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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카이샤하스 제국 1권 ; 아이린 황비 폐하
작가 : Hella
작품등록일 : 2018.12.10

카이샤하스 제국의 황태자, 카우라 카이샤하스.
안하무인 독불장군인 그는 사실 남몰래 사랑하던 기억속 소녀가 있었다.

자그마한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가 데려온 새어머니가 그 소녀였다는거...?

아니, 저기요, 아버지. 계급장 다 떼고 얘기해 봅시다.
당장이라도 아버지 멱살잡고 패륜을 저지르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결혼해버린 첫사랑에 한껏 비뚤어졌지만, 어느새에 그는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며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이건 온갖 음모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카이샤하스 제국 황궁에 여러분을 꼬셔서 데려가기위한 달콤한 첫걸음이에요.....ㅎ

정치물과 전쟁물에 로맨스 두방울 뿌려 봤습니다. 심심해보여서 브로맨스도 한스푼 넣었고요, 오만사람들을 다 끌어모아 얽어놓는 바람에 등장인물 많습니다.

난 코난같은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읽어주는것만도 고맙습니다. 제가 꿈이 좀 커요ㅎ

언제나 행복한 하루 되시고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2막;정상회담_18화
작성일 : 18-12-31 20:47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8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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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리피가 자신을 놓아주었지만, 뉴는 여전히 양 손을 들어 보이며 항복을 표하고 있었다. 세리피는 늘 상황 파악 못하고 붕 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뉴의 맹한 미소에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당장 철회해."

 

  세리피가 잇새로 중얼거리자 뉴가 급히 그녀를 진정시켰다.

 

  "워, 워. 진정하라고."

  "경고했어."

  "후, 이거 무서워서 살겠나~"

 

  뉴가 넉살 좋게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세리피가 곧바로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아이린이 더 빨랐다.

 

  "세리피, 전 괜찮으니 진정하세요."

 

  세리피는 자신의 팔을 힘 있게 붙든 아이린을 돌아보았다. 아까보다 훨씬 차분해진 아이린의 눈빛에, 세리피가 급히 마음을 고쳐먹고 심호흡했다. 후, 하. 후, 하.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세리피가 입을 꾹 다물고 거친 숨을 고르자 아이린이 한 걸음 앞섰다.

 

  "뉴, 라롸님."

  "편하게 뉴라고 불러주십시오."

 

  뉴가 구겨진 옷깃을 바로하고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아이린은 떨리는 손을 티내지 않으려고 양 손을 꼭 마주잡았다.

 

  "세리피님께 들었어요."

  "하하."

 

  뉴는 한껏 풀어진 미소와는 달리, 자못 멋쩍은 웃음을 뱉었다.

 

  "간밤 좋은 꿈 꾸셨는지요."

  "……."

 

  뉴가 나긋나긋하게 물었지만 아이린은 답이 없었다. 음? 자연스레 들려올 대답을 기다리며 아이린의 눈치를 살피던 뉴의 눈이 점점 커졌다.

 

  아이린의 머릿속에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던 생생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익숙한 길, 익숙한 집.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귀에 익은 웃음소리. 따스한 음식 냄새가 정겨웠던 그곳.

 

  그리고

 

  오라버니.

 

  아이린이 늘 머릿속에 그려왔던, 바로 그 꿈.

 

  "네."

 

  아이린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촉촉해진 눈망울로, 아이린은 해사하게 웃었다.

 

  "너무 행복한 꿈이었어요."

 

  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뉴는 몽마였다. 말 그대로, 꿈을 먹고 사는, '꿈의 존재'. 그의 하얀 제복이 빛나는 것 같아 보이는 것도, 그의 다갈색 머리카락이 금빛으로 빛나는 것도 모두 그가 '꿈'이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지만, 그 모두가 뉴를 떠올릴 때면 그의 눈은 그려지지 않았다. 꿈의 존재는 볼 때에만 찬란할 뿐, 금방 머릿속에서 가물가물해졌다.

 

  하지만 그녀를 보라. 저 찬란한 미소와 영롱한 눈동자를 가진 여인은 꿈의 존재인 그보다도 밝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그녀를 단 한 순간이라도 마주했던 모든 이의 뇌리에 박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꿈의 존재인 자신과는 달리, 그 누구의 머릿속에서도 잊히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며칠 더 꿈에 젖어 계시지요."

 

  멍하니 아이린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린 뉴가 아뢰었다. 당신은, 조금 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누구의 행복을 빼앗던지 말이에요. 뉴는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들을 애써 삼켰다. 그는 왠지, 아이린이 어떻게 대답할 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예상처럼 역시나, 아이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처연한 눈동자를 마주한 뉴는 더 이상 형용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뉴는 엄청나게 달콤한 꿈을 먹은 몽마처럼 그녀의 미소에 취해들었다.

