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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홍귀
작가 : 연수희
작품등록일 : 2018.12.31

‘홍귀’라고 들어봤는가? 사람의 붉은 피를 거죽처럼 몸에 흠뻑 뒤집어쓰고 다닌다 하여 붙여진 어느 악귀의 이름이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자 붉은 악귀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붉은 피를 흠뻑 뒤집어쓴 악귀의 모습을 두고 ‘홍귀(紅鬼, 붉은 악귀)’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게 바로 붉은 악귀, ‘홍귀’다.

500년 만에 다시 세상 밖에 나온 홍귀, 홍귀를 쫓는 여인 연.

복수를 꿈꾸는 여자와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

 
4. 그림자놀이(2)
작성일 : 18-12-31 20:49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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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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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연갈색 눈동자가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 새가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있었다.

 

  검은 새였다. 바로 유오가 열 손가락으로 만든 새의 그림자인 것이다.

 

  날갯짓하는 새의 모습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보였다.

 

  연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거 어렸을 때 많이 했던 거네. 그림자놀이.”

 

  “맞아, 연이 넌 개를 특히나 좋아했었지.”

 

  유오가 손 모양을 바꿔 이번엔 벽에 개의 모습을 그렸다. 생기발랄한 커다란 개가 생기자 연은 기뻐했다.

 

  그가 멍멍멍 하고 개 울음소리도 흉내 내었다. 연이 더 크게 웃었다.

 

  그의 어린애 같은 장난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지 연도 양쪽 손을 조물조물 움직여 개의 모습을 만들었다. 유오가 만든 개보다는 몸집이 작았다.

 

  연이 유오 옆구리로 슥 바짝 다가가 앉자 두 마리의 개가 사이좋게 나란히 붙어있게 되었다.

 

  “안녕, 유오 개야.”

 

  벽속의 세상에서 연이 개가 주둥이로 유오 개를 다정하게 톡톡 치며 인사했다. 이와 함께 연의 조그만 손이 유오의 큼지막한 손에 톡톡 닿았다.

 

  유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안녕, 귀여운 연이 개야.”

 

  유오 개도 톡톡 주둥이로 연이 개에게 입을 맞추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손이 톡톡 연에게 닿았다.

 

  “유오 개야, 네 주인은 왜 그러니?”

 

  유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벽에서 시선을 떼고 휙 고개를 옆으로 돌려 연을 바라보았다.

 

  “내가 뭐?”

 

  연은 그런 유오를 말끔히 무시하고 장난기 짙은 얼굴로 벽만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자신의 개가 입을 떠듬떠듬 벌려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대체 네 주인은 왜 그렇게 변태 같은 구석이 있는 거니?”

 

  “내가?”

 

  유오가 눈을 끔뻑였지만 연은 여전히 벽의 그림자만을 보며 웃었다. 유오는 조금 넋이 나간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연의 옆선을 바라보았다. 촛불이 일렁인다.

 

  “아까도 말이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옷을 훌러덩훌러덩 벗더라니까? 바지까지 끌어내리더라!”

 

  “아니, 그거는 네가 고뿔에 걸릴까봐 얼른 방안에 들어가라고ㅡ.”

 

  “왜 말을 안 하니, 유오 개야?”

 

  톡톡 벽에 그려진 연의 개가 유오의 개를 쳤다. 유오는 맞닿은 제 손과 연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하 하고 깨달았다.

 

  그가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뒤, 개의 입을 움직이며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우리 주인님은 네 주인님이 고뿔에라도 걸릴까 걱정이 되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런 변태 흉내를 낸 거야. 원래는 무척이나 고고하신단다.”

 

  평소 낮고 그윽한 그의 목소리가 아닌 곰방대를 뻑뻑 핀 애늙은이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연은 배가 아플 정도로 웃어재꼈다.

 

  그 웃긴 목소리로, 벽에 있는 유오 개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거 사실 비밀인데, 우리 주인님은 사실 꽤 귀여운 구석이 있어.”

 

  “말도 안 돼!”

 

  연이 소리치며 웃었다. 유오 개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진짜야.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대체 어디가?”

 

  연이 벽에서 눈을 떼고 유오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유오가 씩 웃으며 벽속의 개 목소리로 답했다.

 

  “음, 밥 먹을 때 콩 싫어해.”

 

  그 말에 연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건 좀 귀엽다.

 

  “그래, 그건 인정. 덩치 큰 남자가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일일이 하나하나 조그만 콩을 골라내는 게 귀엽긴 하더라.”

 

  그렇게 부지런히 골라낸 콩을 연이 “먹어. 남기지 말고.”라고 단호히 말하자 허탈한 얼굴로 마지못해 모조리 입에 털어 넣은 것도 나름 귀여웠다.

 

  “또? 또 뭐 있는데? 귀여운 구석.”

 

  연이 물었다.

 

  유오 개가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으음, 새끼발가락이 약점이야.”

 

  “응? 그건 나도 처음 안 사실이네. 새끼발가락이 약점이라고?”

 

  연이 벽에 있는 유오 개에게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유오 개가 입을 뻐끔거리며 말했다.

 

  “웅, 모서리에 새끼발가락 쿵 찧으면 조용히 이를 악물고 꿍 앓고 있어. 표정은 잔잔한데 속은 폭풍우 치는 거센 파도야.”

 

  “푸하하하!”

 

  연이 바닥에 누워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다시 얼른 벌떡 일어나 유오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아, 그랬었어? 아팠는데 꾹 참았던 거야?”

 

  얼마 전에 유오가 문지방에 새끼발가락을 세게 찧은 것을 목격했었다. 큰소리가 날 만큼 세게 찧어 엄청 아프겠다 싶었는데 정작 당사자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이 없어 ‘유오는 통각이 없나?’하고 의아하게 여겼었다.

