 않다. 한 손이 공격적인 기술을 사용한다면 반대편 손은 방어적인 기술을 쓰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양손 다 같은 성향을 가진 기술도 사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다른 귀족가문들과 마찬가지로 장자가 가문을 계승한다. 다른 점이라면, 차남 이하의 남자들 중 한 명이 수도의 왕에게 보내져 왕자들을 보필하거나 그들의 스승이 된다. 그들의 뛰어난 검술을 익히기 위해서도 있지만 일종의 인질 역할로 작용하기도 한다.

 

 “에드워드 전하,”

 방문자, 알렉세이는 얼른 문에서 손을 떼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상황이 급박한 지라 정식 인사말과 예법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세이의 말에 에드워드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알렉세이는 웃건 말건 자신의 말을 이어서 빠르게 쏟아냈다.

 

 “전하. 방금 수도에서 급사가 다녀가기를 국왕 시해 사건으로 전하를 심판대에 세운다 했습니다. 그 심판이 어떤 심판인지 전하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이건 그냥 공개적인 망신을 주어 전하를 처형하겠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렉스 레슈티르… 아니 그 놈이 계략을 쓸 거라고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치고 나올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아까 온 급사 놈은 어찌나 뻣뻣하고 무례한지 역시 그 여자가 뽑은 대리인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뒤돌아 떠나는 것을 죽여 버리고 싶어 두 손이 어찌나 부들부들…”

 

 빠르게 말을 하면서 자신의 할 말을 다 하는 알렉세이를 보면서 에드워드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알렉세이는 말을 멈추고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의 생사가 지하세계와 지상을 오가고 있는데.

 

 “알렉세이. 도대체 누가 자네 가문을 보고 네르센에 기원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네. 영락없는 브리티아 인인데 말일세.”

 에드워드는 웃으며 말했다.

 

 대륙에서 북부에 위치해 만년설과 벗을 하고 사는 켈케인은 극악무도한 날씨가 그들을 철인처럼 만들어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안 하고 묵직한 곰 한 마리 같다고 한다면, 네르센은 그들끼리 잘 뭉치는 성향 때문에 점토 같다고도 하고 ‘국가’ 라는 목적이 존재할 시에는 차가운 심장과 굳은 혀를 가지는 그들을 뱀으로 비유한다.

 

 반대로 브리티아는 개인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된 나라로(특히 사유재산에 있어서) 자신의 할 말을 다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모습을 보고 네르센과 대조적으로 뜨거운 심장을 가진 말이라고 표현한다.(브리티아의 상징하는 동물이 유니콘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하, 지금 네르센이고 나발이고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아실 텐데요. 이제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셔야 될 때인 거 같습니다.”

 왕족을 대하는 알렉세이의 말은 무례하기 짝이 없지만 에드워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알렉세이가 처음 궁에 들어올 당시, 그들의 가문에서 과거 유명했던 선조들과 유사한 실력을 지녀서 궁에 보내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가 장자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안타까워 하다가 장자 계승법을 고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가문에서는 그가 궁으로 떠나야만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의 그들의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알렉세이는 수도로 내려와야 했다.

 

 “선택이라…”

 에드워드는 생각 가득한 얼굴로 다시 한 번 창문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설마 그 심판에 나가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저희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알렉세이는 굳게 다짐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에드워드는 그의 말에웃으며 답했다.

 “무죄로 나오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왜 이러십니까. 그게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미 그 인형극 무대에 서는 법관, 신관, 귀족들 모두 역할을 맡은 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 중 두 명은 아니지 않는가?”

 

 알렉세이는 대답하기를 머뭇거리다가 진실을 회피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대답했다.

 “…….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그 두 분이 그 판을 바꿀 수 있는 분들도 아니지 않습니까.”

 

 “기적도 있지 않은가?”

 

 “그런 걸 믿으시는 분도 아니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씀 하지 마십시오.”

 

 알렉세이의 말에 에드워드는 그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알렉세이, 너라면 어떻게 할 건가?”

 

 “당연히 저라면 섭정후와 결판을 낼 것입니다.”

 

 “흠… 그럼 잃는 게 너무 커. 나의 죄가 벗겨진 것도 아니고 평생 그 의구심이 내 뒤를 쫓아다닐 테고 후에는 그게 나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겠지.”

