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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오빠는...오빠잖아!
작가 : 슫텔라
작품등록일 : 2018.12.31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복 사촌 오빠와의 짜릿한 로맨스!

 
"오빠는...오빠잖아!”
작성일 : 18-12-31 22:34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6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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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돼. 안 돼.”

 형준의 입술은 수민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지난번 방에서의 짧고 화가 난 그런 키스가 아니었다. 금방 샤워를 했는지 형준에게선 은은한 비누 냄새마저 풍겨왔다.

 “오빠는 너랑 이렇게 단 둘이 있는 순간만을 꿈꿔왔어.”

 형준의 두 팔은 수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안되겠다. 오빠랑 침실로 가자.”

 급기야 형준은 수민을 번쩍 들어올렸다. 두 팔에 수민을 가볍게 안은 채 새하얀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수민을 내려놨다. 그런데 그 순간 침대가 푹 꺼져 버렸다.

 

 “안 돼. 안 돼.”

 수민은 중얼거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또 이상한 꿈이야? 무의식에 대체 형준 오빠 밖에 없는 거니. 제발 그만 좀 꾸자.”

 스스로를 탓하며 주섬주섬 출근 준비를 했다.

 

 같은 날 점심시간. 회사 밖으로 나간 형준은 꽃가게에 들렀다. 그리고 난생처음 꽃을 샀다. 하얀색에 수줍게 핑크빛이 물든 리시안셔스 꽃.

 “여자친구 주시게요?”

 초면인 꽃집 주인아주머니가 손님들에게 으레 묻듯 형준에게 물었다. 형준은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이런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여자친구요?”

 혼자 반문하며 실실 웃는 형준을 오히려 꽃집 아주머니는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아,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신가보네. 오늘 여자 분께 고백하시려고 하는 구나?”

 “네? 아...아...”

 오지랖 넓은 꽃집 아주머니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형준은 왠지 모르게 한없이 부끄러워져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꽃다발을 한손에 꼭 든 채 꽃가게를 나왔다.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도 성원그룹 전직원이 마치 자신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형준은 앞만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경보선수처럼 빨리 걸어 결국 사무실까지 겨우 들어왔다. 일단 저녁이 되기 전까지 혹여라도 시들 새라 빈 화병에 손수 물을 담고 꽃다발을 담가두었다. 그리고는 그 꽃다발을 보며 흐뭇하게 웃어댔다. 형준에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누가 보면 정신이 나갔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꽃잎을 살살 건드려보기도 하고 향기도 맡아봤다. 순수하면서도 매혹적인 리시안셔스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리고 그 상큼한 꽃향기를 맡자 형준의 가슴 속엔 저절로 수민의 순수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늘은 수민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민과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은 오늘 오전 급히 정했다. 영아에게 어제 어렵게 용기 내 이별을 고한 후 이젠 잠시라도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수민에게 더 이상 마음을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수민도 솔직한 고백을 원하고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오전엔 아무 일 아닌 듯 수민에게 “오늘 저녁 어때?”라고 카톡을 보냈다. 수민에게선 일상적인 말투로 “괜찮아요.”라고 답장이 왔다. 수민은 갑작스런 식사 제안에 내심 놀랐다. 하지만 이내 형준이 약혼을 앞두고 자신에게 지난날을 사과하면서 밥을 사는 자리일 거라고 여겨 식사 제안을 수락했다. 형준에게 오후 시간은 빠르면서도 더디게 지나갔다. 집중이 되지 않아 일을 하기가 몹시 지루하면서도 한편으론 수민을 만날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떨렸다. 수민을 만나기 전까지 좀 더 많은 말을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이 조금 천천히 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빠른 듯 더딘 듯 낮 12시에서 저녁 6시까지 시계는 째깍째깍 흘러갔다. 야근을 오너의 미덕으로 생각하던 평소와는 달리 6시가 되자마자 탄탄한 스프링처럼 형준은 회사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행여나 수민이 먼저 도착할 새라 서둘러 레스토랑으로 이동하고 자리를 잡았다. 잊지 않고 챙겨온 꽃다발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셋팅하고 초조한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손가락으론 테이블을 조금씩 두드리며 할 말을 생각했다. 약속시간인 6시 30분으로부터 5분이나 지났는데도 수민은 오지 않았다. 조금씩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안 오는 건가? 설마 내가 고백할 거란 걸 눈치 챈 건가?’

 

 그때였다. 땀에 살짝 젖은 수민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오빠 미안해요. 나오려는데 갑자기 부장이 일을 시켜서. 10분이나 늦었네. 많이 기다리셨어요?”

 “하하. 아니. 나도 지금 왔어. 괜찮아.”