 

  "그렇게 행복했던 꿈, 더 꾸고 싶지 않으십니까."

  "한 번도 과분할 정도로 너무나 멋진 꿈이었습니다."

 

  아이린이 눈물지으며 웃었다.

 

  "그러니 이제 거두어 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녀의 미소에, 뉴는 숨이 막혔다.

 

  "아무리 행복해도, 꿈이니까요."

 

  뉴는 만면에 띠고 있던 미소를 싹 지웠다. 늘 풀려 있던 눈동자가 또렷해졌다. 그는 진심과 존경을 담아 그녀 앞에 고개 숙였다.

 

  "현명하신 분이시군요."

  "과찬이십니다."

 

  아이린이 상냥하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종속국의 국왕에게 과분한 예의를 다했다. 뉴가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의 진중한 얼굴에서 주변 이들이 생전 처음 듣는 점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아이린의 뒤통수를 받친 그는 반대쪽 손바닥으로 아이린의 이마를 꼭 눌렀다.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은, 정말이지 꿈만 같은 것이었다.

 

  그는 검지와 중지를 벌려 아이린의 이마에 대고, 그 사이로 깊게 입 맞추었다. 그가 들이 마시는 숨에, 아이린의 이마에서 나온 핑크빛 구름이 빨려 들어갔다. 깔끔하게 모든 것을 빨아들인 그는 한 걸음 물러나 잠시 주먹을 꼭 쥐었다가 펴 보였다.

 

  "뭐야, 이건."

 

  세리피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뉴의 펴진 손바닥과, 그의 또렷이 뜬 눈동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는 뉴가 까딱 꼼수라도 부렸다간 당장에 네 목을 날라 차겠다는 사나운 눈빛이었다. 뉴는 잠시 세리피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이거, 굉장히 귀한 거라고."

 

  그의 손엔 작은 구슬이 놓여 있었다. 맑고 투명한 핑크색이었다. 무슨 마술쇼도 아니고. 세리피는 까도, 까도 새로운 비밀이 계속 등장하는 몽마가 이젠 지긋지긋했다.

 

  세리피는 [지아나]의 여왕. 한 국가의 왕으로서, 다른 국가에 대해 공부하고 익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스웰]의 몽마에 대해 충분히 학습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공중에서 구슬까지 만들어 내다니. 그런 건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게 뭔데."

  "꿈. 남의 꿈을 빨아들이는 게 아닌, 정말 말 그대로 '꿈'이야."

 

  뉴의 말에 세리피가 인상을 구겼다. 사실, 이미 세리피에게 있어서 뉴의 신뢰도는 바닥을 강스파이크로 내려친 상태였다.

 

  뉴는 정상회담으로 제국에 올 때마다 임의로 한 사람에게 행복한 꿈을 선물하고, 밤마다 그 주변인들의 방을 들락거리며 악몽을 먹으러 다니는 고약한 취미가 있었다. [지아나]의 여인들이 제국에 올 때 마다 '귀신 쫓는 약'이라고 불리는 페르시쿠스 나뭇잎과 아몽트리 새순을 가장 먼저 챙기니 말 다했다.

 

  전적이 그렇다보니 그가 하는 말은 죄다 꿈에 취해 있는 거짓말이거나, 단순한 재미를 위한 가벼운 말처럼 느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리 줘 봐. 내가 먼저 먹어보게."

  "아아! 안 돼! 이거, 하나밖에 없는 거야!"

  "뭐라고?"

 

  세리피가 눈썹을 치켜떴다. 방금까지 없던 것을 '뿅'하고 만들었으면서, 그깟 구슬 '뿅'하고 하나 더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어째서?"

  "폐하, 이건 말이죠, 폐하께서 절 필요로 하실 때 언제나 폐하의 곁으로 갈수 있는-."

  "야."

 

  세리피가 다시 멱살을 잡았고, 뉴는 구슬을 놓치지 않으려고 급히 주먹을 쥐었다.

 

  "세리피, 끝까지 들어주라."

 

  뉴가 칭얼거렸지만 세리피는 듣지 않았다.

 

  "들어는 줄 테니 잡힌 채로 말해."

 

  세리피는 당장 한 대 칠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뉴는 그런 그녀의 반응이 상당히 억울한 눈치였다.

 

  "안 좋은 거였으면 몰래 찾아와서 드렸지. 이거 진짜 나쁜 거 아니야."

