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관문. 우리가 그 시대에 만났던 결혼

　# 고모는 설렐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1)

　특별히 나쁜 기억을 찾을 수 없는 고모와 나의 관계가 심각하게 틀어질 뻔 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서러움일 뿐 고모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또래치고는 꽤 늦게 찾아온 첫사랑. 뻔한 결과이긴 하지만 그 첫사랑에 실패한 내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고모 집이었다. 원래 직계가족에게는 연애사를 숨기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인데다가 고등학교 1학년이 사랑에 실패했다며 청승맞게 우는 것 또한 부모님께 보여드릴만한 모습이 아니었으니, 내 슬픔의 적당한 배출구는 고모밖에 없었다. 무작정 받아주고 위로해 줄 분은 고모 뿐이었니까. 솔직히 그날만큼은 친구들에게도 실패담을 꺼내놓기 싫었다.

　나는 거실에 주저앉아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고모에게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빈말이 듬뿍 섞인 위로라도 상관없었다. 어떤 방식이든,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고모는 난데없이 당황스러운 말을 꺼내셨다.

　“부럽다. 사랑하면 기분이 어때?”

　믿었던 고모가 나를 약 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날만큼은 어떤 장난스런 놀림도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 친구 대신 고모를 찾아온 것인데, 고모가 그럴 줄은 몰랐다. 설령 반어법으로 위로한 것일지라도 꽤 불쾌했다. ‘부럽다’는 표현이 나름 센스 있는 위로의 방법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 먹히지 않았다. 그때는 빈말이라도 좋으니 전통적인 위로가 필요했다.

　그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거의 일주일가량 고모와 말도 섞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에 오셨을 때도 시큰둥했다. 그것이 고모 몰래 고모를 미워했던 딱 한 번의 사건이었다. 물론 고모는 여태까지 그때 받은 내 상처에 대해 눈치를 못 채신다.

　고모에 대한 서운함이 완전히 풀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주일 정도 지나 옛정에 기대어 다시 고모와 좋은 관계로 지냈지만 서운한 기억을 지울 수는 없었다.

　완벽하게 오해가 풀린 것은 11년이 지난 2012년이었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거라는 이야기를 고모에게 꺼내던 그 날, 나는 남몰래 감추어둔 서운함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던 고모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결혼 계획을 이야기하자, 고모는 마치 답례라도 하듯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너는 나처럼 되지 말라는 차원에서 던지신 말씀 같았지만, 내게는 신선하고 당혹스런 충격으로 다가왔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모부는 내가 태어나기 20여 년 전, 고모 곁을 떠났다. 하늘나라로 간 것이라면 눈물이라도 짜내며 위로해볼텐데, 식상하지만 파격적인 소재인 ‘바람’이 그 원인이라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굳이 소환할 필요 없는 슬픈 과거를 요약하자면, 고모는 중매로 동네에서 조금 잘 산다는 아저씨와 결혼했고(결국 가족 때문이었다) 그 아저씨(고모부)는 딸(KAL기 사고로 고인이 된 나의 사촌 누나)이 태어난 지 100일 즈음에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흔한 레파토리긴 하지만 고모가 그런 스토리의 실제 주인공이란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고모부의 바람 스토리보다 더 슬펐던 것은 사랑을 해 본적이 없다는 고모의 사연이었다.

　“규민아.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사랑하면 기분이 어떠냐? 응?”

　결혼은 했지만 사랑한 적은 없다. 누군가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와 같은 모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모는 정말 그랬다. 고모에게 사랑은 사치였다. 스무 살 때까지도 그럴 기회가 없었고 그나마 찾아온 결혼 역시 사랑과는 무관했으며 그 이후로도 사랑할 기회가 주어질리 만무했다. 학교를 안 다녔으니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 자체가 없었다. 고모는 그 흔하고 뻔한 짝사랑조차 해 본적이 없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사랑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사랑받는 느낌이 궁금하다는 것도 아니었다.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생기는 감정이 궁금하다고만 했다. 설렌다는 게 대체 뭔지, 그 느낌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고 했다. 상상이 안 된다면서 말이다.

