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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사랑이었다
작가 : 깡대지
작품등록일 : 2016.8.31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는 여자와, '사랑이었다'는 남자.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사랑'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렇게 사랑이라는 퍼즐을 짜맞춰 보려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기묘하면서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

 
그 여자의 첫 번째 조각: 악몽이었다 (1)
작성일 : 16-09-01 02:21     조회 : 507     추천 : 0     분량 : 5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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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의 첫 번째 조각: 악몽이었다.

 

 “역시 창녀였구나, 너.”

 “혼자서 고고한 척, 도도한 척은 다하더니. 성녀인 척 하는 창녀였어.”

 “아니야…. 난 아니라고…. 아니야!”

 

  아득하게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던 그 목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나도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튕겨 나오듯이 일어났다. 그러고는 엑셀을 밟은 것처럼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직 방금 전까지 잠들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현실적인 감각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 낯익은 풍경이, 친숙한 얼굴들이 정말로 꿈이었다니. 어쩌면 난 그게 꿈이었다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내가 아직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가설을 세울 때쯤이었다.

 

 ‘따르르르르. 따르르르르.’

 

  곧바로 요란하게 울어대는 핸드폰 알람 소리가 그 상황이 꿈이었다는 걸 증명해주었다. 귀가 찢어지도록 시끄러운 알람이 흘러나오는 핸드폰을 난 한 손에 그러쥐고 가슴에 끌어안은 채 한동안 그 자세로 침대 위에 한동안 앉아있었다.

 

 어디 계신지 누구인지 모를 하느님, 감사합니다. 방금 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던 모든 일이 실제가 아니게 해주셔서. 그렇게 짧은 기도를 마치고 나는 잠옷을 한 겹씩 벗은 다음에 욕실로 향했다.

 

  물론 꿈속에서 나한테 쏟아졌던 말은 모두 실제로 내가 들었던 말이었지만, 적어도 그 끔찍한 일이 실제로 두 번 재현된 건 아니지 않은가. 난 그것만으로도 안도했다. 그리고 나는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짚어보며 땀으로 흥건해진 걸 확인했다. 그 현장감에 나는 다시 한 번 오싹해졌던 것이다. 다시 한 번 그 때로 소환된 줄 알고.

 

  현실의 시간이 얼마만큼 지났는지 그건 나에게 있어서 문제가 아니었다. 내 겉모습은, 주변 환경은 어떻게 변하던 간에 내 알맹이는 여전히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갇혀 있었다.

 

  그건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은 끔찍하게도 악몽으로 남아 지금도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이 호쾌한 샤워기 물줄기만큼 과거의 흔적 따위도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난 어리석게도 그 과거의 기름때를 지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그 지옥도를 꿈을 통해서 생생하게 체험해서일까, 집 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다. 아니, 아침 등굣길부터 내 생각대로 잘 풀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젯밤에 분명히 마트에서 오늘 아침에 챙겨 먹으려고 사두었던 즉석 밥과 반찬이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결국 편의점에서 또 삼각 김밥으로 때워야만 했다.

 

  어디 그 뿐인가. 분명히 오늘 자로 포인트를 다 채워서 공짜로 얻어 마실 수 있던 바나나 우유를 쿠폰이 절반 밖에 채워지지 않아 아까운 내 1200원을 허공에 날려 보내야만 했다. 거기다가 분명히 시간에 맞춰 정류장으로 달려간 버스는 코앞에서 놓치고, 애써 올라탄 지하철은 반대 방향으로 가버려서 애를 먹어도 한참 먹었다.

 

  그래서 첫 강의에서는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별 과제를 앞두고 구성한 조원들은 하필이면 가장 엮이고 싶지 않았던 타과 학생들이었다. 아무리 오늘이 꿈자리부터 불길한 최악의 하루가 되기로 누군가 작정했다고 해도, 난 최선을 다해 저항해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점심도 포기하고, 시작 시간이 아슬아슬한 다음 강의에는 늦지 않도록 전공 서적을 가방에 넣을 새도 없이 품에 끌어안고 학교의 가파른 언덕길을 뛰어올랐다.

 

 “하아…. 하아….”

