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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부제: 난세살이)
작가 : 박은혜
작품등록일 : 2018.12.31

‘시집살이.’ 며느리들의 가슴을 철정 내려앉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며느리만 힘들까? 자신도 겪어온 며느리 시절을 잘 아는 시어머니가 왜 며느리를 괴롭힐까? 어쩌면 그 시어머니는 나름대로 잘 해보려는 게 아닐까? 언젠가 시어머니가 될 며느리는 자신의 며느리를 어떤 태도로 대할까? 어쩌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던 그 시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 있진 않을까?

“네가 뭘 안다고 끼어들어?!” 사건 당사자들이 그 일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경험했기 때문에 모를 수도 있다.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관계를 떠나 생각할 수 없다면, 그것을 날 위한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자신만을 위해 싸우니 해결도 있을 수 없다.

만연해 있는 고부갈등을 제3자의 시각에서 본다면, 끝없이 맞물려 있는 이 복잡한 문제의 원인이 어느 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단 시어머니와 며느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 나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분도, 그도, 그녀도, 그 아이도 다 잘못 만났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잘 모른다. 당사자인 만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같고 상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 같다.

‘힘들어봤자 나보다 더 힘들까.’
‘내 주제에 지금 누굴 위로하고 있나.’

누군가를 위로하는 게 사치가 된 세상. 하지만 위로할 수 있어야 위로받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시대를 잘못 타고났음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도 나처럼 난세(亂世)살이를 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조금은 불쌍히 여기며 감싸 안을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어쩌면 상대를 시대의 피해자로 바라볼 수만 있어도 조금은 달라 보일 것이다. 그 사람도 나처럼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꽤 대단한 사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런 소소한 소망 하나를 던져주는 것이 이 책에 나올 인물들의 역할이다.

이 소설은 올해 서른셋이 된 주인공(나)이 세 살 즈음에 가지고 있었던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하지만 지울 수 없는 강력했던 몇 가지 기억을 토대로 전개된다. 그리고 올해, 세 살 즈음이 된 사람들과의 이야기들을 동시에 섞어가며 그들을 지배한 각각의 시대를 조금씩이나마 마주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올해 ‘세 살 즈음’이 된 등장인물들의 스펙은 저마다 찬란하게 서글프다.

- 일흔 세 살 즈음에
올해 일흔 세 살이 된 고모는 1946년에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비상한 머리를 써보지도 못한 채 국졸로 학업을 마쳐야 했다. 194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독일광부로 파견나간 아버지를 잃어야 했고 늦게나마 실현하려던 꿈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포기해야 했으며 194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애틋한 마음 한번 품어볼 기회 없이 원치 않는 결혼을 치러버려야 했다. 그리고 여생을 딸과 손녀를 위해 헌납해야 했다.

- 예순 세 살 즈음에
올해 예순 세 살이 된 아빠는 195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주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어야 했고,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거치며 우울한 대학시절을 맛보아야 했으며, 그토록 가혹했던 70년대의 군대를 경험해야 했다. 195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직장도, 집도 쉽게 구했지만 평생을 가족을 위한 ATM기계로 살아야 했고 퇴직 시기에는 첨단문명과 벗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 쉰 세 살 즈음에
올해 쉰 세 살이 된 엄마는 196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끝까지 대학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대학을 포기해야 했으며 남편이 번 돈으로 편히 산다는 시선 속에 무시를 덤으로 받으며 살아왔다. 거기에 196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맞벌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시대에 노년기를 맞아야 했고 결국 황혼육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마흔 세 살 즈음에
올해 마흔 세 살이 된 외삼촌은 197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군대를 다녀오자마자 IMF라는 난국에 부딪혔다. 197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렵게 워크맨 사업을 시작했지만 MP3의 등장으로 사업을 시원하게 말아 드셨고,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여 얼른 MP3사업으로 전향했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또 다시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 서른세 살 즈음에
올해 서른세 살이 된 나는 198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군대에 다녀오자마자 미국발 경제위기와 마주했다. 취업난은 극도로 심각해진 상태였고 뭐라도 좋으니 해 보자며 원치 않는 직장에 들어갔다. 198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미친 듯이 벌어도 내 집 마련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다. 친구들은 “그 나이 되도록 자리도 못 잡냐?”는 핀잔에 이미 녹초가 되어 있다.

