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굽의 편자가 땅에 닿으면서 내는 소리와 횟수가 빠르게 반복되는 것을 보아 말을 탄 이는 꽤나 급한 상황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말 위에 하얀 유니콘이 새겨진 깃이 펄럭이는 것을 미루어 왕실에서 파견된 급사 정도로 추측할 수 있었다.

　급사는 자신이 들고 가는 내용이 빠르게 알려야 할 서한인지 아니면 성실한 그의 직업적 책임감(소식을 빠르게 전하는)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리는 말과 같이 숨을 헐떡이며 그는 일을 충실히 실행하는 중이었다.

　빠르게 길을 내달리는 급사 옆으로 많은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어느 한 성채가 그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돌로 촘촘히 쌓아올려 적의 공격을 대비한 크고 높은 요새의 벽이 점점 가까워졌다. 급사는 점점 커지는 성의 모습에 자신의 일을 마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까보다 자세를 더 낮추며 말을 빠르게 이끌었다.

　강 위에 설치된 다리를 빠르게 건너 성문을 미끄러지듯 통과하여 성채 안으로 들어왔다. 성채 안은 깔끔하게 정돈된 길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이어진 길 위에는 고르게 정비되어 돌 하나 튀어나온 것이 없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광장, 거리, 가게가 많은 상업지역과 사람들이 거주 지역에는 중간 중간에 독특한 양식의 건물들,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벽, 완벽한 비율로 재현된 고대시대 때 여러 신들의 조각상 등 이곳의 주인은 미적인 측면에도 신경을 썼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장소처럼 보이는 광장이나 시장은 깨끗하고 깔끔해 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살기 좋아 보이는 곳에선 유감스럽게도 사람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급사는 이를 의아하게 여기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끌 뿐이었다. 여전히 빠르지만 아까보다는 느려진 속도로 가는 것으로 보아 그가 가는 길 끝에 목적지가 있는 듯했다. 그렇게 따라간 그 길에 큰 성이 보였다.

　급사가 그 성 앞에 도달하자 닫힌 거대한 철문이 그를 맞이했다. 철문에는 여러 가지 모양들이 새겨져 있었지만, 유독 유니콘이 발을 위로 들어 올린 모양이 눈에 띄었다.

　급사는 문 앞에 멈춰서 지친 말을 진정시키며 고삐를 당겼다. 그 때 말이 움직이면서 낸 말 울음소리와 말발굽 소리로 문 앞에 누군가 방문하려 한다는 것을 문지기는 알 수 있을 터이지만 닫힌 철문은 꿈쩍 하지 않았다. 급사는 자신을 맞이하지 않는 이 상황을 당황해 하지 않고 오히려 예상했다는 듯 굳은 얼굴로 문과 성벽을 한 번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반역자 에드워드 페레드비안 브리티아는 나와서 이 땅의 위대한 파히아케 왕의 피를 이어 받은 유일 왕 에렌 안크비제올 브리티아의 모후 되시는 섭정후 헤스데아 폐하의 명령을 받으시오.”

　큰 목소리로 외치다시피 했지만, 성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급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말하겠소. 반역자 에드워드 페레드비안 브리티아는 이 땅의 위대한 파히아케 왕의 피를 이어 받은 유일 왕 에렌 안크비제올 브리티아의 모후 되시는 섭정후 헤스데아 폐하의 명령을 받으시오.”

　아까와 비슷하게 큰 목소리가 거대한 성벽을 때렸지만, 성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의 말에 답해 주는 이 하나 없었다. 성 벽 위의 검은 빛깔 털을 가진 유니콘이 새겨진 깃만 바람에 살짝 흔들려 천이 펄럭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소. 섭정후 헤스데아 폐하의 전언을 듣고 있다 생각하고 여기서 폐하의 명령을 전달하겠소.”

　급사는 2번의 시도 아래 열리지 않는 문을 무시하고 자신의 일을 수행하기로 했다.

　‘브리티아’의 성을 가진 왕족에게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일개 급사치고는 건방지기 짝이 없다. 말에서 내려 문을 두드려 알리지도 않고, 말 위에 앉아 고개를 쳐 들고 말하는 급사는 지금까지의 브리티아 역사 내에서 전무후무 할 것이다.

　아마 이 서한을 받아야 할 주인공이 고귀한 ‘브리티아’의 성을 가졌지만 곧 유니콘의 지위를 잃고 추락하여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유니콘에서 낙마하는 것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급사는 품에 있던 말린 종이를 펼쳐 그 곳에 적힌 글을 큰 소리로 읊기 시작했다.

