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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15
작성일 : 18-12-30 17:50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4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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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낮엔 통으로 심경이 복잡했다. 김지빈과 내가 함께 영화를 봤다는 사실과 집에 도착했을 때 들은 짧은 대답이 왜 가슴을 떨리게 했는지.

 

  조금이지만 취향을 확고하게 들은 건 처음이었다. 겉모습과 상관없이 무언가 신비로운 기운에 끌려 할 것 같았다. 대학 때 인사치레처럼 선배들이 했던 이상형 질문에서 꾸준히 대답하길 ‘나와 잘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잘 통할 것 같은 사람.’이라고 그랬다.

 

  첫눈에 사람과 사귈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어찌 보면 그게 더 까다로웠다. 도대체 잘 통할 것 같은 사람이란 게 뭐냐며. 근데 어제는 긴 생머리가 아니라 단발머리의 여자를 좋아한단다. 무려 단어 선택도 좋아한다고 정확하게 말했다. 사람이 참 욕심꾸러기인 게 하나를 아니까 둘을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눈은? 그래서 코는? 그래서 얼굴형은? 그래서 어떤 분위기의?

 

  넋을 놓고 핸드폰을 바라보기도 했다. 문자를 보내볼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어제 내가 한 실수를 부끄러워하는 것도 잠시 그냥 뻔뻔해진 것 같다.

 

  하루의 변화는 김지빈과 만나면서 그걸로 됐다. 하는 느낌으로 끝나버렸다. 누가 봐주길 바라고 꾸민 것은 아닌데 제일 마주치지 않을 것 같던 사람에게 보였으면 그리 헛된 시간은 아니었음을. 비록 추했을지는 모르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다시 편한 복장으로 돌아오자 직원들이 입을 모아 데이트는 잘했냐고 물었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이곳저곳에서 환호가 터졌다. 내가 데이트를 한 게 그리 놀라운 일인가. 도대체 내 이미지는 어떤 식으로 굳혀져 있는 거지.

 

  나는 어색하게 웃었고 나보다는 자연스럽게 웃은 고준서가 말했다.

 

  “이 변호사님을 만나는 남자도 있어요?”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실소가 나왔다. 하마터면 그러니까, 하고 수긍할 뻔했다. 진짜 데이트도 뭣도 아니었기에 큰 타격은 없었다. 나는 내 단발머리를 꼬며 못 들은 척 수사 자료를 뒤적였다. 머리 꼬기에는 단발만큼 좋은 기장이 없지. 숏컷으로 안 자르길 잘했다고 문득 떠올렸다.

 

 

  *

 

 

  자료를 조사할 때 진동이 울렸다. 이름을 확인하지 않고 받아 누구세요? 만 두 번 외쳤다. 저예요. 당신이 누군데요? 묻기 전에 정예찬이라고 깨달았다. 핸드폰을 고쳐 잡으며 이제 알았다는 응답을 했다. 마지막 공판에서 어떤 변론을 해야 할까, 제대로 정리해서 깔끔한 판결을 받고 더는 진정한 피해자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정예찬에게 몇 번이고 부탁하려고 마음먹은 상태였는데 먼저 이렇게 연락이 오자 기쁘면서 한편으로 불안했다. 증언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무턱대고 들이대야 하나. 어쨌든 섭섭해하진 말아야지 하고 나름의 방법을 생각했다.

 

  “잘 지냈어?”

 

  불안한 기분은 말이 되어 먼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전이었으면 항상 만났던 카페로 나오라고 무슨 친구 대하듯 당당하게 말했을 테지만 지금은 좀 조심스러웠다.

 

 

  그냥요.

 

 

  창문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머뭇거리는 정예찬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그러는 것 같아서.

 

  날씨가 조금 풀렸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비쳤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늘은 좋은 날일까 나쁜 날일까.

 

 

  증언이요.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삼키는 소리가 컸는데 상대방에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들렸으면 어쩌지. 한동안 말이 없는 정예찬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같기도 했다. 사실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할게요.

 

 

  핸드폰을 놓칠 뻔한 것을 간신히 잡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당장 창문을 열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할 정도의 결심을 해준 정예찬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고마워.”

 

  이것뿐.

 

 

  *

 

 

  마지막 공판을 치르기 전 할머니 봉안당에 들렀다. 집과 가까워서 평일에도 자주 들렀는데 동준을 변호하기 시작하면서는 한 번도 오지 못했다. 할머니에게 동준을 잘 부탁한다고 말해야 왠지 재판에서 마음을 편히 먹을 것 같았다.

