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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웰컴 투 틸다 아일랜드
작가 : 태리베어
작품등록일 :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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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소심하고,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는 게 낙인 마설희!!
VS. 세상과 24시간이 모자라게 소통하고 싶은 마틸다!!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하나의 몸을 셰어하고 있는 마설희와 마틸다!

이중인격 두 사람(?)에게 두 남자가 나타났다?!

 
마설희 VS 마틸다
작성일 : 19-10-31 06:51     조회 : 344     추천 : 0     분량 : 8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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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는 고급스럽고 기품 넘치지만 유연한 캐주얼 음악이 흐르는 갤러리 카페 ‘리안’에서 지적인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인생보다 쓰다는 에스프레소를 쪼르륵 들이마시며 일정한 간격으로 벽면에 걸린 현대 미술 작품들을 명품 쇼핑하듯 정성스럽게 훑었다. 프랑스에서 활동을 하고 돌아온 신예 작가의 작품은 파격적인 선과 강렬한 색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힘겨워하는 자화상을 표현했다, 라고 깨알처럼 적힌 팸플릿을 읽었다.

 

  “파격적이고 강렬한 선과 색은 개뿔, 5살짜리 우리 조카가 그렸다고 해도 믿겠네.”

 

  애매모호하고 난해한 그림은 애초부터 A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녀가 기다리는 관심사는 몇 시간째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입구를 재차 흘깃거려 보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목요일이나 금요일 저녁, 일주일에 한 번은 카페에 나온다는 정보를 SNS 친구에게서 분명히 접수했는데 쩝. 목요일이었던 어제, 그리고 금요일인 오늘, 한 잔에 만 오천 원이나 하는 에스프레소를 몇 잔이나 들이키며 기다리고 있었건만 목표는 나타나지 않았다. 휴, 카페인에 펄떡이는 혈관을 진정시키며 지하철 입구에서 산 얇은 잡지를 꺼냈다. 오늘이 안 된다면 다음 주 목요일이 또 있다.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목요일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온다. 그러니까 실망하기는 이르다.

 

  『아이돌 파이몬 출신 ‘태평’의 갤러리 카페 ‘리안’, 오픈 1주년을 맞다!』

 

  얇은 재질의 종이들 사이에서 호감 가는 기사를 발견했다. 작품을 볼 때와는 다르게 발랄해진 A의 눈빛이었지만 금세 짜증이 끼어들었다.

 

  『아이돌 그룹 파이몬 해체 후, 리더 ‘태평’(27)이 평소 취미를 살려 오픈한 갤러리 카페가 첫 번째 생일을 맞았다. 각계각층의 축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쉬운 점이 한 가지 꼽혔다. 운영이나 작품을 보는 안목에 대해서는 칭찬이 자자하지만 일부 극성팬들 때문에 작품 감상하려는 일반인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는 후문.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언제 올 줄 모르는 ‘태평’을 기다리는가 하면 작가들의 저작권을 무시하고 SNS에 카페의 사진을 무단으로 업 로드하는 행태까지 벌이고 있다.』

 

  제목이 오픈 1주년이면 내용도 1주년을 축하하는 내용이어야 수미상관 아닌가. 부아가 치밀어 오른 A가 쓰디 쓴 에스프레소를 원샷했다. 아무리 그래봤자 역시 에스프레소보다는 보고 싶지 않은 기사에 상처를 받는 인생이 더 쓰다.

 

  “어머, 어머. 누가 왔나 봐.”

