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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회귀불사지체
작가 : 서은하
작품등록일 : 2018.12.31

목숨을 걸고 강호를 주유하는 진운의 이야기.

 
1. 소년
작성일 : 18-12-31 17:26     조회 : 340     추천 : 0     분량 : 5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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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북의 융중산.

 삼고초려의 고사 속, 제갈량이 은거했다고 알려진 곳.

 융중의 산세는 험하지도 가파르지도 않았다. 높지 않은 봉우리에 풍광 또한 수수하기 그지없었다.

 몇 없는 산책로에는 저마다 제갈량을 기리는 건물들이 자리했다. 건물 내부는 죄다 비석이나 무후상 뿐이다.

 크던 작던 모두 제갈량을 기리는 사당, 무후사였다.

 비가 내리는 저녁의 융중산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만이 온 산을 뒤덮었다. 인기척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날씨 때문일까.

 아니다. 날씨 탓만이 아니다.

 제갈무후의 활약이 전설처럼 내려 온지도 천년이 지났다. 아무리 유명했던 이라도 잊혀 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더욱이 제갈이란 성씨는 강서성쪽이 더 유명했다. 무림4대세가중 하나인 제갈세가가 그곳에 있으니.

 이런 연유로 융중은 늘 발길이 뜸했다.

 융중산 산자락 중에서도 인적을 찾기 힘든 길.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진 작은 사당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몇 년은 돼 보였다.

 그 사당에 참으로 오랜만에 사람이 방문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손질되지 않은 경첩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후두둑 빗방울이 먼지투성이 사당 안을 들이쳤다. 곧이어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발 하나가 있었다.

 질퍽한 신발이 조그맣다.

 열 살은 넘겼을까. 높은 코에 인상이 또렷한 소년이다. 몸에 걸친 회백색 유삼은 몸에 맞지 않는지 소매가 두 치는 남아 보였다.

 비에 쫄딱 젖은 몸을 떨며 주변을 살피는 게 겁먹은 생쥐마냥 처량했다.

 암만 여름철이라 해도 산중에 비를 맞으며 체온을 유지할 수는 없는 일. 소년은 들이치는 비를 막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끼이익 덜컹.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작아졌다. 완전히 어두워진 사당내부에는 색이바랜 무후상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비, 먼지가 섞여 습하고 퀴퀴한 공기가 소년의 코를 자극했다.

 소년은 한쪽 소매로 바닥을 쓸어 보았다. 역시나 소년의 옷에 새카만 먼지가 묻어나왔다. 소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쓱 한번 닦아낸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소년은 그나마 깨끗한 곳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추위에 몸이 새우처럼 웅크려졌다.

 ‘집으로 돌아갈까?’

 바보 같은 생각이다.

 이미 역적으로 몰린 집안.

 돌아갈 곳은 없었다.

 황제의 수족이라는 동창을 피해 남으로 또 남으로 걷기를 몇 달.

 소문의 속도는 소년의 걸음보다 빨랐다.

 역도로 몰린 이가장이 멸문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돌았다.

 아닐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몇 번을 다짐해도 소년의 몸은 갈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이미 그의 가문이 멸문했단 사실을. 그리고 돌아가면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집을 나서며 챙겨왔던 은자가 떨어진지도 한참이다. 제대로 식사를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 소년은 이가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버려진 사당에 몸을 뉘였다.

 소년은 몸을 더욱 웅크리며 품안의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어머니가 하고 다니던 경옥 목걸이였다. 어머니는 소년이 집을 떠나던 날 목걸이를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꼭 살아남겠다 약속하거라.’

 그때 소년은 아무 대답 없이 울기만 했었다.

 비가 내리는 날 허름한 사당 안에서 소년은 이제야 그 대답을 내뱉었다.

 “네. 살아남을게요.”

 소년은 그 한마디를 끝으로 잠에 빠졌다.

 

 그날 밤, 소년의 꿈속에 제갈무후가 나타났다.

 소매가 넓은 흰색 도포자락에 청회색 관모. 하얗게 내려온 수염을 학우선으로 가렸다.

 주변엔 일곱 개의 초가 불타고 제갈량은 무릎 꿇고 눈을 감은 채 주문을 외고 있었다.

 와룡의 진언.

