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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아내의 치명적인 비밀
작가 : 언덕에복
작품등록일 : 2018.12.22

알고 보면 비밀 많은 드라마 쓰는 작가 장진, 어느 날 그녀에게 남편이 등장했으니 그는 바로 대한민국 최고 꽃미남 배우 심빈! 장진과 심빈이 만들어가는 스펙타클 러브스토리!

 
9회. 고민 상담은 두더지 대왕에게
작성일 : 18-12-30 18:26     조회 : 247     추천 : 0     분량 : 8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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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타임! 타임! 워, 워 캄 다운. 거기 그래요 거기 잠깐 멈춰서요.”

 “어?...네. 알겠어요, 누나.“

 

 생각에 빠졌던 장진은 자신을 껴안으려는 듯 두 팔을 펼쳐 다가오려는 심빈에게 손을 뻗어 보이며 외쳤다.

 

 ‘아주 틈만 주면 이 남자는 날 껴안으려고 하네. 혹시 포옹결핍인가? 잘생겼는데 안 됐네. 해피해 보이는 겉보기완 많이 다른가봐.’

 

 그녀를 원하는 애타는 마음을 속에 숨겨놓은 심빈은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거부하는 장진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이며 그리운 이를 보는 눈빛을 보냈다.

 

 ‘내가 웃고 있어도 당신을 맘껏 안지 못하는 지금 속으로 울고 있어.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하는데...순전히 내 욕심이겠지.. 지금은 이렇게 당신이 서라면 서고. 멈추라면 멈춰 있을게. 그러니 내 사랑. 이제 널 두고 신 떠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진아, 나를 조금 더 믿고 의지해 줘.’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심빈에게 등을 돌린 장진은 청훈과 심빈에게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저기 잠시. 제 말 좀 들어주시겠어요?“

 

 심빈과 창훈이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전 솔직히 지금 좀 혼란스러워요. 기쁜 걸 떠나서. 결혼한 기억도 없는데 한 남자의 아내라니..."

 

 "누나, 걱정하지 마요. 우리의, 아니, 누나의 잃어버린 기억 다시 찾을 수 있어요. 그러니 날 믿고 따라와 줄래요?"

 

 '아니, 이 남자가 어떻게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 알고 있지?'

 

 장진은 애써 놀라움을 감추며 말을 이어갔다.

 장진의 자신이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최 대표에게 얼떨결에 말한 적이 있었다.

  순이도 모르는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최 대표 한 사람뿐이었다

 

 "누가 그런... 설마 최 대표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제가 기억상실증이라고?"

 

 심빈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최 대표 이 개좌식 잘도 남의 얘기를 떠들고 다녔네. 근데 만약에 말야, 혹시 내가 모르는 내 기억속에서 진짜 내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내 남편,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면...난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잠시... 잠깐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이런 절 이해하시죠?... 심빈 씨? 그리고 청훈씨. 부탁드려요. 저한테 시간을 주세요. 지금 전 너무 혼란스럽거든요.“

 

 그녀는 자신에게 찾아온 두 남자가 한 말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환경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 같아 혼란스러워졌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그럴게요. 누나“

 

 여전히 무덤덤하게 장진을 대하는 청훈과 애써 그녀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심빈이 답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다들“

 ”필요하면 부르세요, 누나“

 

 심빈은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장진과 단 둘이 떠나고 싶었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참았다.

 

 ”네...네“

 

 장진은 심빈이란 꽃미남이 자신을 꼬박꼬박 ‘누나’라고 불러줘서, 건네는 말도 모두 존댓말을 해줘서 너무 고맙지만 한편으론 너무 어색해서 아까부터 참았던 진땀이 이마 위로 흘렀다.

 

 ‘잘생긴 꽃미남은 심장에 해롭구나. 워 워, 진정하자. 릴렉스 캄 다운은 저 남자가 아니라 정작 내가 해야겠는데? 진정하자 진정.‘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미남에 약했던가? 자문하면서 두 미남을 보면서 저절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구석으로 이동하는 장진의 뒤통수를 보던 청훈은 이 시끄러운 커플을 빨리 보내버리고 잠을 청하고 싶어 애꿎은 앞머리만 입으로 불어 넘겼다. 그 모양새를 지켜보던 심빈이 청훈에게 다가왔다.

 

 ”훈아, 우린 안쪽으로 들어가 있자.“

 

 청훈은 눈빛으로 심빈에게 ’그녀를 여기에 혼자 두고 가도 괜찮겠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기가 막히게 알아챈 심빈은 조용히 웃었다.

