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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소야의 노래
작가 : 설중사우
작품등록일 : 2020.7.31

본디 연이 없는 두 남녀가 월하빙인(月下氷人)의 술주정으로 인연이 이어져 ‘꿈’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

황제의 나라 북성(北星)이 간신들의 난립으로 망국의 길을 걸어가니,
나라를 지키어 번성시킨 열 명의 영웅들이 각자의 야심을 드러내었다.
사분오열된 땅 위에 군벌의 깃발이 꽂히고
설원에 치열하고도 잔인한 핏방울이 흩뿌려지던 시기,
소녀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내란의 화마를 뚫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1회| 월하빙인(月下氷人)
작성일 : 20-07-31 15:14     조회 : 375     추천 : 0     분량 : 6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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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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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월 초하룻날, 점심때가 지났을 즈음이었다. 참성(嶄城)의 시장통에 대삿갓을 눌러쓴 인물이 휘적휘적 걸어 들어왔다. 짙게 주름진 얼굴과 삿갓 옆으로 삐죽이 나온 흰머리를 보니 초로를 한참이나 넘긴 노인이었다.

  그는 시전 호객꾼들로 북적이는 길모퉁이에 떡하니 삿자리를 깔고 앉아 동그란 상을 펴놓았다. 등 뒤로는 점(占)자가 적힌 깃발을 세웠다. 상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 뼈와 댓조각들을 차르륵 늘어놓았다.

  간간히 그에게 시선을 주던 사람들은 그저 ‘날이 따뜻해지면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점쟁이로고’ 여기고 관심을 거뒀다.

  “어이고야?”

  약 반시진이 지났을 무렵, 노인은 삿자리 끄트머리를 살며시 밟은 조그만 짚신을 발견했다. 금방이라도 꼬아놓은 새끼가 뚝 끊어질 것처럼 낡은 신이었다.

  ‘뭐고?’

  곳곳이 헤진 무명옷의 여아는 ‘설마한들 여기 앉을까 싶은’ 노인의 눈초리에도 꿋꿋이 신을 벗어놓고 삿자리에 무릎을 대어 앉았다. 불만이 스민 눈길이 여아의 얼굴을 훑었다. 짐짓 평범해 보이는 아이의 외모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동그랗고 단정한 선의 얼굴에 요요한 빛이 흐르고 맑은 물빛을 머금은 고동색의 눈동자가 영롱히 반짝거렸다.

  “크흠, 올해로 몇 살인고?”

  노인이 헛기침을 섞어 묻자,

  “열셋 입니다.”

  여아가 공손히 답하며 무릎 위에 양손을 포갰다.

  “이 노부를 어찌 찾아왔는고?”

  “꿈풀이를 해주십사하고 왔습니다.”

  “복채는 가져왔고?”

  조그만 손이 꼬옥 쥐고 있던 무언가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 새끼손톱 크기의 은편(銀片)이었다.

  “훔친 것이냐?”

  노인은 의심했다. 크기가 작아도 은은 은이다. 민가의 아이가 지니기엔 너무 과했다.

  “예, 훔쳤습니다.”

  ‘얼씨구?’

  “어머니가 댓돌 옆에 남몰래 품삯의 일부를 묻어두시거든요.”

  너무도 담백한 수긍에 당당한 해명이 이어지니, 노인이 기가 막혀 헛웃음까지 지었다.

  ‘고얀-! 겨우 꿈풀이 하겠다고 어미의 비상금을 털어와?’

  “표 할아버지.”

  “누가 네 할아버지야?”

  친근한 호칭에 발끈했던 노인은 크게 흠칫하여 아이를 다시 보았다.

  “네가 이 노부를 어찌 알고?”

  “이맘때쯤이면 남문 변두리에 앉아계시는 산명선생이시죠?”

  “맞긴 하다만…뉘가 네게 그런 소리를 했더냐?”

  “어머니요.”

  “네 어미가 누군데?”

  노인의 얇은 이마로 깊은 주름이 그어졌다. 그러자 여아가 차근차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십년도 전의 일이랍니다. 저의 어머니가 뒷산에서 캔 나물을 팔러 시전을 찾았는데, 선생께서 지금처럼 이 자리에 삿자리를 펴고 앉아 이상한 죽간(竹簡)을 뒤적거리고 있었대요. 그 모습이 하도 기기괴괴하고 신기했던 어머니가 말을 섞자 이리 말씀하셨다지요. 뱃속에 품고 있는 아이가 태생부터 비천하고 박복하여 가진 것이 가난 밖에 없을 거라고요.”