 

  입가심으로 청포도 주스를 주문하려 카드 지갑을 꺼내는데 카페의 입구에서 분주함이 밀려들었다. 수비하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든 건 A만이 아니었다. 드디어 우리 태평이 얼굴 보는 건가? 하는 시선에 걸린 건 태평이 아니라 검정색 롱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하지만 기다리던 태평이 아닌데도 시선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칼, 은은한 백옥의 피부, 짙은 눈썹과 한 손에 잡힐 듯한 얇은 발목. 그녀가 가진 외적인 포인트가 눈길을 잡아당겼다. 작품 감상을 목적으로 온 일반인인가, 아니면 A처럼 파이몬 멤버들을 목적으로 한 극성팬인가. 그녀를 향한 궁금증과 적대감이 ‘리안’에 일렁였다. A는 잡지를 읽는 척하며 검정 원피스의 그녀를 관찰했다. 직원에게 음료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켜고,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바꾸는 몸짓이 무용수마냥 우아했다. 주위의 눈총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느리게 감기 속도로 턱을 괸 그녀는 노트북 안의 무언가를 읽는 데 금세 빠져 들었다.

 

  “칼럼니스트? 문화 계열의 기자? 아니면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얼굴 반반한 팬?”

 

  윗니로 아랫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A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시력 5.0의 몽골인이 아니라면 보일 리 없는 먼발치의 노트북 화면을 탐색하는 건 말짱 헛수고였다. 마치 화보의 한 컷 같은 그녀의 모습에 A는 읽고 있던 잡지를 가방에 우겨넣었다. 그러고는 조금 더 탐색하기 용이한 그녀의 뒤편 좌석으로 테이블을 옮겼다.

 

 * * *

 

  『설희의 손가락 사이에서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이 움켜쥐어진다. 예민한 반응에 남자는 두피의 통증도 잊고 피식 웃는다. 눈이 내리고, 밖은 고요하다. 남자의 웃음이 들리자 설희의 자존심에 실금이 생긴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목구멍의 근육을 바짝 조였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범람하는 쾌락이 목구멍 사이로 침범하자 설희는 깊은 바다에서 막 건져진 사람처럼 푸하아, 하고 숨을 헐떡인다. 그게 마치 신호라도 되듯 남자의 손이 블라우스를 거칠게 뜯어…….』

 

  “미친 거 아냐?!”

 

  가녀린 팔목이 노트북을 거칠게 닫았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대조되는 화통한 행동이었다. 고상하게 음료를 마시거나 작품을 감상하던 까만 뒤통수들이 연주황으로 색을 바꿔 일제히 이쪽으로 쏟아졌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죄의 고갯짓을 사방으로 건네자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검정 원피스의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붉게 달아오른 볼이 도통 일상의 색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

 

  “또 이런 야한 소설을 내 보고서에 덮어쓰기 해놓다니. 지긋지긋하다, 마틸다. 어? 그럼 내 보고서는 어디 갔어? 어제 하루 종일 쓴 건데.”

 

  노트북을 다시 열어 폴더를 뒤졌지만 허사였다. 9월 셋째 주, 넷째 주 보고서 아래에 ‘10월 첫째 주 보고서’로 저장된 파일에는 쾌락과 욕망과 열락과 환희 등등. 축축함으로 점철된 한 페이지의 야한 글뿐이었다.

 

  “내일 당장 보고서 가지고 선생님 만나러 가야하는데 그걸 삭제시켰어, 으으으.”

 

  한 페이지 밖에 안 되는 보고서지만 이게 또 쉬운 게 아니다. 4년 가까이 일주일 단위로 제출한 보고서이기에 비슷한 말을 다른 느낌이 나도록 지어내는 것도 노동이란 말이다. 단어를 주기적으로 돌려 써왔기 때문에 어제 쓴 내용이 기억날 리도 없다. 아, 머리야. 얇고 하얀 손가락이 미간을 주물렀다. 야무지게 써놓은 보고서 위에 이 따위 야한 기교를 부린 당사자를 떠올리며 입술 껍질을 뜯었다.

 

  “마…… 틸다?”

