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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스산한 죽음
작가 : 기옹
작품등록일 : 2020.8.16

미스테리한 가상의 마을 거시를 배경으로, 마을의 비밀과 마주한 남자의 고뇌와 방황을 그린 작품

 
스산한 죽음-1
작성일 : 20-08-16 19:03     조회 : 446     추천 : 0     분량 : 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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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05호 가족이 살해당했다. 나보다 먼저 선수를 친 건 504호 여자였다. 아쉬움도 잠시뿐, 수사가 종결되고 난 뒤 묘한 쾌감이 죄책감과 함께 뒤섞였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연립 오 층 복도의 벽과 바닥에는 얼룩진 핏자국이 참혹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워지지 않은 혈흔은 내게 죄책감이 우선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여전히 비릿한 피냄새가 남아 있는 듯 한기가 밀려왔다. 그것은 지난 여름 504호 여자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한기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무사를 기원하며 도망치듯 5층을 내려왔다.

 

  504호 여자를 마주친 건 작년 팔월 초의 늦은 저녁이었다. 동네를 오가며 연립 앞에서 두 번 정도 마주친 적이 고작이었던 여자는 마주칠 대마다 연립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깡말라 병약해 보인다는 정도가 그녀에게 받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여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던 중 마주친 여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음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볕을 보지 않은 것인지 얼굴은 햇빛 한줌에도 타버릴 듯 창백했고, 눈 밑에 내려앉은 짙은 다크서클과 깊게 패인 볼우물은 흡사 살아 있는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할 정도로 여자는 깡마른 체구였다. 반팔 차림의 사람들 틈에서 긴팔 티셔츠에 얇은 린넨 소재의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여자에게서 비릿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저 특이한 여자라 생각하고 장을 보고 마트를 나서는 나를 불러 세운 것은 504호 여자였다. 장을 본 물건이 얼마 담겨 있지 않은 에코백은 가벼워 보였지만 그것을 들고 서 있던 여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힘겨워 보였다. 여자의 부름이 절박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힘겹게 서 있던 여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자와 나는 마트 근처 벤치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여자는 에코백에서 차가운 캔커피를 건네며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입추가 지난 시점이기는 했지만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벤치에 앉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왜 그리 으스스 몸이 떨렸던 것인지. 웹툰 작가로 활동한다던 여자는 끝끝내 자신의 작품들에 관해 말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의 인상으로 공포물이나 스릴러물을 창작할 것이라 어렴풋이 추측해 본 것이 전부였다.

  “살기 힘들지 않으세요?”

  여자의 목소리는 앙상한 몸처럼 가늘고, 힘이 없었다. 안개 같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했다. 뜬금없이 훅 치고 들어온 기습적 질문에 얼음 조각을 깨문 듯 머릿속이 찡했다. 여자의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숨기고 있던 비밀을 들켜버린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당황한 여자는 다시 물었다.

  “죄송해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옆집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쪽 위층이요. 너무 시끄럽지 않아요?”

  질문의 의미에 짧은 탄성과 함께 웃음이 튀어나왔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순간 두려움은 안도로 바뀌었다. 그녀에게 갖고 있던 경계심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가 뭐가 됐든 이래나 저래나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고, 살기 힘들다는 그 말에 포함된 삶의 영역은 혈관처럼 미세하게 얽히고설켜 있어 대답은 낙관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저도 살기 힘들어요, 위층 때문에. 왜요, 힘드세요?”

  나의 질문에 여자는 깊은 탄식과 함께 에코백에서 팩소주를 꺼냈다. 마치 우유를 마시듯 빨대를 꽂아 소주를 빨아드렸다. 한두 번 먹어본 것이 아닌 듯 자연스러웠다.

  “죄송해요. 실은 제가 소주가 없으면 작업을 못해요. 하루 소주 두 팩이 제 안식이라고나 할까요. 아직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에 들어갈 정도는 아닌데, 병원에서 위험하다고는 하더라고요.”

  소주를 끊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여자는 이대로 가다가는 조만간 알코올 중독 판정을 받을 것이다. 물론 거기까지는 내가 관여할 영역은 아니었다. 나는 여자가 준 캔커피를 들이켰다. 층간소음의 고통을 나누다 보니 의도치 않게 여자의 오 년 전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다.

