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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흘러내림(제4권) - 열매
작가 : 말레이
작품등록일 : 2020.8.20

이 소설 "흘러내림"은 언어의 시작 점인 창세 때부터 2040 여 년 대의 미래까지를 언어와 문자를 소재로 이어가는 소설로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언어 등의 모든 것이 오늘 우리모두에게까지 흘러 내려왔으며 이 흘러내려옴은 막힐 수 있는 강과 내처럼 수평적 흐럼이 아니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수직적인 흘러내림이고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것 중의 귀한 우리의 문자(한글)와 언어(한국어)를 세계에 널리 알리며 그 배에 복된 소식도 나누어야 한다는 주제로서 제1권 - 뿌리, 제2권 - 나무, 제3권 - 가지, 제4권 - 광합성 중의 제4권이다.

 
꿈을 향한 여정
작성일 : 20-08-30 19:06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5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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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향한 여정!

 

  나는‘충남’의‘삽교’라는 작은 시골 한 농군의 가정에서 3남 4녀 중 여섯째요 아들로서는 막내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연과 벗하고 지내면서 자라오다가 초등학교에 들어 갈만한 나이가 가까워 오면서 나와 나이가 같으면서도 가족 구성이 비슷해서 죽마고우로 함께 자라던 윗집의 친구를 따라서 집 바로 앞에 있는 교회에 처음으로 나가게 된 것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바로 전 이었다.

  교회의 공식 명칭은“삽교교회”라는 정식 명칭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교회의 뒤편의 작은 산에 항상 꽃이 많이 피어나는 곳 이어서‘꽃산교회‘라는 애칭으로 부르고는 하였다. 어렸을 때는 늘 자연과 벗하고 지내던 나에게 있어서 교회는 참으로 여러 가지로 인상이 깊은 곳 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교사로 수고하시는 임세빈 선생님께서 성대모사를 통한 인형극을 하는 날이면 모든 아이들이 넋이 빠지듯 빠져 들었고 선생님이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시는 시간이면 그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곤 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의 교사이기도 하셨던 그 선생님은 당시 그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대가’라고 할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라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느낌을 통하여 여실히 알 수 있었지만 그러한 사실을 정학하게 인지하게 된 것은 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를 알고 나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방송국의 인형극보다도 앞서는 분 이셨다.

  그 후 그 선생님은 시골 교회가 소속되어 있는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셨고 결국 그 신학대학의 기독교 교육학 교수님이 되어 많은 후배들을 양성하여 결과적으로 이 땅 가운데 많은 영향력을 미치신 분이었다. 아무튼 어린 마음에도 그 분의 재능에 홀딱 반하여 생각하기를 “나도 커서 저 선생님처럼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주일학교 시절과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의 마지막인 3학년의 겨울 방학이 되었을 때 나는 당시 서점에 발간되어 나와 있는 모든 레크리에이션 책을 사다가 그 선생님처럼 되기 위하여 독학? 을 거듭하면서 연구하고 또 연습하는 일에 몰두를 하였다. 그 노력이 통하였는지 학생부에서 중 3이 되면서 친교부장이 되어 학생부 내의 모든 레크리에이션을 진행을 담당하여 준비한 순서들을 통하여 레크레이션을 리드하고는 하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의 이런 저런 일들을 맡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싱겁고도 썰렁한 우스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웃기겠다고 가끔은 자리를 분간하지 못하여 실수! 를 하기도 하였지만 교회의 어른들은 내가 나타나기만 하여도 웃긴다며 그냥 웃으시고는 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학교에서 학생들 모두가 대학 입시라는 절대 절명의 진로를 두고 열심히들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력도 실력 이지만 집안 형편상 대학에 갈만한 상황이 못 되었다. 아니 스스로 그렇게 뇌리에 못을 박고 있었다. 그러니 더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선생님들께서는 다른 것을 해도 좋으니 떠들지 말고 각자 필요한 것을 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나마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말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성경을 펼쳐 놓고 줄을 쳐가며 열심히 읽었다. 그때 성경을 읽으면서 부흥회 때 마다 부흥강사님들이 말씀 하시던‘서원’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그래! 하나님의 일을 하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니 할 수도 없을 것 같던 내게 실낱같던 희망? 이 하나 솟아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겨울 방학이 되었다. 교회에 다니는 남녀 동기들이 모두 교회에 모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과 더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대학에 갈 수 없다는 패배감에 젖어있는 같은 입장에서 서로의 심경을 토로하며 위안 삼아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진로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는 사람도 없어 방황하면서 때로는 이 방향으로 그리고 때로는 저 방향으로 치우치며 갈등하고 고민하던 중에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멋지게 대학에 가 보고 싶은 마음에 그때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반드시 음대에 가서 음악을 공부할거야!” 그때 친구들은 그냥 하는 허풍처럼 들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절박한 심정에서 하는 이야기 였다.

