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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부제: 난세살이)
작가 : 박은혜
작품등록일 : 2018.12.31

‘시집살이.’ 며느리들의 가슴을 철정 내려앉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며느리만 힘들까? 자신도 겪어온 며느리 시절을 잘 아는 시어머니가 왜 며느리를 괴롭힐까? 어쩌면 그 시어머니는 나름대로 잘 해보려는 게 아닐까? 언젠가 시어머니가 될 며느리는 자신의 며느리를 어떤 태도로 대할까? 어쩌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던 그 시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 있진 않을까?

“네가 뭘 안다고 끼어들어?!” 사건 당사자들이 그 일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경험했기 때문에 모를 수도 있다.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관계를 떠나 생각할 수 없다면, 그것을 날 위한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자신만을 위해 싸우니 해결도 있을 수 없다.

만연해 있는 고부갈등을 제3자의 시각에서 본다면, 끝없이 맞물려 있는 이 복잡한 문제의 원인이 어느 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단 시어머니와 며느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저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 나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분도, 그도, 그녀도, 그 아이도 다 잘못 만났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잘 모른다. 당사자인 만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같고 상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 같다.

‘힘들어봤자 나보다 더 힘들까.’
‘내 주제에 지금 누굴 위로하고 있나.’

누군가를 위로하는 게 사치가 된 세상. 하지만 위로할 수 있어야 위로받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시대를 잘못 타고났음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도 나처럼 난세(亂世)살이를 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조금은 불쌍히 여기며 감싸 안을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어쩌면 상대를 시대의 피해자로 바라볼 수만 있어도 조금은 달라 보일 것이다. 그 사람도 나처럼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꽤 대단한 사람,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런 소소한 소망 하나를 던져주는 것이 이 책에 나올 인물들의 역할이다.

이 소설은 올해 서른셋이 된 주인공(나)이 세 살 즈음에 가지고 있었던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하지만 지울 수 없는 강력했던 몇 가지 기억을 토대로 전개된다. 그리고 올해, 세 살 즈음이 된 사람들과의 이야기들을 동시에 섞어가며 그들을 지배한 각각의 시대를 조금씩이나마 마주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올해 ‘세 살 즈음’이 된 등장인물들의 스펙은 저마다 찬란하게 서글프다.

- 일흔 세 살 즈음에
올해 일흔 세 살이 된 고모는 1946년에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비상한 머리를 써보지도 못한 채 국졸로 학업을 마쳐야 했다. 194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독일광부로 파견나간 아버지를 잃어야 했고 늦게나마 실현하려던 꿈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포기해야 했으며 194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애틋한 마음 한번 품어볼 기회 없이 원치 않는 결혼을 치러버려야 했다. 그리고 여생을 딸과 손녀를 위해 헌납해야 했다.

- 예순 세 살 즈음에
올해 예순 세 살이 된 아빠는 195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주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어야 했고,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거치며 우울한 대학시절을 맛보아야 했으며, 그토록 가혹했던 70년대의 군대를 경험해야 했다. 195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직장도, 집도 쉽게 구했지만 평생을 가족을 위한 ATM기계로 살아야 했고 퇴직 시기에는 첨단문명과 벗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 쉰 세 살 즈음에
올해 쉰 세 살이 된 엄마는 196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끝까지 대학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대학을 포기해야 했으며 남편이 번 돈으로 편히 산다는 시선 속에 무시를 덤으로 받으며 살아왔다. 거기에 196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맞벌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시대에 노년기를 맞아야 했고 결국 황혼육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마흔 세 살 즈음에
올해 마흔 세 살이 된 외삼촌은 197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군대를 다녀오자마자 IMF라는 난국에 부딪혔다. 197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렵게 워크맨 사업을 시작했지만 MP3의 등장으로 사업을 시원하게 말아 드셨고,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여 얼른 MP3사업으로 전향했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또 다시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 서른세 살 즈음에
올해 서른세 살이 된 나는 198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군대에 다녀오자마자 미국발 경제위기와 마주했다. 취업난은 극도로 심각해진 상태였고 뭐라도 좋으니 해 보자며 원치 않는 직장에 들어갔다. 198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미친 듯이 벌어도 내 집 마련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다. 친구들은 “그 나이 되도록 자리도 못 잡냐?”는 핀잔에 이미 녹초가 되어 있다.