 

  하지만 '참치김치‘ 삼각 김밥 한 개와 바나나우유 하나로 나에게 필요한 모든 열량을 채우기엔 역시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다급하게 직사광선이 머리 위로 내리쬐는 아스팔트 경사진 길을 오르다보니 정신이 점차 아득해졌다. 이마부터 시작해서 이슬처럼 맺히던 땀들이 이내 비 내리듯이 땅 아래로 쏟아져 흘렀다. 연이어 내 눈썹 위로 떨어진 땀방울에 더해 이내 시야가 조금씩 불투명해졌다.

 

 그리고 점점 흐려지더니 곧 세상은 까맣게 블랙아웃이 되고, 내가 휘청거리다 쓰러지며 아스팔트 길 위에 곤두박질치려는 때쯤이었다.

 

 “어어! 큰일 날 뻔 했네. 괜찮아?”

 “……?”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튼실한 팔뚝 하나가 내 목을 받쳐주었다. 뒤이어 다른 한쪽 팔도 내 팔목을 붙잡고는 내 다리가 다시 땅 위에 디디고 설 수 있도록 일으켜주었다. 의식이 거의 꺼져가던 상태였던 지라 나에게 말을 건 상대방이 저음의 굵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라는 것만 인식했을 뿐,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아무튼 그 사람의 도움으로 지평선과 다시 평행을 이루어 섰을 때, 제일 먼저 내 시야에 들어온 건 바닥에 온통 널브러진 전공 서적들이었다. 그 두꺼운 책들을 보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는 부리나케 책을 하나 둘 집어 들기 시작했다.

 

 “아, 아! 이런! 안 되는데! 어떡하지?”

 “거 참. 엄청 성질 급한 아가씨네. 뭘 그렇게 서둘러?”

 “…….”

 

  날 붙잡아준 그 상대방 남자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말투가 미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단순히 그 남자가 나를 비웃은 듯이 말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를 넘어선 불쾌한 자극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서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저 빨리 이 자리를 정리하고 강의실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저기! 잠깐만. 이것도 떨어뜨렸는데?”

 “……?”

 

  그렇게 땅에 떨어진 전공 서적을 도로 줍고 다시 뛰어가려던 찰나에 그 남자가 한 번 더 나를 붙잡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서서 그 남자의 얼굴은 보지 않고 상반신까지만 쳐다보았다. 떡 벌어진 어깨에 다부진 체격, 기다란 다리까지. 군살도 없고 비율도 환상적인 바람직한 몸매였다.

 

  그래, 여러 여자를 홀리고 울렸을 법한.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져서 불쾌했다. 그 남자는 나에게 자신의 새하얀 손바닥을 펼친 채 작고 동그란 갈색 단추를 내밀고 있었다.

 

 “이 거, 그쪽 거 아닌가?”

 “……제 거 아닌데요?”

 

  그건 분명히 내 블라우스 위에 붙어있던 단추였다. 그 단추는 나중에 바늘로 꿰매어 단 지라 흰 단추들과는 달리 색이 튀어서 난감해하던 참이었다. 오히려 이참에 자기가 알아서 떨어져 나갔으니 나로선 아쉬울 게 없는 셈이었다. 이참에 잘 됐다 싶어 그리 말하고, 방향을 바꿨는데 이번엔 이 남자가 아예 내 손목을 붙잡았다!

 

 “에? 아니긴? 내가 분명히 그쪽 옷에서 떨어지는 거 봤는데?”

 “아니라고요! 됐어요! 저 수업 들어가 봐야 돼요! 좀 놔주세요!”

 “어, 어. 미안…. 그렇지만 이 단추, 두 번째 자리에 있던 거 아냐? 두 번째 단추는 심장에서 제일 가까이 있기 때문에 특히 더 소중히 해야 된다는 말도 있잖아?”

 

  그 말에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줄 알았다. 저 대사는 ‘그 남자’가 즐겨 하던 말이었다. 이제 보니 목소리도 똑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다. 분명히 아닐 것이었다. 그냥 우연이다. 그저 ‘그 남자’와 생김새가 좀 닮은 남자에 불과한 것이리라. 나는 일단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진정하려고 했다.

 

 “……필요 없어요.”

 “뭐? 그리 말하면 섭섭하지.”

 

  마치 이미 나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친근하게 대하는 그 남자의 태도가 점점 더 거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몸부림을 쳤는데 그 남자는 나를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 난 자꾸 사소한 일로 나를 붙잡고 물고 늘어지는 남자를 향해 다시 돌아서고 그 뻔뻔한 면상을 확인하고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응?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뇨…. 됐어요….”

