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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Impairment
작가 : 쿤호
작품등록일 : 2019.11.9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완벽한 고등학생 선우.
그는 어느 날 참석한 봉사활동에서 삶의 변곡점을 맞게 된다.

 
INTRO
작성일 : 19-11-09 02:02     조회 : 229     추천 : 0     분량 : 9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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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수학 경시대회에서 선우가 1등을 했다. 다들 축하하는 마음으로 박수!"

  짝짝짝짝짝

  "대박이다. 또 1등이네~ 축하해!!"

  "선우는 못하는 게 없어"

 

  경시대회가 끝난 후, 담임 선생님이 나를 한껏 띄워 주셨다. 나는 반 친구들 모두 앞에서 박수를 받으며 서 있었다. 기분이 어떠냐고?

  ‘당연히 좋지!’

  라고 말 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냥 아무 감흥이 없다.

  왜냐고?

  '너무 익숙하니까'.

  상 받고, 일등 하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 환호를 받는 일들. 태어나서 지금까지 너무 많이 해 본 일이라 뭔가 설렘이 없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다. 뭐든 열심히 했고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좋았다. 근데 이상하게 그게 어렵지가 않았다. 무엇을 하던 조금만 하면 남들보다 잘했다. 운동이던, 공부 던 그냥 쉬웠다.

  무엇을 하던 원리만 파악하면 쉬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걸 왜 못하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남들 보다 잘하고, 자연스레 앞에 나서는 일이 많아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난 남들과는 다른 존재이고, 그들 위에 설 사람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Born to be leader, 뼛속부터 리더로 태어났다고 나 할까? 나의 학창시절은 그렇게 굴곡 없이 평탄하게 잘 닦여진 고속도로처럼 흘러갔다.

 

  내가 처음으로 주위의 관심을 받은 건 외모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공부와 운동에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막 이성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하는 때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날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2월 14일. 바로 밸런타인데이였다. 평소와 똑같이 등교를 하여 자리로 오니 책상 위에 초콜릿이 정성스레 포장되어 놓여있었다. 포장을 뜯어보니 안에 조그만 손 편지가 들어있었다.

  “선우야,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편지를 쓴 친구는 평소 말도 없고 조용한 같은 반 여자 아이였다. 나와 같이 무엇인가를 한 적이 없던 친구라 조금 의외였다.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그 아이와 친해지진 못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 됐는지도 몰랐고, 여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렇게 둘이 시선이 마주칠 때 어색한 공기가 흘렀고, 그 후로 그 아이는 나를 피해 다녔다. 내가 거절한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 아이의 이름이 뭐였더라... 이... 성은 이씨였던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뭔가 내 인생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밸런타인데이가 올 때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초콜릿을 잔뜩 받았다. 처음 한두 개 받을 때는 기분이 좋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두 자리수로 늘어가며 이젠 누가 주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당연하다는 듯 초콜릿을 한아름 싸 들고 집으로 갔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에 괜히 뿌듯했다. 나는 그냥 그 느낌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내가 잘났기 때문에 받는 것이라 생각됐다. 그래서 외모에 더 신경을 쓰고, 공부, 운동 등 모든 것을 더 열심히 했다. 모든 것에 완벽하고 싶었고, 남들과는 다르다는 특별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상도 많이 받고 매 학년 반장을 놓치지 않았다. 고2때는 전교 회장을 했다. 모든 사람들 앞에 서서 대표로서 행동한다는 것에 살짝 도취되어 있었던 시기였다. 남들 앞에서 착하고 바른 모습만 보이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계속 해왔던 일이라 익숙했다. 착한 아들, 좋은 친구의 이미지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어느덧 고3이 되었다. 그 동안 나의 삶은 완벽했다.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잘했고, 인기도 꾸준했다. 남녀 구분 없이 주위에 사람들이 항상 많았다. 내신도 꾸준히 좋았고 학교 성적도 계속 상위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전교에서 1~2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작년에는 학생회장도 했었다. 그동안 경시대회 수상도 수 차례 했고 그 외 활동도 틈틈이 했다.