　“반역자 에드워드 페레드비안 브리티아는 전 국왕 클레이안 시해 주범자로 달과 거울의 심판을 받으라는 명령이오. 아비 되는 자를 시해한 그 죄질이 무거워 당장 그 목을 베어 효수하는 것이 법과 윤리에 올바르나 소수 귀족들의 청원과 한 때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것을 고려하여 변론할 기회를 주고자 심판을 받게 함이 옳은 줄 아오. 왕족의 신분을 존중하는 바, 강제로 이행하지 않도록 재판에 자의로 참석하기를 바라오. 유일왕 에렌 안크비제올 브리티아의 섭정후 헤스데아 라리엘드문 브리티아.”

　달과 거울의 심판은 지금은 행해지지 않는 의미 정도만을 가진 공개적인 심판이다. 왕족만이 설 수 있는 심판대로서 동맹왕국시대를 브리티아로 통일한 위대한 왕이었던 파히아케 때 처음 행해졌던 심판이었다.

　사실 달과 거울의 심판이라는 말도 그걸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다 나중에 후대에 변질된 것이다. 파히아케 왕은 자신의 출신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심판 했을 뿐이었다.

　파히아케 왕의 출신은 아직까지도 확실치 않은데 당시에 재위에 오르고 난 후 그의 혈통에 대해 회의적인 귀족들은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아마 대내외적으로 안정기였고, 그들은 넘치는 시간과 힘들을 쓸 데가 없어 잉여의 에너지를 사소한 것에 투자한 것은 아닐지. 감히 생각해본다.

　[사실 추밀원의 인원을 축소하고 제3계급(현재 시민, 국민에 해당; 제1계급- 왕족, 제2계급- 신관‧스텔라‧귀족, 제4계급- 농민, 제5계급- 노예)을 등용하고 제2계급에는 부과되지 않았던 세금(전쟁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명목)을 부과(물론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결국 귀족파에서 제일 군사적으로 강했던 키르옌 공작과의 부딪침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싸움에서 왕이 그를 박살내고 작위를 빼앗아 제5계급으로 만들면서 세금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했던 것들이 귀족들을 그를 끌어내리려고 안달난 사람들로 만든 것으로 이유가 제일 크지 않을까 싶다]

　하루는 회의에서 무식하고 용감한 귀족 한 명이 그의 왕에게 물었다.

　- 폐하, 요즈음은 봄이 벌써 오는 듯합니다.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도 살짝살짝 창문으로 들어옵니다. 저 햇살도 바람도 분명 다 어디에선가부터 오는 것 일 텐데… 제가 지혜가 부족하여 아직도 그걸 모르고, 그저 신께서 보내셨나봅니다 합니다. 마치 폐하처럼 말입니다.

　왕은 그의 말에 분노하지도 않고, 노여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그래 너희들에겐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난 저기로부터 왔다.

　그렇게 말하면서 왕은 돔 형식으로 지어진 궁전 천장을 가리켰다. 궁전 천장의 언덕처럼 솟아오른 돔 부분은 구멍이 뚫려 유리로 메워져있었다. 그 유리로 낮에는 햇빛이 저녁에는 달빛이 들어온다. 왕은 달빛이 들어오는 하늘을 가리켰다.(회의 시간이 저녁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 자리에 있던 귀족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차마 반박도 하지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왕은 그들의 회의 책상으로 거울 조각 하나를 던졌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잔에 들어있던 포도주를 쏟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거울에 포도주가 적셔들자 그 거울은 하늘 위에 떠 있는 성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 성은 대륙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양식으로 지어져 있었고, 그 성을 이어주는 다리 밑으로는 별과 같이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왕과 비슷한 체격이었고(왕은 대륙에서 덩치가 크고 키도 크기로 유명한 켈케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유난히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다. 겉으로 봤을 때는 브리티아 인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몸 일부에 문신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손이라던가 팔‧목 그리고 얼굴에서는 이마와 볼에 새겨져 있기도 했다. 그들이 새긴 문신은 가벼운 기하학 문양에서부터 희한한 동물까지 다양하였다.

　그 회의실 안에 있는 귀족들이 얼이 빠져 넋 놓고 그 거울이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거울에서 검은 베일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보여주었다. 같은 검은색 베일을 쓰고 있었는데 이는 얇은 실로 짜여 있어 그걸 뒤집어 쓴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얇은 백금발의 푸른빛의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의 양 옆에는 하얀 유니콘과 보통 남자 성인만한 검은 새가 있었다.

