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수리는 추궁하며 따질 자격은 없었다. 순희는 사진을 팔아 회사와 가계를 책임졌고, 수리는 송사자장에게 명작이라 생각하는 사진을 팔아 소재거리를 찾는 핑계로 송사장 팔이 빠질 정도로 나이트클럽으로 끌고가, 마음에 끌리는 여성을 꼭꼭 집어 시적 감각으로 본 그때의 영감이 무엇인지 물으며, 말하자면 도용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따진다면 수리는 후안무치의 인간이라는 말이었다. 수리는 송 영감이 눈을 지긋이 감고 읊조리면 바로 메모장을 꺼내 적어버렸다. 녹음하면 도용이고 녹음 없이 기록만 남겼기 때문에 도용은 아니었다. 교활한 수법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 오리발? 송 영감은 수리 정수리 꼭대기에 있었다는 증거였다.
송 영감의 오리발에 대해 눈치 무한대인 순희도 입도 뻥긋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경영에 애로는 많았지만 본인도 본인이 하고 싶어했었던, 석유화학제품 연구에 필요한, 돈이라는 밑거름의 중심에는 늘 송 영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희의 빠른 판단이 가장 큰 한몫이었지만 송영석의 공정한 처세술이 없었다면 지금의 수리도 순희도 부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그 주변의 사람들의 삶도 평가도 달라진다는 걸 송영석은 실천으로 보여 주었다. 만약에 그때 수리가, 그때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권력과 허세로 가득한 강인호나 박한철의 손을 잡았다면 평생을 가십거리로 살았을 것이다. 비록 조직폭력배의 힘을 빌려 그보다 힘이 더 센 법을 피해갔지만 수리는 반성 같은 건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 조직폭력배들은 한글부터 시작해 영어를, 선박구조를, 해상보험법을, 공부해, 삶의 방향을 바꿨지만 그들이 바뀔 동안 지금도 터줏대감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고 있어서 수리는 절대 반성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경호가 주축이 돼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때의 동생들은 모두 TS건설로 돌아가 있다. 터줏대감들과의 싸움에서 자칫 살인자가 될 것 같다며 그들은 그들의 일터로 회귀했다. 지금 TS 검정에는 매년 반복되는 자격증 실사 때문에 독서실이며 도서관이 돼 있다. 어린 동생들은 그렇게 공부해 또 다른 직업도 찾고 남을 사람은 남아 있었다.
터줏대감들은 이 점을 노렸을지 모른다. 이런 식의 실업자 구제. 정부의 든든한 파수꾼.
순희는 연구로 인해 족적에 남길만한 성과는 없었다. 단지 화물 성분의 문제 여부는 족집게처럼 잡아내, 순희가 실험실과 회사를 운영하면서부터는 단 한번의 실수도 없었다는 것만으로 큰 족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데 만족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하는 직원들이, 임금을 더 주는 회사나, 일부는 대기업 실험실에 들어가 실험을 하고 있는 점이었다. 이 또한 순희에게는 자산이었다. 그들은 TS검정의 장비로 분석할 수 없는 아이템을 분석해주며 정보도 제공해주었다. 물론 그들의 회사에 들키면 흔한 말로 바로 모가지 잘리지만 그들이 순희에게 가져간 정보가 가져온 정보의 몇 십 배는 달했고, 그보다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의 회사는 키워놓은 인재들을 돈으로 데려간 것이었다. 물론 법적으로 다툼이 있으면 백전백패다. 순희는 그 회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 중에 한 사람이지만, 법이 우선이라 어쩔 수 없이 벌금을 내던지 아니면 오래 전 강인호와 박한철처럼 감방에 가야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보답으로 일감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회사의 규모를 원했다. 대부분이 외국계 회사에 용역을 맡겼다. 이 또한 자유경쟁사회에서 순희는 섭섭한 마음만 가질 뿐,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진국이던 후진국에 가서 회사를 차려 놓고, 그 이름을 들고 이 나라로 다시 가져와 광고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지 그 나라 이름을 빌려 이 나라에서 돈을 벌어 그 나라로 보내주고 다시 받는 것밖에 되지 않는 짓,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짓, 그런 짓을 하는 회사를 욕하는 안순희이기에 단지 탄식만 할 뿐이었다.
이 업종도 국가산업과 발을 맞춰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그럴수록 터줏대감들은 더 난리를 치고 있다. 난립을 막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감사를 유도하면서도, 청년실업자 구제라는 미명을 내세워, 자격증이 없는 청년들을 채용해 적은 급여를 주고,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이 직종을 스쳐 지나다 쉴 수 있는 가로수 그늘 아래에 평상이나, 시골 기차 간이역으로, 제 얼굴에 똥물을 붓는 짓이나 하고 있다. 그들은 해양수산부에 제보도 한다. 그러면 감사를 한다. 자격증이 있느냐? 없느냐? 불시에 습격에 감사를 하고 자격 조건이 부합하지 않으면 벌금을 때리고, 그렇게 거둬가는 일석이조의 효과. 아무데서나 잘 자라게 내버려뒀다가 꽃이야 피던 말든. 국가만 배부르면 된다. 아니다. 선출 직 개새끼들이 아무데나 쫓아다니며 편안하게 똥만 싸게 해주면 되는 나라.