  이대로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서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의사? 변호사?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참, 하나를 빼먹었다.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기본 봉사활동 시간은 다 채웠지만 뭔가 임팩트 있는 봉사를 자소서에 하나 적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봉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장소가 어디였더라? 아무튼 장애인 분들이 계신 시설이라고 들었다.

 

  띠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띠

 

  토요일 아침의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알람을 끄고 다시 이불을 덮으며 돌아누웠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아들, 일어나~ 봉사활동 가야지."

  나를 깨우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아... 더 자고 싶다. 망할 봉사활동!' 속으로 짜증이 났지만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아이고 우리 아들 주말에도 잘 일어나고, 착하네~ 얼른 밥 먹고 씻어."

  "응, 오늘 봉사활동 가야 되니까 일찍 일어 나야지~ 밥 맛있겠다 엄마."

  그렇게 엄마의 미소와 함께 식사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한 후 아빠 차에 올라탔다. 토요일 아침의 서울 도로는 평소와 다르게 조금 한산했다. 우리가 탄 차는 서울 외곽의 숲길을 따라 계속 달렸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아니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조그만 학교 같은 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남은혜학교』

  입구를 통과해 조금 더 들어가니 주차장이 나왔다. 그 곳에는 각 학교에서 봉사를 하러 온 친구들이 벌써 여러 명 있었다.

  "선우, 잘 하고 올 수 있지? 아빠가 이따 끝나는 시간에 다시 데리러 올게."

  "예, 걱정 마세요." 난 자신감 있는 얼굴로 웃으며 아빠를 배웅했다. 봉사만 간단히 하고 가면 되는 거라 생각했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조금 서둘러 출발을 하였는지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 학교를 둘러봤다. 정문을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정면에 2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그 우 측면이 내가 내린 주차장이었고, 좌 측면에는 예배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꼭대기에 십자가 모양을 보고 예배당으로 추측했다. 그 옆에는 농구장이 하나 있었고, 중앙은 운동장이었다. 크진 않지만 적당하게 있을 만한 건 다 있었다.

  "자, 학생봉사자분들! 가운데 운동장으로 모여주세요."

  담당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곳에 모인 학생들 전부가 그 곳을 향해 걸어갔다. 나도 그 무리를 향했다.

  "반가워요, 여러분. 여기는 '강남은혜학교'에요. 여기가 어떤 곳이지 아는 학생?"

  선생님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좋은 일 하는 곳이요!" 한 아이가 대답했다.

  "하하하하, 맞아요. 좋은 일 하는 곳이에요. 그럼 어떻게 좋은 일을 할까요?"

  "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 학생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대답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 도와주는 곳 아닌가요?" 나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맞아요, 잘 알고 있네요. 모두들 박수! 학생 이름이 뭐 에요?"

  "김선우 라고 합니다"

  "선우 학생, 반가워요. 자, 여기는 선우 학생이 말한 대로 몸이 불편하거나 다른 곳이 안 좋은 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여러분은 여기에서 그 분들을 도와 밥 먹고 수업도 듣고 청소 등 간단한 일들을 도우며 함께하면 돼요. 잘할 수 있죠?"

  "예~~~" 학생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요, 봉사활동에 앞서 이 학교를 세우고 훌륭한 일에 앞서고 계시는 홍예원 이사장님 인사말을 듣겠습니다. 학생 여러분 박수로 모실게요!"

  짝짝짝짝짝!