 

  뉴는 나름 호소력 있게 주장했으나 세리피는 그를 놔줄 생각이 없어보였고, 결국 그는 멱살이 잡힌 채로 아이린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야 했다.

 

  "이건, 제 기운을 모은 것입니다. 이걸 가지면 주로 행복한 꿈을 꾸긴 합니다만, 오늘 제가 회수한 '행복한 꿈을 꾸는 힘'을 가진 자가 옆에 붙어있다면 어쩔 수 없이 약한 악몽을 꾸게 될 수도 있어요. 말 그대로, 절대적이거나 억지로 행복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가 폐하께서 어디에 있는지 감으로 느낄 수 있게 되지만 함부로 찾아갈 수는 없어요. 당신이 부르지 않는 이상."

 

  뉴가 싱긋 웃으며 세리피를 돌아보았다.

 

  "말 그대로, 그냥 호신용품이야."

  "왜 하나밖에 못 만드는데?"

  "내가 하나니까. 한 몽마 당 하나 나오는 귀한 거라고."

 

  세리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어디 있냐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말이 안 되긴 뭐가 안 돼.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것도 '몽마'인데.

 

  "뉴."

 

  뒤에서 들리는 차분한 음성에 세리피가 뉴를 놓고 돌아보았다. 아이린은 꽤 단호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귀한 것은 받을 수 없어요."

  "제가 드리고 싶어 드리는 것입니다."

 

  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구슬을 내밀었다.

 

  "받아주십시오."

 

  뉴의 새하얀 손바닥 위에 놓인 구슬은 그 뒤에 있는 것이 깨끗하게 비쳐 보일 정도로 굉장히 맑고 투명한 것이었다. 투명한데, 핑크빛이라니. '꿈의 존재'인 그와 굉장히 어울리는 구슬이었다.

 

  "다른 누가 아닌, 당신께 바치고 싶습니다."

 

  뉴의 진실된 목소리에 깊이 고민하던 아이린이 결국 가볍게 인사했다.

 

  "소중한 물건, 감사히 받겠습니다."

 

  세리피는 뭔지도 모르는 것, 함부로 받지 말라고 뜯어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내뱉어진 승낙은 '황비의 결정'이었다. 세리피는 온 마음을 다해 아이린을 걱정할 뿐, 그녀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은 없었다.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뉴의 구슬을 받아들었다. 뉴가 일어나 깊이 상체를 숙였다.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에 넣으시면 됩니다."

 

  아이린은 그의 말대로 구슬을 입에 넣었다. 따뜻하게 혀에 닿은 구슬은, 아이린이 입을 닫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달콤한 기운이 그녀의 온 몸에 스며들었다.

 

  "맹세합니다.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제가 필요한 순간에 반드시 나타나 당신을 구해드리겠습니다."

 

  뉴는 또렷한 눈동자로 웃으며 아이린의 손을 잡아끌었다.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뉴는 아이린의 손등에 깊게 입을 맞추었다. 어제 받았던 손등키스와 달리, 터지는 핑크빛은 없었다. 뉴가 눈매를 둥글게 휘며 아이린과 눈을 맞추었다. 그의 핑크빛 도는 호박색 눈동자가, 처음으로 아이린의 뇌리에 박혔다.

 

  "사랑합니다, 황비 폐하."

  "자살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지."

 

  세리피의 중얼거림에 뉴가 또렷하던 눈을 반쯤 감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스웰]의 '사랑한다'는 말은 제국어의 '사랑한다'는 말과 뜻이 달라."

  "알고 있어. 그걸 알고 있던 내가 마음이 너무 넓어서 널 안 죽였을 뿐이지, 황제 폐하께서 들으셨다면 단방에 소멸 당했을 텐데."

 

  하하. 이번에도 뉴가 어색하게 웃었다. 세리피는 살벌한 눈빛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황제 폐하께 꼰지름 당하기 싫으면 앞으로 내 말 잘 들어. 뉴는 이 불리한 상황을 헤쳐 나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제 무덤 제가 판 격이니, 몇 년은 조용히 사는 수밖에.

 

  "그럼, 해프닝은 이 정도로 하고."

 

  한껏 밝은 목소리로 말한 뉴가 아이린을 돌아보았다.

 

  "황비 폐하, 저도 선물 주세요."

 

  이게 뭔 개 같은 소리야. 세리피가 눈빛으로 그를 죽이려 들자 뉴가 곧바로 덧붙였다.

 

  "폐하의 친구, 시켜주시겠습니까."

 

  그는 세리피의 따가운 눈빛을 애써 모른 척 하며 아이린에게 다가섰다.

