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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홍귀
작가 : 연수희
작품등록일 : 2018.12.31

‘홍귀’라고 들어봤는가? 사람의 붉은 피를 거죽처럼 몸에 흠뻑 뒤집어쓰고 다닌다 하여 붙여진 어느 악귀의 이름이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자 붉은 악귀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붉은 피를 흠뻑 뒤집어쓴 악귀의 모습을 두고 ‘홍귀(紅鬼, 붉은 악귀)’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게 바로 붉은 악귀, ‘홍귀’다.

500년 만에 다시 세상 밖에 나온 홍귀, 홍귀를 쫓는 여인 연.

복수를 꿈꾸는 여자와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

 
18. 각자의 계획
작성일 : 18-12-31 21:09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7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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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갓을 벗으시오.”

 

  심부름꾼의 명령에 남자의 고개가 사선으로 기울어졌다. 그늘진 눈동자가 무척이나 시려 심부름꾼은 덜컥 압박을 느끼고 말을 더듬거렸다.

 

  “이, 이 저택의 아가씨 앞에서 예는 지켜야 될 것 아니겠소? 삿갓을 벗고 얼굴을 보여드리란 말이오.”

 

  “하지만 저 발 너머에 그 ‘아가씨’는 없지.”

 

  그가 앞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의 앞에는 옥구슬로 꿰어진 발이 여러 개 겹겹이로 내려져있었다.

 

  심부름꾼은 속이 찔렸다. 어, 어떻게 알았지?

 

  남자가 낮은 어조로 다시 말했다.

 

  “아예 아무도 없군.”

 

  “아, 아니, 그… 어찌?”

 

  그의 말대로 발 너머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영서의 이름이 적힌 나무패만이 의자 위에 덩그러니 세워져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약혼자도 사사로이 만나지 못하는 영서가 한낱 호위 따위의 외간남자를 쉬이 만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게 지금 뭐하자는 거지?”

 

  “눈, 눈치가 참 빠른 사람이오?”

 

  당황한 심부름꾼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메기처럼 가늘게 난 수염이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변명이 전혀 안 통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 이해해주시오. 아니, 이해해주세요. 귀한 아가씨잖아요? 사실 이게 당연한 예법입니다. 외간남자와 절대 한방에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고귀한 몸이십니다. 더욱이 아가씨는 약혼도 하신 몸이라 혹여 부정이라도 타면 세간에서 뭐라고 떠들어댈지. 아가씨의 심부름꾼인 나도 아가씨를 직접 뵈지는 못하고 하녀를 통해 명령을 받드는…….”

 

  심부름꾼은 끝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가 팔을 움직여 그의 입매를 한번 쓸었기 때문이다. 뭔가가 맘에 안 드는 모양이다.

 

  그의 고요한 동작 한 번에 그의 품에서 차가운 향기가 흘러나왔다.

 

  심부름꾼은 숨을 꿀꺽 삼키다 실수로 그의 향을 크게 들이켰는데 그 향이 다시 몸 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은 않고 심부름꾼의 몸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심부름꾼은 움찔움찔 떨며 그에게서 세발자국 떨어졌다. 손가락 끝부터 몸이 저릿해온다.

 

  “왜 나를 불렀지?”

 

  그가 물었다. 목소리가 참….

 

  “다름이, 다름이 아니라 아가씨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이 있어 그것을 좀 해결해주었으면 하여….”

 

  “간단히.”

 

  심부름꾼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 태부어르신의 목소리도 이토록 섬뜩하지는 않았다.

 

  “그쪽이, 그쪽이 늦은 밤에 부둥켜… 잠깐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 물음에 줄곧 무관심하게 서 있던 그가 이상해졌다. 그의 턱이 일순 단단하게 굳어졌다.

 

  검은 삿갓아래 눈동자가 이름을 묻는 까닭을 소리 없이 물었다. 아니, 묻는 것이 아니라 질책하고 분노하는 것 같았다.

