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그 녀석과의 마지막 남은 기억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손을 뻗어 꽃병에 꽂힌 붉은 꽃 한 송이를 꺼내어 냄새를 맡았다. 모든 기억이 날아갈 정도로 강렬한 꽃향기가 풍겨왔다. 나는 짧은 오르가즘을 느끼며 꽃을 내려놓았다.
“자 이제 정리가 다 됐으니 순서대로 진행해볼까”
나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다시 SNS에 로그인했다.
[많은 분께 죄송합니다. 앞으론 많은 글을 남기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가슴 아프지만 예전의 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친구와 카페를 가고 여행을 다니고 이런 소소한 모습의 일상생활만을 올릴 예정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저는 훌륭한 친구가 있으니까요. 저를 대신해서 제 친구가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겁니다. 내게 받은 고마움을 앞으로 네가 다른 분들께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잘 할 수 있지? 내 절친한 친구 민재야.]
나는 SNS에 글을 올리자마자 의자에 기대어 미끄러졌다. 그 상태로 손을 뻗어 페트병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시원한 액체의 목 넘김은 갈증 그뿐만 아니라 갈등도 함께 씻어주었다.
“그럼 지호야. 우리는 어디에 있든 절친한 친구잖아. 네가 말해준 것처럼”
다시 모니터를 지긋이 응시하며 마우스 위로 올려둔 손가락을 가볍게 두드렸다. 예순네 번 아니 예순다섯 번째 두드리는 순간 모니터 속 좋아요 버튼의 숫자가 하나 올라갔다.
“얼굴만 모를 뿐 우리 모두가 친구가 되었어. 내 글에 웃어주고 화내주고 감정을 같이하는 친구가 하나보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랐고 이내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절벽에서 붉은 꽃 꺾던 영상은 잘 편집해서 올렸어. 네가 예상한 대로야.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더라고. 역시 난 너를 따라가려면 아직은 멀었어. 물론 사실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뭐 어때. 그 정도 가지고. 난 좋은 영상을 위해서라면 더 한 일도 할 수 있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있음이 느껴지며 혈액의 빠른 순환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이에도 좋아요 버튼의 개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친구야 생각해보니 수업료가 많이 싸긴 하더라. 좀 더 줬어야 했는데... 그래서 네 아버지께 수업료 몫까지 더 넣어드렸어.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난 은혜를 갚는 것뿐이니까. 내가 너고 네가 나. 그것이 친구잖아. 네가 못 다한 효도는 내가 계속 이어서 부조로 할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기분을 만끽하며 나는 자판 위의 손가락을 바쁘게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