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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카이샤하스 제국 1권 ; 아이린 황비 폐하
작가 : Hella
작품등록일 : 2018.12.10

카이샤하스 제국의 황태자, 카우라 카이샤하스.
안하무인 독불장군인 그는 사실 남몰래 사랑하던 기억속 소녀가 있었다.

자그마한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가 데려온 새어머니가 그 소녀였다는거...?

아니, 저기요, 아버지. 계급장 다 떼고 얘기해 봅시다.
당장이라도 아버지 멱살잡고 패륜을 저지르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결혼해버린 첫사랑에 한껏 비뚤어졌지만, 어느새에 그는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며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이건 온갖 음모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카이샤하스 제국 황궁에 여러분을 꼬셔서 데려가기위한 달콤한 첫걸음이에요.....ㅎ

정치물과 전쟁물에 로맨스 두방울 뿌려 봤습니다. 심심해보여서 브로맨스도 한스푼 넣었고요, 오만사람들을 다 끌어모아 얽어놓는 바람에 등장인물 많습니다.

난 코난같은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읽어주는것만도 고맙습니다. 제가 꿈이 좀 커요ㅎ

언제나 행복한 하루 되시고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2막;정상회담_19화
작성일 : 18-12-31 20:49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8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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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흑 같은 어둠 속, 아주 작은 불빛만이 켜져 있는 방에서 카우라가 눈을 떴다. 그는 이불을 걷어내고 느릿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외출 금지>

 

  그것은 그저께에 아이린에게 몹쓸 말을 했던 카우라의 죗값이었다.

 

  사실 '외출 금지'라는 것은 황태자인 입장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이었다. 체벌을 시키자니 황족의 옥체에 함부로 손 댈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며, 황족 된 자에게 허드렛일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황제는 직접 몽둥이를 들고 황태자를 때릴 정도로 그를 아끼는 부모 된 마음도 없었고, 그런 체통머리 없는 짓을 할 정도로 생각 없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나마 그런 벌 같지도 않은 벌이 먹혀드는 이유는, 카우라 또한 외출 금지를 굉장히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승마를 좋아하고, 검술 대련에 능숙한 그는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면 십 분을 못 버티고 좀이 쑤셔 하는 사람이었다. 카우라는 벌을 받는 이틀간 식사와 샤워 시중을 드는 궁인들 외에 어느 누구도 방문하지 않는 자신의 방에서 하루 종일 먹고 자는 것을 반복했고, 이제는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았다.

 

  정상 회의인지 회담인지로 외국 왕들까지 와 있는 관계로, 이 거대한 황궁 안에서 <외출 금지>벌을 받는 카우라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벌건 대낮에 아버지, 저 좀 보시라며 대놓고 본궁 앞을 싸돌아다니는 짓만 안한다면 슬쩍 산책을 즐겨도 됐을 법 했지만 카우라는 왠지 귀찮기도 하고, 운이 더럽게 없어서 아버지라도 마주쳤다간 뺨이라도 맞을 것 같아 가만히 방 안에서 뒹굴거렸다.

 

  남들에게 '이틀'은 짧은 시간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고요하기 그지없었던 그 시간은 카우라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들었던 욕을 몇 백만 번이나 곱씹고, 그를 말리던 아이린을 몇 천만번이나 떠올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네 어미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다.'

  '로렌스, 이제 그만해요, 부탁이에요.'

 

  카우라는 도대체 왜. 도대체 왜 그 상황에서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아이린이 대신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내가 그런 말까지 했는데, 도대체 왜.

 

  게다가 카우라가 그토록 싫어하던 <외출 금지>를 명받으면 제일 먼저 따라와 보모라도 된 마냥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 같았던 시온 또한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황태자씩이나 된 입장에서 시종들을 붙잡고 다른 사람들은 뭐하느냐고 물어보기도 뭐하고, 본래 외출 금지인 황태자에겐 외부 상황에 대해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물어봐 봤자 이득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외출금지를 당하는 그 순간부터 카우라는 황궁에서 완벽히 고립되었다.

 

  얼굴을 구긴 카우라는 외투를 걸쳤다. 밤은 깊었고, 아버지는 주무실 시간. 사실 말이 외출 금지지, 아버지 눈에만 띄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로렌스는 카우라가 오밤중에 노케린 궁에 들락거리는 것을 항상 묵과했었다. 그렇다면 외출 금지인 지금, 어느 누구도 모르게 노케린 궁에만 살짝 갔다 온다면 어느 것도 문제되지 않을-.

 

  덜컹.

 

  카우라는 자신의 손을 의심했다. 발코니 문이 잠겨 있었다. 와, 밖에서 잠가 놓은 거 실화?