- 스물세 살 즈음에
올해 스물세 살이 된 조카(고모의 손녀) 유진이는 1996년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IMF와 함께 유아기 시절을 보냈다. 199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할머니(나의 고모) 말을 믿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은 어려운 시대임을 알고 꿈을 하나 둘 접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하는 건데 욕심이 많아 결혼을 안 하고 있다는 핀잔까지 덤으로 들으며 살아간다.

- 열세 살 즈음에
올해 열세 살이 된 사촌동생(외삼촌의 아들) 영우는 2006년에 태어난 우등생이다. 하지만 임대아파트 스펙 덕에 친구조차 마음대로 사귈 수가 없다. 200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곧 다가올 이십대를 4차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맞이하게 되었고, 그동안 죽어라 공부한 외국어도 다 쓸데없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꿈도 함부로 꿀 수 없는 그에게 어른들은 꿈이 없다며 혀를 찬다.

- 세 살 즈음에
올해 세 살이 된 나의 아들 우림이는 201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텅텅 빈 어린이집에서 7시 반까지 부모를 기다려야 한다. 2016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진귀한 문명세계를 누리며 자라고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더없이 막막하게 다가올 뿐이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인생의 5대 난관인 ‘학업’, ‘결혼’, ‘군대’, ‘직업’, ‘육아’에 따라 뒤섞어볼 것이다. 누구라고 더 쉬울 것 없었던 각자의 난세살이를 잠시나마 여유롭게 구경해 보자.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지 모른다. 어쩌면 위로를 던질 여유까지 생길지 모른다.

 
공부한 대로 거둔다. 단, 돈 있는 자가 거둔다
작성일 : 18-12-31 01:48     조회 : 172     추천 : 0     분량 : 1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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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한 대로 거둔다. 단, 돈 있는 자가 거둔다

 

 어렸을 때는 너무했다 싶었던 일들이 지금에 와서는 일리 있어 보일 때가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아니 들었던 동화 중에 어이없을 만큼 충격적인 결말이라 생각되었던 것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다. 멋모르고 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다가 뒷내용을 듣고 이런 막장동화가 있나 싶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 엄마가 동화를 읽어줄 때만 해도 뻔하지 않아 참 좋았다. 그 전까지 접했던 몇 개 안 되는 동화들은 주로 ‘전처가 죽은 후 후처가 들어왔고 전처 자식이 죽도록 고생하다가 심기일전하여 전화위복하는 내용’이 아니던가(백설공주,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그런데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달랐다. 물론 뻔하다 못해 황당하여 적잖이 당황했다. 동네의 모든 아이를 실종되게끔 만들었다는 결말에 할 말을 잃었다. 나중에 다시 찾았다는 반전 을 기대했는데 실종된 이후 뒷이야기를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게 마지막 페이지의 내용이었다. 혹시 남은 페이지가 없나 싶어 꽤 두꺼운 동화책 마지막 페이퍼를 잠시 만지작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삼십 여 년이 지난 지금, 가장 감동을 주는 동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심도 없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해되지 않았던 동화의 결말이 드디어 이해되었고 납득까지 되었다. 너무했다 싶었던 것이 지극히 당연한 처사라 여겨지기 시작했다.

 일정 금액을 약속받고 동네의 쥐떼를 없애주었으나, 일을 마치자 입을 싹 닫고 입금하지 않은 마을 대표, 그에 대한 응징으로 아이들을 동굴 속으로 싹 다 데리고 가버린 피리 부는 청년…….

 일용직의 서러움을 이토록 제대로 묘사한 동화가 또 있을까? 임금 체불의 아픈 현실을 제대로 꼬집어 낸 문학 작품이 또 있을까? 열정페이를 운운하는 고용자의 갑질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경고한 대작이 또 있을까? 악덕사장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동화다. 결말이 슬프긴 하지만 그조차도 문학적 허용으로 용인될 법하다.

