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난 모든 일은, 결국은 일어날 일이었다.
그렇게 나의 슬픔과 타협하고, 분노를 합리화했다.
판단은 옳았고, 결과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스승, 나의 친구, 그리고 그들의 부모와 형제의 외침에도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그것은 신의 뜻이었고, 신의 뜻은 공허했던 내게 길이 되었고, 길에는 반드시 끝이 있으리라.
그렇게 이길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모든 죽음 앞에 초연하리라.
그때는 그 길이 영원할 줄만 알았다.
밤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찾아오고, 모든 죽음의 뒤에는 반드시 새로운 탄생이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생명의 순환은 끝났고, 내 남은 길의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하나,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모든 일의 끝을 마주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이상 걸어야 할 길도, 받아들일 신의 뜻도 없어진 나는 태초의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더는 공허하지 않았다.
텅 비어있던 내 속은 어느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탄생과 죽음, 성공과 좌절, 흥망과 성쇠, 기쁨과 분노, 슬픔과 환희로 가득했다.
삶이었다.
그간 지켜봤던 수천, 수만, 수억의 삶이 내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지 않았고, 슬픔을 어루만져 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공허했던 내 속을 채워주고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명에 귀를 닫고, 자비를 갈구하는 마지막 손길을 보며 눈을 감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었다.
이 땅을 거쳐 간 모든 이들의 삶. 생명의 순환이 끝난 지금, 새로운 생명이 나에게 전해줄 이야기가 없다면, 나는 이제 지난 이들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들을 기억하려 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이리라.
수천 년 동안 차근차근 쌓아 올린 시간이 무너지는 데는 10년이면 충분했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하늘은 검은 재로 뒤덮였고, 푸른 바다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나는 그 마지막 10년을 황혼의 시대라 부르기로 했다.
그렇다고 모든 비극이 황혼의 시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파멸의 씨앗은 천 년 전, 그날부터 싹 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