 

  비통함에 빠진 그녀의 앞에 웬 외간 남자가 멈춰 섰다. 청초한 그녀의 이름이 마틸다란다. 희한한 이름에 흩어진 줄 알았던 뒤통수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타인의 관심을 받는 일에 미숙한 듯 그녀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이름이 마틸다인가 봐. 어머, 특이하다. 부모님들이 너무 책임감 없는 거 아니야? 마틸다라니 무슨 일이야. 레옹은 어디 갔어. 지성과 교양으로 가득 찬 배경 음악을 수군거림이 덮어버렸다. 미간을 주무르는 자세로 잠시 일시정지 되어있던 그녀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남자의 표정이 환해졌다.

 

  “맞지, 마틸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아까 카페 들어올 때부터 보고 있었어. 예쁘다~ 싶어서 계속 쳐다봤는데 아는 얼굴이지 뭐야.”

 

  상대가 얼굴이 붉어지든 말든 아는 체를 유지하며 외간 남자가 맞은편에 앉았다. 끔뻑끔뻑 맹하게 남자가 하는 모양을 보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 잘못 보신 것 같네요. 마틸다라니,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에이~ 왜 이래.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 전에 만난 얼굴을 모를까봐? 내 번호 가르쳐줬잖아. 왜 연락 안 했어?”

  “죄송한데 저는 정말 그쪽을 몰라요.”

  “아, 이런 데서 보니까 불편해서 그러는구나? 그럼 나가자. 분위기 좋은 청담동 Bar 아는데 가서 와인 한잔 하자.”

 

  아니라는데도 막무가내다. 멋대로 구는 남자와 불편해하는 그녀를 보며 이름을 지은 부모에 대해 토론을 벌이던 사람들이 토론의 주제를 바꿨다. 마틸다가 아닌가 봐. 저 남자 그냥 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수작 거는 거 아니야? 싫다는데 그냥 가지, 구질구질하게. 끈질겨 보이는데 도와줘야 되나? 갤러리 카페의 화두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힘겨워하는 자화상‘에서 작업 거는 무례한 남자와 마틸다로 오해받는 안타까운 여자로 들끓었다.

 

  “안 그래도 마음에 들었는데 연락이 안 와서 더 마음에 들었지 뭐야. 나는 담백하면서 콧대 높은 여자가 좋거든. 대신 침대 위에서는 열정적이고. 뭔 줄 알지?”

  “저기요. 말씀하신 분이 누군지 모르지만 저는 아니에요. 불편해지려고 하니까 이만 자리 옮겨주실 수 없을까요?”

 

  그녀의 냉대에 ‘내 얼굴이랑 차키만 보고 집착하는 여자들은 정말 매력 없어, 뭔 줄 알지?’ 따위를 주절거리던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잭의 콩나무처럼 무례함이 천정을 뚫고 자라나는데도 침착한 품위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고는 돌진하는 황소가 그려진 차키를 테이블에 탁하고 올려둔다. 저건 필시! 누워서 타야한다는 억 소리 나는 스포츠카의 로고였다. 고의적으로 부티를 진열해놓은 남자는 자신만만해보였다. 꿀꺽. 나서지는 못하지만 눈을 뗄 수도 없게 만드는 긴박한 전개에 사람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와인 싫으면 이 차 타고 교외로 드라이브 가자.”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마틸다가 아니라고요. 몇 번을 말해요.”

  “…… 그날은 되게 화끈하고 매력적이었는데 오늘의 마틸다 씨는 담백을 떠나서 건조하네. 재미없게.”

 

  뭐 거, 건조? 여자가 음식이냐. 어디서 담백을 찾아, 거지발싸개 같은 놈이! 외모 좀 반반하고, 엔진 소음 뻥뻥 터지는 비싼 차타면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거야? 귀를 기울이던 수많은 여자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회색 체크무늬 슬랙스와 검은 셔츠를 입은 훤칠한 남자가 등장했다.

 

  “이태평이다! 이태평!”

  “어떡해, 실물 대박이다…….”