 

  “부르기 편하게…. 아니, 됐습니다. 노려보지 마십시오.”

 

  단지 이름을 물어봤을 뿐인데 왜 저리 정색을 한담? 혹시 이름이 개똥이나 팔푼이 뭐 그런 촌스러운 것이라 말하기 창피한 걸까?

 

  “그, 삿갓나리께서 좀 맡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자가 여전히 반응을 주지 않아 심부름꾼은 홀로 얘기를 이어나갔다.

 

  “맡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나리가 늦은 밤에 정분을 쌓았던 그 계집애입니다.”

 

  심부름꾼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리고 눈알을 간신히 위로 굴려 그를 흘끗 살폈다. 그런데 남자의 반응이 참 냉정했다.

 

  야밤에 정분난 상대에 대해 얘기하는데 남자의 반응은 마치 지나간 개똥에 대한 것을 들은 것 마냥 무미건조했다.

 

  “왜 모른 체하고 있습니까? 그 연갈색 계집애 말입니다. 비 오는 밤에 둘이서 치덕거리고 있었다면서요? 저택에 소문이 다 퍼져있는 얘기인데. 목격자도 있구요….”

 

  “…….”

 

  묵묵부답. 한번 정분을 쌓은 것으로 입을 싹 닫겠다는 건가? 하긴 그것이 이롭지.

 

  “그 계집애는 우리 아가씨의 약혼자이신 유오군 마마의 노비인데, 그년이 글쎄 사내란 사내는 죄 꼬시는 요부지요. 천한 노비 년이 곱상한 얼굴 하나 믿고 아주 오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뿐이렵니까? 우리 아가씨의 약혼자도 단단히 꿰었답니다. 덕분에 아가씨의 마음이 항상 구멍이 숭숭 뚫린 벌집 같으시죠.”

 

  심부름꾼이 짐짓 눈물을 훔쳤다. 눈가는 바싹 메말라있었지만.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년이 손 씨 가문의 유일한 장자이자 후계자이신 영호 도련님의 넋마저 쏙 홀렸으니, 난다 긴다 하는 기생년들도 그년 앞에선 고개도 못 들 겁니다.”

 

  쯧쯧 심부름꾼은 혀를 찼다.

 

  “그 음탕한 년 때문에 약혼자의 명성, 그리고 가문의 이름이 바닥에 곤두박질칠까 아가씨께서 매일같이 마음을 졸이고 계십니다. 아가씨의 약혼자는 워낙에 고매하신 분이라. 해서 말입니다….”

 

  그가 한숨을 내쉬어 말을 도중에 잘랐다. 심부름꾼은 눈을 껌벅거렸다. 뭐야?

 

  “참 변함이 없어.”

 

  “예?”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는데 그 본성은 항상 그대로란 말이야.”

 

  “예에?”

 

  그가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려 심부름꾼의 얼굴이 멍청해졌다. 이 남자가 뭐라고 하는 거야? 허우대는 멀쩡해서는 사실 어디 모자란 놈인가?

 

  “나는 네가 말한 그 연갈색 계집애와 정을 쌓은 적이 없어. 나는 더 이상 그 누구와도 정을 쌓지 않아.”

 

  심부름꾼이 펄쩍 뛰듯이 놀랐다.

 

  “예?”

 

  “가서 네 아가씨한테 전해라. 약혼자의 명성을 위한다는 구실 좋은 명분은 집어치우고 그냥 눈에 거슬리는 연적의 목을 자기 손으로 직접 조르라고 말이야. 그게 더 간단하지 않나?”

 

  심부름꾼이 대경실색했다.

 

  “어찌 감히 그런 망발을! 우리 아가씨가 어떤 가문의 아가씨인 줄 알고!”

 

  “손 씨이지. 내가 아주 잘 알지.”

 

  그가 웃었다.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우아하게 연적을 없애버리고 싶은 모양인데, 그런 음침한 속내를 가진 여자와 약혼한 남자라니. 고르는 수준하고는. 떨어질 명성 따위 아예 없겠는데?”