 

 "서운하지 않았나?"

 ”예상했었어. 그녀가 날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건. 헌데 가슴이 좀 따끔거리네. 휴

 아마, 누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거야. 지금은 우리가 비켜줘야 생각을 정리하기가 쉬울 테니까. 자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있자“

 ”그래, 알았다.“

 

 심빈이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장진을 위해 앞머리를 넘기려고 홀로 애쓰는 청훈을 안쪽으로 인도했다. 청훈은 한쪽 눈썹을 씰룩이며 심빈의 어깨동무에 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자, 가자, 가자. 들어가자“

 ”근데, 남자끼리 이렇게 가까이 붙지 말지?“

 ”야, 우리사이에 성별 따지기 있냐? 자식 섭섭하게 말하네“

 ”우리 사이는 동성친구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하하하. 자식. 쑥스러워하기는.“

 

 심빈은 지레짐작해서 청훈이 쑥스러워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나오는 것이라 판단했다.

 

 ”됐지? 자식, 부끄러워하기는 자 손 뗐다. 나 손 뗐어. 봐봐?“

 

 심빈은 ”자 봐봐.“ 하며 청훈에게 둘렀던 팔을 내리고 ‘움직이면 쏜다, 꼼짝 마’ 대사에 반응한 범인처럼 손바닥을 위로 꺾어 청훈에게 펴보였다. 눈썹을 씰룩거리던 청빈의 눈썹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지런히 제자리를 찾았다. 청훈은 기다란 다리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같이는 가자, 친구야. 어, 친구? 내 말 안 들리는 척하는 친구? 같이 좀 가자니까~“

 

 청훈의 뒤를 따라 종알대며 따라붙던 심빈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진짜 미남 둘이 안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잘생긴 미남 둘이 실내로 떠나자 장진은 스윗 스팟에 혼자 남았다.

 

 두더지 잡기 게임기와 깨깨요 친구들이 살아 숨 쉬는 이곳에 말이다.

 그녀는 두더지 잡기 게임기의 망치를 무의식중에 들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한번쯤 두더지를 잡고 싶었기에.

 

 장진은 게임기 옆에 살짝 건들기만 해도 쓰러지지 않을까 싶은 피사의 탑처럼 위태롭게 쌓아놓은 동전 탑에서 500백 원 하나를 아주 조심스레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무사히 동전을 집었다는 안도의 한숨도 쉴 수 없었다. 한숨에 동전 탑 무너지랴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조심스레 최대한 움직임을 최소화시켜 반질반질 윤이 나는 동전 투입구에 넣었다.

 뚜둑- 동전이 들어갔다.

 

 뾰로롱 뾰로롱 뾰루릉 뿅뿅뿅- 하쿠나마타타. 하쿠나마타타.

 고요한 정적을 깨는 소리가 나며 두더지 잡기 게임기의 불이 켜졌다. 장진은 예상치 못한 오프닝 송에 잠시 주춤했지만 복슬복슬한 털 뭉치로 장식된 망치를 들고 두더지 머리를 내려칠 준비 자세를 취했다.

 

 ’난 한 놈만 팬다. 걸리면 죽는다.‘

 

 한 놈만 팰 만반의 망치질 자세를 취한 그녀의 눈에 두더지 머리가 땅에서 지상 밖으로 머리를 들며 나오는 모습이 띄었다.

 

 ’저놈인가?‘ 그녀가 목표물을 잡고 망치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이얍~~~!“

 

 그 순간 난데없이 인공지능도 아닌 것이 게임기가 스스로 말을 했다. 목소리에 버터 잔뜩 바른 소리로 말이다.

 

 ”오~ 베이비~ 망치를 들고 있는 베이비~“

 ”끼약-“

 

 장진은 너무 놀라 털 뭉치 망치를 내던지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저런 베이비 데시벨이 꽤 높군? 우쭈쭈 베이베 스트레스가 많아? 하지만 이젠 걱정하지 마 내가 등장했으니까 베이비~ 돈 워리 비해피야 베이비~

 “맙소사! 게임기가 말을 하다니!”

 

 장진은 얼마 전까지 청훈이 서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개그 욕심은 많은데, 사람들이 잘 웃지 않아서 이런 기계로 대리만족하는 건가, 그런 건가 청훈? 그래도 저 버터는 아니잖아~!‘

 

 “잠깐 내 소개를 하지. 난 두더지 대왕이야. 베이베 자 말해봐 무슨 고민이 있어? 고민이 있다해도 이제부터 돈 워리야 베이비 내가 있으니까 베이비“

 

 누가 저런 목소리로 녹음을 했는지 만나면 버터를 주고 싶었다.