 에드워드는 눈을 흘기며 얘기했다. 그러다 갑자기 눈동자를 또렷하게 곧 세워 눈매를 올리며 말했다.

 

 “렉스 공작과 카야 공주를 너무 얕봤어.”

 그의 말과 함께 알렉세이의 한 쪽 눈썹이 들썩거렸다.

 

 “그들에 대해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들이 데리고 있는 스텔라 중에서 분명히 공간을 사용하는 자가 있었어.”

 

 에드워드의 말에 알렉세이는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스텔라 중에서 공간을 사용하는 자는 최상위 기술 아닙니까? 고대 아님 파히아케 왕 때 전술 기록을 통해서 있을 법했다 라는 얘기만 있지 실제로 다 회의적이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있었어. 아니면 내게 뒤집어 쓰인 죄가 말이 되지 않아.”

 

 에드워드의 말에 알렉세이는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말을 했다.

 “너무 정보가 없군요. 그 자의 뒤에 있는 스텔라들의 속성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공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전면전을 치를 수도…”

 

 에드워드는 손을 휘저어 알렉세이의 말을 끊었다.

 “안돼. 전면전은 손해야. 져도 문제지만 이겨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럼 증거는 불충분한데 그 시해 현장에 왕태자께서 있었던 것은 무슨 수로 증명한답니까. 그것도 장소가 왕궁 내에서. 그 계획을 짠 놈이나 스텔라를 찾아서 증명하지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일단 올라서서 말씀하십시오. 일단 살아남아야 그 말도 안 되는 입에 담기도 싫은 그 죄를 왕태자께서 저지르시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한숨 쉬듯 말한 알렉세이의 말에 에드워드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래서 그들이 썼던 속임수를 똑같이 써 볼 생각이야.”

 

 “?”

 알렉세이는 앞‧뒤가 꽉 막힌 통로에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지. 당장 나가는 길을 막고 있는 자를 협박하고 끌어내려도 모자랄 때(설득하면서 내걸 조건이 없고 그 자는 다가오면 당장이라도 찌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속임수를 쓰겠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그 때 에드워드가 말했다.

 “알렉세이, 켈렌을 불러줘. 할 말이 있어.”

 

 “…”

 알렉세이는 곧 그가 지시를 내릴 것이니 그 때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굳게 일자로 다문 입술로 그를 한 번 쳐다보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나갔다.

 에드워드는 알렉세이가 나가자 창문 옆에서 걸음을 떼고 방 안을 가로질러 어느 그림 앞에 섰다.

 

 그림에는 그와 어떤 남자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둘은 의자에 앉아 비스듬하게 마주보았다. 그가 다리를 꼬고 웃으며 앉아있다면, 남자 아이는 의자에 앉아 있다고 하기 보다는 누워있었다. 남자 아이의 다리는 쭉 뻗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귀찮고 짜증이 난 듯한 얼굴이었고 그런 모습을 보고 그는 웃고 있었다.

 

 남자 아이는 그보다 나이가 어린 듯 했다. 백금발에 푸른 눈동자와 예쁘장한 얼굴 그리고 얇은 골격이 얼핏 보면 여자 아이로 오해할 만 했지만, 아이가 입고 있는 옷으로 남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와 남자아이는 금사로 모양을 낸 짙은 남색 벨벳 코트에 흰 셔츠를 입고 타이처럼 리본을 크게 묶어 단순함을 피했다. 검은 바지에 같은 색의 구두까지 똑같이 갖추고 있었다.

 형제인가 싶다가도 생김새가 달라 그림 속 주인공들이 진실을 얘기해 주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듯싶었다.

 

 에드워드는 그림 앞에 서서 한참 보고 있을 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갔던 알렉세이였다. 알렉세이 옆에는 그림 속의 남자 아이와 비슷한 또래 남자 아이가 있었다. 알렉세이는 그의 손을 놓고 머뭇거리는 남자아이를 에드워드 쪽으로 밀었다. 그 때 그림만 하염없이 보고 있던 에드워드가 뒤돌아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에드워드는 한껏 웃으며 말했다.

 

 “안녕, 켈렌?”

 

 에드워드의 인사에 남자 아이는 깜짝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려 바로 한 쪽 무릎을 꿇고 왕실 정식 예법을 하려했을 때 에드워드가 말했다.