 

  그는 발코니 문에서 손을 떼고 창문을 만져보았다. 창문도 상황은 같았다.

 

  본래 누군가 침입할 때를 대비하여 문을 안에서 잠글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양쪽으로 잠글 수 있는 문도 종종 쓰였다. 말 안 듣는 자식들 방에 달 때 말이다.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는데. 하아. 카우라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로 돌아갈-만큼 순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책상으로 다가가 밑에 달린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선 -믿기 힘들겠지만-남의 집 따고 들어가 도둑질이나 해먹는 천민 나부랭이가 쓸 법한 만능열쇠 꾸러미가 나왔다.

 

  진짜 내가 이런 짓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냥 귀찮았을 뿐이었다. 카우라는 지난 일 년 간 아이린이 보는 앞에서 온갖 행패를 부렸고, 일 년의 반 이상을 외출 금지 당해 방구석에 골골대며 처박혀 있었다.

 

  당연히, 밖에서 문을 열어 줄 때 까지 얌전히 앉아 기다릴 그가 아니었다.

 

  카우라는 손쉽게 잠긴 문을 열었다.

 

  물론 창문이었다. 발코니 문은 따기 복잡하기 때문에, 보통 만능열쇠를 써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엔 비교적 열기 쉬운 창문을 열었다.

 

  늘 그의 앞에서 '황태자의 체통' 운운하는 시온에게 옜다, 너나먹어라 하고 엿이나 날려줄 마음의 준비가 끝난 카우라가 가볍게 창문을 타넘었다. 자신이 따 놓은 창문을 다시 고스란히 닫고, 열쇠꾸러미를 쇳소리 나지 않게 깊은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발코니 구석으로 향했다. 그의 방은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정북향 2층이었고, 카이샤하스 제국의 황궁은 천장이 높은 건축 양식을 자랑했다. 그 말은, 그냥 뛰어내렸다간 두 다리가 두 동강나서 네 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카우라는 발코니 옆에 크게 자라있는 나무를 타고 내려갔다. 카우라는 마치 황자궁에 침입했던 외부사람처럼 황실 기사단의 눈치를 살피며 빠르게 궁을 빠져나왔다.

 

  다행인 것은 그 드높으신 황제 폐하께서 황자들에게 지지리도 관심이 없고, 그로 인해 지키는 사람이 다른 곳보다 배로 적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평소 쓰지도 않는 노스케이린 궁은 더욱 경비가 허술할 터. 카우라는 한껏 느긋해진 걸음걸이로 익숙한 지름길을 걸었다.

 

 

 

  카우라는 노스케이린 궁의 정문을 지키는 기사 앞을 대놓고 지나쳤다. 그는 꽤 오랜 시간 노케린 궁을 지켜온 기사였는데, 카우라가 외출금지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를 향해 정중하게 경례했다. 카우라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의 인사를 받고 어려움 없이 중앙복도를 걸어 들어갔다.

 

  옅은 호롱불이 켜진 어두운 복도를 걷던 카우라는 목적지의 근처에 다다라서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다. 거대한 초상화 앞에서 그를 돌아본 아이린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아이린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급히 자리를 뜨려는 듯 카우라가 들어온 문을 향해 걸었다.

 

  무슨 대역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의 곁을 지나치려는 아이린을, 카우라가 무의식중에 붙잡았다.

 

  아이린이 놀라 숨을 들이켰고, 자신의 행동에 놀란 건 카우라도 마찬가지였다. 카우라는 조심스럽게 아이린을 놓았고, 그녀는 떨리는 눈동자로 카우라의 눈치를 살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을 뿐, 자리를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카우라는 자신이 붙잡은 아이린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입술을 달싹였다.

 

  "몸……."

  "……네?"

 

  아이린이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되물었고, 카우라는 입술을 깨물고 애먼 벽장식을 돌아보았다.

 

  "몸은, 괜찮아?"

  "……예?"

 

  아이린이 멍하게 되물었다. 카우라는 한 번 더 말해주지 않고 가만히 아이린을 돌아보았다. 호롱불이 일렁이는 아래에, 그의 곧은 눈빛도 괜히 일렁여보였다.

 

  "네, 물론이죠……, 괜찮습니다."

  "……."

 

  카우라는 말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의 머릿속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몸은 괜찮아? 괜찮아?? 장난 하냐??'

  '그럼 뭐라 그러는데? 또 당장 꺼지라 할까?'

 

  그의 머릿속에서 분열된 여러 명의 카우라가 엄청난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 그의 머릿속을 단 한순간에 얼어붙게 만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답답하시죠."

 

  카우라는 호롱 불 아래에 반짝이는 아이린의 눈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는 지금 당장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이린이 움찔 놀란 것을 봐선 굉장히 차가운 얼굴인 것 같았다.