 나이가 들고 조금이나마 더 성숙해지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미세한 교훈들도 보였다.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전반적인 주제의식 속에 ‘계약서를 제대로 쓰자’라는 더 구체적이고 선명한 메시지도 담겨있는 듯 했다.

 

 요즘 들어서 이 동화를 읽을 때마다, 아니 아들 녀석에게 읽어줄 때마다 유진이가 눈에 밟힌다. 열정페이로 근근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미련한 여인이 바로 유진이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내 아이에게 주어야 한다면 고모에게 조카로서 받은 사랑은 조카인 유진이에게 돌려야 했다. 오지랖이라고도 불리는 그런 몹쓸 의무감 때문에 나는 유진이가 스무 살이 되고부터는 그녀의 근황을 조금 더 관심 있게 둘러보곤 했다. 기회다 싶어 어줍지 않은 꼰대 짓도 매번 한다. 눈치 없이 착하기만 한 유진이는 그게 꼰대질인 줄도 모르고 고맙다고 할 뿐이지만.

 

 어찌되었든, 그 아이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공부로만 평가되는 고등학교 때까지야 염려할 것도 없었다지만 대입 이후부터는 안심해서는 안 된다. 공부는 잘 하는데 머리는 굴릴 줄 모르는 사람, 참 노리기 좋은 먹잇감이 아닌가. 좋은 머리를 실컷 써먹고 필요 없을 땐 버리면 되는 그런 먹잇감이 바로 유진이 같은 케이스다.

 소위 유진이와 같은 미련한 범생들은 잔머리를 굴릴 줄 몰라 열심히만 한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따내면 그에 부응하는 인정과 칭찬, 그리고 명문대 입학이라는 결과가 주어졌기에 앞으로도 그렇게만 살면 되는 줄 안다. 그야말로 ‘죽어라 공부하면 팔자 필 것’이라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바로 유진이다. 유진이 같은 사람이 내 주위에도, 내 아내 주위에도, 내 친구 주위에도, 유진이 주위에도 많다. 악당들이 노릴 만큼 순진한 먹잇감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열심히 살면 돈은 물론 명예까지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치 학창시절에 실질적인 성적과 학우들로부터 얻어지는 명예가 함께 따라온 것처럼……. 그래서 앞으로도 그 이상적인 원칙에 따라 소위 말하는 입신양명의 기회가 자연히 오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학교라는 공간에서나 먹히는 졸업 이전의 원칙일 뿐이다.

 심지어 지속적으로 열심히 잘 해서 팔자를 핀다 한들, 돈 있는 사람 수하에 있을 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거창한 꿈을 이룬 대도 결국은 돈 있는 사람 밑이다. 능력 있는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특정 가치로 전환해 내면(그것이 이윤이든 특정한 물리적 실체이든) 그것은 돈 있는 사람의 명예와 영화를 위해 고스란히 쓰일 뿐이다.

 물론 딱히 억울할 것도 없긴 하다. 누군가의 이름을 위해 나의 능력을 소진하고 그에 따른 재화를 얻는 것은 어쩌면 공평한 원리이다. 그 능력으로 돈이라도 벌 수 있으니. 명예 따위 없으면 어떠랴. 돈이 주어지고 그 돈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된 거 아닌가.

 문제는 돈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받긴 받겠지만 자신이 쏟은 능력에 상응하는 만큼 받는다곤 보장 못한다. 심지어는 바보같이 아예 못 받을 수도 있다. 이건 공부 잘 하고 실력 있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바보같이 받을 것을 받지 못하고 노력만 쏟아 붓는 아이 중 하나가 유진이다. 유진이는 고모에게는 차마 말을 못해서 그런지, 나에게는 상황을 털어놓곤 한다(그조차도 사실은 내가 추궁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녀의 현실에 직면하면 한때 그녀의 드높은 성적을 부러워했던 내 모습이 후회될 정도다. 지금 저렇게 살 거면 그녀가 쌓아온 금자탑과도 같은 성적은 오히려 그녀의 인생에 독이 될 뿐이다.