  “쿨럭!”

  노인은 순간 마른 사레에 들 뻔해 명치를 문질렀다.

  “내, 내가 그리 말했다고?”

  “예, 그랬다합니다.”

  “허면 네가…?”

  “예,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입니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두(杜)씨 여인의 고운 얼굴을 떠올린 노인이 옆으로 고개를 틀어 찔린 기색을 감췄다.

  “너무도 심한 악담에 어머니는 화를 내려하셨대요. 헌데 웬 사두마차가 달려와 선생을 치려했다지요. 놀란 어머니께서 선생을 밀쳐 살리었고요. 그때 할아버지가 말씀하길, 저 마차의 주인은 필시 군가(軍家)의 귀부인인데, 관상을 보아하니 아들들의 태생과 사주도 귀하고 훌륭하다고요. 박복한 저와는 삼생이 지나도 그 인연이 닿지 않을 거라고요.”

  ‘내가 그, 그렇게까지 말했다고?’

  노인이 아리송한 기색을 보이니,

  “기억이 안 나셔요?”

  여아는 조근조근한 말투로 채근했다.

  “은원이 분명한 사람이라 은과 원을 함께 갚겠다고 하신 건요? 귀부인의 행태가 괘씸하기 이를 데 없으니 그 댁에 복이 차고 넘치는 차남을 저와 종옥지연(種玉之緣)으로 엮어버리겠다 하신 건요?”

  ‘뭐?’하고 되묻듯, 가는 눈이 두 배로 커지고 주름진 눈꺼풀이 파들거렸다. 슬슬 벌어진 입으로 헛숨을 훅 들이켰다가 깊고 깊은 탄식으로 뱉어냈다.

  이놈이 표가야. 어디서 또 술을 쳐 먹고 헛소리를 지껄였느냐, 어?

  “할아버지.”

  “어?”

  “사실…꿈에서 어느 소공자를 만났어요.”

  “소공자?”

  ‘이 또 무슨 귀신 볍씨 까먹는 소리인고?’

  노인이 주름 가득한 이마를 긁적거렸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처음은 아마 다섯 살 때였을 거예요. 그 후론 매년 칠석(七夕)이 되기 칠일 전부터 일곱 밤 내내, 잠을 이루면 꿈에 그 공자가 나왔지요. 서로 이름을 말하지 말자 약속을 했는데, 대신 공자가 별명을 지었어요.”

  여아는 상에 널린 댓조각 중 가장 긴 조각을 집어 흙바닥으로 가져갔다. 댓조각의 선단이 두 글자를 세로로 삐뚤빼뚤 휘갈긴 뒤,

  “공자는 밤을 부르는 소야(召夜)라 하고.”

  곁에 다른 두 글자를 적었다.

  “저는 밤을 거니는 소야(逍夜)라 했어요.”

  “잠깐.”

  노인은 상체가 상 모서리에 닿도록 한껏 몸을 기울여 바닥의 글씨를 보았다. 이야기의 내용보다 아이가 어설프게나마 글씨를 쓴다는 사실에 놀란 얼굴이었다.

  “어미한테 배웠느냐?”

  “뭘요?”

  “문자!”

  “아니요, 그 소공자에게 배웠어요.”

  ‘대체 뭔…?’

  “먼저 붓 쓰는 법을 가르쳐줬고…다음엔 글씨를 알려줬고 어느 날부터는 책을 읽어줬어요. 또 공자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지요. 아, 이번에 만나면 거문고를 알려주노라 약속했어요.”

  노인은 잠시간 여아에게 애매모호한 눈길을 보내다가, 번뜩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설마…?’

  “저, 할아버지? 듣고 계세요?”

  “잠시, 잠시만.”

  여아의 말을 막은 노인이 다급히 봇짐 안을 뒤져 짤막한 죽간 하나를 빼냈다. 수실로 묶은 꼬리표의 날짜가 딱 십년 전의 금일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고정 줄을 풀어 죽간을 펼쳤다. 중간의 글자 위로 붉은 줄이 시원하게 그어져있고 옆엔 새롭게 적은 글씨들이 보였다.

  ‘아이고 두(頭)야…!’

  노인이 자책하듯 탁 이마를 짚었다. 이놈의 급한 성질머리가 사고를 쳤구나! 일생 동안 옷깃조차 스칠 일이 없어야할 두 아이의 연을 이어놨으니, 기어이 ‘꿈’에서 만나고야 말았구나!

  “아이야.”