 

 ”오! 계속 말하고 있어. 아 겁나 느끼해. 소름이 오소소 돋네. 난 정말 느끼한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고소한 향의 버터는 좋은데 왜 입에 버터 바른 남자는 그렇게 싫을까. 딱히 알 수 없었다. 느끼한 음식에 대한 트라우마일지도 몰랐다.

 

 “베이베~ 고민이 많아? 난 두더지 대왕이야.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게. 베이베~

 ”베이비 같은 소리하네! 맞아라, 맞아! 조용히 해 조용히!“

 

 장진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식겁하게 만든 두더지 대왕에게 복수를 했다. 그녀는 두더지 잡기 게임기 정중앙에 나온 왕관 쓴 두더지 대왕의 머리를 사정없이 망치를 내려쳤다.

 

 ”하쿠나마타타, 돈 워리 비해피야 베이삐삐-“

 

 어디서 구입했는지 장진의 괴력 파워 망치스킬에도 굴하지 않은 두더지대왕이었다. 괜히 대왕이 아니었다.

 

 ”하쿠나마타타, 돈 워리 비해피야 베이삐삐-“

 ”뭐? 하쿠나마타타? 돈 워리 비해피? 다 잘될 거야? 너 지금 나랑 장난해?“

 ”베이삐-해피야 돈 워리 비해피야 베이삐-베이비?“

 

 도대체 몇 번을 때려야 얄미운 버터 먹은 두더지 대왕이 안 나올까?

 모닝 치킨의 에너지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이런 에너지 만땅 게임기가 다 있어?“

 

 장진은 느끼 버터 백 만배 게임기에 무릎을 꿇기는 싫었다. 그녀는 이 텅 빈 공간에 (물론 사랑스런 깨깨요 친구들이 이빨 벌리고 환영하고 있지만) 자신의 고민을 들어줄 만한 대상을 두더지 대왕으로 정했다. 오늘은 적은 내일의 동지가 되기도 한다.

 

 ”하아....졌다. 졌어. 내가 졌어. 두더지 대왕 씨.“

 

 퍽, 퍽, 퍽. 장진이 연속 3단 공격을 퍼부어도 두더지 대왕이 쫄지 않고 꿋꿋하게 나왔다. 게임기 속 두더지로 살기론 힘든 법이다. 하물며 대왕 타이틀까지 달았는데 쉬울 리가 없다.

 

 ”오 베이베~ 고민이 많아? 난 두더지 대왕이야. 걱정하지 마 베이베~“

 ”그래, 알았어. 그럼 나 여기서 고민상담해도 되는 거지? 알았어. 고마워. 그럼 일단 자리부터 잡고 앉을게. “

 

 청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고민을 상담해 주겠다는데 마다하지 않는 그녀였다.

 

 장진은 망치를 게임기 옆에 걸어두고 부드럽고 푸른색을 띤 잔디코트에 털썩 엉덩이 깔고 앉았다. 깨깨요 친구들이 입을 벌리며 그녀를 환영해주는 것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깨깨요 프렌드 가든에!”

 

 “어우 깜짝이야! 얘들은 왜 이렇게 입을 벌리고 있는 거야? 먼지 들어가게”

 

 뒤늦게 깨깨요 친구들을 보고 장진이 놀라자 깨깨요 친구들에게 한 눈 팔지 말고 자신에게 관심 좀 쏟아달라는 듯이 두더지 대왕이 계속 말했다.

 

 ”베이베~ 걱정이 많아? 돈 워리야 베이베 비 해피도 잊지 말라구 베이베~“

 ”아 그래. 고민 상담해준다고 했지? 이것 봐 두더지...대왕 씨? 지금 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자 이제부터 얘기할 테니까 잘 들어 두더지 대왕...오늘 말야“

 

 담담해진 장진은 가상의 친구 두더지 대왕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로 결정했다.

 

 그때, 멀찌감치 장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그녀의 시크릿 남편이라 주장을 꿋꿋하게 하는 그, 심빈이었다.