 

 스물 셋. 대학교 4학년인 그녀는 나처럼 빠른 년생이라 일찍 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날 수 없다는 시대적 변화에 의해 재수를 해야만 했고, 결국 다른 96년생들과 같은 학년에 있다. 뭐,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그러나 공부에서만큼은 악바리인데다가 할머니(나의 고모)에게 조금이나마 누가 덜 되게 한다며 조기졸업의 영예를 얻었다. 그리고 이미 교수님께 잘 보인 탓에 바로 동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명문대대학원이라 들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이미 전공 교수님들에게 정평이 나 있던 그녀라 단번에 합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입학과 함께 연구 조교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등록금도 반액이나 감면되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문제였다. 교수에게 인정받은 것, 이것이 그녀의 실수였다. 교수, 특히 담당교수에게 인정받는 순간 그녀는 담당교수의 하녀가 되었다. 등록금의 반액이나 감면된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한 한기 300만원이 넘지 않는다. 여기에 6을 나누면 한 달에 50만 원 가량 지원받는 셈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금액’이 아니라, ‘그냥 적은 것’이다. 아주 적은 것이다. 그녀의 실력이 늘어가고 인정을 받아갈수록 그 금액은 하는 일과 반비례 곡선을 탄다. 실력 및 인정이 수익과 정비례한다는 것은 학교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그녀의 실수는 다시 몇 가지 하위요소로 나뉘는데, 애정과 오지랖을 담아 조목조목 따져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녀의 첫 번째 실수는 논문을 잘 쓰는 것이다. 논문을 잘 쓴다는 것은 꽤 복합적인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기존 연구물에 대한 리뷰를 잘한다는 의미다. 사실 논문의 반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선행연구 리뷰와 정리인 만큼, 이 부분에 역량이 있다면 이미 논문의 반은 쓴 거라고 할 수 있다. 유진이는 이것을 참 잘한다. 또한 논문을 잘 쓴다는 것은 주제를 찾아내고 설계한 후,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할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행연구 리뷰만큼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지만, 이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과 깊은 사고력을 요구한다. 어려서부터 철이 들고 늘 최선을 다하는 유진이의 통찰력은 꽤 깊은데다가 사고의 폭도 넓었다. 그러기에 이 두 가지 능력을 교수님에게 들켜버렸다면, 스스로 교수의 시간을 덜어주겠다고 자원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정작 유진이는 교수가 믿고 맡길 정도의 논문 작성 실력을 가지고 있다며 뿌듯해 했지만, (가엾은) 정신승리였다.

 

 그녀의 두 번째 실수는 글을 잘 쓰는 것이다. 논문이나 다양한 연구 페이퍼는 내용이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용을 잘 전달하려면 잘 써야 한다. 담백한 문장으로 명확한 설명을 보여주어야 하고, 논리적 전개에 문제가 없는 그런 글쓰기가 필요한데, 유진이는 그마저도 잘 한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은 글을 써야 할 때 대필을 시킨다. 학술지에 개재할 논문이든 강의록이든 일단 맡긴다. 믿고 맡겨도 될 만큼 잘 쓰니, 망설임 없이 매번 그녀에게 맡긴다.

 정작 유진이는 교수가 믿고 맡길 정도의 우수한 글 실력을 가지고 있다며 뿌듯해 했지만, (불쌍한) 정신승리다.

 

 그녀의 세 번째 실수는 영어를 잘하는 것이다. 물론 유진이 또래에는 영어 잘 하는 사람이 흔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유진이는 나와 10년 터울인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그 사이에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평균 영어 실력은 월등히 오른 모양이다. 영어를 배우는 시작점부터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시대적 핑계를 댈 수 있어 다행이다). 문제는 이렇게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많은데 번역을 잘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말을 잘하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이 다르듯, 영어로 블라블라할 줄 아는 젊은이들은 많은데 그것을 쉽게 한국어로 옮기는 사람은 흔치 않다. 유진이는 그 흔치 않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러니 교수님 입장에서는 최신 외국 논문을 리뷰해야 할 때마다, 혹은 번역서 한 권을 낼 때마다 유진이를 찾을 수밖에 없다. 유진이가 밤을 지새우며 초벌 번역을 다 해가고 몇 번의 검수와 수정 끝나면 멋진 번역서 한 권이 나온다. 물론 책에 그녀의 이름은 없다.