 

  "제가 로렌스에게 잘 말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이린이 미안한 얼굴로 애써 웃어보였다. 그녀의 팔을 감싼 손은 본능적으로 무서워하게 된 카우라 앞에서 속절없이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머리는 본능을 이겨내고 그를 마주했다.

 

  카우라는 머릿속에서 커다란 바위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네가? 잘 말하고 있다고? 아버지께? 뭐를?

 

  카우라는 벌을 받아 마땅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도 한 짓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로렌스에게 벌을 받을 사람도, 용서해 달라고 말할 사람도 자신이었다. 그런데, 왜. 네가, 왜.

 

  카우라는 아이린을 마주할 때마다 아리던 심장이 더욱 옥죄여서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가 곧바로 표정을 관리했다. 하지만 아이린은 그 모습을 알아보고 급히 시선을 내렸다. 지금까지 해 온 것이 있으니, 그녀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겠지.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니야."

 

  카우라가 아이린의 말을 끊었고, 아이린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잠시간 그들 사이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고, 그것을 깬 것은 카우라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네?"

 

  아이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우라는 아이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노란빛 호롱불 아래에서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는, 뭐랄까, 평소와 같은 차가움이 담겨있지 않았달까.

 

  "고마워."

  "……."

 

  아이린은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고는 멍하니 카우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고요한 흑안은 노란 호롱불을 반사하여 아름답게 빛났다.

 

  차분한 눈동자, 고요한 눈빛. 아이린이 남몰래 짝사랑하던, 퓨트레 페이키스 남작과 꼭 같은 것이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아이린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지난 번 일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아이린이 생각지도 않았던 사과를 건네자 카우라는 당황하는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무, 무슨."

  "로렌스가 심한 말을 한 것,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카우라는 로렌스가 했던 말을 떠올리곤 얼굴을 구겼다.

 

  "그걸 왜 당신이 사과해."

  "로렌스의 실수니까요."

 

  아이린이 숙였던 상체를 들고 연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로렌스의 실수니, 제가 대신 사과드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카우라는 아이린의 무한한 배려에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를 보고만 있을 때, 아이린이 시선을 내리깔며 덧붙였다.

 

  "폐하께서도 황태자님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십니다. 그저 화가 나서 한 말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왜."

  "……예?"

  "왜 그러냐고. 나한테."

 

  카우라의 뜬금없는 물음에 아이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카우라의 떨리는 눈동자를 알아보았다.

 

  "황태자님이시니까요."

  "……."

  "그리고 전……."

 

  아이린의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황태자님과 황자님들의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아이린이 부드럽게 웃어보이자 카우라가 멈칫했다. 그의 눈에 아이린과 어떤 여성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클라우디아. 그녀는 임종이 가까워 졌을 때에 꼭 저런 얼굴을 했다. 촉촉한 눈동자로, 안쓰럽게 바라보며, 어머니의 사랑을 담아 카우라를 응시했다.

 

  순간 심장 깊은 곳을 잡아 뜯기는 느낌에 카우라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 어머니가……. 아버지께 혼나는 아이를 나 몰라라 합니까."

  "……."

 

  카우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스스로 입을 가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엔 클라우디아의 초상화가 있었다. 곧 죽을 것 같은 미소를 지은 그녀가 하나뿐인 아들을, 그리고 그 아들의 새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우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아이린이 멈칫했다. 카우라는 입을 가렸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아이린의 어깨를 감싸 잡아당겼다.

 

  "그런 심한 말을 해서 미안해."

 

  카우라가 아이린을 끌어안았다.

 

  그가 건넨 사과가 지금껏 그녀에게 쏟아냈던 무수한 말들 중 어떤 말을 뜻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사과가 아이린에게 진심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을 울리는 그의 심장소리와 함께.

 

 

 

 

 *

 

 

 

 

  똑똑.

 

  노크소리를 들은 뉴가 가만히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국에서 동행한 [스웰]의 공작들은 워낙 공중에서 뿅뿅 나타나니, '적어도 그들은 아닐 것이다.' 라고 생각한 그가 문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의외로 세리피였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지금은 오밤중. 남들 다 자는 시간이었다. 물론, 그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아이린은 왜 본궁을 벗어나 이상한 곳에 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뉴는 자신의 '솜스탈룸'을 아이린이 먹었다고 해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스토킹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가볼 일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찌되었건, 뉴는 방금까지 멍하니 소파에 늘어져 앉아 따뜻한 벽난로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고, 세리피가 들어왔다고 해서 딱히 자세를 고쳐 앉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 데나 빈 데 앉아."

 

  세리피는 뉴의 가까이에 있던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푹신한 소파에 깊게 기대어 앉아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점심 먹고 들었어. 메니오에게서."