 

  근데 속은 아주 난리였던 거다. 아파, 아파, 아파! 하고.

 

  “아, 웃겨 죽겠다.”

 

  슬쩍 유오의 새끼발가락을 집자 유오가 화들짝 놀라서 발가락을 쏙 의복자락에 숨겼다.

 

  유오가 얼른 개 그림자를 이용해 말했다.

 

  “새끼발가락 만지지마. 약점이라니까!”

 

  “알았어, 알았어.”

 

  확실히 귀여운 구석이 있는 남자다. 모두가 경애하는 고귀한 유오군마마가 이렇게나 귀여운 사람이라는 걸 다들 알면 좋을 텐데.

 

  빗소리가 조금 희미해졌다. 빗줄기가 얇아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웃음소리에 빗소리가 살짝 묻힌 것이다. 그리고 유오의 재미있는 목소리도 비릿한 빗소리를 씻겨주었다.

 

  연이 무릎걸음으로 벽에 다가가 유오 개를 쓰다듬어주었다.

 

  “덕분에 많이 웃었다. 착하다, 착해.”

 

  “잠깐 왜 벽을 칭찬하는 거야? 칭찬할 곳이 틀렸잖아.”

 

  본래의 깊숙하고 아늑한 목소리로 유오가 다급히 말했다.

 

  연이 웃으며 유오를 봤다. 그가 진심으로 서운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았어.”

 

  그에게로 다가가 손을 뻗어 잿빛머리를 만졌다. 머리칼을 쓰다듬자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연의 손에 제 머리를 기대었다.

 

  두 사람 사이에 고요하고 아늑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빗소리가… 다시 크게 들린다.

 

  연은 그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그런데 그가 멀어져가려는 연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잡아당겨 자기 옆에 연을 딱 붙였다.

 

  그가 연의 등을 토닥였다.

 

  “또 악몽을 꾸었어?”

 

  “…….”

 

  연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답을 재촉하는 대신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촛불에 의지해 벽에 개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뻐끔뻐끔 벽속의 개가 입을 움직여 말한다.

 

  “또 무서운 꿈을 꾼 거야?”

 

  벽속의 개가 다정히 묻자 연은 피식 웃었다.

 

  연도 손을 들어 벽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피하고 싶은 속마음을, 벽속의 조그만 연이 개가 대신 말해주었다.

 

  “응, 또 무서운 꿈 꿨어.”

 

  “이번엔 뭐가 나왔어?”

 

  두 사람은 벽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연이 개가 망설였다. 그러자 그가 뺨을 연의 머리에 대고 비볐다.

 

  이에 용기를 얻은 연이 개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엄마랑 아빠가… 나오는 꿈.”

 

  목소리가 얼마나 작은지 유오가 그녀의 입술을 향해 귀를 가까이 대야할 정도였다.

 

  연이 민망할까봐 유오는 시선을 여전히 벽에 두었다.

 

  “엄마랑 아빠?”

 

  “응. 엄마랑 아빠.”

 

  그녀의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유오 개가 입을 다물었다.

 

  연이 개가 말했다.

 

  “얼굴이 없는 엄마랑 아빠가… 나오는 꿈을 꿨어. 너무, 너무 무서웠어. 보고 싶은 사람들인데, 너무 보고 싶은 우리 엄마랑 아빠인데 꿈에서 본 순간 소름끼치도록 무서워서 도망쳤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엄마랑 아빠가 ‘연아, 연아’하고 나를 부르는데도 나는 ‘싫어, 싫어’하고 도망쳤어. 그리고 비가, 비가 계속 와서 내 몸을 때리고 내, 내가 호, 홍귀를ㅡ.”

 

  “그만.”

 

  유오가 연을 와락 끌어안았다. 벽 속의 개는 모두 사라졌다.

 

  “네 잘못 아니야. 네 잘못이 절대 아니야, 연아.”

 

  그가 연을 품속에 안고 간절히 말했지만 연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래, 아냐.”

 

  “하지만 그 붉은 악귀를 끌어들인 건 나야.”

 

  유오의 품속에 얼굴을 묻은 연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 검게 응어리진 마음이 깃들었다.

 

  “내가 홍귀한테 마음이 빼앗겨서, 그래서 부모님을 죽게 만들었어.”

 

  “아니야.”

 

  그가 힘주어 연을 껴안았다.

 

  하지만 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난 그 요물을 절대 용서할 수가 없어. 잊을 수가 없고 잊어서도 안 돼! 내 부모를 죽이고 내 머릿속까지 망가뜨린 그 붉은 악귀, 홍귀를!”

 

  “아냐, 연아. 그러지마, 제발.”

 

  그 순간 유오는 연의 베개 밑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단도였다.

 

  유오의 얼굴이 참혹하게 변했다. 그는 연을 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연이 멀리 사라질까봐서.

 

  연은 유오의 품에 안긴 채 창밖의 빗소리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연은 비를 싫어하다 못해 끔찍이 여긴다.

 

  비가 오는 날, 그를 만났기 때문에.

 

  까만 숲, 쏟아지는 굵은 비, 흐르는 피, 움직이지 않는 몸.

 

  그리고 그의 목소리.

 

  「…살려줄까.」

 

  12살이 되던 해, 연은 홍귀를 만났다.

 

  사람을 죽이는 그 무시무시한 붉은 악귀가, 피를 흘린 채 빗속에서 죽어가던 열두 살짜리 어린계집아이를 살려주었었다.

 

  그때, 연은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었다.

 

  그 낮고 음산한 목소리에 매달리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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