- 스물세 살 즈음에
올해 스물세 살이 된 조카(고모의 손녀) 유진이는 199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IMF와 함께 유아기 시절을 보냈다. 199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할머니(나의 고모) 말을 믿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은 어려운 시대임을 알고 꿈을 하나 둘 접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하는 건데 욕심이 많아 결혼을 안 하고 있다는 핀잔까지 덤으로 들으며 살아간다.

- 열세 살 즈음에
올해 열세 살이 된 사촌동생(외삼촌의 아들) 영우는 2006년에 태어난 우등생이다. 하지만 임대아파트 스펙 덕에 친구조차 마음대로 사귈 수가 없다. 200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곧 다가올 이십대를 4차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맞이하게 되었고, 그동안 죽어라 공부한 외국어도 다 쓸데없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꿈도 함부로 꿀 수 없는 그에게 어른들은 꿈이 없다며 혀를 찬다.

- 세 살 즈음에
올해 세 살이 된 나의 아들 우림이는 201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텅텅 빈 어린이집에서 7시 반까지 부모를 기다려야 한다. 201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진귀한 문명세계를 누리며 자라고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더없이 막막하게 다가올 뿐이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인생의 5대 난관인 ‘학업’, ‘결혼’, ‘군대’, ‘직업’, ‘육아’에 따라 뒤섞어볼 것이다. 누구라고 더 쉬울 것 없었던 각자의 난세살이를 잠시나마 여유롭게 구경해 보자.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지 모른다. 어쩌면 위로를 던질 여유까지 생길지 모른다.

 
그녀는 아직도 군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
작성일 : 18-12-31 01:54     조회 : 165     추천 : 0     분량 : 6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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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아직도 군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

 

 대학교 2학년 축제 기간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론대회가 열렸다. 웬만하면 구경 갈 필요가 없는 토론대회라지만, 군가산점 제도 부활과 관련된 토론을 한다 길래 왠지 모를 의무감에 참석했다. 정말 그 이유뿐이었다. 다른 목적은 없었다. 나를 따라 시커먼 머시매들 둘도 비장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곧 대한민국의 군인이 될 사람으로서 의기양양하게 앞자리에 앉았다.

 

 본격적으로 토론대회가 시작되었고 그녀가 단상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실 우리가 이 자리에 온 진짜 이유였다.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엄청난 미녀 후배가 참여한다는 소식에 여기까지 왔다. 토론 주제가 군가산점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주제가 뭔지도 잘 몰랐다.

 국문과 1학년이었던 그녀는 학번 상 후배지만 사실상 내가 빠른 86이기 때문에 나와 동갑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연관성을 확보하려고 우기는 것 같지만 팩트는 팩트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와 나는 이미 깊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같이 간 두 명의 머시매 중 한 놈은 그녀의 미모가 기대보다 별로라고 했고, 또 다른 한 놈은 기대 이상이라고 했다. 내 결론은 ‘어찌되었든 간에 이쁘다’는 것이었다. 대놓고 이쁘다고 말하기 쑥스러운 놈은 기대보다 별로라고 말했고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있는 놈은 기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차이는 없다. 그걸 아는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했다. 이럴 땐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그녀의 얼굴을 구경하러 온 거라 토론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의외로, 아니, 예상한 대로 상당히 말을 잘 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1학년 신입생이 토론회에 나왔으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떤 토론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로 밀어붙였다. 상당히 센 말 빨에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그 역시 아름다웠다.

 

 열심히 경청하던 중, 아니 얼굴을 감상하던 중, 우리는 한 순간에 할 말을 잃었다. 푹 빠져있던 우리에게 그녀가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핵심은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저희도 군대 가서 군가산점 받고 싶습니다. 남자로 안 태어나서 애초에 그럴 기회조차 안 주어졌으니, 그것부터가 차별 아닌가요?”

