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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엿보지 마세요.
작가 : 복길아
작품등록일 : 2016.8.30

썩어가던 연애를 하던 하숙집 딸 용숙이! 어느날 우연히 스페인 남자 라울 에게서 메일이 날아왔다!
"난 한 번 들은 목소리는 절대 잊지않아..."
매일 밤 메일과 전화 통화로 서로를 알아가던 두 사람. "당신은 내 얼굴도 모르잖아! 대체 날 어떻게 찾은거지?!" "네 목.소.리..."
혹시 언젠가 만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내가 가장 예뻐 보이는 날 이기를 바래...

 
1화. 이거 실화냐?
작성일 : 16-08-30 21:45     조회 : 733     추천 : 3     분량 : 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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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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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별의 기운들이 내 주변에 개떼처럼 모여 들고 있어!]

 

 그 여자가 보낸 이메일 제목이다.

 “훗, 잘못 보내고 있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네. 덕분에 나야 재밌지만…….”

 남자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매끈한 근육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당신도 알 때가 됐잖아? 메일을 잘못 보내고 있다는 거.”

 배꼽 근처까지 단추를 풀던 손이 청바지 안의 셔츠를 단번에 잡아 뺐다.

 “그리고…… 그 사랑도 그만 둘 때가 됐다는 거.”

 남은 단추까지 모두 푼 남자가 와인 잔을 빙빙 돌리며 입 꼬리를 올렸다.

 입안에 머금은 와인을 혀로 음미 하며 계속 여자의 글을 읽어 내려간다.

 낯선 여자가 보내오는 메일을 읽기 시작한 지 벌써 이주일 째다.

 메일은 이틀에 한번 꼴로 꾸준히 잘못 오고 있다.

 “읽는 사람까지 창피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남자는 짧게 미소 지었다.

 

 […하여간 진문이랑 사이가 꼬이려니까 내가 별짓을 다해!

 미리 말해두지만 이 얘기로 놀릴 생각은 하지 마. 그랬다간 그 길로 네가 게이라는 사실을 아니, 양성애자란 사실을 너희 박 회장님한테 폭로할 거니까!

 아무튼 어제 진문이랑 잠깐 통화하다가 볼 일이 너무 급한 거야.

 그래서 주방에 가서 물 좀 마시고 온다고 뻥쳤지. 그런 다음에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화장실로 들어갔어.

 시원하게 볼 일 보고, 변기에 물을 내리면서 일어나는데 뭔가 쏴 한 기분이 들더라?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보니까…….

 아 놔, 스피커폰 버튼이 눌려져 있는 거야!

 어쩌겠어? 일단 다시 통화를 했는데 진문이 첫마디가 ‘물 마시러 간다더니 물을 쏟고 왔냐?’ 라는 거 있지?

 아휴, 안 그래도 요새 권태기인데 내 손으로 휘발유를 들이 부었다! 내가 미쳐 죽지 않았으면 환장한 줄 알고 있어. 아니, 도대체 난 왜 그런 실수를 하는 거니? 실수라면 딱 질색인 여잔데…….]

 

 “딱 질색이라고? 같은 실수를 이주일 째 일곱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하하!”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서재 안에서 남자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웃었어? 나 지금 웃은 거야? 여기서?”

 자신의 웃음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고 서재 안을 천천히 둘러본다.

 300년이 넘은 공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이곳에서 소리 내어 웃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웃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없던 고민도 하게 만드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사방 벽면이 책으로 가득 채워진 이 서재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 17년이 지났다.

 남자는 27살이 된 지금까지 이 서재 안에서 웃은 건 처음이었다.

 정말이지 처음 있는 일이다.

 갑자기 서재의 긴 문이 벌컥 열리고 여비서가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서…….”

 “내가 방금 이 서재의 역사와 전통을 깼어.”

 남자가 어깨를 멋쩍게 으쓱하며 와인 잔을 마저 비웠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괜찮으신 거예요?”

 “후훗, 아무것도 아냐. 괜찮으니까 나가 봐.”

 남자는 다가오려는 여비서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여비서는 남자의 표정이 낯설다는 듯 몇 초간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마치 엿보고 있는 거 같네. 실수는 당신이 하고 있는데 말이야.”

 남자가 다시 여자의 메일을 응시하며 말했다.

 음소거와 스피커폰 버튼을 구분하지 못한 이 여자에 대해 메일로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서울에 사는 29살 여자.

 “내년이면 우리도 서른이야. 배부르지도 않는 나이만 쳐 먹었네!” 라는 여자의 글에서 알게 됐다.

 2. 남자 친구와 권태기 중.

 조만간 차일 확률 100% 확신.

 메일 내용 중 98%가 남자친구에 대한 걱정이라 이 역시 쉽게 추측이 가능 했다.

 3.이탈리아로 유학 간 친구가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여자가 메일로 연락을 대신하게 됨.

