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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20
작성일 : 18-12-31 16:35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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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먼저 고준서의 전화번호를 땄다. 지금까지 내 전화번호도 없었냐고 투덜거리는 고준서에게 사정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복잡하진 않았지만, 괜히 길어질 것 같았다. 고준서의 번호는 왠지 고준서처럼 단순해서 지금 보니 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저장했다. 저장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때 왜 김지빈은 내 핸드폰을 뺏어 고준서의 번호를 삭제한 것일까. 내가 국선이라?

 

 

  *

 

 

  곧 화단에 꽃이 필 것 같다고 동준에게 문자가 왔다. 사진까지 찍어서 보냈다. 역시 4월에 피는 꽃이라고 했지만 그건 꽃의 거짓말이었다. 반면에 사우나 화장실에서 꿋꿋이 살아가던 꽃은 결국 시들어버렸다. 꽤 오래 버텼다고 생각했다. 하나가 탄생하면 하나가 지는 게 세상의 이치지. 어쩐지 조금 슬퍼져서 답장도 못 하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꽃이 피면 말하라고 했다. 보러 가겠다고. 보러 갈지 안 보러 갈지 사실 잘 모르겠다.

 

 

  *

 

 

  그동안 모았던 수사 파일을 정리하며 여행 갈 계획도 같이 정리했다. 분명 어디로든 떠날 생각이었는데 앱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경비부터 비교했다. 어디로 가는 건 좋은데 돈이 있어야 말이지. 결국 먼 곳보다 가까운 곳을 찾았다. 이젠 그냥 해외면 됐다고.

 

  현실은 거처도 옮기지 못한 신세였다.

 

 

  *

 

 

  “다시 돌아갈 거야?”

  “그래야지.”

  “퍽이나 받아주겠다.”

 

  수지의 집에서 마지막 맥주를 깠다. 짐을 대충 싼 캐리어를 거실 한구석에 놓았다. 알딸딸한 술기운이 벌써 올라왔다. 너도 참 얼굴에 철판 깔았다고 닭가슴살마냥 퍽퍽하게 웃는 수지를 보며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곱씹었다.

 

  아, 김지빈 집에 다시 들어가겠다고 했구나.

 

  재판이 끝나고 전화는커녕 문자 한 통 오지 않았다. 인제 그만 들어오라고 나를 붙잡을 때가 된 것 같은데 역시 가는 사람 안 막고 오는 사람 막는 김지빈다워서 내가 먼저 숙이고 들어가야지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 민망하게끔. 우리 사이가 이 정도밖에 안 됐나 조금 섭섭해진다. 아니 우리 사이가 뭔데, 선후배? 구동거인? 재판 라이벌? 아, 이건 좀 오버인가.

 

  그래도 재판에서 이긴 건 틀림없다. 그걸로 기분이 상했을 김지빈도 아니고. 마지막에 웃었을 땐 나를 조금 인정해주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실실 웃자 수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몰라, 너 알아서 해.

 

 

  그동안 신세 진 수지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고맙다 밖에 없었다. 나는 맥주컵을 들고 수지의 맥주컵으로 돌진해 일방적으로 부딪고 웃었다.

 

  “알았어.”

 

  빈말이 아니었다. 김지빈한테 까이면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지만 혼자 어떻게든 살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까일 것 같진 않았다. 나는 캐리어를 한 번 바라봤다.

 

 

  *

 

 

  며칠 안 왔다고 길이 어색했다. 나는 마티즈를 주차하고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냈다. 돌아가겠다고 미리 문자를 보냈지만 읽기는 했는데 답장이 없었다. 읽씹했겠다 이거지. 나는 사실 좀 떨고 있었다. 의중을 알 수 없으니까 재판보다 답답한 것 같았다. 김지빈을 가해자석에 세워두고 심문하고 싶었다. 왜 그랬습니까? 하고. 그럼 입이라도 열어 무슨 말이라도 할 텐데.

 

  잠금 번호를 바꿨으면 어쩌지 싶었는데 다행히 바뀌지 않았다. 손을 들어 네 자리 번호를 쳤을 때처럼 문을 열기 전에도 긴장이 됐다. 만약 집에 있다면 번호 누르는 소리에 나왔을 수도 있지만, 성격을 생각하면 또 아니고.