 

  옅지만 황홀한 탄식들이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자기소개를 대신 해준다.

 

  “뭐야?”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저희 갤러리는 주류 시설이 아닙니다.”

 

  갑자기 나타나 초를 치는 놈이 누군가 싶어 성난 황소의 주인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들었다. 갈색 염색모 아래로 이목구비의 날카로운 선이 펼쳐졌다. 매끈하고 높은 콧대가 만들어낸 음영이 환상적이었다. 더 환상적인 도톰한 입술로 미소 짓고 있는 그는 갤러리 카페의 사장이자 A를 비롯한 극성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이태평이었다.

 

  “헌팅은 술집에 가서 하시죠. 다른 고객님들이 불편해 하시네요.”

  “뭐, 뭐?! 헌팅이라니?!”

  “헌팅 모르시나? 지금 그쪽이 저희 갤러리 고객님께 예의 없이 시도하고 있는 ‘그거’ 말입니다.”

 

  성난 황소의 주인이 콧김을 뿜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자가 뱉은 말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손님한테 예의 없이 뭐 하는 짓이냐.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인터넷에 글 올리면 너 같은 건 끝이다. 가만 안 두겠다. 뉴스에서 갑질이랍시고 늘 들어왔던 그런 것들이었다.

 

  “다 떠드셨습니까?”

  “…… 뭐라고?!”

  “다 떠드셨으면 이만 나가주세요. 인터넷 가십거리가 되는 게 제가 아니라 고객님이 될까 봐, 걱정돼서 하는 얘깁니다.”

 

  태평의 미소는 온화했지만 태도는 고압적이었다. 만취한 아빠처럼 목 끝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남자의 시야에 그제야 주위의 풍경이 들어왔다. 휴대폰 카메라와 악의 섞인 눈초리들이 자신을 조준하고 있었다. 태평의 극성팬들이 포진하고 있는 이곳에 남자의 편은 없었다. 더 버텼다가는 극성팬이든 태평의 측근이든 어느 쪽에서라도 저를 가만두지 않을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졌다는 걸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남자는 카페를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이 새끼, 저 새끼, 소 새끼, 개 새끼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의 새끼를 소환하다 사라졌다. 그리고 곧 뻥! 뻥! 지 성질머리 같은 엔진 소음을 퍼뜨리며 멀어졌다.

 

  “괜찮으세요?”

 

  고압적인 자세를 푼 태평은 몹시도 맵시가 넘쳤다. 부드럽고 다정하며 상냥했다. 괜찮으냐는 태평의 물음에 마틸다라는 오해를 받으며 헌팅을 당한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어머, 저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 해. 좀 전까지 무례한 남자를 향해 뿔난 카메라를 들이밀던 팬들이 방향을 바꿔 태평을 담느라 바빴다.

 

  “기분 상하셨죠. 대표인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곧게 허리가 숙여지자 찰칵, 찰칵 소리가 더욱 분주해졌다. 아마 몇 시간 걸리지 않아 ‘아이돌 파이몬 출신 태평, 무개념 고객을 대신한 진심 어린 사과’ 비슷한 기사들이 포털사이트를 메울 것이다. 보고서 체크하러 카페에 들렀을 뿐인 검정 원피스의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야한 소설에, 헌팅에, 연예인의 사과도 받았다. 아까 빨개진 볼이 수그러들 틈이 없었다. 그런데 카페 입구에서 가지고 온 팸플릿으로 파닥파닥 부채질을 하는 그녀를 이번에는 태평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뭐야. 이 공기 뭔데. 묘하게 흐르는 기류에 슬슬 사인이라도 받으러 출동하려던 팬들이 의자 옆으로 두 다리를 내놓고, 매직을 든 자세를 유지한 채 사태를 관망했다.

 

  “저기, 혹시…… 마설희 작가님?”

 

  마틸다 아니고 마설희? 저 여자 뭔데 스파이라도 되나. 들쑥날쑥 하는 그녀의 정체에 카페가 술렁거렸다.

