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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아이돌x아이
작가 : LEEEUL
작품등록일 : 2018.12.30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배우 원태인의 죽음! 그것도 연극 공연 중에 벌어진 공개적 죽음이었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사고인가, 사건인가?
연예계와 매스컴은 태인의 죽음을 앞 다투어 재구성 하려한다. 삼류 연예지 ‘진실과 상상’의 기자 주채성도 그 중 하나. 채성은 태인의 평전을 써서 지긋지긋한 생활을 끝내고자 한다. 그러나 태인의 죽음을 파헤쳐나가면서 자신도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진실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데...

 
아이돌x아이_영원한 커튼콜 2
작성일 : 18-12-30 19:40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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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빨간 가죽으로 된 다이어리였다. 누군가가 써나가다 잠시 멈춘 듯 아직도 펜이 끼워져 있는. 당연히 원통으로 향해야 했지만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온기가 그걸 펼쳐들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건 최후를 목전에 둔 자에게 주어진 안내서 같은 것 일 지도 모르지.

 

 

  다이어리를 읽으며 처음엔 든 건 의문뿐이었다.

 

 

  도대체 I는 누구지? 그리고 그 I를 바라보는 너는?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를 읽어나갈 수록 나는 점차 그 속으로 빠져들었고, 비로소 그게 나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바라본 나에 대한 관찰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고, 손이 덜덜 떨려왔다.

 

 

 

  나는 I…… 살아있는 게 죄스러운, 죽어가며 괴로워하는 I. 그리고 너는……

 

 

 

  눈앞이 점점 아득해지고 행간에서 자꾸 길을 잃어 결국 한 글 자 한 글자를 더듬거리며, 소리 내서 읽어내려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페이지가 끝나는 순간, 가슴 속에는 뜨거운 파도 같은 것이 출렁이고 있었다.

 

 

 

 너는…… 그 여자아이.

 

 

 

  어느 새 방안까지 들어 찬 연기가 사방을 안개 속으로 바꾸어놓았다. 극심한 어지러움이 머리를 뒤흔들었고 발작 같은 기침이 튀어나왔다. 그 때 다이어리에 끼워져 있던 종이 한 장이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태인에게

  네가 이걸 언제 읽게 될 진 모르겠지만, 그땐 부디 편안한 상태였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첫인사를 건네게 될 줄은 몰랐네. 하긴 넌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지만.

  음, 그런데 지금은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설명하기가 어려워. 이해해줘.

  그저 네 안에서 나 자신을 찾게 된 사람이라고만 말해둘게.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건, 내가 내 모든 걸 도둑맞았다고 느꼈을 때였어.

  내가 키워왔던 꿈, 밝은 미래, 그 모든 가능성을.

  그리고 난 네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훔쳐간 범인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아니었어.

  난 사실 탓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뿐이야. 이 좌절이, 절망이 내 탓이 아니라고

  그렇게 믿게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정작 네 인생을 훔친 사람은 나였어. 너를 감시하고, 너를 쫓고, 너를 괴롭히면서

  네가 무너지는 걸 통해 나를 보상받으려 했지……

  이런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 말을 네게 직접 전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워. 또 이제와 용서를 구하는 것이

  너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일은 아닐지 두려워.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네 고통까지 훔쳐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럼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난데, 네가, 네가 왜……

  난 편지에 얼굴을 묻은 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 때, 안개 속을 헤치고 다가오는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래, 바로 너였어.

 

 

  어느 새 돌아 온 여자아이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넌…… 나를 저주하러 온 게 아니었어. 넌 날 다시, 다시 살게 하려고 온 거야…… 그렇지?”

 

 

 

  여자아이는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아주었다.

 

  거실은 지독한 어둠과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지만 다행히 자동 스프링클러에 불은 이미 꺼진 후였다. 우리는 연기와 재를 헤치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맞으며 창가로 다가섰다. 그리곤 약속이나 한 듯 함께 암막을 걷어냈다. 순간 엄청난 빛이 쏟아져 들어와 수만 개의 은빛 비늘로 부서져 내렸다.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축복 같았다. 그 속에서 여자아이가 속삭였다.

 

 

 

  이제……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치 오래된 병에서 방금 회복된 느낌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내 발걸음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가닿은 곳이 여기였다.

  뜨거운 혼과 무수한 삶이 약동하고 있는 곳, 내가 내 삶을 연기와 바꾸기로 마음먹었던 곳, 내게 새로운 목숨을 선사했던 그 곳, 바로 무대였다.