 다섯 번에 걸친 북벌의 마지막, 수명이 다한 제갈량은 열두 해의 목숨을 벌기 위해 칠일 밤낮을 기도했다. 허나 기도의 마지막 날. 촛불 하나가 그만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그의 술법은 완성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소년의 꿈에 나타난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기도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와룡의 진언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눈을 감은 모습 그대로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언어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때였다.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 닥쳤다. 잘 타오르던 촛불이 쓰러질 듯 흔들렸다.

 위태위태하던 촛불하나가 꺼지려던 찰나.

 시간이 멈추었다.

 주문을 외던 목소리는 물론 불어오던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꺼질 듯 흔들리던 촛불 또한 기울어진 채 멈춰 있었다.

 곧이어 와룡의 눈이 떠졌다.

 현기를 품은 두 눈동자가 소년의 눈에 박혔다.

 소년은 새카만 눈동자 깊은 곳으로 아득히 빠져들었다.

 그리고는 제갈량의 생각이 머릿속에 그대로 전해졌다.

 ‘허허. 선계에 든 나를 불러 낸 것이 아이의 염(念)인가 어미의 염(念)인가. 유구한 세월을 넘어 못 다 이룬 술법을 완성하리니. 아이야. 저기 흔들리는 불꽃을 살려줄 수 있겠느냐.’

 와룡의 목소리가 소년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소년은 홀린 듯 꺼져가는 초의 옆에 섰다.

 아직 멈춰있는 시간.

 불꽃은 여전히 기울어진 채였다.

 소년이 손을 들어 촛불의 주변을 병풍처럼 둘렀다. 작디작은 손으로 어찌 바람을 막을 까 싶었지만 제갈량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한 듯 했다.

 ‘좋다. 마저 끝내보자꾸나.’

 와룡이 다시금 눈을 감고 진언을 외기 시작했다.

 멈췄던 시간이 흐르고.

 쓰러질 듯 옆으로 몸을 뉘였던 촛불이 소년의 손 안에서 재차 타올랐다.

 소년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제갈량을 쳐다봤다. 허연 수염 사이로 벌어진 입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 입에서 흘러나온 주문은 숨소리만큼 작아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타닥타닥 촛농 튀는 소리가 더 잘 들릴 지경이었다.

 소년은 주문을 듣기 위해 귀에다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남은 주문은 길지 않았다.

 제갈량이 주문을 끝내자 여태 잘 타오르던 초들이 훅 꺼져버렸다.

 그 대신 소년의 목걸이, 작은 경옥 구슬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놀란 소년이 가슴어림의 구슬을 바라봤다. 희미하던 빛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꺼져버린 촛불을 대신하듯 따듯한 색깔의 빛이 소년의 가슴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였다. 와룡이 학우선을 들어 소년을 가리켰다.

 번쩍!

 순간 구슬에서 오색 찬연한 빛이 흘렀다. 무지개 같은 빛 무리가 소년의 온몸을 감쌌다.

 놀란 소년을 보며 와룡이 입을 열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 충의를 다하기 위해 행했던 술법이 천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완성 되는구나. 허나 이미 육신은 진토가 되고 영혼은 선계에 이르렀다. 이것은 이젠 내게 의미를 잃었느니. 네가 이 힘을 가져가는 것이 옳겠다.”

 소년은 온몸이 따사로워 지는 것을 느꼈다. 제갈량은 계속해서 소년에게 말했다.

 “짧고도 긴 생을 살았던 내게는 그저 생명연장의 술이 될 뿐이나 이 힘은 본디 시간을 움직여 혼을 육신에 붙잡아 두는 바. 아이야. 이것은 촌각의 시간을 되돌려 생명을 복원하는 강력한 회혼의 술(術)이자 불사의 주(呪)다. 그 경옥에 담긴 네 어미의 염으로 빚어낸 주술이니, 그 목걸이를 소중히 여기거라.”

 소년의 몸을 감싸던 빛이 천천히 줄어들자 주변 또한 어두워졌다.

 와룡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소년은 완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꿈인가?’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다. 신선 같은 제갈량의 모습, 손바닥에서 느껴지던 촛불의 따스함.

 머릿속에는 아직도 제갈량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오색 찬연한 빛을 뿜어내던 목걸이.

 ‘목걸이!’

 소년은 손을 폈다.