 정작 유진이는 교수가 믿고 맡길 정도의 번역 실력을 가지고 있다며 뿌듯해 하지만 (서글픈) 정신승리다.

 

 그녀의 네 번째 실수는 꼼꼼한 성격이다. 꼼꼼한 아랫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윗사람의 입장에서 더없는 축복일 수밖에 없다. 완벽한 오탈자 극복이라는 난관을 한 명의 인력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안심인가. 꼼꼼하지 못한 사람 몇 명이 달려들어도 못 할 일을 단 한 명이 해내니, 이제 교수의 이름으로 나갈 모든 문서는 유진이를 거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전공과 관련 없는 교수님의 칼럼글 역시 그녀가 다 교정을 보아야 한다. 이미 완벽성을 인정받은 후라 대충할 수도 없다. 다른 누군가에게서 오탈자가 나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유진이가 오탈자를 남기면 야단맞는다. 완벽한 애가 왜 성의 없이 했냐며 한 소리 듣는다. 특히 연구조교로 매달 50만 원이나 받으니, 거부하는 건 더 말이 안 된다.

 정작 유진이는 교수가 자신을 믿고 맡길 정도의 완벽함과 꼼꼼함을 가지고 있다며 뿌듯해 하지만 (이쯤 되면 화가 나는) 정신승리다.

 

 그녀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작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유진이에겐 야망이 없다. 큰 욕심 없이 칭찬받고 안정적으로만 지내기를 원한다. 비열함이 없으니 늘 시키는 대로만 한다. 열심히 하면서 정당하게 자신이 얻어야 할 것은 얻어야 하는데, 욕심낼 줄 모른다. 어쩌면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를지도 모른다. 그저 중고등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주어질 거라 생각한다.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가져야 할 것을 빼앗아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얼마 전, 연말을 앞두고 그녀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원래도 ‘헤헤’ 거리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사랑에 빠진 것 같지는 않았다(보통 사랑에 빠지게 되면 연신 실실 거리진 않는다. 평소에는 사랑에 빠진 것을 감추려고 의식적으로 무표정인 듯 하다가 내심 상대가 떠오를 때마다 히죽거리는 게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유진이의 웃음은 그런 유형의 기쁨과는 조금 달랐다. 그냥 계속 쉴 새 없이 희죽거리고 실실 거렸다. 이건 그냥 신나는 일이 있음을 의미했다. 사랑도, 취업도 아니면 대체 뭘까. 예상은 했지만 올 것이 온 듯 했다. 그녀는 교내 학술제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했다. 교수님과 팀을 이루어 공동 연구의 성격으로 발표를 하는 것인데 독특하게도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교수님이 아닌 석사과정 학생이 학회에서 발표하게 된다고 했다. 그런 흔치 않는 이번 기회에 그녀가 참여하게 된 것은 그간 시름을 다 덜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그녀에게 활력을 주는 것이었다.

 사실 대학원 1학차가 얻기 힘든 특혜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특혜는 충분히 받을만하고 정당한 것이었다. 심지어 학부 4학년 졸업 직전까지도 해당 학술논문 작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던 터라 이번 학술지 지분은 이미 확보하고도 남은 상태였다.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유진이는 처음으로 내 아내에게 스타일링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아무래도 앞에 나가서 발표하려면 평소보다는 괜찮아보여야 할 테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았다. 아내는 그 요청에 자신이 더 신났다. 평소 아내는 고모를 닮아 의상 센스가 없는 유진이에게 스타일 조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매번 “괜찮다”며 까이기만 했던 전적이 있었던 터라 제 발로 찾아온 요청을 반길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입장에서 충분히 반색할만한 일이었다.