 

 

  배우들은 자신들의 내면에서 길어 낸 소리를 드높이고 있었고 한 사람, 객석에 우뚝 서있는 그 사람은 그들이 내는 음들을 조율하며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서, 선생님!”

 

 

 

  멎어버린 연주, 갑작스런 정적. 그들 모두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원태인? 네가 무슨 일로 여기……”

 

 

 

  한 계단, 한 계단. 나는 마치 갓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 차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앞에 닿자마자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그리곤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힘겹게 꺼낼 수 있었다.

 

 

 

  “선생님…… 연, 연기가…… 연기가 하고 싶어요.”

 

 

  선생님은 잠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무릎을 굽혀 나를 안아주었다.

 

 

 

  “잘 왔다. 마침내 돌아왔구나…… 진짜 너로.”

 

 

 

 

 

  모든 것은 한 줄기 빛에서부터 시작돼.

 

 

  옛날 옛적, 어느 왕국에 자신이 세상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몰랐기 때문에 매일을 고통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국에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커다란 빛이 하늘에서 추락한 것입니다.

 

 

  빛은 허공에서 이마로 곧 눈동자로 떨어져. 순간 눈이 멀어버릴 듯 아려온다.

  눈물이 차오른다. 풍경들이 출렁인다. 나무로 만든 성, 종이로 만든 숲, 고무로 만든 돌.

  그리고 피와 살로 만들어진 당신.

  내가 가짜라고 생각했던 진짜인 세계. 서로를 몰랐지만 오래 전부터 맺어진 관계.

  우리는 여기서 만나야 했다.

 

 

  점성술사는 왕국의 재앙을 예언했습니다. 그 빛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왕은 그 정체를 알아내는 사람에게 왕자의 자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버림받은 소년이 그 정체를 밝혀내겠다며 나섰습니다.

 

 

  안개가 사위를 채우고 당신의 모습이 어렴풋한 윤곽으로 떠오른다.

  나는 손을 뻗어 당신에게 내민다. 당신임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이기 위해.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디로 가고 싶어? 내가 데려다 줄게.

 

  소년은 빛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져야 했습니다.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두려움을 견디고 울음을 참아야했습니다.

 

 

  당신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 하지만 미세한 안개의 결을 읽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어.

  희망과 절망, 동경과 시기, 환희와 분노, 그 모든 감정들이 고요히 소용돌이치는 것을.

  성대가 팽팽하게 당겨온다. 굳어있는 줄 알았던 혀가 움직인다.

  공기 중에 흩어져있던 언어의 조각들을 불러들여 음미한다.

  그렇게 대사가 시작된다.

 

 

  “자, 나의 사람들아! 나는 이제 나의 길을 떠나야한다! 선지자들이 그러했듯, 우리는 완전히 다른 길을 똑같이 걸어가고 있는 것일 뿐. 그러니 나의 사람들아, 슬퍼하지 말라. 이 또한 당신들의 길이 될 것이니. 나는 먼저 발자국을 찍어 당신들의 길잡이가 되는 것만으로 기쁘다. 그 떨어진 빛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당신들을 대신하여 그것을 확인하고 돌아오겠다.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길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랏빛 오로라가 피어오른다. 이 세계의 끝을 알리는 음악이 흐른다.

 

 

  ‘오, 나의 사람들아…… 이제 당신들에게 작별을 고할게…….’

 

 

 

  나는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에 담긴 삶들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지금 무대 위엔 단검과 나 뿐이지만, 당신들 모두가 이미 내 안에 있어. 우리는 함께 숨 쉬고 느껴.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하나가 된 거야.

 

 

  그리고 마침내 소년이 빛 속에서 발견한 것은……

 

 

  너도 와줬구나. 네가 객석 한 가운데 서 있어. 두 손을 모아 간절한 기도를 하면서.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주는 빛을 보며 소년은 절규했습니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후회에, 살아갈 날들에 대한 두려움에.

 

 

  그래, 이제야 알 것 같아. 어떻게 내게 이런 꿈같은 일들이 주어진 것인지, 왜 그 모든 우주적 우연들이 나를 여기로 불러 낸 것인지.

  ……그건 속죄였어. 이 삶을 다시 살라고, 그리고 다시 죽으라고.