 

  현관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지빈이 없었다. 문자를 보고 싫었으면 이중 잠금이라도 했겠지만 그런 건 일절 안 되어있고 쉽게 들어왔으니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은 걸까.

 

  나는 꼭 도둑질하는 사람처럼 눈치를 보며 거실에 들어갔다. 캐리어 끄는 소리가 나지 않게 아예 손으로 받쳐 들었다. 숨소리를 죽이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었다. 어디서 쿵쿵 소리가 났다. 처음엔 내 심장 소리가 이렇게 큰가, 하고 놀라서 멈췄는데 등 뒤에서 나는 소리였다. 현관문을 세게 두드렸다. 누가 왔다. 깨닫자 온몸의 털이 솟았다.

 

  “엄마야.”

 

  어디서 튀어나온 김지빈이 나를 지나치며 흘깃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엄마를 찾았다. 현관문을 열고 지갑도 열어 누군가에게 돈을 쥐여준다. 맛있게 드세요. 하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그제야 배달을 시켰구나, 깨닫는다. 그나저나 진짜 집에 있었으면서 어떻게 답장 하나 안 하고 인기척 한 번 안 내냐.

 

 

  김지빈은 피자 상자를 들고 다시 나를 지나쳐 식탁으로 향했다. 피자를 세팅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정쩡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서 있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다가 힐끔 바라보고 말했다.

 

  “뭐해?”

 

  서 있지 말고 나가라는 뜻인가? 늘 똑같이 무덤덤한 목소리에 고개가 살짝 떨어졌다.

 

  “안 오고.”

 

  나는 잠깐 귀가 먹먹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다시 들었는데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부러 시켰는데 누나 때문에.”

 

  피자를 한 번 나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보는 김지빈이 갑자기 귀여워 보여서 나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캐리어를 거실에 내려두고 식탁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페퍼로니야?”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김지빈에게 같이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이 상황 언제도 한 번 겪었던 것 같은데, 데자뷔인가. 또 고개를 끄덕끄덕하길래 나는 식탁 의자에 재빨리 앉았다.

 

  “나 오는 거 알았어?”

  “문자 보냈잖아.”

  “그런데 왜 답장 안 했어.”

 

  해야 해?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지빈이 피자를 한 조각 들어, 내 접시에 올렸다.

 

  “왔으면 됐지.”

 

  그리고 본인의 피자 한 조각을 잡아 입안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역시 이건 긍정의 뜻인가. 나도 안심하고 김지빈이 얹어준 피자를 베어 물었다.

 

  “안 왔으면?”

 

  넌 상관없었겠지만 난 이 집이 그리웠어. 사실 집이 그리웠던 건지 김지빈이 그리웠던 건지 헷갈렸지만.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잡아 데려오려고 했지.”

 

  나는 먹던 걸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김지빈은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덤덤하지만 어쩐지 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도 괜찮은 적 없어.”

  “.....”

  “한 번도.”

 

  우린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 굳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나만 김지빈을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없는 동안 김지빈도 나를 생각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우리는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했다. 전에 살았을 때보다 더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양이 늘었다. 할머니 봉안당에 있던 나팔꽃은 조금 예상했지만 믿을 수 없었던 김지빈의 것이 맞았다. 마지막 재판을 하기 위해 기도를 드리러 갔다고 나와 같은 생각을 했지만, 끝은 조금 달랐다. 나는 내 재판을 위해서였고, 김지빈도 내 재판을 위해서였다.

 

  김지빈은 아무렇지 않게 감동받을 만한 말을 늘어놓고 또 아무렇지 않게 내 손목을 잡아서 별안간 가슴이 떨렸다.

 

  손이 어깨에 올라가고 뒷목으로 올라가고 머리를 끌어당겨 안았을 때 비누 향이 났다. 멍하니 안겨있는 내 귓가로 낮은 음성이 전달됐다.

 

  “잘 왔어.”

 

  나는 웃으며 김지빈의 허리를 꽉 감싸 안았다.

 

  “다녀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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