 

  늘 그랬듯 가다가 꽃 하나를 샀다. 길 어디에도 핀다는 이유로 살아 계실 때 나팔꽃을 좋아하셨던 할머니를 위해 또 하나의 나팔꽃을.

 

  꽃에 딱히 관심이 없는 나 또한 익숙해서 정이 가는. 잎이 부들부들한 나팔꽃을 들고 3층에 안치된 할머니에게 올라갔다. 주차장에는 차가 꽤 많았는데 건물에는 사람 한 명 없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작은 개수대가 있었다. 손을 씻는 용도인지 뭔지는 볼 때마다 알 수가 없었다. 계단에 닿는 구둣발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숨소리마저 죽여야 할 것 같은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향냄새인 것도 같고 낡은 장롱 냄새인 것도 같고 꽃 냄새인 것도 같은 알 수 없는 냄새가 풍겨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을 감았다 떴다.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는 할머니의 유골함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웃고 있는 사진이 먼저 보였다. 할머니는 연세와 비교하면 웃음이 많았는데 그건 내력 같았다.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나도 별거 아닌 일에도 자주 웃음이 터져서 참 잘 웃는다는 소릴 많이 들었는데.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눈을 감고 손을 모으자 손에 들린 나팔꽃이 부스럭거렸다.

 

 

  나 왔어요.

 

 

  처음엔 인사를 했고,

 

 

  사랑하는 할머니.

 

 

  두 번짼 고백했고,

 

 

  나하고 동준이 잘할 수 있게 도와줄 거지.

 

 

  세 번짼 부탁했다.

 

 

  *

 

 

  눈을 감은 이대로 쭉 서 있고 싶었다. 움직이기에는 이곳이 너무 편했다. 생각을 줄일 수 있었다. 요즘은 생각이 많았다. 감만 믿고 진행해서 알면 알수록 복잡해지는 사건뿐만 아니라 집도 그렇고 그 집을 나온 이유도 그렇고 김지빈에 대해서 하지 않았던 여러 고민.

 

  나팔꽃을 지그시 눌렀다 뗀다. 눈을 뜨고 다시 장을 바라봤다. 꽃을 올려두려던 손이 멈칫했다. 늘 내가 얹어두었던 자리에 똑같은 꽃이 있었다.

 

 

  나팔꽃

 

 

  왜 이제야 눈치챘지. 내가 오기 전에 먼저 누가 다녀갔다. 그것도 할머니가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아니면 요즘은 예식에 나팔꽃을 두나. 할머니는 몰라도 내가 나팔꽃을 그나마 좋아한다고 아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수지는 어제오늘 응급환자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호출을 받고 나간 뒤로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 애가 내 할머니 봉안당에 들렀을 리는 없고. 남은 건 딱 한 사람이다.

 

 

  김지빈?

 

 

  긴가민가했다. 할머니나 나팔꽃에 대해 아는 사람이긴 했지만, 걔가 이곳에 들를 이유도 없거니와 그런 성격도 아니라. 내가 모르는 누군가일까.

 

  또 눈을 뜨자마자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내 꽃을 먼저 있는 꽃에 옆으로 가만히 올려놓았다.

 

 

  *

 

 

  마지막 공판이 시작됐다. 바쁘다더니 재판장 문을 열고 들어온 수지와 눈이 마주쳤다. 주먹을 불끈 쥐고 위에서 아래로 내린 수지의 입에선 소리 없이 힘내라는 말이 외쳐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뒤늦게 들어온 고준서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웬일로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살짝 웃는 것 같기도 했고. 얼굴만 보고 있어도 힘이 나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덕분에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동준의 손을 살짝 잡았다. 동준을 무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 말만 믿고 거리낌 없이 도와준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우리 편으로 함께하고 있다고. 이게 동준에게 더없이 닿게 하려면 내가 해내야 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걱정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다짐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재판의 시작을 알리는 판사의 법봉과 함께 김지빈은 검사복을 고쳤다. 단정하게 정리한 머리, 흰 와이셔츠, 일자로 쭉 뻗은 슈트 바지를 입었다. 역시 번쩍이는 시계도 손목에 찼다.

 

  시선이 마주친 김지빈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뚝뚝하고 눈을 반만 떠 바라보는 모습이 나른하고 어딘지 거만한 구석이 여전히 있었지만, 내 마음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낀 건 그가 더는 얄미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짧은 순간이 긴 시간인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완벽한 스타트가 된 내 머리에는 총성이 울렸다.

 

  나는 자리에 앉고 준비한 서류를 뒤적였다.

 

  “피고인 김동준, 마지막 공판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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