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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아이돌x아이
작가 : LEEEUL
작품등록일 : 2018.12.30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배우 원태인의 죽음! 그것도 연극 공연 중에 벌어진 공개적 죽음이었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사고인가, 사건인가?
연예계와 매스컴은 태인의 죽음을 앞 다투어 재구성 하려한다. 삼류 연예지 ‘진실과 상상’의 기자 주채성도 그 중 하나. 채성은 태인의 평전을 써서 지긋지긋한 생활을 끝내고자 한다. 그러나 태인의 죽음을 파헤쳐나가면서 자신도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진실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데...

 
아이돌x아이_첫번째 연기, 두번째 삶 2
작성일 : 18-12-30 16:42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8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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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 중에도 문득 묘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발생한 누수 같은. 그런 정체불명의 느낌은 대개 불길한 방향으로 흐른다. 따스한 기온과 시원한 바람, 눈부신 하늘의 완벽한 날씨마저 의심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잡생각 말고 몸이나 사려.

 

 

  나는 묵묵히 손을 놀려 리프트 위에 놓인 구형 밴을 수리해나갔다. 무슨 연예인 회사에서 굴리는 차라던데 상태가 영 엉망이다. 공구를 집으려 고개를 돌렸을 때, 이 그늘 진 밑바닥에도 한 조각 햇살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뺏긴 채, 잠시 멍하게 있던 그때 속눈썹에 맺혀있던 땀방울이 떨어져 눈을 적셨다. 동시에 오래된 오일 같은 액체가 얼굴로 왈칵 쏟아졌다.

 

 

  이거였어? 대책 없네.

 

 

  “야아 원군아, 오늘 운수대통 하려나보다야, 허허. 나 먼저 밥 먹고 올게.”

 

 

  사장님의 농담에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직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차희가 늦는 것부터가 그랬다. 언제나 점심시간 훨씬 전부터 찾아와 곤란하게 만들었는데 오늘은 수리를 마무리 짓고 점검할 때가 돼서야 찾아왔던 것이다. 게다가 차희답지 않은 축 처진 목소리로.

 

 

  “인아…….”

 

 

  “오는 길에 도시락 까먹고 왔어? 왜 이렇게 늦게……”

 

 

  리프트 아래에서 고개를 빼다 멈칫한다. 차희의 부어오른 뺨과 터진 입술, 억지로 참고 있는 울음에 말문이 막혔다. 웬만한 남자보다 담도 크고 기도 쎈 녀석이다. 누굴 팼으면 팼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애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거였어. 거짓말처럼 눈부시게 투명한 날씨가 준비된 이유는. 그 묘한 느낌의 정체는.

 

 

  사방을 찢어발기는 이 굉음, 어지럼을 불러오는 이 매캐한 냄새, 창자가 꼬일 것 같은 울렁거림.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개조된 바이크들이 헐떡이는 숨을 억누르며 순식간에 정비소를 에워쌌다.

 

 

  불길한 예감은 왜 항상 더럽게 잘 맞아 떨어지는 거야?

 

 

  “어이, 원씨! 업종 변경을 했으면 형님한테 신고를 하셔야지?”

 

  갈구 놈이 특유의 괴상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선다. 왼쪽 눈두덩에서 뺨까지 길게 이어진 흉터가 일그러진다. 험상궂은 면상이라면 놈에게 뒤지지 않을 법한 다섯 명의 덩치들과 함께였다.

 

  식어버린 땀으로 이마가 서늘하다. 더 이상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데.

 

  “일단 집으로 가있어.”

 

  차희가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어서!”

 

  “인아…… 안 돼. 알지?”

 

  알지, 알고 말고, 알아야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폭주 접고 시작한 게 겨우 구르마 수리냐?”

 

  “너도 참 꾸준하다. 그만 좀 따라다녀라, 귀찮다.”

 

  “아직 우리 사이에 계산이 덜 끝났는데 그리 말하면 쓰나? 밀린 이자 정리부터 해볼까?”

 

  갈구가 고갯짓을 하자 덩치들이 정비소를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이런 짓거리가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된다는 듯 흥에 들뜬 얼굴들을 하고. 나는 잠자코 녀석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녀석들의 무리 속에 겹쳐지는 나를 본다.