 

  “‘두 개의 문’ 쓰신 마설희 작가님 맞으시죠?”

  “네? 아니, 저기. 그게…….”

  “저 작가님 팬입니다!”

 

  갑작스레 내밀어진 태평의 손이 악수를 원하고 있었다. 태평의 낮고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마설희 작가라 불린 그녀가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가려는 손을 제지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마설희 작가라 불린 그녀가 비슷한 대답을 또 하려다 입을 합, 다물었다.

 

  “형, 뭐 하냐. 금방 나온다더니.”

 

  뭐 씹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또 다른 남자 때문이었다.

 

  “대박! 지헌이도 왔어! 국지헌!”

  “드라마 촬영하다 왔나 봐, 펌한 거 귀엽다~ 스물여섯 아니고 열여섯 같은데?”

 

  태평에다 파이몬 출신의 또 다른 멤버까지 보다니 카페에 온 목적을 100% 달성한 A를 비롯한 팬들은 지난 사건은 지나간 대로 잊고, 찢어진 청바지에 검은 후드티셔츠를 입은 지헌을 카메라에 담는 데 집중했다. 선한 눈망울이 때로는 악해 보이는 대체불가 배우. 농사를 지어도, 청부살인을 해도 어울린다. 잘생쁨한 외모에 탄탄한 근육 바디, 아이러니한 매력의 사나이. 온갖 수식어로 치장된 기사를 하루에도 여러 번 갈아 치우는 인물이었다.

 

  “아는 분을 만나서. 너도 알지? 내가 팬이라고 했던 마설희 작가님.”

 

  문장 끝에 하트라도 달아줘야 할 기세의 태평에 위기의식을 느낀 A가 휴대폰을 들어 바삐 검색창을 열었다. 마. 설. 희. 대형 포털사이트에도 그 이름을 설명해 줄 프로필은 없었다. 현란한 손놀림 뒤로 나열된 정보는 기껏 5년 전쯤에 난 기사 몇 개가 전부였다.

 

  『적룡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 ‘두 개의 문’, 방년 25세의 마설희 작가』

  『‘두 개의 문’ 영화로 제작!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 캐스팅 물망』

  『‘두 개의 문’ 골든영화제 시나리오 부문 노미네이트』

  『사라진 신예 마설희, 영화제 통보 없이 불참! 시상자가 대리 수상하는 해프닝』

 

  A도 본 적 있는 영화였다. 물론 당시에는 세간의 중심에서 반짝였지만 그뿐이었다. 유명한 연예인이 통보 없이 시상식에 불참했다면 몰라도 마설희는 그저 재능 좀 있는 신인 작가였다. 반짝임은 재빠르게 다른 관심사로 옮겨갔고, 해프닝은 금세 잊혀졌다.

 

  “누군데 그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얼른 나와. 나 배고파.”

 

  마설희가 뭐에 쓰는 건데. 라는 반응을 보인 지헌이 카페 밖으로 나가려 폼을 잡았다. 그러자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에 언제쯤 끼어들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팬들이 급속하게 밀려들었다. 아이돌로서는 이미 은퇴했기에 태평과 지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그건 호구다. 마구잡이로 찍어도 살아남는 이목구비를 멀리서만 보는 건 미에 대한 기만이다. 더 가까이서 사진을 찍고, 운이 좋다면 휴대폰 뒷면에 사인도 받아서 SNS에 자랑하고 싶었다. 전투적인 의지들이 마설희라 불린 여자와 태평 그리고 지헌 사이에 틈을 벌렸다. 순수하게 작품을 보며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어, 잠깐만! 여러분 잠시만, 잠시만!”