  여자는 오 년 전 유명 웹사이트 웹툰 응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웹툰 작가였다. 하지만 2년 동안 연재했던 두 편의 웹툰이 저조한 판매를 보이면서 웹사이트와의 계약을 끝으로 하락세를 면하지 못했다고 했다. 재기를 노려보려 했지만 모아놓은 돈도 바닥이 나고, 가뜩이나 예민해진 성격은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면서 더욱 나약해졌다고 했다. 동료의 소개로 이곳 지역 신문에 웹툰을 연재하게 되면서 다시 재기를 노리고 있던 여자는 작년에 떨어졌던 응몸전을 올해 다시 준비하던 중에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위층의 소음 때문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그나마 반년 가까이 연재 중인 웹툰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 재기를 노리고 있던 차였다. 여자는 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소주 한 팩을 다 마셨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술이나 한 잔 하자는 빈말을 주고받은 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연립에서건 동네 어디에서건 그녀와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서른셋 인생에 처음 겪어보는 소음이었다. 단독주택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 층간소음은 낯선 공포였다. 누군가에게 내 생활을 감시받는 듯,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저녁 일곱 시가 되면 알람처럼 묵직한 성인 남자의 발소리,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천정을 울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공을 튕기는 소리, 볼링공을 굴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괴롭혔다. 결국 이사 온 지 한 달 만에 나는 위층에 올라가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지만 부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리고 보복이라도 하듯 발걸음 소리는 한층 더 커졌고, 집 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쿵쾅거림과 공을 튕기는 횟수는 늘어났다. 삼십 년이 넘은 낡고 오래된 연립도 문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위층의 행동에 속수무책 당해야만 했다.

  위층에 올라갔다 온 뒤로 신경은 온통 층간소음에 곤두서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밤은 밤새도록 개미가 귓속을 기어 다니기도 했고, 어느 낮은 망치가 머릿속을 내리쳤다. 빈번해진 두통에 뒷목은 늘 뻐근했고, 머리는 무거웠다. 나중에는 소음이 표피를 뚫고 스며드는 고통까지 느끼게 되었다. 이사 온 지 두 달이 지나갈 때쯤에는 이 집을 소개시켜 준 제임스에 대한 원망을 넘어 급기야 위층 가족을 죽이고 싶은 살인충동이 일었다. 이제는 뉴스 기사에 단골이 된 층간소음 갈등이 남 일 같지 않았다.

  505호 가족은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다섯 살 난 딸을 둔 단란한 가족이었다. 남편이 출근할 때면 초등학교 1학년 아들도 함께 집을 나섰고, 다섯 살 딸과 부인이 연립 입구까지 배웅을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그들의 아침 행사에 나중에는 소름이 돋았다. 그들은 마치 사이비 종교집단의 맹목적 신도들 같았다. 생각해보면 505호 가족은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늘 밤늦게까지 집안 곳곳을 뛰어다녔다. 티브이를 볼 때도 박장대소였다. 가끔씩 들리는 부부싸움 소리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죽이네, 사네, 하는 404호의 부부싸움에 비한다면 단순한 투정에 불과했다. 어느 밤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부부관계의 교성과 신음소리에 자위를 하고 있는 초라한 나와 만나야 했다.

  ‘공동체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없어요.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은 거짓말이죠. 만약 누군가 행복하다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는 희생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 여름, 소주 한 팩을 다 마신 여자는 취한 것인지, 아닌지 모를 어슴푸레하고 막연한 음성과 말투로 내게 공동체의 존속 원리를 설명했다. 마치 어떤 공동체 안에서 희생만 하고 살아온 사람처럼 말투에는 억울함과 분함이 묻어 있었다. 여자의 말이 맞았다. 모두가 행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너무 일방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칼자루를 쥘 힘조차 없어 보였던 여자가 180센티미터의 건장한 남자를 난도질 한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일가족 네 명을 무참히 살해했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그날 아침, 나는 살해 현장의 비명을 들으며 세상의 불가사의들을 떠올렸다.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발휘되는 초능력. 여자는 분명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알코올도 한몫했을 테지. 그 아침,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나를 다그치고, 꾸짖었지만 소용없었다. 밀려드는 쾌감에 그간에 쌓인 층간소음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있었다. 원하던 결말은 아니었다. 분명 여자도 마찬가지였겠지. 하지만 문제는 두려움 뒤에 따라붙는 알 수 없는 쾌감과 희열이었다. 505호 부인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세 번이나 목격했다. 한 번은 카페에서, 다른 한 번은 중식당에서, 또 다른 한 번은 술집에서였다. 그때마다 모두 다른 여자였다. 부인은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것일까? 손바닥만 한 작은 동네에서 그의 불륜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모두가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것이라면, 부인의 연기는 눈물 나는 것이었다. 행복을 깨고 싶지 않은 간절함 때문일 테지.

  어쩌면 504호 여자가 미래에 닥칠 505호 가족의 불행을 미연에 차단한 것일 수 있었다. 뭔가 정의가 구현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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