이게 허울좋은 ‘대~~~한 민국! 짜자~~자 짝짝’
“퍽!”
똥 쌀 정도로 센 주먹이 정수리로 날아들었다.
“뭐해 임마! 또 위궤양이 오냐? 이 좋은데 와서 또 염장이 욕을 하고 있지?”
칭찬도 계속 들으면 지겨운데 했던 말 또 하고 또 듣는 송사장의 심정을 익히 헤아린 수리가 오늘은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고 있었다. 입을 열어봤자 마무리는 언제나 어처구니 없는 법. 그 법으로 밤을 샐게 불을 보듯이 뻔한 일. 입이 늘어지게 하품하며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전부 이심전심이었다. 적당할 때 일어서주는 센스. 송사장은 그래서 이들이 빨리 가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지금이라도 만약에 손님이 와서 다른 방에 들어가면, 또 한번의 감탄의 소리가 들리고, 흥정을 하러 오게 된다. 거의 대부분이 순희가 못 보던 사진이기 때문에 송사장도 수리도 난처해진다. 침묵만 해답이 아니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센스를 발휘에 일어선 부부의 눈에 밝은 도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석유화학단지 굴뚝에서 뿜어내는 불꽃만큼이나 도시의 불꽃도 많았다. 그때까지 순희는 카메라를 끄집어내 지나치는 밤 풍경에 찍느라 필름만 소비했지, 침묵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수리가 실험실을 기웃거리다가 순희만큼은 아니지만 순희의 부담을 덜어 줄만큼은 분석을 하다 보니 순희도 수리의 부담인 빚을 덜어 줄 의도인 것 같았다.
“당신도 사진 배우고 싶어?”
한숨을 몇 번 내쉬었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다음 주면 새해인데 직원들 년 말 상여금은 줘야 할 것 같아서..”
김샜다. 수리가 너무 앞선 상상으로 순희를 위대하게 봤다는 증거다. 모처럼 기분 좋게 여행가다가 내일 이자내야 할 날이라고 하는 말과 똑 같은 말로 수리는 취급해 버렸다. 침묵뿐만이 아니라 정적도 흐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나? 영악한 년!
“자기! 나도 사진 좀 찍어줘. 집에 내 나온 사진 몇 장밖에 없는 거 알지?”
“당신이 싫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아가씨 때..”
‘아! 이말!’
스톱 소리에 바로 브레이크를 밟아 버렸던 놈! 고개를 돌려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뭘 봐?”
헛웃음 한번 치며 말했다.
“그 놈에 네 놈이란 사실을 내가 왜 잊고 살았는지. 혹시 기억나냐? 그 18년이 난 거?”
“내가 미쳤나? 당신 같은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다고 그런 망발을 해. 들을 년이 따로 있지. 어디 그런 말을 이렇게 곱고 우아하신 분에게 할 수 있게 사옵니까?”
순희도 이제 이런 식의 한물간 양념에 무관심해져 있었다.
“정말 나 기억 안 나? 통 선 장 앞에서. 2002년 7월 18일 얼굴 반반한 년. 발가벗겨 업어치기 하고 싶었던 년. 그 18년이 난 걸 기억 못해? 당신만 일기 쓰는 줄 아는 모양이지.”
달님도 사라지게 할 만큼 환한 도시와 석유화학단지 불빛으로 뒤덮인 차 안에 샛별 하나가 반짝 나타났다.
“야! 씨!”
동갑내기 친구인지 부부인지 모를 만큼, 지난 세월들의 이들 부부의 티격태격 싸움 방식이 고스란히 나왔다. 아이들이 부모 없는 자식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일단 차를 갓길에 세워야 했다. 호신술로 가르친 업어치기 메치기도 나올 기세였다. 갓길을 찾아 헤맬 때 게임은 이미 끝이 났다.
“아이! 씨! 아파 죽겠네. 이거 뭐야. 이마에 혹 났잖아.”
이 말 뒤로도 수리는 쌍 코피 빼놓고 날 피는 전부 다 났다. 그 피가 밖으로 쏟아지지 않을 뿐이지 가슴에는 고스란히 간직되었다. 이글거리고 있었다. 사나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뭘 봐! 직진!”
집으로 온 순희가 샤워부터 하고 있었다. 잠시 뒤에 나체 하나가 수리 배를 툭 치며 빠르게 지나갔다. 찌푸린 미간 속 음흉한 눈초리, 욕실로 까딱. ‘뭐해! 빨리 안 씻고. 나! 준비 완료’ 였다. 펑펑해진 궁둥이가 아닌 탱탱하고 하얀 궁둥이가 거울 앞으로 실룩거리고 있었다. 벌써 화장에 돌입한 순희를 힐끔 보고는, 찬물을 끼얹으며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동갑내기라 내가 너무 편하게 대해줬어. 그래도 남편한테. 감히!”