  소개가 끝난 후, 이 곳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의 고급스러운 옷에 깔끔한 단발 머리를 하고 뒤에 서있던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나이가 젊지는 않은 것 같은데 관리를 잘해서 더 들어 보이지도 않는 종잡을 수 없는 나이대의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홍예원 이사장입니다. 오늘 봉사활동을 위해서 이 곳에 모인 여러 학교의 학생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조금 전에 김미정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이 곳에는 여러분들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여러분 또래도 있고, 더 나이 많으신 분들도 있는데 여러분이 친구가 되어 드리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세련된 목소리와 톤이었다. 좋은 말들을 많이 했는데 이상하게 난 조금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인사말이 끝나고 봉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은 장애인 체험이었다. 상황에 맞게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휠체어를 타는 등 비장애인들이 조금이나마 장애인이 느끼는 불편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다. 선우는 휠체어를 탔는데 계단을 오를 수도 없고, 땅이 조금만 거칠어도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눈을 가렸을 때는 앞으로 거의 나가질 못했다. ‘이렇게 불편하게 어떻게 살지? 난 못살 거 같아.’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 다음에는 여러 파트로 나눠 청소, 음식 준비 등을 했다. 그 중에 공부 잘 하는 사람들만 몇 명 추려서 어린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봉사자를 선출했는데 난 당연히 그 곳에 들어갔다.

 

  나를 포함한 선출된 몇 명은 관계자 분의 안내를 받아 교실로 향했다. 그 곳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열 명 정도 있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아이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약간 긴장이 됐는지 손에 땀이 살짝 느껴졌다. 남들 앞에 서는 것은 익숙했지만 이 아이들은 뭔가 조금 다른 사람들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아이는 수업시간에 배웠던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한 아이는 혼잣말을 계속 했다. 어떤 아이는 나를 초점 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그렇지 않아 보이는 한 아이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얘들아, 안녕" 선생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오늘 언니 오빠 누나 형들이랑 재미있는 수업을 할 거예요. 정말 좋죠? 모두들 말 잘 듣고 수업 잘 들어요."

  "네~!" 아이들은 신이 난 듯이 대답했다.

  "자, 일일 선생님들은 자기 소개를 간단히 부탁해요."

  김선생님의 진행으로 우리는 학생들과 인사를 하고 각자 소개를 시작했다. 맨 끝부터 순서대로 학교와 이름 등을 말하고, 오늘 잘 지내자는 얘기 등을 했다. 어느덧 내 순서가 되었다.

  "안녕, 나는 인재고등학교에서 온 김선우야. 잘 부탁해."

  정확히 무슨 기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껄끄러운 기분을 감추고, 평소처럼 밝은 얼굴로 웃으며 내 소개를 했다. 바로 그 때였다.

  "으으으으"

  어떤 한 아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왔다. 난 순간적인 일에 놀라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그 아이를 살짝 밀쳤다. 그 아이는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고 놀란 얼굴로 나를 잠깐 보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앙!"

  난 너무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댔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더 그리하였다. 그 생각과 거의 동시에 얼른 아이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에 앞으로 나서는데 누군가 먼저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준현아. 형이 너무 놀라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사람한테 갑자기 달려가면 안 된다고 얘기했잖아."

  "많이 놀라셨죠? 얘가 선우씨가 좋아서 그래요.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막 달려가서 안기거든요. 악의는 없고, 착한 아이에요. 와서 괜찮다고 해주세요."

  넘어진 아이에게 다가갔던 그 사람이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였다. 난 정신을 수습하고 일단 시키는 대로 그 아이를 달랬다.

  "이름이 준현이니? 형이 놀라서 그랬어. 미안해."

  나는 내 들킨 속마음을 만회라도 해보려는 듯 최대한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울음을 서서히 그치고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안겼다. 나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 아이를 같이 안았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 아이를 다독여 떼어낸 후, 그 여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이 곳에 자주 오는지 아이들과 친해 보였다.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

  "자 이제 각자 그룹을 나눠서 아이들과 수업을 나가봐요."

  김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세 명에 선생님 한 명씩 조를 정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난 아까 준현이라는 아이와 다른 남자 아이 한 명, 그리고 여자 아이 한 명과 한 조였다.

  수업은 물로켓 만들기였다. 설명은 간단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중을 잘 못하고 이해를 못 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나도 일단 아이들에게 만드는 법을 설명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준현이가 계속 집중을 못하고 내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자, 물로켓을 만들려 면 일단 페트병을 자르ㄱ..."