 

 “켈렌, 괜찮아. 여기는 궁이 아니잖니.”

 

 그의 말에 켈렌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것을 바로 하고 허리를 굽혀 말했다.

 “브리티아의 수호자, 하늘 도시의 대리인, 검은 유니콘, 흑태자를 뵙습니다.”

 

 “켈렌.”

 에드워드가 웃으며 다정하게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아이는 하던 말을 멈췄다.

 

 “네, 전하.”

 에드워드는 켈렌이 어렸을 때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앞에서 아이 같던 모습이 많이 퇴색된 행동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의 형과 다르게 원리‧원칙에 있어서 답답할 정도로 고수하고 고집 센 아이이니(이 부분은 또 형과 비슷하다) 타일러도 앞에서만 ‘네네’ 할 뿐 뒤돌아서면 못 고칠 것을 알기에 에드워드는 어린 나이에 저 혼자 벽을 세운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물론 그의 형은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 하면서 켈렌을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에드워드는 켈렌에게 다가가더니 무릎을 굽혀 켈렌과 눈높이를 같이 했다. 켈렌은 가까워진 에드워드의 얼굴에 놀라며 뒷걸음질 치려했다.

 그 때 에드워드가 켈렌의 손을 잡고 말했다.

 

 “켈렌, 올해 몇 살이 되었지?”

 

 “…. 열한 살 되었습니다, 전하.”

 켈렌은 갑작스럽게 잡힌 손에 뿌리치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말했다.

 

 “손에 굳은살이 단단한 거 보니 형한테 많이 배웠겠는걸.”

 에드워드는 켈렌과 눈을 맞춰 웃으며 말했다. 켈렌은 손을 이성에게 처음 잡힌 부끄러운 아가씨처럼 에드워드를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켈렌은 당황하여 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머뭇거리자 뒤에 있던 알렉세이가 말했다.

 “베르챠인의 이름을 가진 자가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이 당연한 것뿐입니다, 전하.”

 

 에드워드는 알렉세이의 말에 그를 쳐다보며 웃고 다시 켈렌을 보고 말했다.

 “에렌이 켈렌과 동갑이니 그 아이도 벌써 그렇게 컸구나. 근데 장난치고 노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는 영 관심이 없어서 그 아이가 더 어리다고 생각해서 가끔 켈렌 너와 동갑이라는 걸 알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구나. 켈렌, 너에 비하면 정말 철이 없지?”

 

 켈렌은 형을 따라 몇 번 갔던 궁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드워드가 궁을 떠날 때 봤던 그의 동생 에렌 왕자를 떠올렸다. 켈렌이 기억하는 에렌 왕자는 놀고 싶어 하는 작은 아기 여우같았다. 길고 끝이 올라간 눈매와 얇으면서 높은 코가 삼각형 구도를 만들어 꼭 여우를 닮았다고 켈렌은 생각했다.

 

 에렌 왕자는 좋게 말하면 활기차고 힘이 넘치는 아이였다. 진득하니 앉아서 책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앉아서 뭔가를 하는 것 중에서 제일 좋아했던 일은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 형의 수업을 제일 좋아했고, 왕태자와 경주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다.

 (에드워드가 놀아주다가 일을 하러 가야한다던가 학업에 집중을 하러 가야할 때, 형이 가끔 켈렌을 왕자 옆에 밀어 넣었던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켈렌이 기억하는 왕자 중에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우연히 대련을 했을 때였다. 형이 왕자가 제 나이 또래와는 대련을 해 본적 없으니 좀 해보자고 켈렌을 훈련장에 있는 왕자에게 던졌던 적이 있었다.(마치 조련사가 덩치만 크지 마음 약한 사자를 서커스 장에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왕자와 켈렌은 서로 마주보며 정중하게 인사하고 대련을 시작했다.

 켈렌은 최대한 방어하면서 주요 부분을 급습하는 것으로 빠르게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왕자를 상대로 칼을 겨눠 공격하는 것 자체는 그의 귀족의 의무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며 그렇다고 일부러 져 주는 행동은 왕자가 봤을 때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처음 왕자가 공격을 했던 것을 막았을 때, 자신이 뒤로 밀려나면서 켈렌은 정말 깜짝 놀랐다. 정말 그 힘이 어마어마했던 것이었다. 밥 먹고 하루 종일 검만 잡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보다 기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힘은 정말 막기 버거웠다. 특히 왕자가 검을 높이 들어 내려칠 때는 저도 모르게 아찔해 정신이 번쩍 났었다.