  “말씀하세요.”

  “이 노부가 다 개꿈이다 하면…믿겠느냐?”

  “정말 개꿈이에요?”

  여아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니,

  “꿈인 건 맞아요?”

  순간 노인의 어깨가 자책으로 움찔거렸다.

  “꿈이 아닌 것 같으냐?”

  노인의 물음에 여아는 ‘잘 모르겠다’ 답하며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다만 잠깐 고민하는 눈빛을 보였다.

  “꿈같기도 하고 진짜 같기도 해요.”

  “하아….”

  노인은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꿈이로되 꿈일 수가 없지….”

  “네?”

  여아의 고개가 옆으로 갸우뚱 기울어지니,

  “아이야, 이 노부의 말을 새겨들어라.”

  노인이 허리를 곧게 세우고 진지한 낯빛을 보였다.

  “이렇게 보니 너도 그러하거니와 그 소공자에게 본디 맺어져야할 연분이 따로 있구나. 허니 이뤄지더라도 순탄치 않을 것이고 이뤄지지 않는다면 장차 네게 큰 해가 될 수도 있음이야. 그러니 이 몽중연(夢中緣)에 깊게 마음을 쏟지 말거라.”

  “….”

  “내 말 알아들었느냐?”

  “….”

  “어찌 대답이 없어?”

  노인의 재촉에 여아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총명한 눈빛이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이 아이가 설마?’

  불안해진 노인이 미간을 좁혔다.

  “너…! 벌써 그 공자에게 홀라당…?”

  “누가요!”

  여아가 당차게 부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머리를 한 번 꾸벅 숙이고 재빠르게 짚신을 찾아 신었다. 그 찰나, 잘 익은 사과 같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만 노인이 나잡을라 뛰어가는 여아를 향해 마구 손가락질을 했다.

  “넘어갔구만, 넘어갔어…!”

 

 * * *

 

  여아의 종종거리는 걸음은 단숨에 복잡한 시장통을 가로질렀다. 바람 같이 오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다가 서문(西門)과 통하는 골목길로 뛰어들었다.

  널찍한 통로에는 포목전과 색염소(色染所)가 마주보고 있었고, 양쪽 길가의 기둥마다 끼워진 긴 장대에 색색의 천들을 걸려 하늘거렸다. 다채로운 물결 사이를 거침없이 내달리던 여아는 양팔을 벌려 말미의 천으로 힘차게 뛰어들었다. 부드러운 감각이 얼굴과 손을 스쳐지나가 잠시간 홍색이 되었던 하늘이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그렇게 신나게 골목을 나와 서중로(西中路)에 발을 디디는 동시에,

  “헉!”

  불시의 손놀림이 여아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헛숨을 뱉어낸 입이 놀란 금붕어처럼 쉼 없이 ‘어어-’하고 벙긋거렸으며, 낯빛은 호랑이를 앞에 둔 토끼처럼 사색이 되었다.

  “얌전히 따라와.”

  살얼음 같은 어미의 목소리가 두 다리의 힘을 빼앗았다. 덕분에 찍소리도 내지 못한 채 드센 손에 질질 끌려갔다.

  ‘걸어가나 뛰어가나, 엎어지면 코 닿을 걸….’

  참성의 사방을 두른 성벽의 형태는 사과와 비슷했다. 중앙의 대로(大路)는 이 사과를 반으로 가르듯 놓여 있었고, 동서 방향의 긴 중로가 중간에 걸쳐져 십(十)자를 이뤘다. 이를 길의 방향에 따라 각기 동중로(東中路)와 서중로라 불렀으니, 마침 모녀의 거처가 두 중로가 맞붙기 직전에 왼쪽으로 틀어 쭉 걷다가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첫 번째 집이었다.

  ‘망했어….’

  어미는 반항을 포기한 딸을 데리고 집 앞에 다다랐다. 구불거리는 골목을 경계로 마른 짚을 엮어놓은 울타리가 좁은 마당을 둘러 담장 역할을 했는데, 대문을 대신에 세워놓은 넓적한 나무판에 큼지막한 점(占)자와 길흉화복이나 중매 같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똑바로 안 들어?!”

  두자미(杜紫薇)의 호통에 동그랗게 휘어진 양팔이 움찔 일직선이 되었다. 앞마당 한복판에 무릎을 꿇고 앉은 어린 딸이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어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마루 위에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 보란 듯이 젓가락질을 했다.

  ‘내 업보다, 내 업보야.’