 

  내 앞을 가로 막는 것, 눈에 거슬리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됐든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렸던 그 때, 남들을 제대로 괴롭히고 더 심한 고통을 주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던 그 때. 이런 놈들을 부추기고 이끈 게 나였다.

 

  갈구 놈은 그 중에서도 나를 제일 잘 따랐고, 결국 우리는 그 지옥같던 소년원에 나란히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 곳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차희의 굳건한 기다림과 할매의 눈물에 젖은 애원을 들은 후에야 겨우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수 있었다. 아니 지금도 뉘우치는 중이다. 더 이상 그렇게는 안 되니까, 그래서는 안 되니까. 하지만 갈구 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깐 스톱. 에이, 재미없게 왜 이러실까? 지금쯤 몸이 근질근질 할 텐데. 자, 정산 들어갑시다.”

 

  갈구의 손짓에 똘마니들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고맙게도.

  온 몸의 피가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이 날을 위해 지금껏 참아왔다는 듯, 내 안의 뭔가가 포효하며 날뛰었다. 주먹으로 팔꿈치로 무릎으로 몸이 이끄는 대로 내지르고 나니 녀석들은 이미 하나같이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브라보! 여전하구만. 내숭떨긴.”

 

  갈구 놈이 히죽 웃으며 품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든다. 짤각 소리와 함께 은빛 날이 튀어나왔다.

 

  “아직도 그 버릇 못 버렸냐?”

 

  “어떻게 버려? 거울 볼 때마다 버릴 수 없게 만드는 새끼가 떠오르는데.”

 

 

  녀석이 칼끝으로 눈두덩을 톡톡 두드린다. 흉터가 말라가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칼날이 반사하는 빛에 눈이 찡그려졌다. 순간 뺨 쪽을 노린 칼끝이 매섭게 날아든다. 간신히 피하긴 했지만 아릿한 감각이 스친다.

 

  언제까지 이래야 돼?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돼?

 

  공기를 쉭쉭 가르며 복부 쪽을 파고드는 칼끝, 내 안의 그것이 나를 다그친다.

 

  죽는다 해도 누구하나 슬퍼해줄 사람 없는 놈이잖아.

 

  사정권 안으로 들어온 갈구의 팔을 붙잡아 가차 없이 꺾는다. 뭔가가 빠득 하는 소리와 갈구의 비명이 동시에 귀에 꽂힌다. 그대로 놈을 넘어트리고 올라타 주먹을 먹인다. 한 방, 두 방, 세 방…… 끈적한 피가 터져 나오고 부러진 이가 튀어나온다.

 

  역겨워, 불쌍해.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의지라고는 개똥만큼도 없는 나라는 놈이. 그러면서도 점점 차오르는 희열에 숨이 가빠온다. 넌 아마 웃고 있겠지. 이렇게 되리란 걸 이미 다 알고 있었을 테니. 결국 난 이 정도일 뿐이야. 이게 뭐 어때서? 넌 제대로 살고 싶은 것뿐이잖아.

 

  “흐흐, 거 봐. 넌 이런 놈이야. 즐겁지, 즐거워 죽겠지? 너도 알잖아. 우린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니까, 흐흐.”

 

  핏물 가득한 입으로 갈구 놈이 뇌까린다.

 

  끝내, 끝장내 버려! 이 자식만 사라지면 넌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 아냐! 이 자식을 없애버리면 난 다시 그 어둠 속으로 돌아 가야해.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누구라도 좋으니까, 한 번만, 단 한 번만 날 좀 도와줘, 날 좀 구해줘, 제발!

 

  “저기, 그만 해요 이제.”

 

  제지당한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누군가 내 팔을 잡은 것이다. 살기 가득할 내 눈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등지고 선 한 남자가.

 

  “뭐야 넌? 너도 맞고 싶어?”

 

  겁에 질린 듯하면서도 열에 들뜬 눈빛을 한 푸근한 인상의 남자가 입을 뗀다.

 

  “아, 아뇨오. 저, 전 그냥... 차 찾으러 온 건데요.”

 

 

 

 

  할매는 차희의 얼굴을 보자마자 앞뒤 재지 않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너 이놈의 새끼! 또, 또!”

 

  “할머니 오해예요, 오해! 나 그냥 넘어진 거라고요.”

