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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열다섯
작가 : 라한
작품등록일 : 2016.9.24

공모전작을 쓰며 한국에서 잠깐 했던 대학생활 중 느꼈던 바를 한 친구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구성해봤습니다.

 
2010년 11월 21일 일요일
작성일 : 16-09-24 11:20     조회 : 267     추천 : 1     분량 : 2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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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21일 일요일

  안녕, 일기야!

  정말 내가 또 하루 만에 널 찾다니! 대단해! 사실 오늘은 집 밖에 안 나갔어. 그래서 별로 할 얘기가 없을 거 같긴 하다. 오랜만에 아빠가 집에 있었거든.

  사실 우리 아빠가 집에 있을 때에 그렇게 나랑 놀아주지는 않아. 그래도 뭔가 모르게 아빠가 집에 있음 기분이 좋아. 아빤 가끔 있는 휴일에 집에서 쉴 때는 말야, 9시에 내가 아침 차려 줘야 방에서 나와. 오전엔 내내 소파에서 YTN만 틀어놓고 쓰러져있고 점심때는 식빵밖에 안 먹어. 식빵도 어떻게 먹는 줄 아니? 아무것도 안 바르고 그냥 뜯어먹어. 참 식성도 이상해. 오후엔 서재에 들어가서 도통 나오지도 않아. 내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거나 저녁 먹으러 나가자고 직접 말하러 나오기 전엔 말야.

  오늘은 나도 아빠처럼 그냥 집안에서 빈둥거렸어. 아침에 일찍 샤워하고 바로 다시 침대에 누웠어. 샤워하니까 또 눕고싶더라고. 그런데말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엄마가 8시쯤에 밥 먹으래! 엄마가 밥 차리는 게 거의 두 달만인거 같아. 물론 그냥 백화점에서 사온 것들 대충 데워놨더라. 그래도 그게 어디야? 만약 안 차려줬으면 내가 9시에 아빠 먹을 거 까지 다 했어야 했는데.

  엄만 차려주고 바로 나가더라. 나가면서 나보고 공부나 하고 있으래. 갔다 와서 만약 안 하고 있었으면 어제 준 선물 뺐겠다면서. 어차피 확인도 안 할 사람이면서. 맞아, 어제 아침에 엄마가 선물이라면서 뭐 줬는지 알아? 신용카드. 아직 내가 어려서 가족카드로 만들었대. 그래도 카드에 내 이름이 올록볼록하게 박혀있더라. 그런데 이게 무슨 선물이냐? 이건 분명히 그냥 엄마 편하라고 준거야. 매일 아침에 밥값이라고 돈 주는 시간도 아까워서 이젠 그냥 이거나 받고 알아서 하라 이거지. 정말!

  저녁까지 그냥 방에서 컴퓨터나 들여다보고 있었어. 네이트온으로 애들이랑 채팅도 하고 미니홈피도 들어가보고 카페에 올라오는 웃긴 사진이나 글들 보다보니까 벌써 6시도 넘은거야! 얼른 나가서 티비 틀었지. 아 가요프로 놓쳤어. 귀찮게 또 다운 받아서 봐야해. 어쨌든 할 수 없이 그냥 주말 예능들 틀어놓고 조리대로 갔어. 오랜만에 아빠랑 둘이서 먹을 수 있는 기회니까 내가 직접 요리하고 싶었거든. 만약 7시까지 내가 방에서 안 나왔으면 아빠가 서재에서 나와서 밥먹으러 나가자고 했을걸?

  계란말이도 하고 김치찌개도 끓였어. 귀신같이 딱 부르려고 하니까 아빠가 알아서 나오더라고. 밥은 있었고 다른 반찬들도 냉장고에 있는 거 꺼냈을 뿐이야. 그래도 아빠는 우리 딸 최고라고 뽀뽀해줬어. 역시 난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아. 아니 세상에서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 엄만 내가 생일선물로 목도리 짜줬는데도 고맙단 말 한 마디도 안 했거든. 근데 아빠는 내가 간단한 심부름만 해줘도 고맙다고 해. 또 아침마다 나 태워다 줄 때도 고맙다고 해. 왜 고마운지는 모르겠어. 그래도 어쨌든 아빠가 제일 좋아.

  부엌에서 티비 보면서 설거지했지. 다 하고 거실에서 편하게 티비 보는데 아빠가 주말 사극 보러 나오더라. 나도 사극 무지 좋아해.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있어서 더 좋았어.

  아빠는 오늘도 티비 보면서 술 마셨어. 누리끼리한 술인데 냄새가 싫어. 꼭 그 있잖아, 토 냄새나. 아빠는 그 술이 황금색이래. 참 나! 아빠도 내가 그 냄새 싫어하는 거 알아. 그래서 술 마실 때는 소파 끝에 앉아서 마셔. 아빠는 다 좋은데 이것만 좀 어떻게 안 되나?

  우와!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까 어제보다 더 많이 쓴거 같아! 일기라는거 정말 좋다. 작문숙제처럼 막 앞뒤 생각하면서 안 써도 되고 꼭 친한 친구랑 대화하는 거 같아. 민서처럼. 물론 넌 대답은 안 하지, 히히. 그럼 내일 또 보자!

 

  형광등이 꺼진 방. 일기를 덮는다. 민영이가 고개를 들어 책상을 비추고 있는 스탠드를 올려다본다. 형광색 포스트잇이 까만 스탠드 커버에 비스듬히 붙어있다. 창백한 스탠드 불빛은 종이를 투과한다. 포스트잇에 색색의 향기 나는 볼펜으로 적어놓은 시간표들이 고요하게 드러나 있다. 월요일의 시간표를 살펴본다. 1년간 본 익숙한, 이미 다 외운 시간표지만 항상 확인한다. 마른 민영이의 몸보다 큰 가방에 책들을 꾸역꾸역 담는다. 옷장에서 교복을 꺼내 방바닥에 뿌려놓는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황금빛이 다 증발해버린 술잔과 얼음이 다 녹아버린 물컵이 거실 테이블에 놓여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그리곤 한숨을 길게 빼며 컵들을 집어 조리대 위에 올려놓는다. 거실의 불을 끈다. 방 손잡이를 돌리다 놓는다. 거실의 통유리창으로 걸어간다.

  발아래엔 깨알 같은 사람들과 차들이 아직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집 앞 지하철역의 4번 출구가 콩알만하게 보였다. 늦은 시간. 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만 있지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그런 출구. 민영이가 서있는 가장 높은 층. 그 발밑의 풍경. 도곡역 4번 출구. 그 밤 그것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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