 

  “입 조심하시오! 약혼자 분이 뉘신 줄 알고! 유오군 마마이십니다! 왕족이라고요!”

 

  그럼에도 남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여유가 만만했다.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심부름꾼은 씩씩거렸다.

 

  “지금 그쪽이 내뱉은 망언을 내가 즉시 태부어르신께 고하면 그쪽 머리는 단박에 바닥에 떨어질 거요!”

 

  “해.”

 

  그가 팔짱을 끼고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검은 삿갓 속의 얼굴이 심부름꾼을 비웃고 있었다.

 

  심부름꾼은 등골이 오싹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잠시간 침묵이 흘렀고, 심부름꾼은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다시 본론을 꺼내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 그냥 해주었으면 합니다. 사례는 아가씨께서 톡톡히 해주실 테니.”

 

  심부름꾼은 아가씨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 빈손으로 돌아갔다가는 아가씨가 건장한 호위들을 시켜 자신의 궁둥이에 곤장을 처박을 것이다.

 

  “하녀들의 엉덩이가 가벼운 것은 본래 자주 있는 일이죠. 그리 흔한 일도 아닙니다. 그렇죠?”

 

  동의를 구하듯이 말했지만 남자는 여전히 입이 무거웠다.

 

  저 검은 삿갓이라도 벗으면 좀 얘기하기 편하련만, 꼭 저승에서 올라온 악귀 같잖아. 심부름꾼은 남자가 싫고 무서웠다.

 

  “그리고 그런 하녀들을 코에 손 안 대고 푸는 격으로 없애는 방법이야 너무나 간단하죠. 진정한 사내라면 응당 그 방법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나는 분명 네가 말한 그 여자와 정을 쌓은 적이 없다 했을 텐데. 단순히 빗속에서….”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날아오는 칼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단순히 빗속에서 부딪혔을 뿐이야.”

 

  “중요한 건 소문이죠. 모두가 그 소문을 믿고 있고 있잖아요. 그럼 그건 사실인 겁니다.”

 

  심부름꾼의 마지막 말에는 흉흉한 기운이 가득 깃들어있었다.

 

  “그냥 소문에 살만 붙여주시면 됩니다.”

 

 

 

 ***

 

 

 

  “앙큼한 년.”

 

  어느 사내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무척이나 악의적이었다.

 

  삐뚜름하게 올라간 입에는 지저분한 수염이 한 가득 붙어있어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먹고 낀 음식찌꺼기나 더러운 먼지 같은 것이 부스스 떨어져 무척이나 불결했다.

 

  그는 선명한 청록색 의복을 입고 있었고, 허리띠와 소매에는 이무기의 문양이 깊게 박혀있었다. 손 가의 호위복이다.

 

  “내 말이 그거 아니겠어?”

 

  똑같은 청록색 의복을 입은 다른 호위가 수염호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여러 호위들이 잠시 짬을 내어 말린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싸구려 항아리 술을 꼴깍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이 저택을 지킬 수가 없어 그들은 술로 긴장된 정신을 느슨하게 하고 있었다.

 

  붉은 악귀가 나돈다는 이 저택의 하루하루는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모두 숨 쉬는 것도 버거워하고 있었다.

 

  “그 연갈색 계집애, 지가 무슨 영서아가씨처럼 귀족규수라도 된 듯이 도도하게 굴더니, 결국 그런 엉덩이 가벼운 년이었군. 흥! 주인의 눈을 피해 통정을 저질러?”

 

  비가 쏟아지는 늦은 밤, 오만하리만치 어여쁜 연갈색 천민노비가 저택의 새 호위와 눈이 맞아 다정한 주인을 배반하고 남몰래 난잡한 짓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저택을 휘저었다.

 

  호위, 하녀, 하다 못해 저택의 똥개까지 이 사실에 대해 수군대고 있었다.

 

  “천것이 암만 좋은 때깔 이어봤자 역시 천것이지!”