 아내는 화려해도 안 되지만 초라해서는 안 되고, 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야 하지만 교수님보다 돋보여서는 안 되는 옷이 딱 있다며, 집에 오자마자 아끼는 정장을 꺼내두었다. 그러나 한동안 묵혀둔 탓에 나프탈렌 냄새가 거슬렸는지, 학술대회 5일 전 즈음에 세탁소에 맡겨야겠다고 했다. 이왕 인심 쓰는 거 제대로 쓰자는 취지였다. 내가 보기엔 그다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하자, 아내는 앞에서 발표를 할 때 옷차림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냐며 반문했다.

 

 학술 대회를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함께 고모네로 갔다. 간만에 식사를 같이 하는데 유진이는 갑작스런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이 직장인마냥 시도 때도 없이 유진이를 찾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놀라지 않았고 유진이 역시 아무렇지 않게 교수님 전화를 받았다. 학술대회 때 제공할 세미나집 최종본을 확인한 후 제본소에 맡기라는 전화였다. 저걸 왜 쟤가 하냐는 분위기로 유진이를 쳐다보는데 유진이는 그건 내가 하는 일이 맞다는 눈빛으로 응수했다. 게다가 이번 세미나집은 자신의 첫 학술대회 발표자료이니 얼마나 뜻깊겠는가. 더 당당하게 우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고모는 우리 딸 대단하지 않냐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 안에 구겨 넣고는 유진이는 얼른 스마트폰을 열어서 메일로 온 제본 최종본을 확인했다. 그러나 여유 있게 폰으로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확인하던 그녀는 이내 식욕이 다 떨어진 얼굴을 하며 마저 뜨려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뭔가 자료집 최종본에 실수가 났나 싶었다. 인쇄 관련 쪽에 대해 잘 아시는 아빠는 한마디 거드셨다.

 

 “중요한 자료집이니 인쇄 전에 실수가 발견되지 않도록 꼼꼼히 잘 보거라.”

 

 누구나 다 아는 말, 이미 알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말을 아빠는 굳이 하셨다. 그것도 하필 이 분위기에.

 

 “아이. 여보. 그걸 유진이가 몰라?”

 

 아빠와 엄마가 잠시 투닥거리는 틈을 타 유진이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료집에 실수가 났나? 막판에 오타가 나왔나 보제?”

 “가만 좀 있어. 안 그래도 스트레스 쌓일 텐데.”

 

 그날 이후 저마다 바쁘게 사는 우리는 유진이 학술제 건은 잠시 잊은 채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아내도 세탁소에 옷을 맡기기만 한 채, 찾는 것을 깜빡했다. 마감기간이면 일과 육아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지라 그럴 만도 했다.

 

 학술대회가 이틀 지난 후에야 옷을 안 챙겨준 일이 떠올랐다. 나도, 아내도 당황스러워했다.

 

 “어떡하지? 유진이가 옷 빌려달라는 말은 차마 못했나보네. 내가 알아서 갖다 줬어야 하는데. 왜 그걸 까먹었지?”

 

 아내만큼이나 나도 괜히 미안해졌다.

 

 “괜찮은 정장 한 벌 없는 애가 뭘 입고 갔을래나…….”

 

 다음날 늦은 저녁, 옷 해프닝도 이야기할 겸 학술대회도 잘 끝났는지 물어볼 겸, 고생한 김에 맛있는 밥도 사줄 겸, 유진이를 불러냈다. 아내는 미안해서 어쩌냐며 최고로 맛있는 것을 먹이라는 말을 남기고 야근을 하러 다시 회사로 갔다. 유진이는 아내 없이 나 혼자 온 것을 보고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 울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 앞에서 펑펑 울었다.

 

 학술대회 직전에, 그러니까 세미나집 최종본이 제본소에 넘어가기 직전 유진이는 공동연구자에 또 다른 누군가가 추가된 것을 확인했다. 담당교수와 자신, 둘만의 공동연구일 줄 알았는데 한 명이 덧붙여진 것이다. 딸이었다. 교수의 딸이었다.