 친구는 게이다. 아니, 양성애자.

 4.자신의 핸드폰 번호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알림.

 하지만 그 친구는 여자의 바뀐 번호를 알 리가 없다.

 대신 자신이 여자의 핸드폰 번호를 알게 됐다.

 5.여자네 집은 하숙집 운영 중.

 하숙생들이 사는 1층에 여자의 남자 친구도 살고 있다.

 6. 여자는 아버지에게 구두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음.

 실력은 형편없다. 스스로 똥 손이라고 인정했다.

 

 남자가 빈 와인 잔을 슬쩍 보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수많은 와인 병들이 한쪽 벽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와인 병을 하나 꺼내자, 그 순간 등 뒤로 메일 알림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노트북 화면을 확인한 남자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또 그 여자다.

 “오늘은 보너스로 한 통 더?”

 손에 든 와인 병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 드디어 차였나? 아니면, 이제 실수를 눈치 챈 건가?”

 여자가 메일을 보내오는 시간은 항상 다르다. 하지만 오늘처럼 하루에 두 번씩 메일을 보낸 적은 없었다.

 행동 패턴이 달라진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뭔가 심적 변화가 생겼거나, 이를 테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든지. 아니면 그동안 메일을 잘못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나.

 “둘 중 하나겠지.”

 남자가 턱을 만지작거리다 커서를 새 메일로 옮기며 말했다.

 

 [ : ……갈비를 뜯을 때도 입술이 그렇게 까지 뻣뻣하진 않을 거야. 진문이가 요즘 아주 갈비야! 갈.비. 갈수록 비호감!]

 

 예상이 모두 빗나갔다.

 메일 내용은 여자가 깜빡 잊고 빠뜨린 남자 친구와의 입맞춤 이야기였다.

 “흠. 그 남자 입술이 얼마나 형편없다는 거지?”

 남자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아랫입술을 살짝 건드리며 남은 부분을 마저 읽었다.

 이번 메일에는 여자의 집 주소가 있었다.

 저번 달에 말해뒀던 이탈리아 수제 구두 한 켤레를 택배로 부쳐 달라는 내용이다.

 미리 받는 자신의 생일 선물이라는 말과 함께.

 “잠깐…… 재미동이라고?”

 갑자기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고개를 한 번 갸웃 거리더니 책상 왼쪽 서랍을 열었다.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둔 종이쪽지 하나를 꺼냈다.

 “당신이 정말 여기…… 산다고?”

 남자는 손에 든 낡은 쪽지와 여자의 집 주소를 몇 번이고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답장을 보내줘야겠군…….”

 책상 위에 놓인 새 와인을 따르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이 메일 하단에 꽂혔다.

 여자의 현재 심경이 시처처럼 적혀있었다.

 남자는 그 부분을 따라 읽었다.

 그러자 그의 굵은 목소리가 서재 안에 울린다.

 

 “사랑의 방향은 두 가지야. 머무는 거 아니면 떠나는 거…….”

 

 ***

 

 내 혀를 뽑아서 어디다 쓰려고?

 오랜만에 움직인 진문이 입술은 그냥 입술이다.

 영혼이 없다는 얘기지.

 감미로웠던 키스의 리듬감도 사라졌다. 부드러웠던 느낌도 개 껌같이 딱딱해졌다.

 내 혀가 세탁기 안에서 탈수 되고 있는 기분이다.

 끝내주게 기계적이네.

 그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지.

 사랑이 막 시작될 땐 꿈속에서 조차 두근거린다. 하지만 예상외로 길지 않다.

 알고 있어야 한다. 금방이다.

 권태기!

 아……. 단어 자체가 벌써 사람을 늘어지게 만들잖아?

 어느 순간 설레는 감정 대신 익숙함이 스윽 자리를 차지한다.

 그마저도 지루함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도 그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이것도 진작 알고 있어야 했는데.

 

 영혼 없이 움직이던 진문이 입술이 멈췄다.

 “키스를 왜 그렇게 해?”

 찌찌뽕! 내가 하려던 말이다.

 올해 들어 가장 억울하고 어이없는 순간이다.

 “나……? 지금 나한테 한 소리야?”

 ‘너야말로 개 껌 같은 혓바닥으로 뭔 개떡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 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응. 네가 집중을 못하고 있는 거 같아서.”

 “무슨 소리야? 나 완전 집중하고 있는데.”

 ‘넌 두 번만 집중했다간 내 혀도 뽑겠다!’ 라는 말 역시 하고 싶었지만, 이 말 역시 참았다.

 작년 백화점 세일 때 샀던 오리털 이불보다 더 포근했던 진문이와의 키스가 언제 이렇게 축 쳐져버린 걸까?

 눅눅해진 이불이야 다시 빨면 뽀송뽀송해지지만 진문이 혀는 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감 없는 키스를 하게 된 거지?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언제부터 이런 키스를 참고 있었냐는 거다.