 

 이건 아니다 싶었다. 또랑또랑한 예쁜 목소리도, 목소리에 어울리는 얼굴도,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매력으로도 이것만큼은 용서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떤 말을 해도 다 수용했지만(사실 직전까지는 얼굴에 집중하느라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도 않았다), 이 황당한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반대할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억울해 하는 것은 정말 아니다 싶었다. 여자로 태어나도 군대는 갈 수 있다. 가고 싶다는 걸 억지로 못 가게 한 것도 아니다. 가면 갈 수 있는 거다. 이미 많은 여군이 있다. 나 역시도 군가산점이여성분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억울한 표정으로 나오는 것, 특히 군대 갔다 온 것을 ‘특혜’로 여기는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말에 일부 여학생은 환호했다. 물론 다는 아니고 일부만 그랬다. 맨 앞자리에 겁 없이 앉은 우리 세 사람만 괜히 민망해졌다. 맨 앞에서 썩은 미소를 유지하며 앉아있기가 몹시도 어색했다. 우리는 대충 눈치를 살피며 빠져나왔다. 굳이 더는 감상하고 싶지 않았다.

 

 “야. 어이없지 않냐? 국방의 의무는 의무라면서 왜 남자만 지냐고? 에잇. 그 자리에서 반론 있는 사람, 손들고 말하라 할 때 말할 걸 그랬다.”

 

 이 친구는 앞에서는 말 못하다가 꼭 뒤에서만 저런다. 아까 그녀의 미모가 기대 이하라고 했던 친구다.

 

 “아까 들었냐? 군가산점 대신 다른 걸로 보상하라고? 날린 2년의 시간을 얼마로 보상해 줄 건데? 그리고 보상해 주면 저런 애들이 잘도 가만히 있겠다. 그리고 공무원이나 대기업 안 가는 남자들은 뭔데? 아무 의미도 없는 가산점이잖아. 대부분은 혜택도 못 누릴 가산점으로 공격하다니.”

 

 이 친구는 의외로 내가 듣지 못한 이야기도 들었었던 것 같다.

 

 찝찝한 표정으로 그곳을 나온 우리는 좋지 않은 마음으로 점심을 먹었다. 단순히 토론 내용이나 그녀의 태도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를 슬프게 한 것은 그 토론의 핵심 키워드인 ‘군대’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사실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그 자리를 일찍 빠져나온 것도 군대에 대한 위협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1년 안에 그곳에 가야 할 나로서는, 토론을 듣기가 거북스러웠다. 군가산점이고 뭐고, 그 따위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곧 군대에 가야 할 존재라는 게 슬펐다. 군대라는 말만 나와도 숨이 막혔다. 옆에 있는 두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 끝까지 남았던 남학생들은 대부분 제대한 선배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유 있게 군대 관련 토론을 들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녀의 뒷담화를 잔뜩 늘어놓은 것도 그 자리를 빠져나오기 위한 핑계였을지 모른다.

 

 한편으론 이런 주제로 왜 토론을 했나 싶기도 했다. 어차피 토론한다고 바뀔 것도 아닌 것을! 군복무 기간이 한 시간이라도 줄어드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알고 보니 한 국회의원이 그 시기 즈음 군가산점 지원 부활을 골자로 하는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출했다고 했다. 그걸 계기로 이 문제가 다시 화두에 올랐다나 뭐라나. 어찌되었든 누군지 몰라도 멋진 분 같았다. 이럴 땐 정당도 상관없다. 이름 석 자 꼭 기억해두었다가 우리 동네에서 출마라도 하게 되면 성심껏 한 표 날려드리리라 마음먹었다. 어찌되었던 그 일을 계기로 1999년에 이미 폐지되었던 군가산점 제도 찬반 논쟁이 다시 불붙게 되었다.

 

 슬픔의 오찬 이후, 세 친구 중 한 명은 그로부터 두 달 후, 다른 한 명은 1년 후, 그리고 나는 7개월 후에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 아주 가끔 입대 전에 통일이 될 거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비참해진다는 것을 안 후로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군대에서는 그녀의 얼굴을 상상하며 흐뭇해하거나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분개할 여유가 없었다. 아주 가끔은 그녀의 발언이 떠올라 몹시 억울하긴 했다.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괜히 억울했다.