 사실 지구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유진이는 암담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밥숟가락을 그냥 두고 갈 정도면……. 밥 남기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는 그녀가 굳이 밥을 남기고 간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처음에 유진이는 이해하자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자신의 이름이 있으니 그게 어디냐고 생각했다. 그리고 합리화시키기 시작했다. 1학차인 자신의 이름만 올라가 있는 것보다는 3학차인 교수의 딸 이름이 올라가면 논문의 수준이 높아 보일 거라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교수 의 딸이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막판에 한 번 정도는 검수 차원에서 발표할 논문을 읽어주었다(물론 다 읽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니 참을만 하다고 생각했다(물론 안 참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그러나 발표를 할 기회조차 교수의 딸에게 넘어가자 유진이는 그대로 무너졌다. 예고도 없이 교수가 던진 말에 적당한 대답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유진이는 그동안 고생 많았으니까 발표는 그냥 소정이(교수의 딸)가 해라.”

 

 유진이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척이라도 안 했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을. 아니면 차라리 ‘이번에는 우리 딸이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대놓고 부탁을 하면 좋았을 것을. 빼도 박도 못하게 기회를 잘라나는 배려의 말을 건넸다는 게, 유진이는 더 서러웠다고 했다.

 더 비참한 것은 결국 그 말에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한 자신이었다. 발표할 수고와 스트레스를 덜어주어서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양 말해 버린 게, 더없이 억울하다고 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학술발표 대회날, 그녀는 밖에서 세미나집을 나르고 나눠주는 일을 했다. 대회장 안에는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갈 시간이 없어서인지 일부러 들어가지 않은 것인지, 혹은 못 들어오게 그 일을 시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유진이가 자기 이름이 세 번째 자리에 박힌 그 논문을 아예 펼쳐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유진이는 신신당부했다. 고모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고. 발표 잘 마쳤다고 해 달라고.

 

 그때 알게 되었다. 유진이만 실수한 것이 아니라, 나 역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나는 유진이를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야망도, 욕심도, 명예욕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분명히 있었다. 그 기본적인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그런 욕심이 없을 테니 노예처럼 일하면서도 마음이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 그것은 오로지 나의 착각이었다. 그러면서 매번 유진이를 위해 신경써준다며 “교수님이 하라는 것 다 해주지 마라.” “너 왜 그렇게 너 잇속도 못 차리고 이용만 당하니.” 등의 말을 지껄여왔다. 그녀가 그걸 모를 줄 알고 한참 가르치고 훈계했다. 나는 2차 가해자였던 셈이다.

 그녀도 다 안다.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빠져 나올 수 없다. 그것이라도 해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둘 수 있으니까.

 동화 속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동굴에 들어간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걸로 동화가 끝났으니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유진이는 달랐다. 뒤집는다고 한들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뒤엎는다고 한들, 불리한 쪽은 유진이다. 그 대가를 그녀가 홀로 감당해야 한다. 결국, 유진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현상 유지였다.

 

 한참을 이야기하며 유진이를 위로하고 나니 밤 11시가 되었다. 우림이는 엄마에게 맡겨놨으니 조금 더 이야기하며 위로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혹시 우림이 때문에 엄마가 전화한 건가 싶어 내 폰을 봤는데, 유진이 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어쩜 둘 다 기본 멜로디로 설정을 해 놨는지……. 그런 멜로디조차 취향대로 바꿀 시간이 없는 게 우리 현실이구나 싶어 씁쓸하려던 차, 유진이가 눈물을 삼키고 냉큼 전화를 받았다.

 

 “네. 교수님.”

 

 역시나.

 

 “네. 교수님. 지금 들어가는 대로 수정해서 새벽까지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평소 같으면 왜 그렇게 사냐고 한마디 했겠지만, 그날은, 아니 그날 이후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진이는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 교수님이 내일 특강이 있는데 자료 좀 정리…….”

 “그래. 그래. 빨리 가자.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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