　분명히 고1 때 들었던 말과 똑같은데, 이번엔 좀 달랐다. 괜히 울컥했다. 어렸을 땐 고모의 말이 그토록 서럽게 들렸는데, 지금은 고모를 향한 애처로움만 가득하다. 사랑이 뭔지 모른다는 그 말 안에 고모의 인생사가 다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2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조카 유진이와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쳤다. 하필 그때가 2014 월드컵 결승전을 30분 앞둔 시점이었다. 그날은 일반적인 월드컵 결승과는 좀 달랐다. 독일과 아르헨티나가 붙는 그런 결승이다. 보통 결승이 아니란 소리다. 적어도 센스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축구에 관심이 없더라도 마주친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간단한 인사만 하고 바로 헤어졌어야 한다. 그게 예의이자 인간의 도리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머리는 좋지만 눈치가 없는 유진이는 나를 붙잡고 한참을 하소연했다.

　“삼촌, 요즘 좀 걱정거리가 있어……. 요새 우리 할머니가 좀 이상해.”

　“응? 고모가 왜?”

　“혹시 할머니한테 들은 말 없어?”

　아무리 고모 이야기라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나는 은연중에 다급하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유진이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 아니, 경비 할아버지 있잖아……. 실은 우리 할머니가 어젯밤에 그 할아버지랑 같이 들어오시더라고. 아파트 정문으로.”

　“그래? 무슨 관리 요청 드렸던 거 아닐까?”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았거든. 내가 눈치 빠르잖아…….”

　“걱정 마. 뭐 있을라고. 그런데, 유진아. 정말 미안한데. 내가 지금 좀 바빠서.”

　스스로를 눈치 있다고 여길 만큼 눈치가 없는 유진이라면, 대충 떠밀어도 큰 상처는 받지 않을 듯 했다. 그래서 바쁘다고 둘러대며 우리 동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아……. 삼촌, 바쁘구나. 미안해……. 그런데 일요일인데 바빠?”

　바쁜 일이 있냐니……. 말문이 막혔다. 더 이상 말이 안 나왔다. 아무리 공부만 한다지만 월드컵 기간인 것도 모르다니. 명문대 다니는 거 다 소용없다는 게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다. 유진이의 남편 될 사람이 누구일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축구 중계나 제대로 시청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영혼을 뒤로 하고 얼른 집에 왔고 무사히 결승전을 시청할 수 있었다. 혹여 유진이가 전화라도 걸까봐 노심초사했다는 것을 그 아이는 절대 모를 것이다.

　예상한 결과이긴 하지만 혹시나 하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독일이 우승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 결과 덕에 월드컵의 환상에서 금방 헤어 나오게 된 것이다. 현실감각을 되찾자 문득 고모의 사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고모가 경비 할아버지랑? 에이, 설마. 아파트 관리 문제 때문이겠지. 근데 정문으로 같이 들어오는 건 좀 이상하긴 하네. 그런데 경비 할아버지 중 누굴 말하는 거지?’

　사실 경비원과 상의할 것이 있다면 경비실이나 단지 내에서 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같이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건 바깥에서 같이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마침 2014년은 ‘썸’이라는 단어가 처음 보급되던 해였다. 나는 그 상황을 ‘썸’이라고 정의했다. 썸은 애매할 때 쓰기 좋은 딱 좋은 표현이다. 물론 나는 고모의 사랑을 응원했다.

　누군가의 썸은 지루한 인생에 적절한 활력소가 된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도 재밌기만 하다. 눈치 없는 유진이의 증언에만 의지한 채 나는 두 사람의 썸을 응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해 여름과 가을, 연이은 야근에 시달리며 고모에게 더 이상 관심을 둘 수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기간 동안 고모와 만날 일이 없었다.

　내가 고모의 일에 관심을 다시 갖게 된 것은 11월 초였다. 고모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모는 흐리고 풀린 눈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눈동자만큼은 반짝거렸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초점 없는 눈을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있었으면 아빠나 유진이가 진작 귀뜸해 주었을 테니까.