  "형... 아니 선생님..."

  "응? 왜 그래 준현아?”

  "으으으으으, 아니에요."

  "그래? 알겠어. 그럼 다시 설명할...”

  "선생님."

  "응 준현아?"

  "아... 아니에요."

  이런 식이었다. 이 대화가 몇 번이나 계속되어 설명을 이어 나가지 못하고,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때 다시 준현이가 나에게 말을 했다.

  "선생님."

  "응 그래 준현아, 왜?"

  "아....."

  "괜찮아, 말해.” (화가 나는 걸 꾹 참으며 얘기했다)

  "으.....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응?"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응, 그래 갔다 와."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준현이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난 그냥 갔다 오면 되는데 왜 저러나 싶었다. 그 때, 준현이의 말을 들은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준현이는 혼자 서 화장실 못 가요, 선우씨가 같이 갔다 와줘요."

  나는 그제야 준현이의 말을 이해하고 같이 화장실을 갔다 왔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조들은 벌써 설명을 다 끝내고 제작에 들어간 지 꽤 돼 보였다. 우리 조만 늦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급했다. 그래서 서둘러 설명하려고 우리 자리를 본 순간, 이럴 수가! 우리 조 책상 위에 물로켓 완성품이 놓여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정교해 보였다. 나는 놀라서 남아있던 두 아이에게 물었다.

  "이거 누가 만들어줬어?"

  "희수가 만들었어요."

  우리 조의 여자 아이가 옆에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희수니? 이거 네가 만들었어?"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돼 보이는 그 아이에게 물었다.

  "예."

  그 아이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시선은 계속 페트병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 잘 만들었다. 예전에 어디서 배웠니?"

  "아니요."

  그 아이의 시선은 여전히 페트병에 머물러있었다.

  "그럼 어떻게 만들었어? 다른 선생님이 설명해줬니?"

  "그냥 이렇게 만들면 될 거 같아서 만들었어요."

  아이는 불안한 시선과는 다르게 너무 편안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질문한 내가 머쓱해진 기분이었다.

  첫 수업시간이 끝난 후, 우리는 직접 만든 물로켓을 날리러 운동장으로 나갔다. 다들 신나서 나가는데 희수는 끝까지 나가지 않겠다고 하여 김선생님과 교실에 머물렀다. 본인이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 놓고 정작 물로켓 발사에는 관심이 없다니… 조금 특이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린아이들은 워낙 변덕스럽기도 하고, 여기 아이들은 특히 더 이상한 애들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특별한 곳이니...

 

  2교시는 수학 시간이었다. 곱셈과 나눗셈 등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라고 했다. 그런데 희수가 문제는 풀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 저 시선이 나는 뭔가 불편했다. 희수에게 다가가 빨리 문제를 풀라고 했다. 그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멍하니 있었다. 나는 조금 더 크게 희수에게 말했다.

  "희수야, 문제 풀어야지!"

  "다 풀었어요."

  희수는 역시 내 눈을 쳐다보지 않고 말을 했다.

  "무슨 소리야, 아직 백지잖아."

  내가 말하자 마자 희수는 펜을 들고 10문제의 답을 순식간에 써 내려갔다. 아무리 간단한 곱셈, 나눗셈이라 할지라도 초등학생이 그렇게 빨리 암산으로 풀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는데... 나는 놀라서 물었다.

  "희수는 수학을 잘하는구나?"

  "예, 저 수학 잘해요. 선생님은 수학 잘하세요?"

  희수가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 말이 나의 자존심을 살짝 건드렸다. 나도 수학이라면 자신 있었다. 경시대회에서 몇 번의 수상을 하고 학교 시험에서도 거의 100점을 놓쳐본 적이 없던 나인데, 어린 아이가 간단한 수학 문제 몇 문제 정도 풀었다고 우쭐해하다니...