 손에 쥐었던 목걸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투박한 빛깔 그대로였다.

 

 * * *

 

 소년의 이름은 이진운.

 역모죄로 몰살당한 이가장의 막내아들이었다.

 어린나이의 그는 가문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어른들의 말과 표정으로 짐작할 뿐.

 그의 어머니가 눈물 흘리며 자신을 집밖으로 보낼 때가 돼서야 큰일이 벌어진 줄 알았다.

 그가 집을 나서자 곧바로 동창이 들이닥쳤다.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진주이가의 무인들을 뒤로한 채 그는 하염없이 도망쳤다.

 하북에서 호북까지. 무작정 움직인 끝에 다다른 데가 바로 이곳. 융중산 무후사의 품이었다.

 비가 그치자 진운은 마을로 내려왔다.

 동창의 추적이 두려워 끊임없이 발을 옮겼지만 이젠 그만 둘 때였다. 여태껏 동창 창위는 물론이고 그를 쫓는 관군 하나 마주친 적이 없었다. 추격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한참을 굶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진운은 먹고살기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했다.

 허나 열 살 남짓의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객잔의 점소이 노릇이 전부였고, 그게 아니면 거지가 되는 수밖에.

 차마 거지가 될 수 없던 진운은 마을 외곽에서 낡은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각 층 처마 모서리마다 붉은 등이 매달려 있었다.

 아직 대낮인데도 들어가는 손님이 하나 없다.

 망한 가게인가 하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건물에서 한 여인이 기지개를 켜며 나왔다.

 짙은 화장에 화려한 옷. 풍만한 몸매와 더불어 입가에 점이 매혹적인 여인이다. 몇 가닥 주름이 잡혀가는 눈매는 풍진세상의 경험이 가득했으나 중년이 되기엔 아직 젊은 얼굴이었다.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하는 그녀의 손에는 다 식은 만두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그녀는 내리쬐는 햇빛이 눈부신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문에 영업 종료를 알리는 팻말을 내걸며 손에 든 만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

 진운은 그 만두를 보자 새삼 허기진 배가 아우성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홀린 듯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거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응? 이건 여기서 일하는 사람만 먹는 거란다.”

 “그럼 저도 여기서 일하면 안 될까요?”

 “흐음......”

 여자의 눈이 진운을 아래위로 훑었다.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너 거지니?”

 그녀의 말에 진운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 거지 아니에요.”

 “그래...... 거지는 아니라고 치고. 부모님은?”

 부모님을 묻는 질문에 진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표정만으로 상황을 짐작했는지 여인이 다시 말을 건넸다.

 “부모님 안 계셔? 다른 가족은?”

 “......아무도 없어요.”

 “쯧쯧쯔...... 천애고아로구나. 그 꼴로 조금만 더 돌아다니면 거지가 되는 거야. 배고파서 그러니?”

 “네......”

 “이리 들어오렴. 식사정도는 챙겨줄게. 어차피 남아봐야 버리는 것들이니.”

 여인의 말에는 순수한 호의가 가득했다.

 

 여인을 따라 들어간 곳은 진운에겐 완전 별세계였다.

 건물 내부는 코를 찌르는 주(酒)향과 여인들의 분 냄새로 가득했다. 여러 탁자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 또 그것을 끼니 삼아 모인 여인들이 저마다의 미를 흘리고 있었다.

 진운이 건물로 들어서자 그녀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어머어머. 소미언니. 그 애는 누구야?”

 “여기오긴 아직 한참 이른 거 같은데?”

 “호호호호 뭐 어때? 꼬마야. 저녁만 되면 이 누나가 받아줄 수 있는데 어때?”

 “이그! 이 주책맞은 년. 얼굴만 반반하면 동자승도 잡아먹을 년이야 저거.”

 “그나저나 그 애 혹시... 소미언니 숨겨둔......”

 우르르 모여들어 저마다 한마디를 뱉어대니 진운은 정신이 없었다.

 하나같이 짙은 화장에 화려한 옷차림이다. 개중에는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인도 있었다.

 소년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여인들의 몸에선 끈적한 냄새가 났다. 남녀의 정과 땀, 그리고 술이 어우러진 냄새였다.

 그곳은 환락의 열기가 식어가는 한낮의 기루(妓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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