 

  태평이 팬들을 진정시켜봤지만 소용없었다. 어깨며 팔을 만지는 건 기본. 아, 아! 내 머리! 어디선가 나타난 손이 태평의 머리카락을 뽑아갔다. 후우-! 열 받은 속을 삭이느라 입술로 바람을 불자 지헌의 포슬포슬한 앞머리가 흩날렸다. 터치라도 한 번하려고 우후죽순으로 다가왔다가 멈칫한 팬들이 30cm 정도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사, 사진 찍어도 돼요?”

  “사진만.”

 

  무뚝뚝한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카메라 연사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폭풍에서 한발자국 떨어진 곳에서는 마틸다인지, 마설희인지, 아니면 그 누구도 아닌지 알 수 없는 신원 미상의 그녀가 다급하게 노트북과 소지품을 가방에 욱여넣고 있었다. 미니 팬미팅에 주위가 산만해진 사이 그녀는 신속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

 

  “어떡하지? 나더러 마틸다라고 했어. 알아본 건 아니겠지? 설마… 근처에서 엿보는 건?!”

 

  주위를 둘러보더니 청순가련한 원피스와는 다르게 스파이 뺨치는 민첩성을 자랑하며 택시에 올라탔다.

 

  “선생님한테 연락은 안 해도 되겠지? 그래, 다시는 그 카페에 안 가면 되는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녀를 택시 기사가 불안한 듯 수시로 흘깃댔다. 그리고 15분 뒤, 집으로 추정되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여전히 민첩하게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스킨케어를 하고, 종아리 압박스타킹을 신었다. 마지막으로 전자레인지에 돌려 따끈해진 수면안대를 쓰기 전, 현관에 달린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빨간 보드마카를 손에 들었다가 암만 그래도 빨간색은 좀 그렇지. 소심하게 파란색으로 바꿔 들고는 화이트보드에 오밀조밀 구구절절, 사사건건 긴 글을 남겼다. 중요한 부분에는 빨간색으로 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고, 별표 두 개까지 야무지게 붙였다. 이 정도로 알아들어 준다면 좋겠는데. 욕이라도 써놔야 하나. 미련 넘치게 화이트보드를 몇 번 돌아보다 이내 형광등을 끄고, 수면안대를 쓰고 두 손을 겹쳐 배에 얹고는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피곤한 하루였다. 잠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잠든 줄 알았던 입술이 불현 듯 움직였다.

 

  “그 새끼는 그런 델 뭐 하러 갔대. 상식적인 장소에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옆에 사람이라도 누워있었다면 펄쩍 뛸 만치 갑작스러웠고, 독사과를 먹은 백설공주 포즈로 입술만 움직이는 건 약간 그로테스크 했다. 뒤척이지도 않고 자던 얌전한 손이 안대를 벗어 던지자 잠든 적 없었던 것처럼 생생한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작가의 말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하나의 몸을 셰어하는 마설희와 마틸다!

 두 여자(?)의 치열한 로맨스 공방전!

 <웰컴 투 틸다 아일랜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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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설희는 소심한 덕후였다. 2019 / 11 / 4 222 0 5932   
10 숨기만 해서는 괜찮아지지 않아. 2019 / 11 / 4 206 0 5998   
9 어중간한 재능은 악마가 준 선물이다. 2019 / 11 / 3 203 0 6545   
8 뭔가 잘못돼 가고 있어요. 2019 / 11 / 3 232 0 6289   
7 마틸다, 사고 치다! 2019 / 11 / 3 212 0 7455   
6 밤의 틸다 VS 국민 첫사랑 국지헌 2019 / 11 / 2 209 0 5771   
5 마설희는 어쩌다 마틸다를 만나게 되었나 (2) 2019 / 11 / 2 321 0 7427   
4 마설희는 어쩌다 마틸다를 만나게 되었나 (1) 2019 / 11 / 2 290 0 7326   
3 아이돌 출신 영화감독 이태평 2019 / 10 / 31 288 0 5759   
2 Who is Matilda? 2019 / 10 / 31 318 0 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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