 형준은 바보처럼 허허 웃기만 했다. 형준이 주문해놓은 코스 요리가 먼저 나왔다. 소고기를 얇게 썰고 파르마산 치즈가루를 뿌린 차가운 소고기 카르파치오였다.

 “너 요즘 체력 떨어져서 고기 먹고 싶댔잖아. 오늘은 에피타이저부터 고기로 준비해봤어.”

 평소라면 “우와. 오빠 고마워요.”라고 말했을 수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형준을 바라봤다. 아니 평소가 아니지. 아주 짧은 키스를 나누기 전의 둘 사이였다면 수민은 고맙다는 말을 내뱉은 채 허겁지겁 먹었을 일이었다. 하지만 수민의 시선은 소고기 카르파치오 대신 테이블 위의 꽃다발로 향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빠 근데 이 꽃은 뭐에요?”

 형준은 고백도 하기 전 기습질문을 받아버린 셈이 됐다. 프로포즈를 기다리는 보통의 연인사이였다면 꽃다발을 보고도 못 본 척 했겠지. 하지만 이 둘은 프로포즈를 기다리는 보통의 연인 사이도 아니다. 이복 사촌남매사이다. 형준이 자신에게 갑자기 그것도 정식으로 고백을 할 거란 상상을 수민은 감히 하지 못 했다. 게다가 영아와 어젯밤 헤어졌다는 사실조차 수민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형준은 한참이나 테이블로 시선을 떨구다 꽃다발을 내밀지 못한 채 말만 했다.

 “응. 너 주려고. 리시안셔스래. 향이 좋더라.”

 “저를 주려고 사셨다구요?”

 “응. 너 주려고.”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수민은 생각지도 못한 형준의 고백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한 충격을 받았다. 여전히 형준은 꽃다발엔 손을 뻗지도 못한 채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었다. 1분 쯤 지났을까, 형준이 수민에게로 용기 내 시선을 돌렸다. 수민은 만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형준과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밝게 웃었다.

 “에이, 오빠. 정말요? 오다가 주운 거 아니에요? 뭐 어쨌든 예쁘긴 정말 예쁘네. 고마워요. 동생한테 꽃 사주는 오빠 멋있어요!”

 동생한테 꽃 사주는 오빠? 수민의 말에 형준은 갑자기 울컥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 못 한건 아닌데 애써 상황을 자연스럽게 아무 것도 아닌 상황으로 만들려는 수민이 한편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야속했다. 형준은 테이블에 병째 놓인 레드와인을 직접 자신의 와인잔에 콸콸 따라 단숨에 마셨다. 수민은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갑작스러워 겉으론 태연한 척 하지만 속은 한없이 혼란스러웠다.

 “그 꽃 동생한테 주려고 산 거 아닌데.”

 “에이. 오빠 와인 한 잔에 취한 거예요? 오빠 누가 보면 저보다 주량 약한 줄 알겠어요.”

 “동생이 아니라 여자한테 주는 건데.”

 

 드디어. 나오면 안 될 것 같았던 마치 금기어 같았던 고백이 나오고야 말았다.

 “리시안셔스.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래. 정수민. 오빠랑 사귀자. 사촌오빠 사촌동생이 아닌 남자 여자로.”

 부드러운 재즈 음악이 크게 울려 퍼지는 레스토랑에서 이들이 앉은 테이블만큼은 남극처럼 얼어 붙었다. 한 남자의 뜨거운 열정은 공기 중으로 분출되지 못하고 그 남자의 가슴 속에서만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빠. 한 달 뒤에 약혼할 서영아 씨는 어쩌고 이게 무슨 짓이에요?”

 “서영아 씨...그 분하곤 어제 헤어졌어. 더 이상은 못하겠더라. 마음도 안 가는 사람하고 만나는 거. 너랑 사귀고 결혼도 할 거야.”

 “네? 오빠, 무슨 소리에요?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알잖아요. 이건 성형준한테 안 어울리는 너무 비이성적인 행동 아니에요?”

 수민은 형준의 짧은 고백을 들은 순간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울컥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냉정하게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형준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나아가, 내 하나 뿐인 아빠 영훈을 난처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수민이 형준과 사랑에 빠진 사실이 들통 나면 성원그룹 패밀리 안에서 가장 곤혹스러워질 사람은 바로 수민의 아빠 영훈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수민의 너무나도 냉정한 반격에 형준은 내심 서운해졌다.

 “넌 어떤데? 넌 나 안 좋아? 오빠 지금은 그냥 비이성적이고 싶은데. 사랑할 때도 이성적이면 그게 사랑이야?”

 형준은 손을 뻗어 수민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수민은 그 손길을 뿌리쳤다.