 

  "폐하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가 화사하게 웃었다. 찬란한 빛이 감도는, 꿈결 같은 미소였다. 그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아모이와 니타스가 '황비 폐하의 친구 자리는 이미 꽉 찼다'며 한껏 소란을 피웠다. 아이린의 밝은 웃음소리가 황비의 방을 가득 채웠다.

 

 

 

 

 *

 

 

 

 

  정오에 다다른 따뜻한 시간, 로렌스는 아이린과 함께 식사를 할 요량으로 그녀의 방에 들렀다가 그곳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뉴'와 정면으로 마주쳐서 거의 까무러칠 뻔하였다. 뉴는 티 테이블 의자에 거의 제 집 안방마냥 기대 누워서 반갑게 황제를 맞았다.

 

  "여-. 폐하!"

 

  로렌스는 금방이라도 뉴를 죽여 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아이린이 너무나 밝게 웃어버려서 차마 그러지는 못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로렌스는 등 떠밀려 티 테이블에 합석했고, 결국 내일 있을 종속국 국왕들과의 마지막 오찬에 아이린이 참석하는 것을 허락해야했다.

 

  "도대체 저 놈이 왜 여기 있는 거야?"

  "말하자면 길어요."

 

  세리피가 고개를 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깊은 한숨을 내쉰 로렌스가 자신 앞에 따라진 차를 마시려다 말고 눈을 부라렸다.

 

  "혹시, 꿈같은 거 선물하고 그런 건 아니겠지?!"

  "하하, 그럼 전 이만."

 

  뉴가 어색하게 웃으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로렌스는 핑크색 연기가 남긴 뉴의 잔상을 허망한 얼굴로 바라보았고, 아이린이 꽃망울 터지듯 까르르 웃었다.

 

  "어제 선물하셨더라고요."

  "내가 저 놈을-!"

 

  로렌스가 붉으락푸르락 하여 손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아이린은 마냥 즐거울 따름이었다. 누가 팔불출 황제 아니랄까봐, 로렌스는 아이린이 그렇게 예쁘게 웃어주시니 화났던 것도 금방금방 잊어버렸다.

 

  "저 놈 때문에 한 숨도 못 잤잖아."

 

  결국 로렌스는 불타던 눈동자는 깔끔히 없애고 한껏 피곤한 얼굴을 했다. [지아나]의 여인들은 이제 그런 황제의 부드러운 모습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가는 중이었다.

 

  "황비 폐하, 그런 김에 황제 폐하는 쉬게 하시고 우리끼리 루픽 광장이나 구경 갈까요?"

 

  아모이가 물었다. 세리피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녀를 말려야 하나 잠시 고민했으나, 아이린의 밝은 표정을 발견하곤 그냥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아이린이 좋아하면 굳이 뭐라 할 필요 없다고 했으니까, 상관없겠지.

 

  "그건 안 돼. 짐과 같이 자야 된다."

 

  역시나 변함없는 독불장군이었다. 로렌스가 단호하게 일갈했지만 아모이는 한껏 속상한 얼굴로 아이린에게 매달렸다.

 

  "아아, 황비 폐하. 같이 나가요."

 

  빠른 학습능력이었다.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엔 '로렌스는 졸라도 안 될 것이며, 아이린의 마음만 돌리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눈치 빠른 계산이 녹아있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은 아이린이었다. 그녀는 그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건만, 자신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로렌스에게 굉장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미안해요, 아모이. 제가 받았던 선물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제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요?"

 

  아이린이 미안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아모이는 입술을 삐죽이다가 종국엔 우는 소리를 내며 아이린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아이린은 그저 웃으며 다음에 또 오면 그땐 꼭 같이 나가자고 능숙하게 그녀를 토닥였다.

 

 

 *

 

 

  기왕 엉덩이 붙이고 앉은 김에 점심식사까지 얻어먹은 [지아나]의 여인들은 오후에 별궁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루픽 광장을 둘러볼 채비를 했다. 편한 신발을 신고 돈을 챙긴 그들은 막 별궁을 나서는 길에 [스웰]의 공작들, '타민'과 '메니오'를 만났다.

 

  그들은 별궁 바로 앞 작은 정원에서 각자 벤치 하나씩 붙잡고 늘어져있었는데, [지아나]의 국왕인 세리피를 알아보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공작들의 인사에 마주 화답해준 세리피는 그들을 지나치려다 말고 멈춰 서서 물었다.

 

  "혹시, 당신들도 몸에서 구슬 같은 걸 만들 수 있어?"

