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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16
작성일 : 18-12-31 15:53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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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빈과 영화를 보러 간 날이 기억난다. 여자 친구가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그러고 보니 그 여자가 누군지 묻지 못했다. 차에 대해서도, 차를 바꿨는지 아니면 원래 여러 대가 있었는지. 그 궁금했던 생각들은 제쳐두고 단 한 마디에 기분이 실실 풀렸던 나는 김지빈의 무엇이지. 김지빈은 내게 무엇이지.

 

 

  *

 

 

  언젠가 엄마한테 내 이름의 뜻이 뭐냐고 물었다. 엄마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우연히 마주친 스님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이 이름을 사용하면 귀한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변호사가 됐더라.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변호사가 귀한 직업인가. 변호사가 되고 부모님이 집 앞에 현수막을 걸며 세상 부서져라 좋아하긴 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더는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는 거. 나는 그냥 변호사였다.

 

 

  *

 

 

  “변호인, 반대 심문 시작하세요.”

 

  어디 해보라는 말투의 판사가 이제 좀 결정타를 날려보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 어떤 뚜렷한 주장이 검사 측에서도 나오지 않고 우리 쪽에서도 나오지 않고 주야장천 시간만 흘려보내서 답답한 눈치였다. 판이 뒤집힐 만한 증거가 없는 이상 동준에게 무죄판결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잘 알고 있었다.

 

  김지빈은 서류철을 덮으며 나를 주의 깊게 바라봤다. 그 눈빛에 쫄 시간이 없었다. 나는 판사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고 강력하게 말했다.

 

  “재판장님, 사건의 피해자인 박성우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

 

 

  판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에 따라 박성우가 재판장에 들어왔다. 휠체어를 타고, 한쪽 다리는 깁스를 했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본인도 아픈 곳을 잘 모르던데. 고준서가 어이없는 실소를 터트리는 것이 들렸다. 나도 속으로 잠깐 헛바람 불 듯 웃었다. 박성우가 증인석에 자리 잡았다.

 

  “혹시 증인은 아직 다리가 아픕니까?”

  “네?”

  “휠체어를 탈 정도입니까?”

 

  박성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어차피 멀쩡한 모습을 본 사람은 나와 고준서 둘뿐이고, 딱히 증거도 없으니 될 대로 되라는 건가. 탁자를 약하게 내려친 김지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의 있습니다. 변호인은 재판과 무관한 심문으로 증인의 이유를 흩트리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변호인, 주의하세요.”

 

  단호하게 호통치는 판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박성우가 마치 혀를 빼고 메롱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살짝 웃었다. 박성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증인은 13일 밤, 학교 옥상에서 뭘 했나요?”

  “그냥 있었습니다.”

  “그냥만 있었습니까?”

  “바람을 쐬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시험 기간이라 우울해서 옥상에 갔다고 진술했습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단순히 바람을 쐬기 위함이었다면 다른 곳도 있었을 텐데 왜 옥상입니까?”

  “줄곧 옥상에 갔습니다. 그날도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 옥상일 뿐입니다.”

 

  박성우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재판장은 나와 박성우의 문답 말고는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그럼 증인은 옥상에 무엇이 없는지 아십니까?”

 

  박성우는 불편과 의문이 뒤섞인 눈빛으로 대답했다.

 

  “혹시 CCTV인가요?”

  “맞습니다. 학교에는 CCTV가 무수히 설치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눈에 띄지 않는 소각장에도 있지요. 교내 학생들도 잘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옥상에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럼 옥상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까?”

 

  박성우는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난간인가요?”

  “그것도 맞지만 제가 생각한 정답은 따로 있습니다.”

 

  나는 볼펜을 들고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움직였다.

 

  “모퉁이에 화단이 있습니다. 보았습니까?”

  “못 봤습니다.”

 

  박성우의 말끝이 흐려졌다. 나는 볼펜을 다시 내려놓고 박성우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줄곧 갔다고 했는데 한 번도 못 봤습니까? 난간 끝에서도 대각선으로 보이는데요.”

  “네. 거기까지 미처 볼 생각을 못 했습니다.”

  “CCTV가 없는 건 알면서 화단이 있는 줄은 몰랐다. 증인은 CCTV가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공공연하게 돌았습니다. 옥상에 CCTV가 없다고. 아는 게 문제가 되나요?”

  “그렇다면 증인은 소각장에 CCTV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겠네요?”

 

  박성우가 입술을 짓이겼다. 나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

 

 

  재판이 끝나면 여행을 가고 싶다. 이왕이면 국내보단 해외로. 고개를 돌리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욕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고 나조차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는 그런 곳으로 혼자.

 

 

  *

 

 

  변론하는 나를 턱을 괴고 바라보는 김지빈을 흘끔거렸다. 이 판은 완전히 내 차지라는 것을 각인시켜주기 위해 처음과는 다른 자신 있는 표정과 깔끔한 문장을 사용했다. 닿았을까, 내 노력이.

 

  나는 김지빈에게 가 있는 시선을 다시 박성우에게 돌렸다.

 

  “증인은 옥상에 올라간 이유가 우울해서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왜 우울했습니까?”

  “이미 시험 기간이라고 말했죠. 말 그대로 성적 때문이었습니다.”

  “성적이 어떻던가요?”

  “그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요?”

  “변호인, 그게 재판에 필요한 심문입니까?”

 

  판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필요합니다. 대답해주시죠, 증인.”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떨어졌습니까?”

  “저번 중간고사까지 전교에서 1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번에 주관식을 밀려 쓴 바람에 2등으로 떨어졌습니다.”

 

  좌중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괴로운 듯 한숨을 쉬었다.

 

  “학교에 성적 정정을 요구하는 청을 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죠? 답이 맞았다면 억울하지 않았습니까?”

  “억울했지만 의미가 없으니까요. 밀려 쓴 건 제 실수니까.”

  “증인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입니까?”

  “네?”

 

  박성우는 당황한 것 같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증인, 거짓말을 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네.”

 

  박성우의 입술이 일자로 다물었다가 벌어졌다.

 

  “증인이 2등으로 성적이 떨어졌다면 당시 1등을 했던 학생은 누구입니까?”

  “정예찬이라고, 같은 반 친구입니다.”

  “친구가 확실합니까?”

 

  박성우는 대답이 없었다. 시선을 회피하고 고개를 살짝 떨어뜨렸다.

 

  “맞습니다.”

  “증인은 정예찬 친구 몸에 담배를 지졌던 사실을 인정합니까?”

 

  좌중이 대놓고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박성우는 다시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인정합니다.”

  “저한테 사건 당일 그랬다고 자백했는데 인정합니까?”

  “인정합니다.”

  “당시 정예찬 친구와 옥상에서 만났다는 사실도 인정합니까?”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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