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에겐 결혼도 그저 사치일 뿐이다 (1)

　페이스북에 유진이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부한답시고 페이스북 활동은 거의 하지 않던 그녀였다.

　페이스북을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 근황을 전하는 데에는 여러 사유가 있을 수 있다. ‘갑자기 재미가 붙어서, 갑자기 심심해져서, 갑자기 한을 풀 데가 필요해서, 갑자기 도움이 필요해서, 갑자기 불특정다수에게 관심 받고 싶어서’ 안하던 SNS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마음에 둔 사람이 생긴 것.

　‘나 지금 어디에 있다(=너랑 같이 가고 싶다).’

　‘나 오늘 뭐하고 있다(=너랑 이걸 같이 하고 싶다).’

　‘나 지금 누구랑 있다(=너도 나랑 만나고 싶지).’

　‘나 요즘 무슨 생각하며 산다(=나 지금 외롭다)’

　이런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글귀와 사진이 올라온다면, 자신의 존재감을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혹은 이런 활동을 통해 그 누군가와 소통할 기회를 찾고 싶은 것이다. 고로 좋아하는 사람, 내지는 관심이 가는 사람, 내지는 신경 쓰이는 사람이 생겼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내가 보기에는 다 그렇다. 아주 편협한 생각이긴 하지만, 꽤 적중하는 편이다.

　특히나 유진이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내 짐작이 맞는 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최근 업데이트한 글귀들은 단순히 불특정다수를 겨냥한 내용이 아니었다.

　“연구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분위기가 참 좋네요.”

　“**랑 학식당에서 밥 먹는데 오늘 메뉴 대박이네요.”

　“오늘 과 세미나 참석해야 하는데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생각나는 분 기도해 주세요.”

　이 따위 글을 올리는 사람은 내가 알던 유진이가 아니다. 이건 자기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는 지를 알리겠다는 표시다. 나아가 자기 스케줄을 참조하라는 뜻이다. 자기 글이 뜰 때마다 나를 한번이라도 더 생각해 달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특히나 뜬금없는 기도 드립은 그녀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는 표현이다(참고로 고모는 유진이가 요새 교회에 잘 안 나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 유진이는 이런 말까지 올렸다.

　“혹시 스턴버그의 <교육심리학> 어떠신가요? 저는 읽어나가는 데 여러 모로 어려움이 많네요.”

　확실하다! 그녀가 그 책을 어려워할 리 없다. 학부 시절부터 몇 번 나에게 주저리주저리 그 책에 대해 늘어놓은 적이 있어서 잘 아는데, 이제 와서 어렵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자기가 염두에 둔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주기를 바라는 글이자, 그걸 계기로 하게 될 소통을 기대하는 용도인 게 틀림없다.

　페이스북에 유진이의 글이 올라올 때마다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도 “요즘 아이들, 참 좋은 시대 사는 구나.” 싶다. 그 옛날 어른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접촉점을 찾을 수 없으니……. 직접 다가갈 기백이 없는 이상, 함께할 수 있는 우연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마음에 둔 사람과 소통할 기회를 갖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용기가 있어 들이댔다 해도 부담스럽다며 밀쳐지기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SNS는 자연스럽게 다가갈 최적의 장이다. 눈치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댓글을 달 수도 있고, 그 기회로 소통의 창구를 틀수도 있으며, 나아가 만남의 기회로 연결시킬 수 있다. 용감하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심지어 오래 전에 연락이 끊겨 막연하게 그리워하던 누군가도 그 공간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다. 한번 연락이 끊어지면 이산가족마냥 다시 연결되기 어려웠던 옛날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이건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이십대 중반이었을 때도 이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2000년대 중후반, 그때만 해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웬만한 담력이 있지 않고서는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시절 미니홈피가 한창 유행이었다지만, 마음에 든다고 해서 갑자기 글을 남길 수 없었다. 친분도 없는데 뜬금없이 글을 남긴다는 것은 대놓고 관심을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친하지도 않은 누군가의 홈피에 방문했다는 것 자체가 의심을 살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굳이 찾아 들어가지 않고도 누군가의 근황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근황을 알고 있어도 의심받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글에 댓글을 달 수 있다. 그 누구도 그 댓글 행위에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게 페이스북 문화이자, 요즘 사람들의 세계관이다. 곧 그 안에서는 말을 거는 것부터가 쉽다는 뜻이다. 친분이 없어도 글이 인상 깊었다는 핑계로 댓글을 달 수 있는 게 SNS 문화다.