 

  “넘어져? 어디 자갈밭서 푸닥거리라도 하다 넘어진겨? 그게 넘어진 상판이여?”

 

  차희가 꾸며낸 얘기로 할매를 달래고 안심을 시킨 뒤에야 겨우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할매의 정성과 솜씨가 가득 담긴 소박한 밥상 앞에 세 사람이 둘러앉는다. 따스한 불빛 아래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맞이하는 저녁 한 때의 평온. 그 속에서 한낮의 광란이 천천히 삭아갔다.

 

  우리 세 사람은 이 시간을 위해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이것만이라도 지켜내고 싶다,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점점 목이 메어온다. 차희와 할매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실없는 농담과 타박을 보며 나는 씹지도 않은 밥을 꾸역꾸역 삼킬 수밖에 없었다.

 

  “으아, 배터지겠다. 할머니, 나 지금부터 들어와 살까? 이 솜씨 빨리 좀 배우게 말이야.”

 

  “둘이 살기도 숨 맥히는 방구석이다.”

 

  “어차피 인이한테 시집가면 할머니 모시고 살 건데 뭐. 그러지 말고 이참에 빨리 식 올려요, 응?”

 

  “저것이 안즉 그 법적으루 미성년자 아니냐?”

 

  “치. 할머니 때는 막 열다섯, 열여섯에도 시집 장가가고 그랬잖아요?”

 

  “그거는 그때 야그고. 저 것이 철 좀 더 들고 지 앞가림하게 되면 지가 싫다 해도 니한티 떠넘길텡게 걱정 하덜말고. 얼굴에 찜질이나 잘혀, 숭 안지게.”

 

  잠들어 있던 가로등이 하나 둘 깨어난다. 차가운 밤공기가 달동네를 메우자 차희가 팔짱을 끼며 몸을 꼭 붙인다. 언덕 저 아래에선 도시의 밤이 현란한 빛으로 일렁인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너무도 멀게만 보이는 저 빛들.

 

  어차피 나하곤 상관도 없잖아. 하지만, 하지만 만약에 말이야……

 

  “인아, 갈구 때문에 아직도 걱정하는 거야?”

 

  차희가 뭐라고 계속 말을 거는 것 같은데, 주머니 속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딴 생각에 빠져있느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차희가 이렇게 물었을 때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님…… 그 아저씨가 한 얘기 때문에?”

 

  우뚝 멈춰서 차희를 바라본다.

 

  “너, 다 본 거야?”

 

  자신을 연예기획사의 매니저라고 소개한 박수왕이라는 남자는 황당한 말을 꺼냈었다. 그가 차 주인이며, 기껏 수리해놓은 차가 더 심하게 파손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였다. 엉망인 몰골로 등신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사이 갈구 패거리들은 줄행랑을 친 모양이었다.

 

  하지만 박수왕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묘한 눈빛으로 나에게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나를 대놓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뭔가를 탐색하는 그 눈빛이 적잖이 거북했다. 혹시 이 양반?

 

  “죄송합니다. 차는 제가 다시 완벽하게 고쳐드리겠습니다.”

 

  “와, 처음 봤어요, 이런 거. 현실에서 실제로 이런 장면을 볼 줄이야. 어디서 무술 같은 거 배웠어요?”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아무튼 정말 죄송합니다. 수리 기간 동안 렌트 비용은 따로 처리……”

 

  박수왕은 내 말을 잘라먹으며 불쑥 이렇게 말했다.

 

  “난 뭔가 느껴졌는데, 그 쪽은 어때요?”

 

  엑, 혹시나가 역시나인가?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완벽하게 최악이구나. 침착해, 적어도 더 이상 안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내 얼굴은 표정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을 게 뻔했다. 박수왕은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핫, 이런! 그런 게 아니라, 음, 미안합니다, 제가 좀 막 나갔죠? 하하, 이게 워낙 버릇이 돼놔서.”

 

  그리곤 명함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그 말이 앞에 했던 말보다 더 황당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쪽, 바로 제가 찾던 사람입니다. 혹시 연기해 볼 생각 없어요?”

 

  여, 연기? 그게 뭐하는 건데?

 

  “우와, 인아, 그럼 네가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 나오는 거야?”

 

  그렇다고는 하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내가 왜?