 

 시간을 멈춘 것 같았던 국방부 시계는 느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어느 새 눈을 떠보니 나는 다시 교정을 걷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제대 이후에도 가끔 그녀가 생각났다. 아주 가끔, 교정에서 마주치지는 않을까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2005학번인 그녀는 2008년을 끝으로 학교를 떠날 것이다. 올해 안에 못 보면 다시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내 바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을 못 봤다. 2008년 여름이 지나고,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단 한 차례도 볼 수 없었다.

 대신 그녀의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나보다 3개월 뒤 입대했던 친구는 2학기에 복학했는데, 바로 그 친구에게 그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새 학기 첫 날, 친구와 감격스럽게 재회한 나는 간만에 학교 안에 있는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군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주제였다. 무엇보다 군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몇 시간이라도 떠들 수 있지만, 군대를 잘 아는 사람들과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하고 싶지 않다.

 

 자연히 우리는 여자 이야기를 했다. 나는 08학번 신입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정보를 입력했다. 그러다 문득 그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야, 그때 그 여자애 있잖아. 05학번. 토론회에 내왔던 애.”

 

 깜짝 놀랐지만 마치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잡아떼며 반문했다.

 

 “누구? 음……. 아! 누군지 알 것 같아.”

 “응. 걔.”

 “그런데 왜?”

 

 잘 기억 안 나는 척 관심을 보였다.

 

 “있잖아, 너 입대하고 내가 조금 뒷조사를 해봤거든?”

 

 이 녀석도 관심을 가지고 조금 접근했던 모양이다. 토론회에서 상처를 받았다지만 역시 그녀는 참 예뻤다.

 

 “그래? 그래서?”

 

 계속 그녀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게 민망했지만 그래도 알고 싶었다.

 

 “걔, 완전히 페미니스트래. 양아버지한테 학대를 많이 받았나봐. 양아버지가 데려온 오빠도 있는데 그 오빠도 엄청 못되게 굴었데. 그래서 아주 남자라면 치를 떠나봐. 토론회에 나온 것도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자들이 혜택 받는 거라면 질색했던 거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 이야기 듣고 마음 접었지. 토론회 때 실망하긴 했지만, 내 스타일이긴 했잖냐. 하지만 역시 좀 부담스러운 거 같아.”

 “또 다른 소식은 없어?”

 

 솔직히 더 듣고 싶었다.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가 관심을 끊었다고, 인마. 그리고 그 디자인학부 05학번에 걔 있잖아…….”

 

 학과별 미녀 근황을 다 전할 태세였다. 일단 나는 조금은 예상한 그녀의 성향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도 그런 성향이 부담스러운 터라, 이 기회에 관심을 끊어야겠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관심이 있다고 해도 볼 수조차 없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겨울방학이 다가오면서 이제 그녀를 볼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녀는 졸업을 할 테니까.

 

 1년 후 4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을 웅크리고 스쿨버스 쪽으로 달려갔다. 너무 추워서 아는 사람과 마주치더라도 모른 척 뛰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추울 땐 자연히 군대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오들오들 떨며 보초 서던 게 생각나니 다 지난 일임에도 우울함이 밀려 왔다. 몸도 떨고 있는데 청승까지 떨고 있으니 더 추웠다. 불쌍했던 과거는 잊고 일단 스쿨버스 정류장으로 달렸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저 편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플래카드도 보였다. 무언가 서명을 받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 싶었지만 관심은 가지 않았다. 그때 ‘군’이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 뜨였다.

 

 <대통령 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강제 해체를 반대한다!>

 

 군필자로서 관심 갖지 않으면 안 될 주제였다. 마침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조금은 썰렁한 교정을 향해 외쳤다.

 

 “2006년 출범한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강제 해체되었습니다. 2009년에 진정된 600건의 군 의문사 사건 조사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부는 예산 낭비를 이유로 강제 해체를……….”

 

 화가 났다. 솔직히 해체된 지도 몰랐다. 이제라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며, 곧 도착할 스쿨버스를 뒤로 하고 서명하기 위해 발을 돌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방금 마이크에서 나던 건 여성의 목소리였다. 남성이 아니라는 게 의아했다.