  두자미는 불같은 성미를 누르고 한숨으로 삭혔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전에 황도에서 이름 좀 날리던 예기(藝妓)였다. 그러다 한 만석꾼 아들의 운명 같은 사랑에 빠져 제 발로 첩실로 들어가고 만 거다. 하지만 한 해 뒤에 반군의 횡포가 대문 앞에 들이닥치니, 지아비란 ‘놈’은-기가 막히게-본처만 데리고 도망을 쳐버렸다.

  당시에는 둘이 들고 튄 재물로 잘 먹고 잘 살줄 알고 욕과 저주를 쏟아냈었다. 허나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부부가 나란히 도적떼에게 잡혀 비명횡사할 줄은 또 몰랐다. 스물네 살에 과부가 되어 집도 절도 없이 길을 떠돌 거라고는 더더욱 몰랐다. 서부로 향하는 상단의 뒤를 따라 우연찮게 참성에 흘러들지 못했더라면, 아마 노상에서 유복녀를 낳아야 했을 터였다.

  ‘그 고생을 해서 낳아놨더니…!’

  열불이 난 두자미가 밥 위에 뽀얀 백김치를 마구 찢어 올리고 잘 구워진 닭고기를 얹은 뒤에 쏙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이놈의 닭을 보니 생각나네. 변변찮은 살림에 어린 딸 보양하라고 대낮부터 닭을 잡고 털 뽑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 않았나!

  “왜 그렇게 싼 건가 했더니, 이놈의 터가 안 좋았던 거야.”

  두자미는 우물우물 투덜거렸다. 늦장가를 간 거간꾼이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지은 신혼집이라더니, 뒤늦게 알아보니 신혼생활 반 년 만에 전염병으로 횡액을 당해 주인을 잃고 빈집이 되었다더라.

  “그리 마음이 쓰이면 표 할아버지한테 말해볼게요….”

  “뭐?” “어머니가 종전에 이야기해주곤 했던 기기괴괴한 노옹이요, 어머니가 점집을 연 것도 다 그 할아버지한테 감명을 받아서라고 했지요. 아까 찾아가보니 시전에 계시더라고요….”

  느릿느릿 고기를 씹는 두자미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웃는 건지 아닌지, 한쪽 눈썹 꼬리가 위로 치솟고 입가는 파르르 떨렸다.

  “꿈풀이는 무조건 은편 하나라기에….”

  여아가 어미의 눈치를 살피며 말꼬리를 흐렸을 때였다. 탁! 젓가락이 제법 거칠게 상 위에 얹어졌다.

  “아니 용하다 유명한 점집도 청동화 다섯 닢을 안 받는 걸…!”

  두자미는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볍게 마루 아래로 폴짝 내려서 양 소매를 걷어붙이고 구석의 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팔뚝만한 길이에 두께가 상당한 박달나무를 깎은 것인데, 주름진 빨랫감을 펴기 위한 용도였다.

  “이 날강도 같은 노인네를 그냥!”

  두자미가 씩씩거리며 집 밖으로 사라지자마자,

  “….”

  여아가 슬그머니 팔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도 참, 사주풀이로 만만찮게 후려치시면서.”

  아주 태연해진 표정으로 무릎께의 흙먼지를 손을 툭툭 털어주고 어미가 앉아있던 자리에 엉덩이를 댔다.

  “그 할아버지의 사기에 감명을 받은 건가.”

  손으로 닭고기 조각을 입에 쏙 넣고는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마루 아래로 늘어진 두 발이 흥겹게 앞뒤로 흔들거렸다. 여아는 푸름을 붉음으로 물들이는 석양을 보고는,

  “꿈이로되 꿈일 수가 없다….”

  불쑥 노인의 말을 떠올렸다. 자연스레 들뜬 마음이 가라앉아 두 발의 움직임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사실….”

  여아가 불쑥 하늘을 향해 말을 걸었다.

  “전 두씨에요. 어머니 성을 이었거든요. 어머니는…아직도 아버지가 많이 괘씸한가 봐요. 아버지처럼 반질거리고 게으르지 말라고, 작명가한테 큰돈까지 써서 이름을 지었대요. 아정(雅正)이에요, 두아정.”

  여아는 용기 내어 뱉어낸 이름을 재차 여러 번 속삭이곤, 상체에 힘을 빼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흙을 덧바른 짧은 처마와 구불구불한 나무를 걸쳐 지른 서까래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리 말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문득 알 수 없는 속삭임을 늘어놓고 나른함에 몸을 맡겼다. 눈을 감자마자 거짓말처럼 까무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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