  "선생님도 수학 잘하지, 우리 누가 먼저 문제 푸나 시합해볼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지는 건 못 참는 성격이다. 어린 아이라 조금우스울 수도 있지만 나를 만만히 보는 것 같아 내 실력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도 수학 잘해요? 나도 수학 잘하는데..."

  희수는 여전히 땅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희수야 그럼 여기 10문제를 더 빨리 푸는 사람이 수학을 더 잘하는 걸로 하자, 어때?"

  "알겠어요."

  그렇게 난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대결을 했다. 애초에 고3과 초3의 수학 대결이라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지기 싫은 나는 최선을 다하여 어린 아이에게 자신보다 더 위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바로 겸손이라는 것을.

  "준비 시~작!"

  두세 자리수의 곱셈과 나눗셈이 섞여 있는 문제였다. 나는 최대한 암산을 활용하여 문제를 빠르게 풀어나갔다. 7번 정도 문제를 풀 때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다 했어요!"

  "뭐?"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나도 두 자리 수 곱셈까지는 거의 암산을 하고, 계산도 빠른 사람이다. 그것도 고3이다. 초등학생이 벌써 풀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정말이야? 그냥 대충 푼 거 아니지?"

  난 설마 하며 채점을 했다. 이럴 수가... 100점이었다.

  "희수야, 한 번 더 할래?"

  난 결과를 인정할 수 없어 다시 제안했다.

  "시~작!"

  그리고 잠시 후,

  "선생님, 다 했어요!"

  이번엔 더 빨랐다. 나는 5문제 밖에 풀지 못했다. 희수는 문제를 보자 마자 답을 적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풀어?"

  난 놀라 회동그라진 눈으로 부끄러운 것도 잊고 희수에게 물었다.

  "그냥 답이 눈 앞에 떠올라요."

  난 말문이 막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희수는 수학과 물리 분야에서는 티비에서나 보던 천재라고 했다. 다만 태어날 때부터 자폐증을 앓고 있어서 사람 들과의 소통이 어려워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딩동딩동!

  학교 건물 꼭대기에 있는 종이 쳤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 봉사 시간이 끝난 것이다. 너무 길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억지 웃음을 지으며 보내니 온 몸이 지쳤다. 마무리 인사를 하기 위해 터벅터벅 운동장에 모이는데 저 멀리 아까 그 여자가 보였다. 내가 준현이라는 아이를 밀쳤을 때 나왔던 여자 말이다.

  "저기요!!!!"

  난 고맙다고 말하려고 뒤에서 소리 쳤다. 하지만 그녀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앞만 보며 걸어갔다. 난 '못 들었나?' 하는 생각에 빠르게 걸어가 조금 더 가까이서 말했다.

  "저기요! 아까 고마웠어요."

  그녀는 또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나를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느껴졌다. 살짝 짜증이 난 나는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저기요,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해야죠?"

  그제서야 그녀는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음에도 없는 봉사활동 하러 오지 마세요. 그리고 애들 그렇게 무시하지 마요. 애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다 눈치채고 상처받아.요"

  난 순간 너무 놀라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내 속마음을 눈치챘지? 내가 티가 났나? 아까 그 일 때문에 그런가? 그 일 외에는 완벽했는데'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난 변명을 하기 위해 뭐 라도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다시 뒤돌아 가던 길을 갔다. 난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선우 학생, 뭐해요. 빨리 이쪽으로 와요."

  나를 부르는 선생님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운동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시설에서의 첫 봉사활동이 끝이 났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쿤호입니다.

 평소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가 사고를 당하여 의기소침해진 모습을 보고 친구로서 뭔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써보게 되었습니다.

 처녀작이라 부족한 점이 많지만,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분없이 모두 행복과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친구야! 밝게 살아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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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 2019 / 11 / 9 231 0 3765   
43 42화 2019 / 11 / 9 240 0 5391   
42 41화 2019 / 11 / 9 219 0 5055   
41 40화 2019 / 11 / 9 228 0 5888   
40 39화 2019 / 11 / 9 208 0 6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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