 “지금은 비이성적이고 싶다구요? 그럼 그 다음엔요?”

 “내가 다 계획을 짜놨어. 물론 어른들 설득시키는 거 쉽지 않겠지. 하지만 충분히 설득시킬 수 있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지금까지 다 그 분들이 시키는 대로 아니 기대하는 대로 내가 먼저 알아서 기대에 부응하면서 살아왔어. 이런 내 인생에 사랑 하나만큼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은데. 나는 이복 사촌동생 정수민말고 여자 정수민이 내 옆에 있으면 좋겠는데.”

 수민은 형준의 고백을 들으며 점점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아무리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맨 형준이라지만 어른들을 설득시키고 세상의 수군거림을 감당하는 건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다.

 “그럼 내 감정은요? 오빠랑 키스 한번 했다고 내가 아직까지 오빠 하나만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형준은 포기시킬 방법은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 수민은 마음에도 없는 독한 말을 내뱉었다. 형준은 생각지 못한 모진 말에 할 말을 잃고 수민을 빤히 바라봤다.

 “저 남자친구 생겼잖아요. 그런데도 오빠가 이러는 건 저랑 제 남자친구를 무시하는 거예요. 저 재영 씨 많이 좋아해요.”

 “정말 많이 좋아해? 그럼 다 나 혼자 착각이었던 건가...난 우리가 서로를 원한다고...”

 혼자 중얼거리는 형준에게 수민이 다시 한 번 확실히 쐐기를 박았다.

 “처음엔 저도 설렜죠. 근데 오빠가 서영아 씨랑 차 안에서 키스하는 모습 본 후로 마음 정리 다 했어요. 그때 완전히 정이 떨어졌거든요. 오빠가 아무리 서영아 씨랑 헤어졌다고 해도 그거랑은 별개에요. 어차피 우린 이어지지도 못할 사이고. 이어져서도 안 되는 사이고. 지금 만나는 재영 씨 충분히 좋은 남자고요. 미안하지만 오빠 저 먼저 일어날게요. 재영 씨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걱정이 돼서요.”

 

 형준은 매몰차게 일어서는 수민을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두 손으로 수민의 팔을 붙잡았다.

 “너 정말...”

 그러자 수민은 다시 한 번 형준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빠...오빠는... 오빠잖아요....”

 더 이상 형준은 수민을 붙잡을 수 없었다. 두 손엔 스르륵 힘이 풀렸다. 수민은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레스토랑을 나갔다. 곧이어 최상급 한우 스테이크가 테이블로 서빙됐다.

 “저...이 스테이크는 한우 투쁠러스 등급 드라이에이징으로 저희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

 상황을 눈치 챈 웨이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우물쭈물 서 있었다. 최상급 한우스테이크를 내온 웨이터는 세상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형준을 세상 가장 초라한 남자로 만들었다.

 “오빠는... 오빠잖아...”

 형준은 수민이 남기고 간 말을 레스토랑에 앉아 혼자 중얼거리며 되새겼다.

 

 수민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지만 막상 나오니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했다.

 교외라 대중교통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일단 버스 정류장이라도 나올 때까지 무작정 걸었다.

 인적이 드문 황량한 벌판길을 걷고 또 걸었다.

 ‘끼익!’

 그때 뒤에서 차 한 대가 쌩쌩 달려오더니 수민 옆에 끼익 소리를 내며 섰다.

 “합승하실래요? 저 서울 가는데.”

 새빨간 미니 쿠퍼 운전석에 탄 남자는 수민을 향해 소리쳤다.

 남자는 머리는 샛노랗게 염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유난히도 동그란 안경을 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타시지. 편하게 모셔다드릴게요.”

 “아닙니다...”

 “쳇, 꼴에 또 튕기네.”

 남자는 빈정 상했다는 듯 중얼거리더니 다시 부웅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수민은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서러워서였다.

 저 따위 이상한 사람들은 취재하면서도 많이 만나 아무렇지 않았다.

 눈물이 흐르는 건 형준 때문이었다.

 ‘나도 오빠가 준 꽃다발을 받고 싶었는데...받으면 안 되는 거잖아.’

 함께 동네를 걸으며 설렜던 순간, 한강에서 느낀 두근거림, 방 안에서 나눴던 짧지만 뜨거운 키스.

 모두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수민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도로 옆 풀숲에 주저앉았다.

 “엄마~”

 눈물이 터지며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엄마” 소리가 나왔다.

 한참 동안 눈물을 펑펑 흘렸다.

 “손님. 타실 건가요?

 그때 택시 한 대가 앞에 와 섰다.

 수민은 기운 없이 택시에 올라탔다.

 “한남동 51번지로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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