 나를 빤히 보던 진문이가 다시 키스를 시작했다.

 마치 내 입안에서 뭔가를 찾아내려는 사람처럼 다시 혀를 게걸스럽게 움직인다.

 내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이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래……. 늘 이 순서였지.

 나는 하마터면 ‘찌!’하고 외칠 뻔했다.

 내 가슴으로 묵찌빠를 하는 줄 알았네.

 요즘 대체 얘 왜이래?

 쥐락펴락 움직이던 단조로운 손놀림마저 금세 뚝 멈췄다.

 끝? 이게 끝이라고……?

 “이만 들어가자. 늦으면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자기가 언제부터 하숙생들 눈치를 봤다고. 지금 본인 행동이 더 이상하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개들은 아무 생각도 없어. 괜찮아.”

 냉랭한 태도를 녹이려고 급한 대로 그의 허벅지에 손을 갖다 댔다.

 “됐어.”

 뭐가 됐다는 거지?

 “만지지 마.”

 “뭐……?”

 내가 뭘 어쨌다고?

 “안 서. 피곤하니까 그냥 가자.”

 진문이가 엉덩이를 털면서 일어섰다.

 “헐…… 서긴 섰네. 그게 뭐든 간에.”

 저만치 멀어져가는 진문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내 자존심이야말로 찌그려져서 안서는 순간이다.

 그가 떠난 자리엔 고 씨 아저씨네 편의점에서 산 맥주와 안주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와, 이것도 안 가져갔어? 나보고 들고 오라는 거지?”

 비닐봉지 안에서 반쯤 삐져나온 오징어가 안쓰럽게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지금 내 입술이, 내 가슴이, 오징어가 된 순간이다.

 이 구린 기분은 쉽게 사라질 거 같지 않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인데?”

 비닐봉지를 챙겨 일어서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RRRRRRRRRR

 “여보세요? 누구세요?”

 [“나야, 준희! 너도 핸드폰 잃어 버렸어? 번호는 왜 바꾼 거냐?”]

 목소리의 주인공은 2년 전 이탈리아로 유학 간 준희다.

 준희 라는 이름이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쓰이는 이중적인 이름이라서 자신이 양성애자가 된 건 아닐까 항상 투덜대던 녀석.

 “난 또 누구라고. 새로 하나 사면서 번호도 바꿨어. 넌 결국 핸드폰 못 찾은 거야? 너도 번호 바꿨네?”

 [“그렇게 됐어. 이제 겨우 살만해. 여기 학교 근처로 급하게 이사하느라 바빴다.”]

 “아…… 그랬구나. 그래도 박준희! 사람이 그렇게 메일을 많이 보내면 한 번은 답장해야 되는 거 아니니?”

 [“뭐? 메일? 너한테 온 메일은 없었는데?”]

 “무슨 소리야! 내가 그동안 메일을 얼마나 많이 보냈는데. 오늘도 두 개나 보냈거든?”

 [“너야 말로 뭔 소리냐? 나도 오늘 메일 확인 했거든!”]

 “웃기시네, 그럼 바뀐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하셨나?”

 [“아까 너한테 전화했더니 없는 번호라고 나와서 남영이한테 물어서 안 거지.”]

 “그래? 잠깐만…… 그럼 내가 보낸 메일은 어떻게 된 건데?”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데? 너 그동안 누구한테 보내고 있던 거야? 대박! 엉뚱한 사람한테 잘못 보내고 있었구먼?”]

 “아 놔. 난 몰라! 미쳐 죽어 정말. 내 메일 못 받은 거 확실해?”

 [“왜? 메일에다 이상한 소리 써댔냐? 야, 그러지 말고 지금 당장 확인해 봐.”]

 “아, 알았어. 일단 끊어봐.”

 

 도대체 나는 지금껏 누구한테 메일을 보내고 있었던 거지?

 준희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메일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봤다.

 “뭐야, 오늘 충전을 안 했었나?”

 남은 배터리 1%

 메일함을 열자 낯선 제목이 눈에 팍 꽂힌다.

 

 [: Hola? 당신 메일이 스페인으로 잘못 오고 있군요.]

 

 맙소사!

 이거 실화냐……?

 마른 침을 삼킨 후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 제목을 눌렀다.

 “오, 안 돼!”

 메일 화면이 나오자마자 핸드폰 전원이 바로 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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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플 16-09-29 04:00
 
재밌게 읽었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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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재방송 16-09-30 03:38
 
까플 님! 감사합니다~ 힘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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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흑나비 16-11-16 21:02
 
아.... 내가 만우절재방송님 작품을 왜 이제야 봤죠? 이 재밌는 걸.ㅠㅠ 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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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재방송 16-11-18 00:58
 
야광흑나비 님~! 반가워요^^ 재밌게 읽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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