　나는 고모의 현 상태가 그 해 여름, 경비 할아버지(물론 여러 할아버지 중,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유진이뿐이다)와의 썸과 어느 정도 관련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기회가 되면 취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기회를 만들었다. 다짜고짜 나는 고모에게 모든 것을 밝히라고 말씀드렸다. 지금 완전히 풀려있는 흐린 눈동자가 대체 무슨 일 때문이냐고 따졌다. 고모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황당해 하면서도, 이내 기다렸다는 듯 술술 털어놓기 시작하셨다.

　결혼 전 내가 살던 아파트에는 유난히 점잖고 샤프한 외모의 경비 할아버지가 계셨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유진이가 본 경비 할아버지가 그분이었다. 경비 할아버지에게 우리 고모는 인상이 깊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하나다. 모든 경비 아저씨 및 할아버지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간헐적으로 친절하게 대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과한 친절로 일관성 있게 다가가는 분은 우리 고모뿐이었다. 참고로 고모는 당시 69세, 경비 할아버지는 62세셨다.

　사실 고모가 경비원들에게 과한 친절을 베푼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도’. 고모는 예전부터 이 분들에게 포교의 의지를 불태우고 계셨다. 고모네 교회로 전도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친해진 후 교회로 데려가는 그런 전도법이다. 고모는 그것을 시도하신 듯 했다. 경비원들이 그런 고모의 큰그림을 알 턱이 없었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웃을 수 있게 해 주는 고모가 그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고모는 69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고우셨다. 40대엔 할머니 느낌이더니 점점 할머니 분위기를 벗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고모는 40대 이후 외모 변화가 없이 그대로였다. 반면, 다른 분들은 급격한 노화를 겪으니 고모가 상대적으로 젊어보이게 된 것이다.

　고모가 노화를 조금 비껴간 것은 화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을 안 했기에 40대까지만 해도 다소 누추해 보였지만, 화장을 안 한 덕에 지금껏 좋은 피부를 유지하고 계신다. 화장 안하며 지낸 과거가 이제야 빛을 발한다고나 할까. 거기에 돈을 아끼겠다는 심산으로 채식 위주의 식단을 고수한 것도 외모 관리에 한몫했다. 여기에 더해 그 나이 되도록 식당일을 하셨으니 운동이 저절로 되어 군살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고모의 친절은 뭇 남성들에게 인상 깊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모의 과도한 친절과 외모만으로 여름날의 썸이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유진이가 정문으로 들어오는 두 분을 목격한 그 날, 사실 두 분은 합동 분향소에서 우연히 만났다.

　97년 항공 사고로 딸 내외를 잃은 고모는 대형 사고만 터지면 가만히 계시질 못했다. 정작 딸의 사고 때는 경황이 없어 아무것도 못 했지만, 그 이후에는 무조건 나섰다. 뭐라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모는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이 다 자기 자식 같다고 했다. 특히 그 해의 선박 사고는 항공 사고에서 잃은 딸을 다시 연상시킬 만큼 고모를 괴롭혔다. 실제로 97년 이후 비행기를 못 타는 고모는 그 해 이후로는 배도 타지 못했다.

　고모는 그때도 근처에라도 있고 싶다고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자신을 탓하다가 어렵게 찾아간 곳이 임시 분향소였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경비 할아버지는 24시간 근무를 한 직후라 다소 피곤한 상태였지만 고모를 보고 꽤 반가워하셨다. 단지 아는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것 이상의 반가움이었다. 특별한 감정을 갖게 하는 데 그 장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묘한 동질감을 갖게 해준다고나 할까.

　월드컵이 끝난 다음 날, 광화문에 본격적으로 천막이 세워졌다. 그때부터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고모와 경비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수시로 마주쳤다. 고모는 낼 수 있는 시간이 저녁밖에 없었고, 경비 할아버지는 낼 수 있는 시간이 격일로 비는 요일밖에 없는지라, 두 분이 마주치는 게 그리 높은 확률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날 때마다 대화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스케줄을 파악하다 보니, 연락처 없이도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올 때는 따로 왔지만 갈 때는 같이 갈 수 있는 기쁨도 얻을 수 있었다. 그 덕에 지하철 말동무가 되어 꽤 오랜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