 그는 친구와 안으로 들어갔다가 곧이어 ”끼약“하는 소리가 스위 스팟쪽에서 들리자 그녀가 걱정이 되어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그녀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벽에 기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

 

 

 

 그 시각 청훈은 전날 오미자와 바로 다음 날 옥동, 청혼으로 자신을 당황스럽고 어처구니없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만든 장본인 장진을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상대방을 어이없게 만드는 여자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여자, 다행히 그녀에겐 심빈이 그 녀석이 곁에 있다. 그래, 정말 다행이지. 근데...나는 왜 지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지...? 공복이라 그런가? 그런 거겠지...어제 오늘 두 사람 때문에 너무 피곤하군. 한숨 자고 일어나서 뭐 좀 먹어야겠어.’

 

 머릿속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는 그녀를 공복 때문이라고 그런 거라고 청훈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청훈은 홀로 생을 살아가야 하는 서글프고 슬픈 푸른 영혼. 이름처럼 세상을 아름답고 푸르게 가르치고 배워나갈 그였기에. 그녀와 이런 식의 재회가 달갑지 않았다.

 

 하나뿐인 친구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는 것도 그에게 있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의 기억에 청훈 자신도 없는 상태.

 

 ‘심빈 녀석도 기억하지 못하는데...뭘 바라는 거냐, 나는’

 

 아직은 좀 더 그 둘을 멀리서 조용히 지켜봐야겠다는 마음뿐. 그 이상의 마음을 가져서도 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친구와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갈등? 청훈은 전자를 택할 사람이었다.

 

 그저 사랑의 신 에로스가 그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지 않기를 바랄 뿐.

 

 청훈은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녀가 원치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그가 그녀를 다시 만난 이상 더는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감성을 택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부디 편안한 잠을 자길, 그 잠을 깨고 난 후 그녀와의 일이 한낱 꿈이었기를 바라며 청훈은 하늘색으로 수놓은 자수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하늘색의 오리너구리가 건장한 사내의 몸을 감싸 그가 악몽을 꾸지 않고 꿀잠을 잘 수 있게 돕는다. 오리너구리의 몸뚱이가 청훈이 뒤척일 때마다 격동의 트위스트를 췄다.

 

 

 

 ***

 

 

 

 심빈은 벽에 기대어 사랑의 신 에로스 뺨치는 옆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기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 게임기는 내가 로스엔젤레스에서 물어 물어 찾아가서 사 준 생일선물인데. 청훈 녀석, 그 자리에선 흉물스럽다고 당장 버릴 것처럼 굴더니. 속으론 아니었나보네. 아, 여기선 누나의 고운 얼굴이 잘 안 보여. 계속 보고 싶은데 미치겠어. 좀 더 그 예쁜 얼굴을 내 눈에 가득 담고 싶은데. 누나, 누나, 내 목소리 들리나요? 들린다면 한 번만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줘요.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정해진 운명이 아니에요. 우리는 결코 헤어질 수 없으니까 다시 만난 거예요. 누나, 부탁이에요. 제발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줘요...’

 

 장진은 막상 사람도 아닌 게임기, 목소리에 버터 바른 두더지 대왕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려니 민망했다. ‘살면서 게임기한테 고민상담하는 이런 일도 있구나. ’

 

 ”아, 이거 참 난감하네. 민망하네. 고민 상담을 게임기한테 다 하네? 누가 보는 사람 없지?“

 

 그녀는 주위에 혹시 누가 보는 사람이 없나 고개를 돌려 주의 깊게 살폈다. 다행히 심빈이 있는 위치는 장진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그녀와 텔레파시가 통한 것이 신비하고 아주 많이 기뻤다.

 

 ‘아, 누나! 우리가 정말 어떻게 그 오랜 시간동안 떨어져 있었을까요? 난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 시간이 가로막혀 있었던 것이.’

 

 심빈은 그녀 몰래 자세를 낮춰 스르륵 벽에 미끄러져 내려갔다.

 조금 더 그녀의 매혹적인 목소리를 잘 듣기 위함이었다.