　‘만약 나의 황금기였던 이십대 중후반에도 SNS가 있었다면, 막연하게 지켜보다가 포기해 버린 그 여인이 지금 내 곁에 있을 수…….’

　혼자 신나는 상상을 하며 웃다가 ‘아차’ 싶었다. 다시 유진이 문제로 돌아왔다. 삼촌이지만 사촌 오빠, 아니 친오빠나 다름없는 내가 유진이 문제에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딸바보 아버지처럼 규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피씩 웃긴 했지만, 진심으로 그녀에게 행복을 맛보게 해 주고 싶었다. 자유롭게 만나서 연애도 좀 해보라고 밀어붙이고 싶었다. 사실 유진이는 학부 시절 내내 연애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아이였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했고 그럴 돈도 없었다고 했다. 여유가 없었던 거다.

　며칠 후, 유도심문을 하니 역시나 유진이는 바로 걸려들었다. 그냥 슬쩍 떠보기만 하려 했으나 그녀는 아주 술술 불었다. 내가 무서워서가 아니다(그녀가 나를 무서워할 리가 없다). 그냥 자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자신이 지금 마음에 둔, 아니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데, 마침 내가 걸려든 것이라고나 할까? 결국 미끼를 문 것은 그녀가 아닌 나였다.

　예상대로 페이스북에서 저지른 그 행태는 그 사람을 염두해 둔 것이었다. 학교 안에서 그녀의 동선과 스케줄을 남발하는 것을 보고 학교 사람이라고 추측했는데, 역시나 맞았다. 물론 그녀는 ‘페이스북 글은 그냥 심심해서 올린 거’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심심할 래야 심심할 수 없을 그녀에게 그 이유는 가당치도 않았다. 그 이후로 페이스북의 자기 글을 나만 못 보게 막아두고 계속 글을 올린 것을 보면……. 유진이는 내 아내는 계속 볼 수 있게 해 두어 나는 여전히 그녀의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나 공부 빼고는 허술한 아이다.

　일단 유진이는 설레는 표정으로 그 사람에 대해 한참을 늘어놓았다. 일단 막연하게 힘들어하지 않는 걸 보니, 막막한 짝사랑은 아닌 듯 했다. 쌍방 간에 신호가 오가는, ‘썸’ 상황인 듯 했다. 사실 그게 아니면 페이스북에 굳이 자신의 행보를 나열할 리도 없다. 상대가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이니 그런 짓도 가능한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사람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선배였고, 연구 조교 중에서도 최고참이었다. 부를 때는 ‘쌤’, 혹은 ‘최쌤’이라고 부른다. 대학원생들끼리는 선생님이나 쌤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보니 그도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유진이보다 일곱 살이 많았는데 집안 형편이 안 좋아 중간에 휴학을 몇 번 하다 보니 졸업도 조금 늦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나이는 많아도 동안이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데, 마치 그 친구가 자기 남편이라도 된 것 마냥 신나보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의 모습이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유진이이 취향이 이 정도였나 싶어 적잖게 놀랐다. 그래도 지금 서른이면 나보다 세 살이 어릴 테니 꽤 풋풋하리라 확신하며 들여다보았건만, 조교인지 교수인지 구분이 안 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30센티미터 뒤에서 눈을 조금 게슴츠레 뜨고 보면, 어느 정도는 괜찮아 보였다. 스타일만 바꾸면 충분히 개선될 수도 있을 법한 호남형이었다.

　“근데, 삼촌. 그 쌤도 진짜 나한테 관심이 있나봐. 내가 세미나 참석해야 한다고 페북에 올렸거든. 근데 그 쌤은 안 와도 되는데 끝날 즈음에 온 거야! 그냥 잘 진행되는지 확인 차 왔다는데 꼭 나보러 온 것 같았다니까! 끝나고 밥도 같이 먹자고 했어.”

　페북에서 저지른 행태가 그 사람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고 해놓고서는, 자기 스스로 실토했다. 물론 자신이 실토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유진이다. 나는 예의상 모른 척 하며 계속 들었다.