  그러다가 1981년 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나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는 아니,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진로에 대하여 까마득한 절망의 상태였었다. 더구나 당시의 생각으로 특별한 세 가지 즉 내가 가지고 있는 실력?, 그것이 아니면 도움을 받을 만한 주변의 배경적인 환경? 그것도 아니면 혼자서 무엇이라도 시도해 나갈 수 있는 재력? 그중 어느 것 하나도 내게는 전무한 상황이었고 아직 사회의 환경 속에서 살아오면서 그 영향을 받았던 그때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던 때였다. 그러므로 그런 생각에 빠져 있던 나의 사고는 나로 하여금 실제로 아무것도 할 것도 없고 할 수도 없게 만들어 나 자신 스스로를 속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 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너무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다행히 나는 어떠한 여건과 상황 속에서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오직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만이라도 내 자신에게 큰 위안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회를 경험하자는 차원에서 이런 저런 일들에 도전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첫 번째가 책 세일즈맨 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막노동 현장에서의 잡부로부터 석고조각실의 보조원!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런 저런 일들을 만나는 대로 감당 하면서 일과 사회를 배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어떤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서울에 있던 누님의 자취생활에 얹혀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생활을 하던 누님도 언제부터인가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누님이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에 따라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모두가 알 만한 큰 교회였다. 그곳에 가보니 그 교회에는 잘난 사람들이 너무 즐비하였고 나 같이 촌스럽고 어린 사람이 할 만한 일 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그 큰 교회 보다는 집 근처의 개척교회에서는 고등학교 때 시골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또 성가대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봉사와 헌신을 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며 집 근처에 있는 교회를 찾다가 당시 화양동에서 막 개척을 시작한 한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 교인이 많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함께 반갑게 맞아 주었고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신 그 목사님은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늦게 신학을 하신 후에 이제 막 개척을 시작하셨던 것이었다. 나는 그 교회에 나가 주일학교 교사로, 성가대 지휘 등의 일을 감당하면서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정체성 문제로 인하여 갈등하고 고민을 하던 시기였고 미래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과 그로부터 오는 사방이 막혀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울 시내를 발로 걸어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시골 선배를 통하여 영등포에 있는 회사에 들어가서 책을 파는 책 세일즈맨이 되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교통비 명목으로 1,000원을 주었다. 회사에서 책을 팔러 갈 동네까지 버스를 타고 갈 교통비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책을 팔면 그달의 수당을 모아서 주는 봉급에서 한 달 간 교통비를 주었던 것을 제하고 나머지를 봉급으로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한 달에 한 건도 책을 팔지 못한 사람은 그 비용이 고스란히 빚으로 쌓이게 되었고 그러다 견지지 못하여 회사를 나오지 않는 사람은 그냥 그 빚을 떼어먹는 사람이 되고 마는 그런 구조였다.

  당시에 버스를 한 번 타는데 약 250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러니까 한 번을 갈아타고 두 번 버스를 타면 회사까지 왕복을 하면 없어지는 돈 이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한 번 타고 가는 곳으로 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두 서너 명의 회사원들이 함께 대부분 영등포에서 아주 멀지 않은 곳들로 가서 책을 팔기 위하여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점심때가 되면 점심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허기진 배를 안고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며 방황 할 그 즈음에 내가 아이디어를 하나 내었다. 그것은 빵집에 가서 남은 돈을 모아서 자르지 않은 식빵을 사먹자는 것이었다. 우선 1인 분에 얼마 이렇지 않으니 모아진 돈 만큼 식빵을 사고 주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여 함께 식빵을 뜯어 먹으면 허기진 배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사 동료 몇은 그렇게 어울려 다니며 열심히 이집 저집 문을 두드렸지만 책은 한권도 팔수가 없었다. 그리고 회사에는 그렇게 하루하루 빚이 싸여 갔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신발도 그렇게 달고 헤어져 갔다. 부장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루에 300집 이상 열심히 문을 두드리며 다니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책을 사는 집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초자 책 세일즈맨이 사람들을 설득하여 책을 팔 만한 기술? 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열심히 다니다 보면 책을 사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경험과 실력이 쌓이다 보면 정말 책을 잘 파는 전문 세일즈맨이 된다는 원리였다. 그러니 우리는 날마다 행군하듯이 이집 저집을 방황하였고 신림동의 어느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에서 빨래를 하시던 아주머니는 돌아보지도 않고 감흥 없이 ‘일곱 번째예요!’라고 하는데 그런 아주머니에게 무어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두어 달을 그렇게 열심히 다니다가 어느 날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계세요? 하면서 한 양옥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 소리에 주인아주머니께서 누구세요? 하며 부엌에서 나오는데 그 아주머니를 보고 책의 안내지를 보여드리면서 어떻게 설명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아주머니께서 백과사전을 하나 주문하신 것이었다. 정말 필요하여 사려고 하였던 집을 방문한 것인지 아니면 이 책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설득을 잘 하여 살 마음이 생기게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날 꿈과도 같은 백과사전 한질을 주문 받고 그 집을 나오면서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던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그 집을 나와서 바로 앞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그 집에서도 책 주문서를 받아 낸 것이다. 그 날은 당당하게 회사에 돌아가 주문서를 제출하고는 부서원들이 다 보는 가운데 부장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들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결심을 하였다. 이제 빚을 갚았으니 내일부터는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 결심을 다음날부터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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