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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13
작성일 : 18-12-30 17:22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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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뭔가 바뀌었네요.”

 

  고준서가 나를 위아래로 바라봤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살짝 가리고 애써 미소 지었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직원들은 하나같이 고준서 같은 반응이었다. 드디어 남자 친구가 생겼는지부터 오늘 끝나고 데이트 가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옷장에서 몇 년 만에 꺼내 입은 원피스를 만지작거렸다. 집안 전례가 있을 때 장만해둔 유일한 옷. 연한 보라색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디자인은 평범하기 그지없는데 살면서 거의 입은 적이 없으니 나도 어색하고 보는 남도 어색했다.

 

  조금 짙은 화장도 했다. 오랜만에 눈썹을 다듬다가 어설퍼서 긁히기도 했다. 찍어 바를 게 마땅치 않음을 깨달았다. 인터넷 영상을 보고 꾸역꾸역 따라 하려는데 초보에 필요하다는 이것저것이 나는 이것저것 없었다. 프라이머, 파운데이션, 팩트, 도구 종류도 여러 개지만 내가 가진 거라곤 쿠션과 손 하나였다.

 

  영상은 보나 마나고, 나는 가진 것과 수지한테 몇 가지 빌려 내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3시간 공들여 화장했다. 나름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원피스에 어울릴만한 구두가 없었다. 죄다 정장용이었고 그마저도 잘 착용하지 않았다. 평소에 자주 신는 스니커즈 말고 아까워서 잘 신지 않는 비싼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감색 코트를 걸쳤다.

 

  밖으로 나와 주차장까지 걷는 그 짧은 순간에도 다리가 떨렸다. 오랜만에 기모 스타킹을 신었는데 바지와는 확실한 차이가 느껴졌다. 추위가 적응되지 않아서 차에 올라탔을 땐 재빨리 담요를 덮었다. 그래도 밑으로 찬기가 몰려 들어오는 것 같아 히터를 틀었다.

 

  룸미러를 보며 머리를 정리했다. 가방에서 처음 구매한 화려한 귀걸이를 꺼냈다. 크기가 크고 길이도 길었다. 이게 예쁜 건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인기 있는 제품이었다.

 

  교체하는데 몇 분이 지체됐다. 오래전에 귀를 뚫었지만, 교체는 손에 꼽을 정도라 거울을 보며 끼우는데도 감이 없었다. 아물었는데 아픈 것 같았다. 겨우 찾아 달았으나 무게가 무거워 또 어리둥절했다.

 

  핸들을 잡는 손이 낯설었다. 핸드크림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무슨 바람이 불어 내가 이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얼마 나의 시간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문득 생각했다.

 

  “아.“

 

  귀걸이에 머리카락이 걸렸다.

 

  *

 

 

  “그렇게 보지 마, 나도 어색하니까.”

 

  밥 먹을 때도 고준서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정확히는 귀걸이에 시선을 뒀다. 오늘은 국밥집 말고 그 앞에 있는 분식집에 갔는데 점원이 우리를 연인으로 착각하고 떡볶이에 달걀 두 개를 얹어줬다. 옷 하나 바꿔 입었다고 그동안 그렇게 같이 다녀도 받아본 적 없는 서비스를 받았다. 뜻은 그게 아닌 듯하지만 옷이 날개라는 말을 이럴 때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안 불편해요?”

 

  떡을 젓가락으로 꼽고 있을 때 고준서가 말했다. 남이사, 불편하든 말든. 인상을 찌푸리고 시선을 돌려 고준서를 봤는데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귀걸이를 한 번 매만졌다.

 

  “안 불편하면 계속하고 다니지.”

  “뭐?”

  “예쁜데.”

 

  사레가 들려서 콜록거렸다. 물컵을 입술에 갖다 대고 급하게 마셔도 속이 진정되지 않았다. 뭔 칭찬도 저렇게 무심한 표정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네. 티슈를 몇 장 뽑아 건네준 고준서가 말했다.

 

  “근데 화장은 좀.”

  “.....”

  “무서워요.”

 

  저 자식이.

 

 

  *

 

 

  식후에 공원을 돌며 남자와 커피 마시는 일은 드물었다. 한쪽이 재판이 있거나 조사하러 가거나 파일을 검토하거나 쪽잠을 자거나 정해지지도 않은 점심시간은 그런 식으로 활용됐다. 나와 보폭을 맞추는 고준서를 슬쩍 바라봤다. 오랜만에 입은 치마 때문에 걸음이 느려지긴 했는데 평소보다 차이 나는 속도에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슨 기분일까. 사실 고준서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인다. 눈에는 감정이 없고, 변호사란 직업이 참 잘 어울렸다. 그러나 의외로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 아닐까. 고준서의 긴 다리가 작게 굽었다 폈다 한다.

 

  “정예찬 증인 신청하는 거 말이야.”