 

 그녀, 장진은 ”그래, 까짓 것, 들리면 들으라지 뭐.“

 배 째라 식으로 당당하게 톤을 높여 두더지 버터 대왕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버터 두더지 대왕 아까 내가 때린 건 미안해?“

 ”돈 워리야 베이베~“

 ”그래, 걱정하지 말라고 고마워. 어, 난 근데 두더지야, 아니 두더지 대왕. 난 지금 말야. 이 답답한 심정을 지금 누구한테 털어놔야 하는지 막막해. 있잖아 그게 말야 어떤 행운이 저절로 굴러 들어왔는데 난 이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 내가 이상한 거야?“

 

 들을 사람 하나 없는 스윗 스팟에 장진의 낮은 음성이 홀로 패턴을 그려 파동하며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심빈은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는 그녀가 만들어낸 언어의 정원에서 한 명의 나그네와 같이 조용히 그림자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베이베~ 나는 두더지 대왕이야. 고민이 많아? 베이베~ 걱정하지 마. 하쿠나마타타야 베이베 하쿠나마타타야 베이베“

 

 장진의 망치 파워 후폭풍 때문인지 두더지 대왕 음성은 점점 삑-사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생각에 몰두해 두더지 대왕의 목소리가 이상해진 것도 정작 몰랐다. 그렇게 두더지 대왕은 스윗 스팟에 칠판 긁는 소리를 낼 시동을 걸고 있었다.

 

 ”하쿠나마타타얏베이삑- 하쿠나마ᄐᆞㅏᄐᆞ아 베이빅-“

 

 자신의 사정을 알 리 없는 두더지 대왕에게 장진은 속내를 꺼내보였다. 좀 더 확실한 대답이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드라마 그거 내 꿈이고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왔던 거 맞아. 하지만..그거, 그거 ,그거 말야.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 말야. 부부 그거.,,그걸 지금 내가 갑자기 받아들이는 건 사실 좀 많이 버거워. 많이 힘들어. 정말 난 요즘 겪는 상황들이 당최 이해가 안 가. 대체 왜 요 근래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꼼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자꾸 일어나는 걸까? 난 이제 불행 끝! 호운 시작! 호운 맞이할 차례인데?“

 

 장진은 고개를 숙이고 소리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갈피 잃은 방랑자였다. 혼란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장진의 심연에 자리 잡았다. 언제부터일까. 그녀가 이렇게 나약해진 것이.

 마음이 강함을 빼앗겨 약함에게 정복당해버린 것만 같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하느라 걱정만 더 늘어갔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사라진라면. 걱정이 없겠네‘ 라는 말도 있는데.

 

 ”돈 워리야 베이베- 하쿠나마타타야 베이삑삑삑-“

 

 장진은 불안 걱정 초조함 불편함 없이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녀의 소원은 딱히 거창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잘하는 이야기 짓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것. 그러다가 평생 곁에서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것. 소소하고 소박하지만 결코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인생의 골든 벨 같은 것이었다.

 

 ’대체 내가 언제 결혼을 했을까? 내 남편이라고, 나와 부부라고 주장하는 남자의 정체는 대체 뭘까? 헌데, 그 남자 가까이서 보니 낯이 많이 익었어. 아 맞다, 그래, 그렇지. 아까 청훈이란 남자가 그 꽃미남을 소개할 때 분명히 직업을 배우라고. 닉넴이 아시아프린스라고 했었지. 아! 왜 내가 진작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바보, 장진! 인터넷강국에서 인터넷 검색을 할 생각을 왜 빨리 못 한 거야. 찾자, 찾아. 그 남자가 내 남편이라는 단서를 찾아내자! 이렇게 고민하는 시간에 검색하는 게 더 빠르겠네!‘

 

 사고의 바다에서 힌트를 찾아 고민을 정리한 장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더지 대왕은 여전히 삑-사리를 내고 있었다.

 

 ”하쿠나마타타야 베이벡벡 하쿠나마타타타타타타 하쿠나나나나마타나난나-“

 ”하쿠나마타타! 그래, 맞아!“

 

 그녀는 삑-사리 나는 두더니 대왕이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에 화답을 했다. 확신을 담은 말도 덧붙였다.

 

 ”하쿠나마타타.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장진은 검색의 신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마쳤다. 그녀는 바랐다. 검색창의 가호가 있기를. 잘못된 연관 검색어로 헤매지 않길. 간절한 바람을 두 손 모아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말하는 두더지 대왕에게 전달했다. 하쿠나마타타니까.

 

 멀리서 기운 차린 장진의 모습을 지켜보던 심빈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속내를 이렇게나마 알 수 있어 마음에 쌓인 불안함을 조금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진아, 누나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누나한테 확신을 줄 테니까‘

 

 

 

 
작가의 말
 

 하쿠나마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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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2) 2018 / 12 / 29 275 0 5580   
2 1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1) 2018 / 12 / 29 275 0 3744   
1 . 그녀의 수정고 타임. (1) 2018 / 12 / 22 65 1 4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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