 

 

  소년은 결심한 듯 단검을 치켜들었습니다. 단검의 끝은 가슴을 향해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빛은 소멸했지만 아무도, 아무도 그것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 작가의 말

  소중했던 많은 걸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며 살아온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 괜찮다고, 언젠간 잘 될 거라고 너절한 변명과 자기 위안을 일삼아왔죠. 뭔가를 꿈꾸고 다시 시작해야할 순간은 언제나 외면하고 뒤로 미루면서요.

  그런 저에게 태인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제 삶은 더 이상 예전 같을 수가 없었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진정으로, 진실 되게 관찰할 때 변화는 두 사람에게서 일어나니까요. 관찰 받는 사람과 관찰 하는 사람 모두에게 말이죠. 태인이 제게 준 기회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타인을 진심으로 바라보며 이해하고, 나 자신을 진정으로 직시하라는 것.

  이 책도 당신에게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당신 안의 빛을 찾고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길 바랍니다. 또 그 꿈이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되는 순간을 꿈꿔봅니다.

  태인이 그리고 한 소녀에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로, 이 글을 끝맺을까 합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 위의 무대에선 원하던 대로 편히 쉴 수 있기를.

 

  어느 텅 빈 소극장에서 주채성

 

 

 

 

  막이 내렸다.

  하지만 관객들의 환성과 박수는 끊이질 않았다. 지금쯤 배우들은 막 뒤에서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숨을 고르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님…… 이대로 잊어버려야 할까?’

 

 

 

  막은 걷혔다. 채성은 오랫동안 떠돌다 마침내 자신이 정착할 곳을 찾은 사람처럼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길게 한 번 숨을 내쉬었다.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채성은 가슴 속에서 출렁이는 지금의 감정들을 끝이라는 말로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으니까. 그래, 어떤 시작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자, 그럼 오늘의 주인공 중 한 분을 모셔볼까요? 이 분이 쓴 작품을 두고 어느 리뷰어는 이런 평을 했더군요. ‘마치 원태인을 옆에 데려다두고 쓴 것 같은 책’. 태인 씨의 팬 분들은 물론이고 일반 독자와 평단의 지지도 대단했었죠. 한 배우의 삶과 내면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과 더불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 전기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은, 작품『유성을 따라 간 소년 - 아이돌과 나』의 저자 주채성 작가님을 모셔보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채성의 출판기념회와 태인의 1주기 추모식을 겸한 자리는 훈훈한 분위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태인의 추모 영상과 원트인의 편지 낭독 등의 준비된 프로그램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뭔가를 덜어내고 다시 또 채워나가는 듯 보였다. 경직된 숙연함보다는 서로의 어깨를 감싸는 위로들과 따스한 미소들이 가득했다.

 

  그런 분위기는 채성의 출판기념 사인회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원트인을 비롯한 다수의 팬들은 채성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그의 노고를 헤아려주었다. 그때마다 채성은 쓸쓸한 눈빛을 숨기려 애써야 했다. 팬들은 채성에게 원하는 문구가 아니라 태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마치 채성이 태인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영매라도 된다는 양. 채성은 ‘그 곳에선 울지 마. 넌 영원히 웃어 줘.’ ‘너라는 기억을 줘서 고마워’ 등의 문구를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들여 써주었다.

 

 

 

  “……고마워요.”

 

 

 

  다음 차례의 팬이 책을 내밀며 속삭이듯 말했다. 채성은 잠시 책을 바라보았다. 펼쳐진 부분이 보통 사인을 하는 책의 제일 앞 페이지, 태인의 사진이 인쇄된 곳이 아니라 제일 뒤 쪽 채성의 사진과 약력이 실린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앞 쪽에 써드릴게요.”

 

 

 

  채성은 책을 제일 앞 페이지로 넘기며 말했다.

 

 

 

  “아뇨. 여기다 해주세요.”

 

 

 

  너무 많이 들어 아무런 이질감도 들지 않는 목소리, 하지만 어딘가 헤진 듯한 목소리. 채성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푹 눌러쓴 검은 모자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뭐, 뭐라고 하셨죠?”

 

 

  “……고맙다고요. 다시 살게 해줘서.”

 

 

 

  채성은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떨리고 있는 손을 의식했다.

 

 

 

  사인회는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고 밖은 어느새 부드러운 카펫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행사의 모든 순서가 마무리되자, 별도로 마련된 연회장에서 채성을 위한 축하연이 열렸다. 사람들은 채성이 향후 집필계획이나 작품에 대한 소회를 들려주길 기대하며 의례적으로 침묵했다. 그러나 채성은 해줄 말이 없었다. 뭔가 그럴듯한 말로 너스레를 떨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다.