“빨리 안 나오고 뭐해?”
앙칼진 목소리가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보다 더 크다. 창문을 뚫고, 이미 순희가 하고자 하는 행위를 벌이고 있는 콘크리트 야적장까지 파고 들어 갔다가 나와, 저 높은 하늘에서 사라진 불타는 태양을 쫓아 내달리고 있었다.
“자! 발가벗길 불편은 덜어줬다. 18은 빼고 그 반반한 년, 여기 있으니 업어 치던 매 치던 네 마음대로 해라. 받아줄 용의 완료!”
자기 입으로 그 당시! 수리가 배에서 내려 사진을 보다가 차에 치일뻔한, 차로 박을 뻔 했던, 그18년은 맞다. 그런데 그 동안 왜 몰랐을까? 힐끔 쳐다보며 갸웃한다. 그땐 반반했는데… 아차! 몸통은 차 속에 숨겨져 있었지.
“어 싸! 엄청 무겁네. 그때도 이렇게 무거웠냐?”
“내가 어떻게 알아. 그때 쫓아와 번쩍 들어보지 그랬어?”
“붙잡아 몸무게 재 보고 싶은 마음, 그 따위 하나도 없었다. 붙잡아, 그냥 업어치기 해서, 여기를 쾅 박아버리고 싶은 마음 밖에..”
“아야! 갑자기 막무가내로 쑤셔 넣으면 어떡해. 아이 아파! 야 임마! 이건 달콤한 로맨스가 아닌 강간이잖아. 로맨스 쓴다는 놈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추잡한 애로 물이야. 빼봐! 아프단 말이야. 어이 씨!”
수리 가슴을 밀어내지만 덩치만 하나지 서너 명을 묶어 놓은 거나 마찬가지인 수리를 밀어내기는 중과부적. 벌렁 누운 채 하늘이 없으니 하늘은 보지 않고 수리 눈만 볼 수 밖에. 아랫도리에 쑤셔진 굵은 대못이 그대로 있지 않고 적당한 자리를 탐색하듯 꿈틀거리고 있다. 성가신 모양이었다. 자리를 빨리 잡을 수 있게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하면 금상첨화인데, 부부간에 드라이브 중 기분이 좋을 때 하는 말, ‘여보! 공과금에 이자에 애들 기숙사 비에 등등’ 이 말보다 더 수리를 열 받게 하는 말. 자존심을 상하게 해버렸다.
“그 참! 말 많네. 어이 씨! 김샜다. 그만하자. 글 쓰는 데 당신은 아무 도움이 안돼. 뭐 달콤한 맛이 조금이라도 있어야지. 아이 씨! 와 앙탈! 이게 뭐냐? 정나미 떨어지게…”
기세 등등했던 순희가 왠지 조용했다. 이 말에 나이를 생각했나? 서글펐나? 울고 있나? 그러나 눈에는 나지 않고 아래에서 촉촉하게 나고 있었다. 순희는 더 이상 아프다는 말은 없고 눈만 마주치고 있었다.
“기절했냐? 뺄까?”
“가만히 있어. 이대로가 좋아. 따뜻해. 그런데 기분은 왜 이렇게 더럽지. 나! 지금! 스파링 파트너냐? 글 속에 들어가기 위한? 반대로 생각해봐. 내가 당신이 아닌 당신 같은 남자의 스파링 파트너. 당신의 아내가 그런 여자라면 당신의 기분이 어떤지. 아무데서나 이런 짓을 하는 여자. 그 여자가 나라면”
수리의 성기능은 여기까지였다. 굵은 굼벵이가 아닌 가는 지렁이. 그것도 뜨거운 철로에 너덜너덜하게 사체가 된 뱀이나 지렁이.
“그렀다고 또 토라졌네. 빨리 세워. 작가가 되려면 이 정도 마인드 컨트롤 정도는 해야지. 자기 할 말만 하는 게 아니고 독자를 생각해야지. 지금 독자에게 이럴 거야? 게발 선인장을 제목을 정한 건 귀가 닮도록 들어서 알고 꽃말이 뭐라고 했지?”
“불타는 사랑!”
“그럼! 나한테 이젠 불씨가 꺼졌단 말이지. 뭐야? 나를 할망구 취급해? 할망구도 여자다. 부부 사이에 섹스는 사랑에 불가피성이란 거 알지. 필수다. 최선을 다해. 그렇지 않으면 너 같은 놈을 밖에서 만난다.”
“병 주고 약주는 이 놈의 주둥이. 어떻게 하나도 안 변했어.”
“어어~~~ 살살해…”
이 말 후 순희는 리듬을 타고 숨 고르기. 때론 거칠게 수리가 입을 막아야 할 정도로, 때론 쌕쌕 거리기만, 수리 검지 손가락이 순희 코 앞에서 생사 여부를 확인할 정도로, 그러다가 드르렁거린다.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엄마! 문 열어. 문 걸고 뭐해? 어이 씨! 주책 바가지!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저렇게 좋아?”
“쉿! 누나! 조용!”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