 

  세상에, 어떻게 얼굴까지도 그리 똑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남자’와! ‘그 남자’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던가. 그런 말은 애초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체 어떤 경위로 ‘그 남자’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는지 몰라도 그건 이제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 남자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그리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업에 늦기도 했거니와, ‘그 남자’의 마수에 더 이상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 남자’는 그 긴 다리로 성큼 내 옆에 달라붙어서 찰거머리처럼 계속해서 들러붙으려고 하였다.

 

 “저기! 이것도 인연인데 나랑 커피라도 한 잔 할래? 내가 쏠게.”

 “아뇨! 싫어요!”

 “왜? 그럼 딸기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은 어때?”

 “……싫다니까요.”

 

  이 남자, 아직도 이런 걸 기억하고 있었나.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든 그 남자를 요리조리 피해 내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가증스럽게도 천진난만한 표정을 싫다는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내게 계속 보폭을 맞추며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왜? 그쪽 딸기 아이스크림 좋아하지 않았어? 왠지 그랬던 거 같은데?”

 “됐어요! 싫다고요! 내가 싫다는데 왜 자꾸 따라와요? 한 번만 더 오기만 해봐요! 경찰한테 성추행 범으로 신고해버릴 거예요!”

 

  난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터뜨려버렸다. 그 남자는 내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자 크게 놀랐는지 한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그 남자 앞에서 오만상을 다 쓰고는 다시 뒤로 돌아 강의실로 향했다. 그 남자는 내 강한 의사 표시에도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긁적이며 내 멀찍이서 따라붙으며 말을 붙였다.

 

 “저기, 미안. 내가 갑자기 너무 밀어붙였나? 나도 웬만해선 안 이러는데. 그쪽은 절대로 놓치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어. 이대로 놓치면 다시는 못 볼 거 같아서.”

 “나도 분명하게 말해둘게. 난 그쪽이랑 절대로 엮이고 싶지 않아! 다시 보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더 이상 따라오지 마!”

 

  이쪽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싫다’고 선을 긋는데 이 이상 질척거리는 건 그야말로 실례이다. 그런데 그 남자는 제 고집대로 밀고 나가는 건 똑같아서 내 팔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일부로 돌려세우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왜? 대체 왜 내가 싫다는 건데? 나에 대해서 뭐 아는 거 있어?”

 “그! 그런…건 아니지만….”

 “그럼 왜? 나 나쁜 사람 아니야. 잠깐 커피, 아니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서 얘기 나눠서 나쁠 거 없잖아? 나 이래 뵈도 어디 가서 빠진다는 말은 안 들어.”

 

  아아, 어련하시겠어. 확실히 그 남자는 빼어나게 잘생기긴 했다. 그 시절에도 그랬지만, 아니 그 시절보다도 더. 윤기 나는 짙은 갈색(자연색이다)의 머리카락에,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깊은 초콜릿 색깔의 눈동자에, 오똑한 콧날, 살짝 도톰한 입술에 매력적인 연한 구릿빛 피부까지.

 

  한 때, 나 역시 그 얼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일을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경계 태세를 풀지 않고 그 남자를 흘겨보면서 되물었다.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왜 그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은데?”

 “……닮았거든. 내가 아는 사람이랑.”

 “누구?”

 “그게…누군지 기억이 안 나. 그래서 그쪽이랑 얘기하고 싶어.”

 “안 됐지만 난 바쁘네요. 지금 당장 수업에 가야 되고.”

 

  그렇게 그 남자와의 대화를 접으려는 순간에, 이 남자는 또다시 비집고 들어왔다. 대체 언제까지 이 남자는 나와 의미 없는 말씨름을 하고 물고 늘어질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뜬 천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럼 수업 언제 끝나는데? 기다릴게. 같이 가자.”

 “시, 싫어! 내가 왜? 이,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랑?”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을 말 안 했구나. 난 신현욱이야. 신현욱.”

 “신현욱…….”

 

  그 세 글자를 듣자마자 또다시 사고 회로가 정지해버리는 줄 알았다. 미친. 이 두 단어가 실제로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뿌리 깊은 ‘악몽’을 심어준 ‘그 남자.’ 신현욱. 단순히 생김새나 몸매, 말투나 행동만 닮은 게 아니었다. 가장 부정하고 싶은 가능성이었지만 이 남자는 ‘그 남자’, 신현욱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가 신현욱이라는 말이 더 황당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현욱. 내 모든 트라우마의 뿌리인 그 남자는 고등학교 때 이미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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