　여자는 마치 그 거울에 자기가 비치는 것을 알고 행동하였다. 여자는 가까이 다가와 거울을 만지며 웃어 보이고 회의실 내에 귀족들과 눈을 맞추기도 했다. 그러다 여자는 왕과 눈이 마주치자 키득키득 웃더니 뒤에 있던 유니콘을 가까이 오게 했다. 여자는 가까이 온 유니콘의 귀에 무언가를 얘기하는 듯 했고 그 후 거울 위로 이상한 글자를 약 10글자 정도 새겼다. 그 새긴 글자는 테두리가 점점 빛나면서 금빛을 띄었다. 그 때 유니콘이 거울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다음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왕은 알았을 지도 모른지만) 거울 속 유니콘이 회의 책상 위에 떡하니 서 있는 것이었다. 그 책상 주위로 앉아있던 몇몇의 귀족들은 놀라 나자빠졌고, 정신이 있는 귀족들도 자신이 꿈인지 현실인지 눈을 끔뻑끔뻑 깜빡이고 비비기도 하였다.

　유니콘의 하얀 털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책상 위에서 도도하게 자신의 아래 있는 사람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리고 정면에 있는 왕과 눈이 마주치자 발을 들어 날개를 한 번 펼쳤다가 접어 그에게 다가갔다.(이 때 주위에 있던 정상적인 사람은 다시 한 번 놀라 나자빠진 건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다가간 유니콘은 마치 왕이 자신의 주인인 마냥 머리를 숙여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왕은 그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 때 사용되었던 거울의 파편조각은 현재 신의 도시 레테나퀴스에서 보관하고 있다. 보통은 그곳에 있지만 브리티아의 왕족에 관한 큰 일이 생겨 자문을 구할 일이 생길 때 빌리는 입장으로 그 파편을 가져온다.

　그 파편으로 자문을 구했던 굵직한 사례들 중 몇 가지는 왕족의 핏줄 증명, 왕족이 참여한 반역 여부, 큰 전쟁 때였다. 약 100년 전에 빌렸던 것이 마지막으로, 이번에 헤스데아 섭정후가 100년 만에 빌려온 것이다.

　여기에는 꽤 많은 바를 시사 하는데, 그 중 굵직한 여러 이유들 중 하나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레테나퀴스는 이 거울을 빌려주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꺼려한다는 편이 맞다. 왜냐하면 분실의 우려와 파견해야 하는 대단위 인원 고려의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잃어버리게 된다면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신이 하늘에 계시고, 좋고 선한 일을 많이 하여 선택을 받은 사람은 신이 만드신 하늘 도시 아래 젊음으로 영생을 누리고 행복을 누릴 것(그렇지 않으면 지하 어두운 곳에 던져져 대가를 치룬다)이라는 얘기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아이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까지 다 아는 얘기이다.

　그 하늘 도시는 실제로 있는 것인가? 이 의문을 거울 조각이 일정 부분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정말 파히아케왕이 말 신이 만드신 하늘 도시를 보여줬는지는 아무도 확인 할 수 없지만) 이게 분실된다면 그들의 존재 위치가 위험해 질 것이다. 그리고 거울 조각을 포함한 몇 가지 거룩한 성물들이 이 도시를 지탱해 오고 있다.

　그런데 헤스데아 섭정후가 그걸 빌려온다는 의미는 좋게 말하면 신권과 사이가 좋다는 의미고, 나쁘게 말하면 고위 신관들 중에 세속적인 것이고 욕망 있는 자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거울이 무엇을 보여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 과거에 거울이 애매모호한 것만을 보여주어 판정이 바뀐 사례도 꽤 있다. 그런데도 공개적으로 굳이 심판한다는 것은 아직 나이 어린 왕이 재위에 올랐기 때문에 그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는 이유가 강할 것이다. (지위를 잃은 왕태자의 죄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다거나- 이것도 분명치 않다. 심판 후에 결정은 매수된 배심원과 귀족들이 낼 것이니 이미 결과가 결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질적인 결론은 현재 어린 왕을 대신하여 섭정후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함일 것이다.

　급사는 자신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섭정후의 이름을 언급한 것을 마지막으로 종이를 다시 말아 품에 넣었다. 그리고 말의 고삐를 당겨 자신을 거부한 문과 반대로 자신이 온 방향으로 돌렸다. 혹시나 자신의 말에 반응하여 누구라도 나올까 싶어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지만 문은 여전히 닫혀있었다. 그는 자신은 할 만큼 했고 미련이 없다는 듯 뒤돌아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 성으로 돌아온 것과 같이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달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속도를 내며 급사는 성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급사 뒤로 햇빛이 쇳조각에 반사되어 반짝였지만 휘파람 소리와 함께 그 흔적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