 

 서명하러 가까이 다가가니 마이크를 잡았던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 깜짝 놀랐다. 분명 여성이었고, 꽤나 미인이었으며, 심지어 아는 사람이었다.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를 알았다. 토론에서 날 화나게 했던 그녀, 아주 가끔 생각났던 그녀였다. 어쩐지 목소리도 조금은 익숙하다 싶었다.

 군가산점 토론 대회에서 반대를 외치던 그녀와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반대를 외치던 그녀. 군대 가기 전의 나와 군 복무를 마친 나. 네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시공을 초월하여 현존하는 네 사람. 외모는 같지만 과거의 그녀와 현재의 그녀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군대에 다녀오기 전후의 내가 다른 것 이상으로 그녀는 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쉽게도 아는 사이가 아니라 물을 수는 없었다. 이전에는 거세면서도 가벼워보였다면 지금은 약해 보이는데 비장했다. 말도 붙이면 안 될 것 같았다.

 

 대신 옆에서 서명을 받는 남자 후배에게 물어보았다. 물론 아는 후배는 아니지만 모양새가 2학년 같았다. 당연히 미필임에 틀림없었다. 그래도 존대하며 물었다.

 

 “이거 어디서 서명하는 거예요? 동아리 이름이 뭐예요?”

 

 그는 대답하기 전에 약간 황당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자랑스러운 군필자 복학생이자 대선배인 줄도 모르고 쳐다보는 듯 했다. 요즘 애들은 역시나 버릇이 없어 큰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동안인 탓이라 생각하며 이해하기로 했다.

 

 “동아리는 아니고, 자발적인 모임으로 만들어졌어요.”

 “아, 감사합니다. 그럼 후배님, 저도 같이 해도 되나요?”

 

 예상치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같이 하겠다니…….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을 해 버렸다. 그녀 때문인지, 군필자로서의 사명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말이 나와 버렸다. 후배는 조금 당황하더니 대답을 이어갔다.

 

 “네, 하셔도 됩니다. 저희야 감사하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나보다 2년 선배로, 해병대에서 제대한 지 3년 정도 지난 고참 복학생이었다. 아니 선배님이었다. 그러니 ‘후배님’ 하는 나를 보며 황당해 할만도 했다. 그런 날 가만히 둔 걸 보면, 역시 선배들의 인품이란…….

 

 서명운동을 진행한다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조금씩 친해졌다. 서명운동은 일시적으로 조직된 모임이라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정권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변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아쉽게 마무리 된 서명운동 마지막 날. 서로 고생했다며 아쉬운 뒤풀이를 했다. 그날, 나는 그녀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녀에게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녀의 사연이 더 궁금했다. 최대한 정중하고 조신하게 물었다.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 예전에 군가산점 토론회 때는 반대 입장이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바뀌셨는지…….”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무슨 고백이라도 받은 양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질문을 한 것 자체가 몇 년 전 토론을 유심히 지켜보고 기억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괜히 민망해졌다.

 물론 사심이 없었더라도 그 정도는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분위기상, 내가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거의 확신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어찌되었든 그 덕에 그녀는 조금 마음을 열고 대답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여자가 왜 이런 데 참여하냐. 조금 특이한 것 같다.”는 식으로 물었다면 대답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느껴서 조금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나는 내 외모가 한 건 했다고 여태까지 믿고 있다.

 

 그녀는 거의 한 시간 동안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한 두 문장으로 끝날 줄 알았던 그녀의 대답이 길어지는 동안 나는 넋 놓고 귀를 기울였다. 마음이 어느 정도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대답의 내용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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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모는 설렐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1 2018 / 12 / 31 168 0 6174   
7 그녀는 아직도 군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2018 / 12 / 31 158 0 6821   
6 그녀는 아직도 군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2018 / 12 / 31 166 0 6939   
5 아빠는 군복무를 33개월만 해도 되는 행운을 … 2018 / 12 / 31 157 0 6619   
4 아빠는 군복무를 33개월만 해도 되는 행운을 … 2018 / 12 / 31 154 0 7254   
3 공부한 대로 거둔다. 단, 돈 있는 자가 거둔다 2018 / 12 / 31 173 0 10191   
2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2018 / 12 / 31 168 0 5710   
1 세 살 박이의 영어실력이 누군가에겐 지독한 … 2018 / 12 / 31 243 0 6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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