  채성은 샴페인을 연거푸 마시며 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의 집중된 시선과 침묵이 거두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채성은 빈 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이 모든 게 여러분이 만든 일입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람들은 뭔 소린가 싶어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다, 눈치가 빠른 이들이 ‘모든 게 여러분의 덕분이다’라는 말로 편하게 해석한 뒤 박수를 치기시작하자 대뜸 동의하며 더 큰 박수를 더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심사로 돌아가 축하연을 즐기기 시작했다. 채성은 그 소란을 틈타 다시 행사장으로 빠져나갔다. 한 손에 샴페인을 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팬들이 모두 돌아간 뒤의 텅 빈 행사장은 매끄럽고 고요했다. 채성은 가까운 곳에 있는 다운라이트 밑으로 가서 그림자가 흐트러지게 손바닥을 쫙 펴거나 팔을 흔들며 놀렸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어...’

 

 

 

  채성은 장난을 치다 들킨 아이처럼 슬쩍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주인공을 확인한 채성은 그만 소리 내 웃고 말았다. 그것은 유선형의 전면 유리벽에 비친 자기 자신이었다. 채성은 천천히 유리벽으로 다가섰다. 한 발 한 발 벽으로 다가설수록 반사된 몸은 왜곡되며 일그러졌다. 힘겹게 뒤를 따르던 그림자는 결국 주인을 놓치고 사라졌다. 유리벽의 바로 앞까지 다가서자 채성 본래의 모습이 밖의 풍경과 겹쳐져 떠올랐다.

 

  밤하늘은 태초의 우주 모습처럼 아득했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연기처럼 흐르고 있었고 보랏빛과 자주빛이 오묘하게 섞인 웅덩이 같은 것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달빛은 더 할 수 없이 선명한 형상으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따금씩 맑은 은빛이 점점이 빛나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 모든 조화가 완벽했다. 충만한 느낌이 온 몸을 가득 채웠고 이런 밤에는 비현실적인 일어난다하더라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연회가 끝나려면 아직 여유가 있을 것이었다. 채성은 마주한 우주의 한 조각을 마음껏 즐기려 의자를 끌어와 유리 벽 앞에 앉았다. 시선을 하늘 위로 맞추었다. 그리고 그 광대한 풍경이 오롯이 눈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꼈다. 그 장면을 잠시도 놓치기 싫어서 깜박이는 눈을 거듭 부릅떴다. 이내 눈이 시렸고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풍경 한 가닥이 흐트러졌다.

 

 

  그때 누군가가 채성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채성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어깨 위의 감촉과 온기는 변함없이 느껴졌다. 채성의 시건은 다시 정면을 향했다.

  흐릿하게 흔들리는 자신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검은 모자를 쓴 하얗게 빛나는 얼굴의 소년이 서있었다. 두 사람 다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한 축복처럼 펼쳐진 밤하늘을 함께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채성은 샴페인으로 입술을 축인 뒤 어렵게 입을 뗐다.

 

 

 

  “왜…… 그래야 했어?”

 

 

  “……”

 

 

 

  자신이 던진 질문이긴 했지만 뭐에 관한 것 인지는 채성 본인도 알지 못했다.

 

 

 

  “난 다 알게 됐어.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아.”

 

 

 

  “……”

 

 

 

  소년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장난기와 슬픔이 어우러진 미소였다. 눈부셨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침묵. 얼마동안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채성은 영원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전혀 조바심이 들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의 일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어쩐지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길고 긴 단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소년은 마치 그 장면들을 전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채성은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들이 소년에 의해 다시 읽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것 같은 말을 했다. 입술을 움직이지도 않고.

 

 

 

  완전히 잊혀지고 싶어서요. 어쩌면…… 영원히 기억되고 싶어서요.

 

 

 

  알 것 같은데 여전히 모르겠네, 라고 채성이 속으로 말했다. 그래도 소년에게 전해질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채성은 취기의 농도가 진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졸음이 쏟아졌다. 스르륵 눈이 감겼다.

 

 

  ‘아직 잠들고 싶진 않은데…….’

 

 

  밤하늘에서 이따금씩 빛나던 은빛 점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유성우의 밤이었다.

 

 

  소년은 빛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길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믿기 어렵게도 하나의 별이 지상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취한 것인지도 모른다. 꿈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깨고 싶지는 않아.’

 

 

  채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잠에 빠져들어 갔다. 언제 놓여 졌는지 모를, 무릎 위의 책을 떨어트리지 않으려 붙들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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