 

  “암! 지는 천한 노비 년 주제에 우리한테 먼저 공손하게 꾸벅 인사할 생각은 않고 번번이 팽 돌아서버렸잖어! 곱씹을수록 괘씸한 년이야.”

 

  신분이 천한 노비들의 삶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 노비들이 평민들에게까지 짓밟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다.

 

  하물며 신분이 천한데 성별이 계집이기까지 하면 일찌감치 삶의 끈을 놓는 것이 이로웠다. 쓸데없는 저항은 마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천민계집의 배가 불러오는 일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고, 무척이나 빈번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누군지는 절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라 할 수도 없었다. 앞서 말했듯 그녀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어디 귀족뿐이겠는가.

 

  그렇기에 천민여자들은 자신의 뱃속에 있을 아이가 딸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랑은 줄 수 없어도 불행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것이 나 자신의 삶이었으니까….

 

  주인의 입장에선 여자노비가 애를 낳으면 그 애도 노비가 되는 것이니, 재산이 느는 것이나 다름없어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주인 몰래 다른 사내의 아이를 가진 것은 큰 죄라 여겨 천민여자는 출산을 한 뒤 곤장 10대를 맞는 벌을 반드시 받아야만 했다.

 

  그들에게 ‘거부’란 선택지는 없다.

 

  아이를 낳다 죽으면 그 시체는 깊은 숲에다 버려 짐승들이 먹게 두었다. 남자노비들의 시신도 그런 취급을 받기는 똑같았다.

 

  이러한 곳, 이러한 생각이 팽배한 유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권력의 정점인 손 씨 가문에 속한 호위들의 은근한 추파를 과감히 자르는 연의 태도는 그들을 분노케 했다.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벌레가 자신들의 발을 깨물고 머리 꼭대기에 우뚝 올라섰다고 믿고 있었다.

 

  “하다못해 바지(남자노비)들도 우리한테 인사 꼬박꼬박하고 먹을 것도 종종 해갖다 바치는데!”

 

  “저 주인 믿고 그 지랄하는 거지, 그 망할 년.”

 

  “주인? 유오군?”

 

  호위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술에 취해 그만 큰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정신이 몽롱해져 그들은 거리낄 게 없었다.

 

  “이게 바로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격이로구먼! 그렇게 애지중지 물로 빨았는데 정작 딴 놈한테 뺏기다니!”

 

  킬킬거리는 웃음 사이로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근데 그 새로운 호위가 대관절 어떤 놈이길래 그 노비 년을 꿰어냈대? 우리들이 살살 말을 걸었을 땐 시큰둥했던 년이.”

 

  시큰둥했다 뿐일까. 한번은 눈치 없는 다른 녀석이 그 연갈색 계집애에게 추근대는 것을 유오군에게 된통 걸려 입안이 터지도록 매를 맞았고 결국 저택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손 태부는 이 일을 눈감아주었다. 오히려 온화한 유오군이 이성을 잃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듯했다.

 

  “그 있잖아, 검은 삿갓을 쓰고 우중충하게 있는 놈 말이야. 별로 말도 안 하고.”

 

  “어? 저놈 아니야?”

 

  누군가가 턱짓을 했고, 모두가 그 방향을 보았다.

 

  검은 삿갓을 쓴 남자가 저택의 복도를 유유히 걷고 있었다.

 

  “이봐!”

 

  수염호위가 그를 불러 세웠다.

 

  “이리 와서 같이 한잔 하지?”

 

  검은 삿갓의 남자는 그 제안을 말끔히 무시했다. 제 갈길을 가는 그를 보며 호위들 사이에서 “저 싸가지 없는”이라는 욕이 튀어나왔다.

 

  수염호위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술병을 들고 검은 삿갓에게 비칠비칠 다가갔다. 그리고 삿갓남자를 자극했다.

 

  “그래서 그년은 어떠하든?”

 

  “…….”

 

  “성질머리는 사나워도 생긴 것은 예쁘장하니 감칠맛은 있었을 거야, 그렇지?”