 

  “부담 갖지 말고 들어요. 십 년 아니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캐릭터 성을 그 쪽에게서 발견했어요.”

 

  나한테 그런 게 있다고? 나도 나를 모르겠는데,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놈인데?

 

  “그럼 막 돈도 왕창 벌고 이름도 날리고 그러는 거야?”

 

  “한 번 맡겨 봐요,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그런 가능성이 나한텐 보여요.”

 

  내가? 진짜로 내가?

 

  “근데 혹시 사기 같은 거 아냐? 왜 잡지 같은데 자주 나오잖아. 연예인 시켜준다고 꾀여서 막 돈 뜯어내고.”

 

  “우리한테 뜯어먹을 거나 있나 뭐.”

 

  “하긴. 그래서, 그래서 또 뭐라고 했어?”

 

  경황이 없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칭찬이었다는 건 안다. 집까지 따라오겠다는 걸 겨우 겨우 말렸다. 결국 “좋습니다. 안 해도 좋으니까 꼭 한 번 방문이라도 해주세요.” 라는 말을 듣고서 떼어낼 수 있었다. 박수왕은 끝으로 스치듯 이렇게 물었다.

 

  “아, 근데 혹시 아까 그 녀석들하고는 무슨 사이예요?”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 한구석에서 조심스레 일렁이는 어떤 느낌은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모, 모르는 놈들이에요. 그냥 이 동네 깡패들이라는 것 말고는…….”

 

 

 

  할매는 벌써 이부자리를 깔고 모로 누워 있었다. 몸 이곳저곳을 투박하게 두드리는 모습은 하루하루 지쳐가는 할매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했다. 나는 옆에 누워 굽어가는 할매의 등을 바라보았다.

 

  “할매, 자?”

 

  “할 말 있거든 후딱 혀라, 피곤타.”

 

  “할매는 지금 어때?”

 

  “뭐시 어떠냔겨?”

 

  “지금 우리 사는 거 말이야.”

 

  “좋아서 사는 인간 못 봤다. 사니까 사는 거지.”

 

  “할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나한테 돈도 엄청 벌고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어떨 것 같아?”

 

  “뭔 일인진 몰라도 말여... 괜한 헛꿈 꾸지마러. 그런 게 깨고 나면 더 아픈 법이니께. 나 잔다.”

 

  그럴 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래도 꿈은 꿔볼 수 있는 거잖아?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려면 어쨌든 깨어나야 하니까, 그러니까 딱 한 번만 그냥. 구경만이라도.

 

 

 

  나는 어느 새 명함에 적힌 건물 앞에 서있었다.

  미다스 엔터테인먼트. 묵직한 금빛 간판이 정말이지 꿈에서나 보는 것처럼 빛나고 있다. 그 주위로 휘황찬란한 불빛이 번지고, 걷잡을 수 없는 열기가 퍼지고,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가 함성이 이어지고, 심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눈앞에 두서없이 떠오르는 장면들, 그 강렬한 느낌. 이런 느낌을 어딘가에서 받은 적 있는 것 같아.

 

  ……등신, 뭔 잡생각이야?

 

  정말 꿈에서 덜 깬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숨도 못자 눈은 퀭했고 단벌 점퍼를 차려입는다고 입었지만 몸에 배인 기름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안내데스크에 앉아있던 여자도 그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나를 한 번 죽 훑어보더니 짜증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사람 좀 찾으려는데요.”

 

  “뭐 하는 사람인데요?”

 

  “무슨 매니저라고 하던데?”

 

  “아니, 아니. 그 쪽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뾰족한 말투에 뭐라 답해야할지 몰라 멍하니 있자, 여자가 투덜대며 전화기를 든다.

 

  “참내, 하여간 꼴에 개나 소나 연예인 하겠다고. 경비 아저씨는 뭐하는 거야?”

 

  다행히 여자가 부른 경비보다 박수왕이 한 대머리 남자와 함께 먼저 나타났다. 박수왕은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화색을 띄었다.

 

  “와줬네요! 역시 내 촉은 틀리지 않았어! 사장님, 이쪽이 일전에 제가 말씀 드린 원태인 군입니다.”

 

  대머리 남자는 미다스의 사장인 황금팔이라는 사람이었다. 황금팔은 나를 보곤 잠시 ‘이건 뭔?’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박수왕을 흘겨본 뒤, 다시 나를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냈다. 재빠른 암산 같은 표정의 변화였다.