　“그리고 있잖아. 조교들끼리 조 나눠서 하는 게 있는데, 그 쌤은 꼭 나랑 같은 조에 걸려. 조를 그 쌤이 짜거든? 진짜 왜 그런 걸까? 헤헤.”

　왜 그런지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물어놓고는 나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냥 자랑하고 있었다.

　유진이의 마음을 확인한 날, 내 마음도 왠지 모르게 편했다. 고모에게 진 빚을 갚는 듯한, 그런 말도 안 되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매번 인생을 즐기지 못한 채 살아가던 유진이가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설렘을 표현하는 게 기특했다. 고모가 바라는 것도 그게 아닐까 싶었다. 유진이는 할머니(나의 고모)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려고 하지만, 고모가 진짜 바라는 건 유진이의 행복이다. 공부해서 행복해도 좋은 것이고 사랑에 빠져 행복해도 좋은 거다. 그냥 그게 고모의 바람인데, 적어도 그날 유진이는 태어난 이후로 가장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유진이는 나와 아내에게 자신의 상황을 틈틈이 보고했다. 자신의 감정을 떠벌리고 싶은데 떠벌릴 사람이 없어 우리를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도 좋았다. 특히나 나에게는 “숙모에겐 절대 말하지 마. 꼭 약속해줘!”라고 해놓고는 그날 저녁 아내에게 스스로 다 불어버렸다. 그냥 한 명에게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셋은 그녀의 설렘을 공유했고 나와 아내는 인생 선배로서 컨설팅을 시작했다. 특히 아내는 그 사람의 사진을 보더니, 잘 생겼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보기에 잘 생긴 사람은 따로 있나 싶었다.

　일주일이 지났을 즈음, 유진이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찾아왔다. 뭔가 그 사람이 유진이에게 마음이 없나 싶었다. 듣자 하니 그건 아닌 듯 했다. 아직 드러내놓고 서로 마음을 털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들어온 바로는 일단 서로 마음이 있는 것은 맞는 듯 했다. 특히나 아내는 백퍼센트라고 했다.

　그날 유진이가 조금 어두운 얼굴로 찾아온 것은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난 진짜 그 쌤이 좋거든. 그런데 만약 그 쌤도 내가 좋다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만나면 되지. 그걸 바라고 있고만 뭘.”

　“그래. 유진아. 숙모가 보기에도 괜찮은 사람 같은데? 잘 맞을 것 같고. 뭐가 걱정이야?”

　유진이는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만약 진짜 사귀기라도 하면 결혼해야 할지도 몰라. 그 쌤이 나이가 많잖아. 아마 결혼을 전제하고 만나야 될 것 같은데…….”

　“왜? 결혼은 싫어? 아직 어려서 부담스러워?”

　“아니, 그건 아닌데, 그 분이랑 결혼하기 싫은 게 아니라. 그분이 진짜 어렵게 살거든.”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유진이의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그 사람의 형편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에 더 놀랐다. 평소에 결혼에 대해서도 별 뜻이 없는데다가 돈을 보고 결혼할 사람은 더욱 아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내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유진아. 그 쌤의 집안 형편이 걱정돼? 왜? 돈 안 보고 결혼할 것 같은 애가 왜 그래?”

　“숙모. 난 진짜 할머니랑 계속 같이 살고 싶거든. 그리고 진짜 할머니 호강시켜줘야 된단 말이야. 그런데 그 쌤은 부모님 생활 책임지기에도 벅차. 예전엔 조교하면서 알바도 여러 개 하고 그랬데. 만약 내가 결혼하면, 고모도 못 챙기고 그럴 텐데. 내가 버는 돈도 그분 부모님 챙기는 데 써야 될지도 몰라.”

　누가 보면 김칫국 마신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꽤 심각했다. 정말 사귀는 게 결정이라도 되면 현실로 다가올 문제이기 때문에 더 망설여지는 듯 했다.

　한편 자기 할머니를 한없이 걱정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다. 물론 그다지 놀랄 것은 아니었다. 늘 유진이는 고모를, 고모는 유진이를 걱정하며 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가질만 했다. 그렇다고 고모는 너의 행복만 생각하는 분이니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걸 아는 아이라면 이런 고민을 애초에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