 

  세리피의 물음에, 그들이 동시에 서로를 돌아보았다. 잠시 자기들끼리 마주보며 말이 없던 그들은 조심스럽게 세리피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그거, 그렇게 중요한 거야?"

 

  세리피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거라고 볼 수 있죠."

  "볼 수 있다니?"

 

  세리피가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아모이와 니타스도 한껏 호기심어린 눈으로 세리피의 양옆에 꼭 붙어 타민과 메니오에게 집중했다. 잠시 메니오와 눈빛을 주고받던 타민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솜스탈룸'은 몽마들끼리 결혼할 때 서로 주기도 하고, 안 주기도 하고……."

  "요즘은 혼혈 몽마가 많아서 '솜스탈룸' 교환은 잘 안 해요. 좀비와 결혼하는 몽마가 일방적으로 줄 수는 있는데, 그 아래에 태어난 혼혈 몽마는 못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느릿하게 웅얼거리는 타민과 메니오의 설명에 세리피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결혼 할 때라고?"

  "예. 게다가 한 번 주면 회수할 수 없기 때문에 만들 수 있어도 잘 안 줘요. 요즘은 몽마들 사이에도 이혼율이 높거든요."

  "그게 도대체 뭐할 때 쓰는 건데요?"

 

  니타스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따지듯 물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히는 타민이다. 그는 몇 번이나 주저하더니, 주변을 둘러보곤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솜스탈룸'은 [스웰] 왕국 안에서만 거론되는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의 물음에 아모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롸님이 만들어서 보여주셨는데요."

 

  아모이의 말에 타민과 메니오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굉장히 놀란, 또렷한 눈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돌아보고, 그녀들에게 따지듯 물었다.

 

  "설마 그걸 누구 드렸습니까?"

  "혹시 세리피님은 아니지요?"

 

  그들의 주군을 닮아 매일 맹한 얼굴을 하고 다니는 그들이 하얗게 질려선 득달같이 달려들자, 난데없는 상황에 놀란 [지아나]의 여인들이 은근슬쩍 뒷걸음질 쳤다.

 

  "라, 라롸님께서 황비 폐하께 드렸어요."

 

  아모이의 말에 타민과 메니오는 정지화면처럼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별안간 타민이 사라졌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세리피가 연두색 연기만 남은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타민!"

  "뭐냐고 물으셨죠."

 

  여전히 어두운 얼굴을 한 메니오가 세리피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의 눈은 평소처럼 반만 뜨여 있었지만 얼굴은 한껏 찌푸려져 있었다. 메니오가 굉장히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솜스탈룸'. '꿈의 결정'."

 

  그의 엄중한 목소리에 아모이와 니타스가 조용히 마른 침을 삼켰다. 세리피 또한 메니오의 입술에 집중했고, 잠시간 침묵을 지키던 메니오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꿈', 말 그대로 몽마 그 자체입니다. 몽마 스스로 기운을 모아 만든 것이며, 그 '결정'을 몸에 받아들이게 되면 결정이 악몽을 먹기 때문에 악몽을 덜 꿀 수 있습니다."

 

  악몽을 덜 꾼다. 그래, 이건 뉴가 했던 말과 같은 말이었다. [지아나]의 여인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메니오는 이것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몽마는 영생을 삽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 영생의 결정이고,"

 

  메니오가 자신의 손에 뉴가 만들었던 것과 꼭 같은 구슬을 만들어보였다. 그의 것은 뉴의 것과 달리 연한 보랏빛이 돌았다. '솜스탈룸'을 잠시 보여준 그는 곧바로 다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마치 그에게 흡수된 듯, 구슬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것을 먹은 자가 죽으면 함께 죽습니다."

  "……뭐라고요?!"

 

  [지아나]의 여인들은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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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막;궁전_11화 2018 / 12 / 28 243 0 8284   
10 1막;궁전_10화 2018 / 12 / 28 253 0 8019   
9 1막;궁전_9화 2018 / 12 / 28 235 0 7931   
8 1막;궁전_8화 2018 / 12 / 28 247 0 8095   
7 1막;궁전_7화 2018 / 12 / 19 241 0 8131   
6 1막;궁전_6화 2018 / 12 / 19 259 0 9008   
5 1막;궁전_5화 2018 / 12 / 16 232 0 6929   
4 1막;궁전_4화 2018 / 12 / 14 256 0 9642   
3 1막;궁전_3화 2018 / 12 / 12 239 0 8478   
2 1막;궁전_2화 2018 / 12 / 11 251 0 11021   
1 1막;궁전_1화(프롤로그) 2018 / 12 / 10 420 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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