 

 켈렌이 에렌 왕자를 떠올리며 그리 좋은 추억이 아닌 것들을 떠올리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모습에 에드워드는 그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줄 알고 다시 말을 이었다.(자신의 동생 때문인지도 모르고)

 

 “뒤늦게 생긴 형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같이 놀고 싶어 했지만 형은 늘 해야 할 일 때문에 함께해주지 못했어. 이렇게 말하면 핑계인 거 같지만, 형인 내가 동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유롭게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였어.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려면 내가 그 아이의 무게까지 짊어져야 하니까 할 일이 많더라고.”

 에드워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켈렌은 에드워드의 마지막 말에 수긍했다. 에렌 왕자가 곧잘 했던 말은 저 바람을 타고 나는 새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유롭게 답답한 궁에서 벗어나 저 세상 끝으로 가고 싶다고 했었다. 왕자가 저런 말을 해서 당시엔 의아했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가 어렸을 때는 섭정후의 동생과 궁 밖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는 걸 듣고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 세상을 만들고 나면 함께 할 시간이 생기니까 그 때까지 기다리자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거 같아. 참 무책임하고 나쁜 형이지, 켈렌?”

 

 “…”

 켈렌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땅 밑만 보다가 비스듬하게 보다가 정면으로 에드워드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에드워드는 자신과 드디어 제대로 눈을 맞춘 켈렌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을 하려고 입술이 열리려고 할 때였다.

 

 “전하, 전하의 동생이 아닌 저도 전하의 진심이 느껴지는데 동생 분께서 전하의 진심을 모르실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키려고 노력하시니 충분히 약속을 지키실 겁니다.”

 

 “고마워, 켈렌.”

 에드워드는 켈렌이 평소보다 빠르게 말하며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자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지만 곧 다시 제 위치로 돌아왔다. 그리고 켈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켈렌,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 아이의 세상에 많은 변화가 올 거야. 그 때가 온다면 나대신 그 아이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겠니? 힘까지 아니어도 좋아. 옆에만 있어줘.”

 

 “…. 네, 전하.”

 켈렌은 예전 같으면 전하께서 단단하게 서 계신데 자신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을 올렸을 텐데 흘러가는 성의 분위기와 대화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존경하고 형처럼 따르던 전하를 가까이서 이렇게 뵙는 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정말 기특하구나. 내 동생이 너의 반만 닮았어도 이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을 텐데…”

 

 켈렌은 허공에 떠 있는 에드워드의 잿빛 눈동자를 보며 그 여우 왕자가 과연 왕태자의 진심을 반이라도 알 날이 올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에게 그것을 알려줄 날이 과연 올까 생각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9 #17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2) 2018 / 12 / 31 219 0 6137   
18 #16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2) 2018 / 12 / 31 237 0 4714   
17 #15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2) 2018 / 12 / 31 236 0 8231   
16 #14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2) 2018 / 12 / 31 241 0 6244   
15 #13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2) 2018 / 12 / 31 238 0 9897   
14 #12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2) 2018 / 12 / 31 226 0 9786   
13 #11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1) 2018 / 12 / 31 222 0 8445   
12 #10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1) 2018 / 12 / 31 223 0 6406   
11 #9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1) 2018 / 12 / 31 224 0 9665   
10 #8 (저주받은 자와 방랑하는 자1) 2018 / 12 / 31 237 0 8350   
9 #7 (추적자) 2018 / 12 / 31 243 0 10187   
8 #6 (추적자) 2018 / 12 / 31 242 0 8313   
7 #5 (여우사냥) 2018 / 12 / 31 252 0 16845   
6 #4 (여우사냥) 2018 / 12 / 31 231 0 13465   
5 #3 (도망자) 2018 / 12 / 31 238 0 9607   
4 #2 (도망자) 2018 / 12 / 31 236 0 7600   
3 #1 (도망자) 2018 / 12 / 31 211 0 6214   
2 등장인물 2018 / 12 / 31 242 0 1239   
1 배경과 에펜슐렌 대륙의 주요국가 2018 / 12 / 31 363 0 72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