 

  그제야 고준서의 무뚝뚝한 얼굴에 의문이 번진다.

 

  “못하겠어요?”

  “아니, 어떻게든 부탁해보려고.”

  “아, 잘했네요.”

 

  아직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하고 대답하려던 나는 고준서에게 중요한 것이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을 차마 호소하지 못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사람처럼 고준서가 말했다.

 

  “잘 될 거예요.”

 

  그 말이 뭐라고. 들으니까 안심이 됐다. 고개를 끄덕이자 고준서가 말을 이었다.

 

  “그 화장만 아니면.”

  “이 자식이.”

 

 

  문득 처음 만난 날 아직 볼살 가득한 앳된 모습의 고준서가 떠올랐다.

 

  인상 하나 매서운 놈이 들어온다길래 드디어 후배 생긴다고 들떴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도대체 어떤 놈인지 보기도 전에 저런 소문을 달고 다니나, 사실 불편했었다. 우렁차게 인사한 고준서는 정말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고 키도 컸고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지만 그다지 좋은 인상이 아니긴 했다. 일주일 정도는 내가 맡아서 이것저것 가르쳤는데, 가르쳤다는 게 일은 아니었고 비품이 어디 있는지, 복사기 사용 방법이라든지, 조사서의 위치, 누굴 건들면 귀찮아지는 정도. 변호사는 자기 일만 잘하면 되니까 내가 그걸로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는 아니라. 금방금방 눈치껏 사회생활 하는 녀석은 새 직장에 빠르게 적응했다. 고준서랑 어느 정도 말 텄을 때도 걔가 인상이 다 구나 생각은 했는데 분명하게 느낀 계기가 있었다.

 

  반차도 반납하고 뭐 해야 하냐고 귀에 딱지가 생기게 말하던 고준서가 없는 일을 만들어 할 때 그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왠지 그 후로 고준서를 편하게 대했다. 아니 그냥 편해졌다.

 

  “야,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아니요.”

 

  아, 진짜. 지금은 너무 편해져 버린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처음 들어왔을 때 왜 나 콕 집어서 알려달라고 했어?”

  “그래서 귀찮았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궁금해서, 내가 그나마 만만해 보였나 하고.”

 

  내가 고준서를 맡게 된 게 그 이유였다. 보자마자 나한테 안내해달라고, 자연스럽게 가리켰던 고준서 때문에.

 

  “그건 아니고.”

  “.....”

  “쿨해 보였어요.”

 

  나는 의외의 대답에 우뚝 멈춰 섰다.

 

  “나도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뜻을 곱씹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준서가 작게 웃었다.

 

 

  *

 

 

  시간을 들여 꾸민 것치곤 아무 일도 없었다. 다 퇴근하고 혼자 남았을 때 심지어 그냥 집에 돌아가긴 아까워서 영화라도 볼까 생각했다. 사무실 책상에 거울을 문득 보고 그 생각을 금방 거뒀다. 립은 다 지워졌고 섀도는 번졌고 베이스는 둥둥 떴고 말 그대로 화장이 무너진 것이다. 메이크업할 때 중간에 수정할 생각까진 못해서 따로 챙겨온 것도 없다. 물티슈를 뽑아 눈가를 살살 지웠다. 어째 더 판다가 되는 것 같아서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여분의 바지로 갈아입을까 고민하다가 얼른 집에나 가자고 생각했다. 아침에 몇 시간, 막상 할 일도 없는데 바보같이 시간만 허비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기분전환 된 것도 아니고.

 

  건물을 빠져나오니까 더 후회됐다. 저녁이 되니까 날씨는 아침과 또 다른 느낌으로 추웠다. 살을 가르는 듯한 바람에 코트를 바짝 여몄다. 다리는 감각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펄럭이는 원피스가 거슬렸다. 입에선 따뜻한지 차가운지 모를 입김이 계속 나왔으나 다물 수 없었다. 이빨이 딱딱 부딪쳤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손을 빠르게 비볐다. 그럴 때 퍼지는 공기가 공허해서 왠지 가슴이 뚫린 것처럼 허했다. 한 걸음 떼기도 벅차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어깨에 큰 점퍼가 걸쳐졌다. 나는 움찔 놀라 몸을 굳혔다. 진작 얼어붙은 코는 냄새를 맡기 어려웠는데 익숙한 비누 향은 코끝에 스쳤다. 나는 잠깐 멍해졌다. 뭐지? 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마주치는 눈빛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렇게 추운데 홧홧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했지만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더 이상했다.

 

 

  현실인가?

 

 

  마른침이 넘어갔다. 덤덤한 얼굴의 김지빈, 나른한 눈빛의 김지빈, 의외의 따뜻한 손길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안 춥냐?”

 

  딱 저 한마디 했을 뿐인데, 심장이 떨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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