 

  삿갓남자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으나 호위들은 모두 술에 취해 감각이 둔해져있었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만이 날카로워졌다.

 

  “역시 계집애는 예쁘고 봐야 돼. 그러니 천대받는 다른 노비들이랑은 다르게 주인에게 예쁨도 받고 그 목숨 줄도 여적 멀쩡히 붙어있… 아악!”

 

  비명이 웃음소리를 찢었다.

 

  호위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염호위의 목이 검은 삿갓의 남자의 손에 쥐어져있었다.

 

  “이놈이! 당장 그 손 안 놔?!”

 

  호위들이 옆구리에 찬 검의 손잡이에 손을 댄 채 으름장을 놓았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힘을 주어 으드득 하고 목뼈와 근육이 서로 어긋나도록 했다.

 

  소름끼치는 소리가 고막을 울리게 했다.

 

  그 소리를 음미하는 듯, 그가 계속해서 손아귀에 아주 천천히 힘을 주었고 수염호위 역시 그 고통을 음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수염호위는 바동거리며 자신을 붙잡은 삿갓남자의 팔을 때리고 할퀴었지만 마치 바위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고 숨이 안 쉬어져 머리가 찌릿하게 아프다. 수염호위의 입에선 허연 거품과 토사물뿐만이 아니라 피도 섞여 나왔다.

 

  ‘죽음’이라는 것이 가까워져온다는 걸 느꼈다.

 

  “놓으라고, 이 미친 새끼야!”

 

  동료가 검을 뽑고 달려들었다. 삿갓남자가 그놈에게 수염호위를 던졌다.

 

  쿵 소리와 함께 그들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 이봐! 괜찮아?”

 

  “세상에, 정신을 잃었어!”

 

  수염호위는 흰자를 훤히 드러낸 채 바들바들 떨며 다 죽어가는 짐승의 소리를 냈다. 목덜미에는 삿갓남자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무지막지한 힘이다.

 

  “이 자식이!”

 

  “꺼져.”

 

  삿갓남자가 오연하게 명령했다. 호위들은 움찔했다.

 

  삿갓 아래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에게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잠시간 호위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공포에 질려있는 호위들을 내버려두고 다시 그의 갈 길을 갔다.

 

  그는 떠나면서 자신의 뒷목을 힘껏 할퀴듯이 쥐었다.

 

  그의 뒷목에 깊은 문양이 흉터처럼 새겨져있었다.

 

 

 

 ***

 

 

 

  연은 이토록 빨리 그와 다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열이 어느 정도 내리자마자 연은 말끔히 씻은 뒤 옷을 갈아입고 머리도 단정히 묶어 올렸다. 늘 그렇듯 머릿수건으로 머리를 돌돌 감아 머리카락 한 올도 삐져나오지 않게끔 했다.

 

  마냥 끙끙 앓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때 본 그 붉은 악귀가 무엇인지,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알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유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내 분수에 맞게, 그리고 정확하게.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하녀로서의 일을 하면 된다.

 

  행주치마를 두르고 부엌간에 가는 도중, 일부러 우연인 척 별채 쪽으로 빙 돌아갔다.

 

  별채는 경호가 아주 삼엄했다. 그곳의 호위들은 모두 송장 같은 얼굴로 별채에 접근하는 모든 것들을 귀신같이 꿰뚫어보았다. 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별채의 호위 하나가 연이 기웃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썩 가거라.”하고 호통을 치듯이 화내었다. 연은 고개를 조아리고서는 한 번 더 재빠르게 별채를 살핀 뒤에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다 앞을 보지 못해 누군가와 부딪칠 뻔하였다.

 

  부딪치지 않게끔, 상대가 연의 팔과 어깨를 잡고 세웠다.

 

  “아, 송구합….”

 

  고개를 든 연은 상대를 보고 굳었다.

 

  검은 삿갓의 남자였다.

 

  그가 말했다.

 

  “너를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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