  "뭘?"

  "솜……."

 

  잠시 눈썹을 찌푸린 그녀가 말을 늘렸다.

 

  "솜……스티아?"

  "'솜스탈룸'."

  "그래, 그거."

 

  세리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뉴는 막 잠이 드려는 사람과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거 봐. 거짓말 한 거 아니었지?"

  "뭐가?"

  "나쁜 거 아니라고 했잖아."

 

  세리피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세리피는 어두운 낯빛으로 쏘아붙였다.

 

  "정말 자살하려고 한 건 줄은 몰랐지."

 

  세리피의 말에 뉴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살이라니."

  "죽으면 같이 죽는다며."

  "그거야 그렇지."

  "그럼 결국 죽을 거 아니야."

 

  세리피의 딱딱한 어투에 뉴가 여전히 웃으며 눈썹을 들어올렸다.

 

  "아니 새파랗게 어린 분인데다, 불사약 드시면 영원히 사실 텐데?"

  "황제 폐하께서 은퇴하고 같이 늙어 죽거나, 그 이전에 죽임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럼, 뭐. 같이 죽는 거지."

 

  뉴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세리피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다.

 

  "굉장히 사랑스러운 분인 거 인정해. 굉장히 순수하신데다, 이전 황비 폐하들처럼 노련하지 않은 것도. 하지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그렇게 목숨을 걸 수가 있어? 당신, 이제 정말 삶이 지루해진 거야?"

 

  세리피도 아이린을 못 믿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아름답고, 순수하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고? 세리피는 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몽마인 뉴는, 말 그대로 '영생'을 사는 존재였다. 뉴는 그 중에서도 순혈 몽마로, 현재 [스웰] 왕국에서도 굉장히 귀한 대접을 받는 이였다. 그런 그가, 아직 순혈 후계자도 가지지 않은 그가, 한낱 인간에게 목숨을 걸었다. 인간은 언제 어떤 사고로 목숨을 잃을지 몰랐고, 그 말은 [스웰] 왕족의 대가 순식간에 끊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뉴는 아이린에게 그의 목숨과 [스웰]을 걸었다. 세리피는 스스로가 그럴 수 있을까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아이린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걸 준비를 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다. 지금 아무리 순수하다고 해도, 그녀는 결국 인간이었고, 인간은 언제 어떻게 악에 물들지 모르는 존재이기도 했다.

 

  세리피는 뉴의 결정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렇기에 그런 식으로 뉴를 질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뉴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놓고도, 세상 다 가진 듯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넌 몰라."

  "내가 뭘?"

 

  세리피가 미간에 작은 주름을 만들었다. 뉴가 부드럽게 웃었다.

 

  "사실, 어젯밤에 몰래 그분의 꿈을 들여다봤거든."

 

  세리피가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별 다른 욕은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그랬을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몽마가 남의 꿈을 들여다 볼 때엔, 그가 느끼는 감정도 같이 느끼지."

 

  뉴는 자연스레 아이린의 꿈속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시골집, 오빠. 그리고 반가운 사람들.

 

  뉴는 그 때에, 아이린이 느꼈던 감정을 함께 느꼈다. 그것은, 굉장히 대단한 경험이었다.

 

  아이린은 자신이 그런 꿈을 꾼 것을, 보고 싶었던 이들을 본 꿈 속 세상을 감사했다. 환희에 가득 찼고, 가슴 저리게 기뻐했다. 사람이 아니야. 그건 사람일 수 없는 순수함이었다. 뉴는 여전히 멍한 미소로 세리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분은 세상에 다시없을, 아름답고 순수한 분이야."

 

  세리피는 황홀감에 가득 찬 뉴의 표정에 말문이 막혔다. 뉴는 기쁨이 사무쳐 올라 촉촉해진 눈빛으로 물었다.

 

  "이 세상에 다시없을 사람에게 목숨을 거는 것이 뭐가 이상하지?"

  "……."

 

  말없이 뉴와 마주보던 세리피는 가만히 벽난로로 시선을 옮겼다. 타닥타닥, 따뜻한 불이 타올랐다. 하늘거리는 불꽃 너머로, 반짝이는 뉴의 머리칼이 잔상처럼 지나갔다.

 

  "[스웰]의 '사랑한다'는 말."

 

  세리피의 차분한 음성에 뉴가 눈썹을 올렸다. 세리피가 눈을 우아하게 내리깔고 그를 흘겨보았다.

  뉴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당신이 없는 곳엔 저도 있지 않겠습니다.'"

 

  뉴의 꿈결 같은 목소리에 세리피가 미소 지었다.

 

  "그 말, 굉장히 멋진 말이었구나."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그들이 있는 공간을 가득 채웠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잔잔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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