 

  “오오, 반가워요. 앞일이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해봐요. 아유, 인상이 아주 좋으시네. 자세한 얘기는 박 과장한테 들으시고.”

 

  황금팔은 안내데스크 여자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를 떴다. 여자는 박수왕과 내 쪽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시선을 피했다.

 

  “시작부터 뭔가 술술 풀리는 느낌인데? 짧게나마 사장님께 눈도장도 찍고! 아,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영혼의 파트너가 될 사인데 서먹하면 안 되잖아. 너도 편하게 해, 태인아.”

 

  “음... 전 아직 결정한 거 아닌데요.”

 

  “흠, 그래? 그럼 지금 3초 내로 결정해. 자, 센다. 핫, 둘, 셋, 땡! 하는 거다?”

 

  이런 양반을 믿고 내가 지금 뭘 하려는 거야?

 

  “원태인! 이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우리 정말 잘해보자!”

 

 

 

 

  “나 오늘 촬영 못해! 아니 안 해!”

 

  우리의 주인공 아이돌 배우님께서는 아직도 깽판을 치고 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수왕 형이 내게 슬쩍 눈짓한다. 나는 녀석과 피디 앞으로 다가갔다.

 

  “아깐 죄송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죄송? 하, 이 새끼 말 쉽게 하네. 피디님, 이 새끼 빼고 가요. 나 이 기분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삶을 버리는 겸손, 영혼까지 파는 겸손!

 

  “아,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럴 수만 있으면. 근데 지금 당장 어디서 섭외를 해?”

 

  “안 되시겠다? 좋아, 그럼 대신 저 새끼 내 앞에 세워요. 리액션 샷에 써먹을 수 있게.”

 

  피디는 잠시 고민한 뒤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녀석이 무슨 꿍꿍이 속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본이라는 걸 받고 나서야 대충 상황파악이 되었다. 나는 똘마니 군단에서 벗어나 녀석과 마주서게 됐다. 거기다 대사까지 주어졌다.

 

  “자, 그럼 다시 한 번 가보자! 레디, 액션!”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 녀석의 얼굴에 졸렬한 미소가 떠오른다. 익숙한 미소다. 갈구 놈의 얼굴이 녀석에게 포개진다. 하지만 상황이 다르다. 이번에 악당은 나였고, 내가 당할 순서였다. 그렇게 정해져 있다. 녀석은 작정하고 내 얼굴을 후려갈겼다. 최대한 절도 있게, 사실적으로 주먹을 날린다. 그렇게 적혀 있다.

 

  “오케이, 컷! 좋았어!”

 

  “아, 잠깐만요. 다시 한 번 가죠.”

 

  “응? 왜 아주 잘 살았는데?”

 

  “제 느낌은 아니라고 하네요.”

 

  한 대, 두 대, 세 대 그러고도 대여섯 번이나 더 맞은 것 같다. 뺨이 뜨끈하게 부어올랐고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원래 이렇게 진짜로 때리는 건가? 오랜만에 맞아봐서 적응이 안 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러운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걸 꾹 참아야했다. 그리고 이제 내게 주어진, 꾹꾹 누른 내 진심이 담긴 단 한 마디의 대사를 해야 할 차례.

 

  나는 무표정을 얼굴에 올린다. 거기에 싸늘한 미소를 더한다. 순식간에 무자비했던 예전의 나로 돌아간다. 새하얀 불길이 일렁거린다. 내 안의 뭔가가 그르렁거린다.

 

  “죽고 싶어?”

 

  녀석이 침을 꿀꺽 삼키며 살며시 떠는 게 보인다. 벌써 겁을 집어 먹은 것이다. 겁쟁이들은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꾸며낸 허세는 살아있는 위압감에 빨려 들어간다.

 

  자, 이제 물어 뜯어버려! ……아니, 이건 연기일 뿐이야.

 

  하지만 녀석은 뒤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찬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잠시 이어졌다.

 

  “오케이, 커트!”

 

  그렇게 내 첫 연기가 시작되었고 곧 끝나버렸다. 머릿속에서 잔잔한 소용돌이가 이는 것 같았다. 스태프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저 새끼 눈빛 제대로 살벌한데? 진짜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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