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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19
작성일 : 18-12-31 16:22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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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본인의 입을 통해 듣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정예찬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앞을 응시했다.

 

  “증인은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습니까? 그땐 학교에 다른 학생들도 있었고 경비원도 있었는데.”

  “사람이 그런 순간에 닥치면 오히려 입을 꽉 물게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위협적이었어요. 제가 거기서 소리를 지르면 진짜 커닝을 했다고 거짓말하거나 후원을 끊어야 했으니까.”

  “고통까지 참아야 했던 상황인 거군요. 피해자도 얼떨결에 했던 행동이라 곧바로 사과했다는데 맞습니까?”

 

  박성우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아니요.”

 

  정예찬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나서 저를 옥상 난간으로 밀어붙였어요. 허리가 꺾여서 옥상 밑으로 떨어질 뻔했는데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박성우가 저한테 말하길 ‘그냥, 죽어도 되고.’ 이었기도 했고.”

  “정말 그대로 죽을 생각이었습니까? 반항하지 않았습니까?”

  “모르겠어요. 어쩌면 몸을 비틀었을 수도 있는데 머리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몸을 기울여 박성우를 바라봤다. 박성우는 정예찬에게 사과했고 이해한 정예찬이 스스로 옥상을 빠져나가는 것까지 확인했다고 했는데 두 진술이 다르자 좌중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다음은 어떻게 했습니까?”

  “담배가 옥상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왜 떨어졌습니까?”

  “실수 같아요.”

  “거짓말입니다.”

 

  봉을 두드리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판사의 권한으로 모두 정숙하지 않으면 관람을 금지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심문에 끼어들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퇴장 조치를 하겠다고. 그러자 박성우의 입이 맥없이 다물렸다.

 

  “밑을 바라본 박성우는 2층 창문턱에 담배가 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당장 가서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2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던 겁니까?”

 

  정예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지시대로 2층에 내려갔지만, 창문을 열진 못했어요. 정확히는 열지 않았습니다.”

  “왜죠?”

  “내려오자마자 모든 게 현실로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담배에 지져진 피부가 너무 아팠고 얼굴도 아팠습니다. 심장은 달리기도 안 했는데 쿵쿵 뛰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예찬의 얼굴이 비에 맞아 쫄딱 젖은 강아지 같았다.

 

  “저는 가만히 복도에 서 있었습니다.”

  “얼마나 서 있었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꽤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가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제 존재는 거기까지가 다였겠죠.”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본인에겐 신경 하나도 안 쓰이는 존재. 나는 어차피 걔 손바닥 안에 있을 테니까.”

 

  공허한 눈을 반달로 접은 정예찬이 슬쩍 웃었다.

 

  “그러고 있는데, 박성우가 떨어지는 모습이 창문으로 보였습니다.”

 

 

  *

 

 

  언젠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박성우가 옥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떨어졌을 사람은 나였을 거라고. 어쨌든 무언가 일어날 법한 불안을 매 순간 느꼈습니다. 저는 그동안 우연히 박성우를 목격했으니까, 박성우의 행동 패턴 정도는 대충 알 것 같았습니다. 다음 타깃이 나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반쯤 죽여 놓을 거라고. 그런 장소로 CCTV가 없는 옥상이 딱이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옥상에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박성우의 고개가 빠르게 들렸다. 이번에는 광대하게 당황한 것 같았다.

 

  “어떻게 들키지 않았습니까?”

  “몰래 설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설치했습니까?”

  “모퉁이에 있는 화단입니다.”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누가 등을 밀어 추락한 사건이라 볼품없는 화단을 제대로 살필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실제 카메라 크기가 점처럼 작았기 때문이겠지만, 사실 모든 건 다 변명에 불과하고 오류를 범한 경찰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무엇이 찍혔습니까?”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사건의 전말이 찍혔을까요?”

  “아마 그러리라 생각해서.”

 

  정예찬은 입고 있던 점퍼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작은 USB 하나를 꺼냈다. 내게 느릿하게 건넸다.

 

  “이곳에 가지고 왔습니다.”

 

 

  *

 

 

  4월에 핀다고 들었던 옥상 화단의 꽃은 금방 새싹이 돋았는데, 사실 4월이 아니라 그 전에 개화하는 게 아닐까. 펴보지도 못하고 죽을까 봐 꽃은 꽃대로 몇 달 뒤라고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

 

 

  나는 정예찬에게 받은 USB를 들고 말했다.

 

  “확인하기 전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네.”

  “증인 왜 증언을 하기로 했습니까?”

 

  동준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정예찬을 바라봤다. 그건 정예찬도 다름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동준과 시선을 마주쳤다.

 

  “불쌍해서요.”

 

  그 언제 말했던 대답과 똑같은 대답을 했다. 정예찬은 동영상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확인한 게 분명했다. 나는 이제야 마음 깊은 곳까지 차분해졌다. 안심됐고. 힘이 풀리는 느낌을 애써 잡으며 뒤돌아서기 전 박성우의 이마가 탁자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시선을 옮겨 판사를 바라봤다. USB를 들고 외쳤다.

 

  “재판장님, 사건의 전말을 녹화한 카메라의 영상이 담긴 USB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판사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

 

 

  증거 영상을 보기 위해 모니터가 켜졌다. 그 작지도 크지도 않은 화면에서 그날의 일이 생생히 재생됐다. 주장은 박성우가 아니라 정예찬이 들어맞았다. 진술과 같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좌중에서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터졌다. 정예찬이 2층으로 내려가고 박성우가 난간에 앉는 모습이 비쳤다. 라이터를 켰다 껐다 장난쳤다. 그러다 라이터를 놓치면서 그걸 잡기 위해 손을 뻗은 박성우의 몸이 순식간에 고꾸라졌다. 박성우가 옥상에서 떨어지고 때마침 올라온 동준이 보였다. 어리둥절하며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김지빈 쪽을 힐끔 바라봤다. 이 판에 참여하는 검사 같지 않게 팔짱을 끼고 지켜보기만 했다. 동준의 무죄를 주장하는 끝장 변론까지 마치자 좌중이 들썩였다. 바쁜데 끝까지 지켜봐 준 수지가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쳤다. 나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김지빈은 스르륵 일어났다. 목 끝까지 잠근 단추를 몇 개 풀었다. 그런 김지빈의 얼굴에 대고 내가 널 이겼다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나는 동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생했다고 말하기 전에 고생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친 김지빈을 보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입꼬리를 올려 웃은 김지빈이 검사복을 벗어 어깨에 걸쳤다. 그대로 재판장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김지빈.

 

 

  하고 부르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 어깨를 툭툭 치는 고준서와 나를 안고 펄쩍펄쩍 뛰는 수지를 뒤로 한 채 김지빈이 나간 길을 그대로 빠져나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김지빈.”

 

  나는 그제야 소리를 만들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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